금화 스물다섯 닢은 작은 주머니 하나에 다 들어갔다.
태오는 그 사실이 이상했다. 그 돈 때문에 검은 산맥에 올라가 고대 드래곤에게 소리쳤고, 왕실 기록실과 세입자 조정소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돌려받아야 할 원금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천 주머니 한 개면 충분했다.
“아직 받으신 건 아닙니다.” 바렌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태오는 웃었다.
오늘은 발카스 개인 수차 시설에서 확인된 순수익을 최종 대조하는 날이었다. 바렌은 개인 소유 지분에서 나온 수익과 공동 소유자의 몫을 분리한 장부를 가져왔다. 세금과 유지비도 이미 공제돼 있었다. 공동 소유자와의 거래로 묶인 돈은 제외했고, 이전에 지급한 보증금 반환액과 중복 기재되지 않았는지도 확인했다.
“자료를 확인한 뒤 실제로 지급받으시면 금액을 바꾸겠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발카스는 오늘 처음으로 특별히 다듬은 인간 모습이었다. 어깨의 검은 외투에는 금빛 장식이 있었고 머리카락도 평소보다 단정했다.
“장례식에 오신 것 같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내가 일곱 해 넘게 끌어온 빚과 이별하는 날이니까.”
“빚에게는 슬픈 날일지 몰라도 제겐 좋은 날입니다.”
“넌 끝까지 말이 많군.”
마르셀이 회의실로 들어오며 두 사람을 말렸다.
“행사는 없습니다. 수령과 영수증 확인 절차만 진행합니다.”
발카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인간들은 기쁨도 절차로 만드나.”
태오가 대답했다.
“오늘만큼은 절차가 반갑습니다.”
***
마르셀이 영수증을 작성하기 전에 태오는 한 가지를 더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과거 지급 내역 가운데 작은 금화 한 닢이라도 다른 계약과 중복됐는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장부를 다시 확인해도 될까요?”
바렌은 기꺼이 영수증 묶음을 펼쳤다. 첫 30금화부터 마지막 25금화까지 각기 다른 날짜와 출처가 남아 있었다. 지급 재원이 발카스 개인 재산이거나 별도로 검증된 수익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일부 지급은 과수원, 일부는 창고 임대수익, 일부는 토지와 수차 수익에서 나왔다. 계정 47의 미확정 보관금이 임의로 빠져나온 것으로 적힌 항목은 없었다.
태오는 한 줄씩 눈으로 따라갔다. 누적액이 300금화에 도달한다는 사실은 이미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에 담긴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걸 전부 돌려받으려고 이렇게 오래 걸렸네요.”
발카스가 말했다.
“내가 돈을 돌려주기 싫었던 건 아니라고 말해도 되겠느냐?”
태오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 마음이 사실인지 저는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실제로 오래 돌려주지 않으셨던 건 맞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늦게나마 갚기 위해 행동하신 것도 맞습니다.”
발카스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고맙다.”
“고마워하실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도 이제 더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 기쁩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드래곤의 동굴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침묵이었다.
***
마르셀은 세 장의 자료를 먼저 검토했다. 최초 임대계약의 보증금 300금화, 이미 실제 지급된 275금화의 영수 내역, 그리고 오늘 지급하려는 25금화의 재원 확인서였다.
“이 금액은 태오 씨의 계약 원금에서 남은 부분과 같습니다.”
“맞습니다.”
“연체로 인해 발생했을 수 있는 별도의 법적 권리나 비용 청구 문제까지 오늘 자동으로 정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세입자의 권리와 계정 47 사건도 별개입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카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늘은 원금에 관한 지급만 정확히 기록하겠습니다.”
바렌이 주머니를 열어 책상 위에 금화를 하나씩 놓았다. 금화는 맑은 소리를 내며 탁자에 닿았다. 마르셀은 개수를 세고, 태오도 직접 다시 세었다.
하나, 둘, 셋.
태오는 십일이 될 무렵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 발카스의 동굴로 갔을 때는 300금화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조금씩 돌려받는 동안 그 금액은 270, 230, 210, 185, 155, 120, 100, 85, 65, 40, 25로 줄어들었다. 마지막 숫자를 세는 순간이 드디어 왔다.
스물넷.
스물다섯.
“25금화 확인했습니다.”
태오는 자기 손으로 금화를 주머니에 담았다. 실제로 소유와 수령이 확인된 돈이었다. 바렌은 재원 명세에 서명했고, 마르셀은 입회 기록을 남겼다.
“이제 영수증을 작성하겠습니다.”
태오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
영수증의 첫 번째 줄은 아주 짧았다.
[김태오의 최초 보증금 원금 300금화 중 총 300금화 반환 완료.]
두 번째 줄에는 오늘 지급액 25금화, 누적 300금화, 남은 원금 0금화가 적혔다. 마지막 부분에는 이 문서가 다른 계약 당사자의 채권이나 별도 쟁점의 일괄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고 명시됐다.
“여기에 사인하면 정말 끝나는 겁니까?” 발카스가 물었다.
“태오 씨의 보증금 원금 반환은 끝나는 겁니다.” 마르셀이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개별 채무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기록 문제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지요.”
발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확히 그만큼만 끝내겠다.”
태오는 펜을 들었다. 본인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처음 계약서에 서명했을 때 그는 이 세상을 잘 몰랐다. 지금은 누가 어떤 권리를 가졌는지 모르면 함부로 사인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확인했습니다.”
마르셀은 원본과 사본을 각기 나눠 주었다. 태오는 영수증을 접지 않았다. 구겨지지 않게 가방 안의 단단한 서류판 사이에 넣었다.
발카스는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제 나를 찾아와 돈을 돌려달라고 소리치지 않겠군.”
“제 원금에 관해서는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세입자들에게도 약속을 지키셔야죠.”
발카스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쳤다.
“알고 있다.”
“그리고 BG-17 자료 조사는 계속됩니다.”
“그것도 알고 있다.”
태오는 그가 잠시 기뻐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갚아야 할 돈을 갚았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연한 일을 너무 오래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날이 새로운 시작일 수 있었다.
***
회의실을 나오자 복도에서 리네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태오의 얼굴을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받았어요?”
“네.”
“실제로요?”
“스물다섯 닢 모두요.”
그녀의 눈이 커졌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리네아는 태오를 힘껏 끌어안았다.
“정말 잘됐어요.”
태오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기쁨보다 먼저 피로가 밀려왔다.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줄 하나가 마침내 끊어진 느낌이었다.
“고마워요.”
“제가 돈을 돌려드린 건 아니에요.”
“알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같이 왔으니까요.”
그녀는 한 발 물러나 그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다음 여행에는 보증금 이야기를 안 해도 되는 건가요?”
“그 이야기를 안 하겠습니다.”
“정말?”
“대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갑시다.”
리네아가 환하게 웃었다.
“그건 제가 정해도 돼요?”
“물론이죠.”
“그럼 하루가 아니라 이틀요.”
태오는 잠시 계산하는 표정을 지었다. 리네아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지금 여행 경비를 계산해요?”
“아니요. 당신과 이틀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지 계산 중입니다.”
리네아는 결국 웃으며 그의 팔을 때렸다.
“요즘 정말 못 당하겠어요.”
***
저녁에 태오는 기록방 앞에 작은 종이를 붙였다.
[알림: 김태오 개인 보증금 원금 반환 완료. 다른 세입자들의 청구 및 관련 조사와는 별개.]
로벤이 먼저 찾아왔다. 그는 기쁜 듯 웃으며 태오의 손을 잡았다.
“자네 돈은 다 받았나?”
“네. 드디어요.”
“그럼 이제 나 같은 늙은이를 도와줄 필요가 없겠네.”
“왜요? 저는 기록방 사장인데요.”
로벤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허허 웃었다.
“아, 그렇군. 자네는 이제 자기 일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겠군.”
“맞습니다. 그리고 로벤 씨의 계약은 로벤 씨의 것이고요.”
소피도 아이와 함께 왔다. 그녀는 태오의 영수증을 직접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축하의 빵을 내밀었다.
“좋은 일이라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제 일은 아직 남았지만요.”
“네. 따로 함께 확인합시다.”
소피는 안도한 듯 미소 지었다. 헤스는 커다란 과자를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드래곤 빚이 갚아진 날이면 과자 하나쯤은 먹어야지.”
“과자는 따로 영수증 써야 합니까?” 태오가 묻자 사람들이 웃었다.
***
태오는 지급 직후 기록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래전 자신이 살던 집 앞을 지나갔다. 창문에는 새로운 커튼이 달려 있었고, 정원에는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멀리서 건물만 바라봤다.
처음 이사했던 날, 그는 이세계의 규칙을 거의 몰랐다. 값이 적당하다는 중개인의 설명만 듣고 계약했고, 집주인이 고대 드래곤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서류를 읽었는지 이제는 셀 수도 없었다.
“여길 다시 보고 싶었어요?” 리네아가 물었다.
“네. 하지만 돌아와서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 왜요?”
“이 집 때문에 제 삶이 멈춘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계속 이어지고 있었더라고요.”
리네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죠. 우리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었어요.”
태오는 건물 위로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이제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새 임차인이 어떤 조건으로 사는지는 그가 마음대로 캐물을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계약은 끝났고, 반환할 원금도 전부 돌아왔다. 남은 미스터리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집에 들여다볼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가요.” 태오가 말했다.
“어디로요?”
“우리 기록방으로요.”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
저녁 모임에서 태오는 특별한 연설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가까운 사람들에게 차를 따라 주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헤스는 새 빵 제조법을 연구 중이라고 했고, 로벤은 옛 마차를 고쳐 마을 아이들에게 말 돌보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소피는 현재 집의 임대일정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이야기가 보증금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계속 살고 있었다. 태오는 그것이 오랫동안 놓치고 있던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발카스가 떠나기 전에 그에게 물었다.
“이제 너는 나를 무엇으로 기억하겠느냐?”
태오는 웃었다.
“드래곤 집주인으로요.”
“그것뿐이냐?”
“약속을 너무 늦게 지켰지만 결국 원금은 다 돌려준 집주인입니다.”
발카스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군.”
태오는 생각했다. 아직 누군가의 계약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발카스가 완전히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원금 300금화는 오늘 실제로 손에 들어왔다. 그 명확한 사실을 기뻐해도 괜찮았다.
***
늦게 발카스가 나타났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가에 섰다. 태오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축하하러 오셨습니까?”
“그럴 자격이 있느냐?”
“빚을 갚으셨으니 제 원금에 관한 한 오늘은 기뻐하셔도 되겠죠.”
드래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하겠다.”
“각자의 계약과 상황에 맞게요.”
“안다.”
그날 발카스는 불을 뿜지 않았고, 보물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대신 사람들과 같은 탁자에 앉아 작은 찻잔을 들었다. 소피의 아이는 두려워하지 않고 드래곤에게 과자를 건넸다.
“맛있어요.”
발카스는 조심스럽게 과자를 받았다.
“고맙다.”
태오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이 세계에 와서 본 수많은 기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작은 장면이었다.
***
사람들이 떠난 뒤 태오는 혼자 장부를 열었다. 첫 페이지에는 자신이 도망칠 수 없는 채무처럼 느꼈던 숫자가 있었다. 300금화. 그는 그 아래에 마지막으로 적었다.
[149화. 누적 실지급 300금화. 미환급 원금 0금화.]
한 장 뒤에는 BG-17과 계정 47 조사의 빈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태오는 그 책도 함께 덮었다. 한 사람의 끝이 다른 사람의 끝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신의 원금을 모두 돌려받은 기쁨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창밖에서 리네아가 손을 흔들었다. 태오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달빛 아래 푸른 간판 두 개가 나란히 빛나고 있었다. 한쪽은 중개 사무실, 다른 한쪽은 기록방. 이제 그는 빚을 받아야 하는 세입자일 뿐 아니라 스스로 일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집에 가요.” 그녀가 말했다.
“좋습니다.”
“오늘은 장부 그만 보세요.”
“네. 오늘은 다 받았으니까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골목을 걸었다. 오래된 전세금 이야기는 그날 비로소 처음 계약한 사람의 손에서 마침표 하나를 얻었다.
제14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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