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스는 드디어 지급 일정을 적은 종이를 들고 왔다.
태오는 그 사실만으로 이미 대단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산맥의 옛 군주가 스스로 금전 계획을 만들었다니, 옛 신문 기사라면 나라가 뒤집힐 일이라고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 종이에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너에게 줄 나머지 예순다섯 닢이다.”
“아직 전액을 가져오신 건 아니군요.”
“전액은 아니다.”
태오는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남부 목초지의 다음 임대료 수령 예정일과 별도 창고의 매각 검토 계획이 적혀 있었다. 금액마다 '예상', '확정 전', '검증 필요'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바렌 씨가 쓰셨죠?”
“내가 말하고 바렌이 정리했다.”
“지난번보다 명확하네요.”
발카스가 으르렁거렸다.
“나는 칭찬을 받으러 온 게 아니다.”
“돈을 받을 사람에게 돈을 줄 계획을 보여 주러 오셨죠.”
“그렇다.”
“그 자체는 좋습니다. 다만 실제 지급 전에는 보증금 잔액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발카스는 태오를 쏘아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알고 있다.”
***
바렌은 설명을 이어 갔다. 발카스 명의의 남부 목초지에서 매달 사용료가 들어오지만, 일부는 관리와 세금에 쓰여야 한다. 그중 다음 달 초에 확인 가능한 순수익 25금화를 태오에게 우선 지급하려는 계획이었다. 창고 매각은 아직 구매자가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금액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그럼 25금화도 아직 받은 돈이 아니네요.”
“맞습니다.” 바렌이 말했다. “계정 47에 묶인 기록과 무관한 별도 재원이라는 점을 우선 입증하고 있습니다.”
태오는 그 설명이 기뻤다. 발카스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보물과 권력을 자랑하는 대신, 자금 출처와 예상 금액을 구분하고 있었다.
“일정이 어긋나면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발카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때는 늦어졌다는 사실과 이유를 말하겠다.”
“어떻게 알려 주시죠?”
“정식 전달석으로.”
“좋습니다.”
태오는 그것을 지급 약속의 정식 대체가 아니라 협의 초안으로 기록했다. 날짜에 따라 지급이 확정되는지 이후 확인해야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너는 만족하느냐?” 발카스가 물었다.
“아직은 아니요.”
“왜?”
“보증금이 다 안 돌아왔으니까요.”
드래곤은 눈을 감았다. 바렌은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이런 대화가 끝나도 천장이 타지 않았다.
***
그날 기록방에는 로벤이 첫 정식 계산서 정리 의뢰의 완료를 확인하러 왔다. 태오는 운송일지 사본을 반환하고 작업 범위와 수수료를 설명했다.
“네가 만든 표를 보니 내가 어느 날 어디서 일했는지 알겠구먼.”
“원본의 흐릿한 부분은 추정해서 채우지 않았습니다. 확인 안 되는 칸은 그대로 남겼습니다.”
“그게 좋소.”
로벤은 수수료를 내면서 멋쩍게 웃었다.
“내 보증금도 언젠가는 다 받을 수 있을까.”
태오는 쉽게 약속하지 않았다. 그가 자기 돈을 조금씩 돌려받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계약에도 같은 속도로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로벤 씨의 계약은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지금처럼 지급 재원과 날짜를 문서로 협의하자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로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기다리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묻겠소.”
그 말은 태오에게 아주 작은 승리처럼 느껴졌다.
***
오후 청문에서는 BG-17 보증서의 청산 자료가 공개 가능한 범위로 정리되었다. 수락 확인서의 원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구 조합이 과거 통지 누락 분쟁에 관해 별도 조사위원을 배정한 기록이 있었다. 그 기록에는 개인별 이의 진술을 먼저 확인하라는 지시도 적혀 있었다.
“그럼 누군가는 반대 의사를 낸 적이 있었겠군요.” 태오가 말했다.
이벨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무슨 뜻으로 반대했는지는 문서별로 확인해야 합니다.”
“코르 씨의 옛 진술과 같은 사건입니까?”
“지금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구 사건번호 중 일부가 비슷하지만 직접 연결될 원본이 더 필요합니다.”
태오는 점선 하나를 더 그렸다. 이번에는 다음에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가 조금 더 분명했다. BG-17 관련 이의 제기가 계정 47의 정산 위임으로 처리되는 과정과 연결됐는지, 아니면 단순한 유사 번호인지 대조하는 일이었다.
발카스는 그 말을 듣고 낮게 말했다.
“나는 일곱 해 전에 누군가 반대했다고 하면 귀찮은 절차라고만 생각했다.”
“그 반대 때문에 누군가의 권리가 지켜졌을 수도 있습니다.”
드래곤은 침묵했다.
***
리네아는 저녁에 태오에게 새로운 여행 일정을 보여 주었다. 바다까지 가는 마차의 시간표와 숙박비, 식사비가 적혀 있었다.
“정말 꼼꼼하게 적었네요.”
“당신에게 배웠죠.”
“이것도 계약서로 만들 건가요?”
“아니요.”
그녀는 시간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에는 둘이 즐기기 위한 계획이에요. 누가 위약금을 물지도 적지 않았어요.”
태오가 웃었다.
“그럼 제가 시간을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당일엔 당신 혼자 바다를 봐야죠.”
“그건 너무 가혹합니다.”
“그러니까 늦지 말아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가볍게 찔렀다. 태오는 그 손을 잡아 입을 맞췄다. 리네아의 눈이 커졌다가 곧 반달처럼 휘었다.
“요즘은 제가 먼저 놀리기도 어렵네요.”
“다음 단계로 진급한 겁니다.”
“무슨 단계요?”
“남자친구 상급 과정.”
리네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잠시 그의 셔츠 자락을 잡아당겼다가, 바로 뒤에 서 있는 토른을 보고 손을 놓았다.
“이제 들어와도 되냐?” 토른이 물었다.
태오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계약서 얘기할 때부터.”
리네아는 아예 태오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
발카스가 돌아간 뒤 태오는 지급 초안을 한 번 더 읽었다. 바렌이 정리한 표에는 수익 예측의 근거가 되는 임대계약 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개인 정보가 포함되는 부분은 가려져 있었다.
“기초 임대계약 전체를 볼 필요는 없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이벨이 답했다.
“돈이 독립 재원에서 나오는지 확인할 자료는 필요하지만, 다른 임차인의 계약상 비밀까지 무제한 공개할 이유는 없습니다. 감사 확인서와 필요한 범위의 증빙을 분리하면 됩니다.”
태오는 원칙을 이해했다.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이 있다고 해서 그 재원이 되는 제삼자의 생활 정보를 모두 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먼저 확인자에게 세금과 유지비를 차감한 순수익 여부를 대조하도록 요청하죠.”
“그렇게 하십시오.”
그는 지급 예정이라는 단어 뒤에 작은 메모를 남겼다. 실제 수납, 별도 계좌 분리, 실지급 입회. 세 단계를 마치기 전에는 장부의 숫자를 바꾸지 않기로 했다.
***
오후에 세입자 로벤이 청문장으로 찾아왔다. 그는 발카스의 분할 상환 계획을 들었다며 자기 계약에도 비슷한 절차가 생기는지 물었다.
“저와 같은 조건을 바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건 알지. 다만 나도 날짜를 적은 회신을 받고 싶다는 거요.”
“그 요구는 할 수 있겠습니다. 각자 계약을 보고 지급 계획을 협의해야죠.”
로벤은 지팡이를 탁자에 놓았다.
“오랫동안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소. 이제 기다림에 날짜가 있었으면 좋겠어.”
발카스가 그 말을 듣고 뒤쪽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당장 모든 세입자에게 동일한 액수를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바렌에게 계약별 실제 미환급액과 확인 가능한 재원을 나눠 정리해 보라고 했다.
“내가 똑같은 사람 열하나에게 돈을 빌린 건 아니지.”
“맞습니다.” 태오가 답했다. “각자의 이름과 약속이 따로 있습니다.”
로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이 그 말을 직접 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달라 보였다.
***
저녁에 토른은 작업장 간판 아래서 태오에게 작은 선물을 건넸다. 금화가 아니라 쇠로 만든 장부 받침대였다.
“오늘은 왜 이런 걸 주십니까?”
“밤마다 책을 엎드려 보고 있으니 목이 휘겠더군.”
태오는 받침대를 살폈다. 각도 조절이 되는 구조였다. 드워프가 만든 물건답게 지나치게 튼튼했다.
“이걸로 문도 받칠 수 있겠네요.”
“그런 용도로 쓰지 마라. 장부를 세우는 데 써.”
“감사합니다. 비용은요?”
“선물이다.”
“정말요?”
“그리고 다음부터 내가 도와준 물건을 전부 청구서라고 의심하지 마.”
태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 수없이 서류를 확인하다 보니 사람들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일도 서툴러졌던 것이다.
그는 받침대 위에 자신이 만든 상환표를 올려놓았다. 보증금 숫자만 있었더라면 외롭고 초라해 보였을 표가, 이제는 사람들의 얼굴과 함께 남아 있었다. 앞으로 모든 기록을 자신 혼자 지키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기록을 읽기 쉽게 만드는 일은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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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은 지급 예정표를 공식 회의록에 부속으로 붙이기 전 한 가지를 확인했다. 발카스가 자기 말로 지급을 약속한 부분과 바렌이 추정한 예상 수익을 동일하게 적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어느 금액이 임대인의 의사로 제시된 지급 계획입니까?”
발카스가 답했다.
“남부 목초지의 순수익을 확인해 스물다섯 닢을 우선 지급할 계획이다. 수익은 아직 실제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금액은 계획이고, 지급 사실은 아닙니다.”
“그렇다.”
태오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며칠 전이었다면 이 말이 이렇게 중요한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때 바렌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창고 매각은 계획 단계로만 남겨 주십시오. 구매자와 가격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발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산이 많다는 이유로 언제든 모든 채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던 옛 버릇을 조금씩 버리고 있었다.
***
오후에 발카스는 태오에게 연락해 또 물었다.
“내 지급 계획이 만족스럽지 않느냐?”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받은 건 아니죠.”
“내가 약속을 했는데도?”
“약속을 지키실 기회가 생긴 겁니다.”
발카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태오는 그 말을 수첩에 적지 않았다. 오늘의 발언은 나중에 기록할 수 있었지만, 진짜 중요한 사실은 지급일의 실제 금화가 될 것이었다.
***
바렌은 지급 예정 문서 하단에 '연체 사유가 생겨도 채무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을 보태자고 제안했다. 태오는 그 문구에 동의했다. 돈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보다, 그날 무엇을 알리고 다시 어떤 절차를 밟는지가 더 중요했다. 발카스는 그 조항을 읽고 잠시 생각했다. “나는 예전에는 그런 날에 그냥 동굴 문을 닫았지.” “그래서 저희가 검은 산맥까지 올라간 겁니다.” 태오가 말했다. 드래곤은 낮게 웃었다. “이번엔 문을 닫지 않겠다.” 그가 실제로 그 약속을 지킬지는 시간이 보여 줄 것이다.
청문실을 떠나기 직전 태오는 지급 예정표의 사본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별도의 재원에서 지급될 금액이더라도, 남부 목초지에 사는 사람들의 계약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는 그 조항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자신의 돈을 찾는 일 때문에 다른 임차인이 부당한 부담을 지는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카스가 그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도 기억에 남았다.
***
밤에 바렌에게서 확인서가 도착했다. 남부 목초지 임대료의 수령 예정 시점은 확인했지만 순수익의 실제 수납과 지급 승인은 아직 남아 있다는 내용이었다.
태오는 장부를 고쳤다.
[다음 지급 예정: 25금화, 확정 전.]
[누적 실수령: 235금화. 미환급 원금: 65금화.]
발카스가 이번에는 자기 자산을 직접 정리하고 있었다. 태오는 그 변화를 인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정과 변제를 동일한 칸에 적지는 않았다. 드래곤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해도, 돈은 아직 돈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날 마지막으로 보관소에서 소식이 왔다. BG-17 청산 관련 문서의 다른 쪽에서 '손해배상 적용 전 개별 통지의 유효성 대조'라는 항목이 발견됐다. 보증서는 금고를 열어 주는 주문이 아니었다. 누군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권리를 잃는 일을 막기 위한 약속일 수도 있었다.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졌는지는 다음부터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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