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회의실에는 의자가 열두 개 있었고, 손님은 열한 명뿐이었다.
열두 번째 의자는 서류 위에 적힌 구 동문 생활보증조합을 위해 남겨 둔 자리였다. 해산된 조직이 회의실에 걸어 들어올 수는 없었지만, 그 조직과 맺은 계약이 여전히 기록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있었다.
“빈 의자를 두는 이유가 있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이벨이 말했다.
“오늘 청문은 누군가를 대신 심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과거 책임 주체와 현재 자료 보관 주체를 섞지 않기 위해 표시한 겁니다.”
발카스는 빈 의자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없어진 조직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장부와 청산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내가 질문을 하겠다.”
마르셀이 손을 들었다.
“발언 순서를 기다려 주십시오.”
왕국 세 개를 무너뜨렸다는 드래곤은 오늘도 손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청산 목록에는 놀라운 숫자가 있었다. 구 생활보증조합이 운영하던 계약의 총 한도와 실제 지급한 손해배상액이 별도 칸으로 남아 있었다. 앞의 숫자는 매우 컸지만 뒤의 숫자는 훨씬 작았다.
“한도가 이만큼이면 그 돈이 실제로 있었던 겁니까?” 태오가 물었다.
“아닙니다.” 디아나가 말했다. “부담하기로 약정한 최대 한도와 어느 시점에 보유한 현금은 다를 수 있어요. 보증 의무가 있었더라도 지금 어떤 기관이 얼마나 책임지는지는 청산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드래곤의 보물창고를 생각하면 안 되겠군요.”
“특히 여기서는요.”
청산 대상 목록의 BG-17 항목 옆에는 세 개의 작은 구분자가 있었다.
하나는 송달 확인 업무. 둘째는 이의 진술 원본 보전. 셋째는 분쟁 시 책임 인수 여부 검토.
마지막 항목에는 결론 대신 '심사 중단'이라고 쓰여 있었다. 중단 이유와 후속 처리 기관이 필요했다.
“그럼 해산하면서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겠네요.” 태오가 말했다.
“중단 기록만으로 의무가 살아 있다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절차가 중단됐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태오는 답답함에 웃었다. 언제나 정확한 설명은 듣는 사람을 조금 더 기다리게 만들었다.
***
점심 휴식 시간, 소피가 조용히 태오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아이는 학교에 있었고, 소피 혼자 회의장에 왔다.
“오늘 제 계약 이름이 공개될 수도 있나요?”
“공개 범위는 소피 씨가 동의한 부분만 확인하겠습니다. 공동 사건이라고 모두의 자료가 자동으로 공개되는 건 아닙니다.”
소피는 한숨을 쉬었다.
“보증서가 세입자를 보호하려고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럼 왜 저는 보호받지 못했을까요?”
태오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아는 것은 제도의 표제와 일부 원부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일어났던 손해는 그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그때 통지가 어디에서 끊겼는지, 누구의 책임이었는지 아직 조사 중입니다.”
“또 조사 중이군요.”
“그렇습니다. 그 말이 답답하다는 것도 압니다.”
소피는 잠깐 웃었다.
“그래도 이제 제 이름으로 무슨 문서가 들어가는지는 알려 주잖아요. 예전에는 그것도 몰랐어요.”
태오는 그녀가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달라진 점을 확인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오늘 소피의 의견을 정확히 받아 적었다. 그녀는 보증서의 일반 내용 확인에는 동의하지만 자신의 현재 주소와 아이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
오후 청문에서 뜻밖의 증언이 나왔다. 동문 생활보증조합 해산 당시 회계 정리를 도왔다는 노서기 올리브 파렌이 대리인을 통해 진술을 제출했다. 그녀는 직접 출석할 건강 상태가 아니었지만, 공식 질문에는 답하겠다고 했다.
진술의 핵심은 조합이 해산할 때 일부 자료를 단순 폐기하지 않고 다른 기관에 보관 의뢰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관 위탁과 법적 책임 승계는 구분했다고 했다.
“그 다른 기관 이름이 있습니까?” 세딘이 물었다.
“진술에는 황금종 문서예치연합이라는 명칭이 나옵니다. 정식 등록 여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태오는 수첩에 새로운 이름을 적었다. 그 이름만으로 배후 조직이나 범죄자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몇 달 동안 낯선 명칭을 보고 성급히 서로를 연결했다가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발카스는 뜻밖에 침착했다.
“내 옛 재무관이 그런 이름을 쓴 적은 있다. 하지만 정식 기관인지, 단순한 협약의 명칭인지 모르겠다.”
“기록이 있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찾아보겠다.”
“찾아보신다는 말에는 기한이 있습니까?”
바렌이 얼른 수첩을 꺼냈다.
“사흘 이내에 확인 가능한 목록을 제출하겠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았으면 드래곤이 직접 기한을 약속하는 데 감격했겠지만 이제는 차분히 적었다.
***
한편 기록방에서는 의외의 일이 생겼다. 장부 정리 수업을 들었던 문해교실 학생 중 한 명이 가게를 찾아왔다. 자기 가족이 사용하던 빵값 외상 장부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태오는 미성년 아이에게 유료 계약을 맺게 하지 않았다. 보호자와 아델에게 교육 활동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확인한 뒤, 일반 예제를 만들어 함께 봤다.
“받을 돈이랑 줄 돈은 왜 따로 적어요?” 아이가 물었다.
“같은 돈처럼 보이다가도 방향이 다르거든.”
“드래곤이 돈을 안 돌려준 건 받을 돈이에요?”
“응. 하지만 실제로 받은 돈이랑은 또 달라.”
아이는 태오가 적은 숫자를 보았다.
“300에서 235를 빼면 65예요.”
“정답.”
“드래곤은 뺄셈도 못해요?”
태오는 웃음을 참느라 오래 걸렸다.
“계산보다는 약속을 지키는 일이 어려웠던 거지.”
아이는 수업 마지막에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썼다. 태오는 그 이름이 무슨 보증서보다 분명하게 보였다.
***
리네아는 저녁을 먹으며 태오의 표정을 살폈다.
“오늘은 조금 복잡한 얼굴이네요.”
“빈 의자를 하나 보고 왔어요.”
“의자요?”
“사라진 조합을 위해 남겨 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기록이 대신 대답해야겠죠. 하지만 실제 책임질 사람이 없다면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은 또 기다려야 합니다.”
리네아는 한동안 생각했다.
“그렇다고 당신이 그 의자에 앉지는 마세요.”
태오가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요?”
“요즘은 모든 일을 자기 책임으로 느끼잖아요. 그 사람들을 돕는 건 좋은데, 전부 대신 책임지면 당신 삶이 없어져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맞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록을 정리하는 일이지 모든 빚을 갚는 게 아니죠.”
“저녁을 먹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건 제가 전문입니다.”
그녀가 웃었다. 두 사람은 잠시 장부와 보증서 이야기를 멈추고 뜨거운 국을 나눠 먹었다.
***
빈 의자가 있는 회의실 밖에서는 두 명의 상인이 심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해산된 조직에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자료를 폐기해도 된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부모가 맡겼던 서류를 끝까지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아무도 돈을 안 내 줄 텐데 종이가 무슨 소용이오?”
“그 종이가 없으면 누구한테 물어야 할지도 몰라요.”
태오는 지나가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보존에는 비용이 들고, 모든 기록이 법적 효력을 계속 갖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원본의 이동 경로를 잃어버리면 누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 되돌아볼 기회조차 없어질 수 있었다.
“두 분 모두 의견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상인 중 한 사람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은 누구요?”
“이 사건의 한 세입자입니다. 그리고 기록 정리 일을 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무엇을 반드시 보존해야 하고, 무엇을 안전하게 정리할 수 있는지 기준을 공개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상인들은 한참 그를 바라봤다. 결국 각자의 의견을 제출하러 갔다.
태오는 자신의 말이 어느 한쪽에 답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분노 대신 검토 가능한 이유를 적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발카스는 오후 청문에서 자신의 오래된 자산관리실 자료를 다시 살폈다. 그곳에는 생활보증조합에 지급한 비용 일부가 적혀 있었지만, BG-17과 동일 계약이라고 확정할 번호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그때 보증을 사들였다고 했는데, 이제는 무엇을 샀는지도 알 수 없군.”
태오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는 기록을 한 사람에게 맡기고 결과만 들으셨을 겁니다.”
“그랬지.”
“그 사람이 거짓말했다고 바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발카스 님이 최종 확인을 하지 않은 책임은 있겠죠.”
“그 점은 인정한다.”
드래곤은 낡은 회계표를 접었다.
“내가 산 것이 보증이 아니라 문서 보관 서비스였다 해도, 네게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지?”
“보증금 65금화를 돌려주셔야 합니다.”
발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금액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태오는 그 대답이 묘하게 뿌듯했다. 처음에는 드래곤이 계약 금액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지도 의심했었다. 이제는 그가 직접 남은 금액을 말하고 있었다.
***
올리브 파렌의 추가 답변에는 당시 청산 작업이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법적 권리의 이전을 심사하는 곳과 종이를 실제로 보관하는 곳이 분리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류를 옮긴 기록이 있다고 해서 권리까지 옮겼다고 말할 수는 없군요.” 태오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노서기의 기억은 참고할 수 있지만, 실제 청산계약과 송달기록을 대조해야 합니다.” 세딘이 답했다.
진술에는 담당자가 직책을 겸임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대목도 등장했다. 어떤 사람은 문서를 분류하다가 나중에 정산 업무를 맡았다고 했다. 그러나 직책이 겹친다고 해서 특정 문서의 작성자 또는 책임자가 곧바로 특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만 찾아서 끝내기 어려운 이유가 이거군요.” 태오가 말했다.
“이름 다음에 역할과 권한, 실제 행동이 필요하니까요.”
그는 자신이 처음 발카스를 찾아갔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드래곤의 이름만 알면 돈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그 이름이 계약의 한쪽 당사자라는 사실보다, 그 당사자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와 해야 하는지를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했다.
***
***
회의가 끝나기 전에 마르셀은 각자의 서면 의견을 확인했다. 발카스는 옛 계약 목록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했고, 세입자들은 자신의 계약 정보가 공개되는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몫을 포기한다는 문구에 서명하지 않았다.
태오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공동 진정을 처음 만들던 날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서류 열한 묶음이 하나의 싸움을 만들어 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그 열한 사람이 같은 문제에 참여하면서도 서로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였다.
소피는 회의장을 나가기 전에 말했다.
“다음 회의에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으면 못 올 수도 있어요.”
“서면 의견 제출 방법도 안내받을 수 있을 겁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럼 제 말을 대신 지어내지 말고 제가 적은 걸 그대로 전달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오는 그녀에게 공개 가능한 문장과 비공개로 남겨야 할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실제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해서 의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
마르셀은 회의 종료 시각과 미결 자료를 각각 기록했다. 오늘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청문의 실패는 아니었다.
***
밤늦게 이벨의 요약이 도착했다. 황금종 문서예치연합이라는 명칭이 당시 서류에서 확인되더라도 그것이 보증금 지급 책임을 승계했다는 뜻은 아니다. 먼저 법적 실체와 계약상의 권한을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태오는 답장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보호 대상이 세입자였을 가능성과 의무 인수 심사가 중단됐다는 사실까지만 기록하겠습니다.]
얼마 뒤 마르셀에게서 새로운 행정 목록이 전달됐다.
[BG-17 청산 심사: 보증서의 유효성 판단에 앞서 원 수익권자 이의 진술 확인 필요.]
태오는 숨을 멈췄다. 오래전 누군가 남긴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직 이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빈 의자는 아직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앞에 놓인 서류에는 어쩌면 처음부터 자기 의견을 말하려 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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