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서를 찾으러 가는 날, 김태오는 우산 대신 접수증을 세 장 챙겼다.
파벨시에서는 비가 올 때 우산이 필요했고, 오래된 문서와 관련된 시설을 방문할 때는 그보다 많은 종이가 필요했다. 불행히도 오늘은 둘 다 필요한 날이었다.
“우산은요?” 리네아가 물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건 120화 때 받은 열람 안내문이잖아요.”
“바깥 표지가 두껍습니다.”
“비를 맞으면 글씨가 지워질 텐데요?”
태오는 종이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애초에 농담을 끝까지 밀어붙일 계획은 없었다. 리네아는 현관에서 두 사람 몫의 우산을 펼치며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물건을 서류로 해결할 생각이에요?”
“그랬다면 이미 전세금을 돌려받았겠죠.”
리네아는 그 말에는 웃지 않고 그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
“오늘은 제 사무실에 의뢰인이 오는 날이에요. 같이 못 가서 미안해요.”
“당신 일이 먼저죠. 기록국은 제가 세딘 씨와 갑니다.”
“그래도 조심해요. 옛 창고라고 아무 문이나 열지 말고.”
“왜요? 드래곤이 튀어나올까 봐요?”
“더 무서운 게 나올 수 있잖아요.”
“뭔데요?”
“작성일 없는 계약서.”
태오는 진심으로 몸을 떨었다. 리네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동부 상업문서보관소의 직원 노엘 카시는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는 수백 개의 서류 위치가 적힌 지도와 낡은 시계가 걸려 있었다. 노엘은 지도 아래 세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구 보증서 보관소라는 이름이 문서에 남아 있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그중 하나는 옛 동문에서 문을 닫았고, 하나는 조합 문서를 임시로 맡았습니다. 마지막은 보관소의 이름만 승계한 민간 보존업체입니다.”
태오는 수첩에 각각 다른 번호를 적었다.
“같은 이름을 썼다고 같은 기관으로 보면 안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특히 영업허가의 승계와 보관 문서의 인계는 다른 일이니까요.”
세딘이 어제 받은 정정 의견을 탁자에 놓았다. 문서에는 분명히 '구 보증서 보관소'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 도착지를 나타내는 기호는 낯설었다.
[보존 분류: BG-17.]
“이건 계정 47의 다른 표식입니까?” 태오가 물었다.
“아니요. 적어도 지금 규격으로는 보증서 보관 자료의 서가 분류입니다.” 노엘이 말했다. “금고의 열쇠나 지급 번호와 연결된다는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번호가 많아질수록 돈이 멀어지는 기분입니다.”
“오늘은 숫자보다 기관부터 보시죠.”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같은 세 군데 중 어느 시설이 당시 정정 의견의 수신 대상이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
열람 신청서를 작성할 때부터 첫 번째 문제가 생겼다. 이해관계자란에 김태오의 이름과 발카스의 이름을 함께 기재하려던 직원이 잠시 펜을 멈춘 것이다.
“그분은 드래곤이잖아요?”
“네. 그리고 제 집주인입니다.”
“임차인과 임대인을 한 사건 관계자로 적어도 됩니까?”
세딘이 대답했다.
“역할은 나눠 기재하십시오. 채무자와 채권자가 동일한 문서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지 서로를 대신하여 권한을 행사하는 게 아닙니다.”
직원은 수정표를 가져왔다. 태오는 자신의 이름 옆에 '계약상 반환 청구자'라고 적고 발카스 옆에는 '관련 장부 제출자'라고 썼다. 어느 누구도 보증서 자체의 소유자라고 표시하지 않았다.
“옛날엔 내가 용사면 모든 문이 열릴 줄 알았습니다.” 태오가 중얼거렸다.
세딘이 눈을 들었다.
“용사였습니까?”
“아니요. 상상이었죠.”
“그러면 현실에서는 신청 범위를 더 정확히 써 주세요.”
영웅이 될 기회를 놓친 대신 태오는 다시 펜을 잡았다.
한참 뒤 첫 번째 회신이 도착했다. 구 보증서 보관소의 설립 목적은 금융기관처럼 금화를 예치하는 것이 아니라, 보증계약과 책임 확인서의 원본을 분실되지 않게 맡아 두는 것이었다. 일부 보관물에는 보석이나 인장이 포함되었지만 그것이 곧 예치금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럼 실제 금화가 여기 들어왔다는 의미가 아니군요.”
“보증서라는 이름만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노엘이 말했다. “어떤 위험을 누가 책임진다는 약속일 수도 있지요.”
태오는 문서 제목을 바라봤다. '외부 결제 예정'이 다시 '보증서 보관처'라는 주소와 이어져 있었다. 그 연관성이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받은 곳이라고 부르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
점심을 먹으러 나온 태오는 기록방 직원이 아니라 사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두 고객의 서류 정리 기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문 거리의 국숫집에서 그는 작은 마법 전달석을 꺼내 오늘 가능한 업무를 확인했다. 고객 한 명은 거래 일자를 잘못 기록했다며 정정을 부탁했고, 다른 고객은 계약서 원본 대신 사본을 제출해도 되는지 물었다.
태오는 접수한 자료의 범위를 적고 일정 변경에 동의받았다. 자신도 모든 업무를 혼자 맡으면 어느 날 옛 보관소처럼 제대로 인계하지 못할 수 있었다.
“이런 작업에는 조수 한 명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세딘이 물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고용 계약을 쓸 준비가 안 됐습니다.”
“직원에게 일시키기 전에 계약서를 쓰겠다는 소리군요.”
“용사 파티와 다른 분야지만 같은 원칙이죠.”
태오는 국물 한 숟갈을 떠먹었다. 드래곤을 상대로 법을 배운 사람이 자기 가게에서 편법을 쓰면 웃기는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국숫집 주인이 영수증을 건네자 그는 무심코 날짜를 확인했다. 주인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 혹시 세금 관리인입니까?”
“아니요. 전세금을 못 돌려받은 사람입니다.”
“그건 또 무슨 직업이오?”
“저도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
오후에는 보관기관의 창설 당시 정관이 공개됐다. 가장 중요한 조항은 두 문장이었다. 보관기관은 원본의 훼손과 무단 반출을 방지해야 한다. 그러나 별도의 보증계약이 체결된 경우를 제외하면 해당 증서가 나타내는 채무를 자동으로 인수하지 않는다.
“즉, 문서를 맡기는 사람과 보증금을 갚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는 거군요.” 태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보관소가 보증서의 채무자가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럼 발카스의 반환 의무는 여전히 별개겠군요.”
“그 점은 지금까지의 회신에서도 확인됐지요.”
태오는 작은 표를 그렸다.
[보관의 책임: 원본을 지킬 것.]
[계약의 책임: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지급해야 하는가.]
[지급의 증명: 실제로 누가 무엇을 받았는가.]
세 줄은 나란히 서 있었지만 서로를 대신하지 못했다.
노엘은 서가 목록의 맨 끝에서 얇은 책을 꺼냈다. 표지에는 외부 결제 지시 E-47/4와 연결 가능성이 있는 자료의 이동 일자가 적혀 있었다.
“BG-17은 옛 보관소의 모든 문서가 아니라 일부 보증서 묶음의 분류입니다. 다만 이 책에는 그중 어느 원본이 아직 남아 있는지 적혀 있습니다.”
태오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열어 봐도 됩니까?”
“일반 목록까지만 가능합니다. 이름이 적힌 개별 계약은 허가가 따로 필요합니다.”
“좋습니다.”
이제 태오는 허가된 부분만 확인하는 데 익숙했다. 허가받지 못한 이름을 몰래 보겠다는 욕심이 그의 전세금을 더 빨리 돌려주지는 않았다.
***
보관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태오는 옛 동문 거리를 한참 걸었다. 이 일대는 한때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계약서를 쓰고, 환전소에서 금화를 바꾸고, 보증서를 맡기던 곳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간판이 바뀌었지만 건물의 구석에는 옛 조합 문양이 남아 있었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작은 우물 앞이었다. 우물은 오래전에 폐쇄됐고 사람들은 그 위에 둥근 화분을 놓았다. 화분을 돌보던 노인은 태오가 문양을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젊은이, 그 표식을 찾는가?”
“구 보증서 보관소의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그곳은 서고였지. 동전을 맡기는 곳이라고 착각한 사람이 많았어.”
태오는 노인을 바라봤다.
“당시를 기억하십니까?”
“내가 그곳의 직원이었던 건 아니오. 주변에서 종이 심부름을 했지. 들리는 말을 진실처럼 옮기지는 말게.”
노인은 옛 거리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문제로 찾아왔는지 이야기했다.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문서를 남긴 사람도 있었고, 본인이 모르는 사이 계약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항의한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주소를 정확히 적지 않아 편지가 몇 번이고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럼 보증서가 그런 일을 막아 줬나요?”
“모르지. 창구에선 ‘안전하게 보관한다’는 말을 했지만 사람마다 기대가 달랐어.”
태오는 노인의 말을 수첩에 메모하면서 이름을 기록해도 되는지 먼저 물었다. 노인은 이름 대신 '옛 동문 주민, 일반 기억'이라고 적으라고 했다. 그는 그 선택을 존중했다.
“근처에서 오래전 문서와 관련된 자료를 찾으신다면 기록국으로 가십시오. 기억보다는 원본이 낫지.”
태오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떠나려는데 노인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젊은이는 왜 이 종이를 찾나?”
“집주인에게서 보증금을 못 돌려받아서요.”
“그럼 그 보증서가 돈을 줄 거라고 믿는가?”
“처음엔 그랬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약속한 종이인지부터 확인하려고요.”
노인은 웃었다.
“그럼 길을 잘 찾았군.”
***
한편 리네아는 그날 별도의 상담을 진행하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새 계약을 준비하는 상인은 '보관소에 계약서를 넣으면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모든 서류를 한꺼번에 맡기고 싶다고 했다.
“문서가 잘 보관된다는 것과 계약 상대방이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달라요.” 리네아가 설명했다. “그리고 원본을 보관한다면 누가 어떤 조건으로 꺼낼 수 있는지도 계약서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상인은 실망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본만 받아 놓고 끝내면 안 되겠군요.”
“수령 사실과 각자의 권리,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확인할 절차를 분리해서 적으세요.”
리네아는 상담이 끝난 뒤 자신의 고지 안내문을 한 번 더 고쳤다. 세입자가 눈에 잘 띄는 큰 글씨로 '집주인의 반환 의무는 별도로 유지된다'는 뜻을 설명하고 싶었다. 모든 계약에 그대로 쓸 수 있는 법률 문구는 아니었으므로, 일반 주의사항과 계약별 검토를 구분해 적었다.
그녀는 문득 태오가 처음 찾아왔을 때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돈을 왜 못 받느냐'며 분노하던 청년이 이제는 자신도 남에게 같은 혼동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리네아는 그 변화가 자랑스러웠다. 물론 여전히 그가 하루에 열 번씩 숫자를 확인하는 버릇은 조금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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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무렵 발카스가 보관소에 도착했다. 인간형으로 변신한 고대 드래곤은 요즘 작은 의자에 앉는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자기가 그 의자를 사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이 서가를 통째로 사면 빠르지 않겠느냐.”
“어차피 남의 기록은 안 열어 주실 겁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그렇겠지.”
“그리고 서가는 도서관의 일부입니다.”
“나는 건물을 사겠다고 말했다.”
노엘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보존기관은 현재 매각 계획이 없습니다.”
발카스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만 해도 오랜 성장의 증거였다.
“구 보증서 보관소라는 이름이 내 오래된 장부에 있었다.” 발카스가 말했다. “그때 나는 그 보증서가 내 재산을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보증했는지도 모르셨습니까?”
“기억으로는 어떤 송달과 대리 문제였다. 하지만 내가 듣고 기억한 말이 정확한 문서와 같은지는 모르겠다.”
태오는 드래곤의 말을 받아 적되 결론으로 삼지 않았다. 수천 년을 산 기억은 오래된 기록의 출처가 될 수 있었지만 원본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그날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은 하나였다.
[BG-17. 보증서 보관 자료의 일부 목록 존재. 금전 보관 계정 여부 별개.]
저녁에 돌아온 태오에게 리네아가 물었다.
“그래서 오늘 돈을 찾았어요?”
“돈의 주소가 아니라 약속을 보관한 주소를 찾았어요.”
“대단해요.”
“진심입니까?”
“당신이 금고를 부수러 가지 않았잖아요.”
태오는 그녀의 팔을 끌어안았다.
“남은 보증금은 아직 예순다섯 닢입니다.”
“그건 잘 알아요.”
“안 잊으실 거죠?”
“당신보다 제가 먼저 기억할지도 몰라요.”
리네아가 웃으며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날의 마지막 소식은 노엘의 짧은 전달문이었다. BG-17 보관 묶음에 딸린 추가 목록이 있었고, 표제가 절반쯤 훼손되어 있었다.
[보증 대상: …의 통지 및 확인 절차.]
태오는 전세금보다 조금 무서운 말을 보았다.
돈이 아니라, 누군가가 받았다고 주장한 편지의 책임을 보증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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