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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12화
PAYLUA ORIGINAL · 제12화

12화. 드래곤이 보낸 수리비 이백열두 닢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002자

오프라인 책장
발카스의 반격은 예상과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불길도 아니고, 검은 산맥에서 날아온 거대한 그림자도 아니었다. 무려 여섯 장짜리 계산서였다. “이게 뭡니까?” 김태오는 오전에 배달된 문서를 바라보았다. [임차 목적물 원상복구 및 고대 마법 시설 이용 관련 임대인 청구 내역.] 맨 아래 합계는 금화 이백열두 닢이었다. 태오는 숫자를 세 번 확인했다. “이백열두?” 옆에서 차를 마시던 토른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 “계단 손상 복구, 금화 여든여섯. 지하 공간 봉인 오염 정화, 금화 일흔. 고대 화염 방호 시설 사용료, 금화 쉰여섯.” “계단은 제가 수리비를 이미 드렸습니다.” “그렇지.” “지하 공간은 봉인을 연 적도 없고요.” “그렇지.” “화염 방호 시설은 구경도 못 했는데요.” 토른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나도 보고 싶군. 불도 안 난 집에서 쉰여섯 닢짜리 방호 시설을 어디에 썼다는 거야?” 태오는 머리를 감쌌다. “보증금 270금화 남았는데 212금화를 빼겠다는 겁니까? 그럼 58금화만 돌려주겠다는 얘기잖아요.” “계산은 정확하군.” “이 계산이 정확하면 큰일이죠.” 토른은 계산서 뒷면에 붙은 도면을 살폈다. 도면에는 계단 아래 공간이 붉은 선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건 내가 수리한 곳이야. 그런데 청구 항목에는 네가 상부 들보를 제거했다고 돼 있군.” “제 키로는 들보까지 손도 안 닿습니다.” “키 얘기는 하지 마라. 드워프는 그 말을 싫어한다.” “죄송합니다.” “특히 키로 일을 판단하는 놈들을 싫어하지.” 태오는 그제야 토른이 자기편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리네아는 태오가 청구서를 손에 든 채 방 안을 돌고 있는 걸 보더니 조용히 의자를 가져왔다. “앉아서 보세요. 계속 서 있으면 숫자가 줄어드나요?”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그럼 제가 옆에서 같이 서 있을게요.” “두 사람이 서 있으면 두 배로 줄어들까요?” “그렇게 되면 공증인도 부르죠.” 태오는 결국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문서 맨 위에는 자신의 임대계약 번호가 적혀 있었다. 발카스 측 관리사무소에서 발행한 형식은 진짜였다. 그러나 형식이 진짜라고 청구 내용까지 진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겁을 주는 건가요?” 리네아는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실제로 수리 비용을 다투려는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은 목적보다 내용이 문제예요.” “그럼 항목별로 나누죠.” 태오는 종이에 세 개의 칸을 그렸다. 첫 칸에는 손상이 발생했는지, 둘째 칸에는 누가 책임지는지, 셋째 칸에는 금액을 어떻게 산정했는지 적었다. 처음 두 칸이 비어 있는데 세 번째 칸에만 커다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순서가 이상하군요.” 토른이 말했다. “청구하는 사람 입장에선 숫자부터 정해야 마음이 편한가 보죠.” “드워프 공방에서는 일을 하기 전에 견적을 내지만, 견적을 내기 전에 무엇을 고칠지는 본다.” “맞습니다. 저는 무엇이 손상됐는지 아직 못 봤고요.” 토른은 자신의 작업일지를 펼쳤다. 계단 수리 당일 사용한 철재 수량과 목재 길이, 옛 나무를 제거한 위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내 기록에는 철 보강재를 네 개 썼고, 제거한 건 이미 부러져 있던 나무 조각 둘이야. 저쪽은 상부 들보 하나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 적었군.” “상부 들보가 멀쩡한데요.” “확인해 봐야지. 내가 작업할 때 본 모습과 지금 모습이 같다는 사진도 있으면 좋겠군.” 태오는 수리 전 사진을 꺼냈다. 기록석의 시각 표시가 남아 있었다. 그 사진을 찍어 두지 않았다면 몇 줄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작은 일도 사진이 남는 게 정말 중요하네요.” 리네아가 말했다. “저는 그동안 집을 소개하면서 빛이 잘 드는 방향을 보여 주려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제 곰팡이와 계단을 찍어야겠군요.” “태오 씨를 만난 뒤 제 중개 사진첩이 아름답지 않게 변하고 있어요.” “대신 정직해졌겠죠.” 그녀가 잠시 말이 없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태오는 청구서 여백에 '쟁점별 정리'라고 적었다. 혹시 실제로 책임져야 할 비용이 있다면 그것까지 무조건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항목으로 수십 닢을 공제하겠다는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 목표는 청구서를 찢는 게 아니에요.” 태오가 말했다. “그럼요?” “맞는 항목은 맞게, 틀린 항목은 틀리게 정리하는 거죠.” 토른이 낮게 웃었다. “네가 드래곤이라면 참 피곤한 세입자겠다.” “사실은 성실한 세입자입니다.” “그건 네가 말하는 거고.” 리네아가 웃었다. 태오는 자신도 웃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오히려 자신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빠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 두 사람이 상식을 되찾게 해 주었다. *** 문서를 보낸 사람은 발카스 측 법률대리인 바렌이었다. 지난 조정 회의에서 '계단 하부를 뜯었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바렌은 다음 날 태오를 상단회관의 작은 상담실로 불렀다. 책상 위에는 병색 짙은 꽃 한 다발과 새 잉크병이 놓여 있었다. 꽃은 입을 열 때마다 향기를 과하게 내뿜었다. “고객님, 저희는 원만한 해결을 원합니다.” 태오는 잠시 꽃을 바라봤다. “저도요. 그래서 처음에 보증금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이번 비용은 소유주의 시설 손해를 산정한 겁니다.” “원상복구가 필요한 부분을 보여 주십시오.” 바렌은 청구서를 한 장 넘겼다. “시설 손상은 고대 마법 기술로 감정했습니다.” “누가 감정했나요?” “소유주 측 기술 자문입니다.” “언제 방문했습니까?” “그건…… 확인해 보겠습니다.” “집 안에는 들어오셨고요?” “물론 절차대로 했겠지요.” “제가 현장에 있었는데요.” 바렌의 미소가 잠깐 멈췄다. “임대인이 소유한 물건은 임대인이 점검할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의 유무가 아니라 점검 날짜를 여쭤봤습니다.” “청구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서면으로 제출하세요.” “이미 준비했습니다.” 태오는 가방에서 접어 둔 반박서를 꺼냈다. 리네아가 옆에서 번호를 읽어 주었다. “첫째, 임차 기간 종료 당시의 사진 기록. 둘째, 계단 파손은 기존 노후화로 확인된 토른 장인의 소견서. 셋째, 토른에게 지급한 보수 영수증. 넷째, 지하 봉인이 개방되지 않았다는 현장 기록.” 바렌의 눈동자가 서류를 따라 움직였다. 리네아가 웃으며 물었다. “반박 서류를 받으실까요? 아까부터 원만한 해결을 원한다고 하셨으니까요.” 태오는 그녀를 흘끗 보았다. 평소에는 상냥하던 여인이 업무 얘기만 나오면 묘하게 무서워졌다. 바렌은 결국 서류를 받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임대인 청구입니다. 곧바로 미반환 원금에서 공제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문장을 회신에도 써 주십시오.” “당신은 정말…….” “보증금 일부를 이미 받았으니까 남은 금액을 다시 줄일 수는 없죠.” “손해가 입증된다면 공제될 수 있습니다.” “그럼 입증해 주십시오.” 바렌은 깊은 숨을 쉬었다. 태오는 상대를 화나게 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화나게 하려고 질문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돈도 없이 바쁜 사람이 그런 취미까지 가질 수는 없었다. 상담이 끝날 무렵 바렌이 한 장을 더 내밀었다.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개인 분쟁을 정리하시면 비용 청구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논의할 수 있습니다.” “공동 진정에서 빠지라는 얘기입니까?” “선택지를 알려 드리는 겁니다.” 태오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비용이 정당하면 개인 진정을 철회해도 정당해야 합니다. 반대로 부당하면 제가 다른 세입자를 돕든 말든 부당하고요.” 바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담실을 나선 태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소식이 있네요.” “뭐요?” 리네아가 물었다. “이세계에도 법률대리인이 있습니다.” “그게 왜 나쁜 소식이에요?” “문서를 한 장 보내면 여섯 장이 돌아와요.” “그건 태오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태오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 그날 오후, 토른은 계단 옆에 서서 목재를 두드렸다. 태오는 기록석으로 조사 과정을 남겼다. 기록석은 정해진 시간의 소리와 빛을 담지만 사람의 의도까지 판정해 주지는 않았다. “여기 보이지?” 토른이 나무 끝의 잿빛 균열을 가리켰다. “오래전부터 물이 스며든 흔적이 있어. 내가 처음 왔을 때 이미 있었고, 그날 스케치도 남겼다.” “그럼 계단을 손상시켰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겠네요.” “손상 자체는 있지. 문제는 누가 언제 만들었는가야. 그건 구분해야지.”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것이 그 구분이었다. 무언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토른은 한참 계단을 두드리더니 한 곳에서 손을 멈췄다. “잠깐.” “왜요?” “이 도면이 이상하다.” 그가 발카스 측 청구서의 첨부 도면을 펴 보였다. “원상복구 비용을 청구하려면 손상된 부분을 표시해야 해. 그런데 붉은 선이 실제 계단 균열이 아니라 지하 봉인 원주의 바깥쪽을 따라가고 있어.” “잘못 그린 겁니까?” “그랬다면 좋겠군.” 토른은 손가락으로 붉은 선을 따라 그었다. 선은 계단에서 시작해 집 서쪽 벽까지 뻗어 있었다. “이건 수리 구역이 아니라 접근 구역처럼 보여. 누군가 이 선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거야.” 태오는 도면을 다시 보았다. 발카스 측은 계단 손상을 이유로 시설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점검이 진행되면 집 아래 봉인에 접근할 명분이 생긴다. “금고 때문에 공사를 핑계 삼는다는 뜻입니까?” “가능성일 뿐이야. 하지만 그냥 도면 실수라고 넘기지는 마.”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 저녁에는 소피가 아이를 데리고 찾아왔다. 그녀는 벽지 수리비 명목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였다. 아이는 태오의 집을 둘러보다 계단 옆 새 보강재를 만졌다. “우리 집도 이렇게 고쳐 주나요?” 태오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소피가 아이의 손을 잡아당겼다. “미안해요. 얘가 집 수리를 보면 부러워해서.” 태오는 웃었다. “아뇨. 제가 부러워할 처지인걸요. 이 집은 집주인보다 장인이 더 책임감 있어요.” 소피는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어제 발카스 쪽에서 왔어요. 저희 집에도 수리비 청구가 생겼다고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날짜가 이상하더라고요.” 태오는 봉투를 열었다. 소피의 청구서에는 벽지 복구비가 적혀 있었다. 그 금액은 계약 종료 후 그녀가 이미 제출한 견적서의 세 배였다. 무엇보다 현장 점검 날짜가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집이 비어 있던 날이었다. “점검하러 아무도 못 들어왔을 텐데요.” “그래서 문지기 기록을 가져왔어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소피가 머쓱하게 웃었다. “지난번에 증거를 남기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한번 해 봤어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가장 반가운 일이었다. 혼자 똑똑한 척하는 사람보다, 서로 자기 기록을 지키는 사람이 늘어나는 편이 훨씬 든든했다. 그들은 소피의 서류를 별도 사건으로 정리했다. 청구가 여러 세입자에게 동시에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공모나 거짓 감정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사할 이유는 충분했다. *** 해가 완전히 졌을 때 현관 전달석이 다시 울렸다. 태오는 이제 그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발카스 측 관리사무소의 공문이었다. [임대 목적물 특별 안전 점검 안내.] [점검 예정일: 사흘 후.] [점검 범위: 계단 하부 및 지하 기초부.] [거부 시 안전 확보를 위한 출입 제한 조치 검토.] 태오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토른 씨.” “왜?” “집을 조사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단도 보고 지하도 보겠대요.” 토른은 공문을 읽었다. 수염 사이로 낮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아. 나도 안전 점검에는 관심이 많지.” “그럼 허락해도 될까요?” “아니. 먼저 점검자 자격, 범위, 이유, 현장 입회 조건부터 확인하자. 집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과 남의 금고를 마음대로 뒤지는 건 다른 일이니까.” 태오는 펜을 들었다. 드래곤은 이제 불이 아니라 서류를 뿜고 있었다. 그리고 태오는 조금씩 배워 가고 있었다. 그 불을 막는 데는 방패 대신 접수번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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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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