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결제 정산지의 건물은 깔끔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김태오는 오래된 부패나 음모를 추적한다고 해서 건물까지 으스스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반짝거리는 안내판 앞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흰 옷을 입은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어느 기록을 찾으십니까?”
“일곱 해 전 외부 결제 지시입니다.”
“번호가 있습니까?”
“E-47/4입니다.”
직원은 잠시 멈추었다.
“그 번호는 너무 오래돼서 구 인수대장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먼저 안내표를 받으세요.”
태오가 표를 받자 앞에는 대기인 열두 명이 있었다. 검은 산맥의 드래곤과도 버텼던 남자가 공공기관 대기표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여기도 대기가 있네요.”
리네아가 웃었다.
“드래곤보다 무서운 게 뭔지 이제 알아요?”
“접수창구 점심시간이요.”
***
구 인수대장을 관리하는 직원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태오의 열람 근거와 허가 범위를 확인했다. 민감한 수취인 정보는 보이지 않도록 가리개를 놓고, 업무 상태와 시각, 전달 번호만 열어 주었다.
[결제 지시 수신.]
[확인 요망.]
[반송 처리 검토.]
그 옆에는 작은 푸른 실 조각이 붙어 있었다. 봉투를 묶었던 끈처럼 보였다. 디아나는 그것을 확대 수정으로 살폈다.
“이 부분을 떼어 내면 안 됩니다. 봉투를 묶는 방식도 어떤 단계에서 접수됐는지 판단하는 단서일 수 있어요.”
태오가 물었다.
“푸른 끈을 쓴 부서가 정해져 있었습니까?”
“그건 당시 업무 규정을 봐야 해요.”
직원은 구 규정의 공개본을 가져왔다. 푸른 끈은 외부 대조 후 미결 건을 재편철할 때 쓰였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고 푸른 끈만으로 지급이 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떤 사건은 지급 증빙을 뒤늦게 묶기 위해서도 사용했으니까.
“그때 담당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태오가 물었다.
“생존하고 연락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면 면담을 신청할 수는 있습니다.”
***
오후에는 뜻밖에 작은 소식이 들어왔다. 당시 정산지의 임시 문서 분류를 맡았던 에마 노윈이라는 사람이 아직 파벨 외곽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딘은 직접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았다. 먼저 정산지 공식 연락망을 통해 면담 의사를 묻겠다고 했다.
태오는 한숨을 쉬었다.
“한 번쯤은 그냥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 보고 싶기도 하네요.”
“당신이 원치 않는 이야기를 하라며 누군가 집 앞에 찾아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리네아가 물었다.
태오는 자기 경험을 떠올렸다. 전세금 문제로 기자가 무턱대고 찾아왔을 때의 피로함 말이다.
“싫겠죠.”
“그러니까 그분에게도 고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래요. 여기까지 와서 그걸 잊으면 안 되겠네요.”
리네아는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이럴 땐 제가 제법 현명하죠?”
“보통은 늘 그렇습니다.”
“보통은?”
“가끔 저를 놀리는 계획만 세울 때는 예외입니다.”
“그건 아주 현명한 계획인데요.”
태오는 그녀의 웃음에 따라 웃었다.
***
점심 무렵 발카스가 기록국에 온다는 소식이 돌았다. 관리인은 작은 회의실의 출입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분이 오시면 문을 더 넓혀야 합니까?”
“인간형이면 됩니다.” 태오가 말했다.
“혹시 화가 나면요?”
“그때는 문보다 기록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기십시오.”
발카스는 정말로 인간형으로 들어왔다. 그는 겁먹은 관리인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무엇을 부수러 온 것으로 보이느냐?”
“아뇨. 기록 보존 관련으로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다. 그리고 나는 보존 비용을 지원했지만 읽을 권한은 따로 허가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관리인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태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말이 수천 년 된 드래곤의 입에서 나오다니, 이곳 역사의 작은 기념일로 지정해도 될 듯했다.
발카스는 정산지에서 제공받은 제한 사본을 읽었다. 푸른 끈이 있는 항목을 보고 물었다.
“그 끈의 색만으로 돈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
“안 됩니다.” 디아나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음 자료를 찾자.”
태오는 그를 보았다.
“드디어 제가 할 말을 뺏어가시네요.”
“네가 너무 자주 하니까 외웠다.”
***
그날 정산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태오는 옛 동문 환전소 건물 앞에 잠시 섰다. 폐업한 간판은 오랫동안 비에 씻겨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유리창 뒤에는 이제 도자기를 파는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아직 주변에 살까요?”
토른이 고개를 저었다.
“일곱 해면 도시가 꽤 달라진다. 그중 누군가는 다른 일터로 갔을 테고, 누군가는 아예 이곳을 떠났겠지.”
태오는 도자기 가게의 진열창을 보았다. 새 주인은 환전소의 오래된 장부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모든 과거를 털어 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 일반적인 가게 역사만 물었더니 주인은 몇 해 전부터 이곳에 있었으며 건물의 예전 영업 기록은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신 건물 소유권과 임차 변경은 공적 등기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여기에는 자료가 없어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제가 물어봐야 할 곳을 알았습니다.”
태오는 작은 접시 하나를 사서 나왔다. 리네아에게 줄 선물이었다. 어느 날부터 그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방문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더 캐묻지 않는 것도 올바른 선택일 수 있었다.
***
오후 업무가 끝나갈 때 리네아는 태오와 별도의 상담 일정 조정 문제를 상의했다. 새 중개 사무실 간판을 달 날짜가 정해졌지만, 동시에 중요한 고객의 주택 점검이 잡혔다고 했다.
“간판은 하루 늦게 달아도 되지만 고객은 오늘 시간이 아니면 어렵대요.”
“그럼 고객 일정부터 잡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요?”
“네. 간판은 기다려 주지만 집에 살 사람의 일정은 다르니까요. 다만 당신 계획이 있으니 최종 결정은 당신이 해야죠.”
리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말 의견만 말하네요.”
“지난번에 무단으로 공동사업 문구 넣었다가 혼났잖아요.”
“혼난 건 맞죠.”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당신이 제 일에 관심을 가져 주는 건 좋아요.”
태오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간판 글씨에 제 이름 한 글자 정도는 넣어도 되나요?”
“안 됩니다.”
“서류상으로는 절반의 글자도 안 됩니까?”
“안 돼요. 대신 간판 다는 날 꽃을 사 와도 돼요.”
“그건 허가를 받았군요.”
리네아는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쿡 찔렀다.
***
밤의 기록방에서는 서부 정산지 공개 규정과 옛 동문 환전소 폐업 결산 규정의 용어를 나란히 놓았다. 둘 모두 ‘종료’를 쓰고 있었지만 앞에 붙는 말이 달랐다. 한쪽은 기관 내부 처리의 끝이었고, 다른 쪽은 고객과의 거래 상태를 정리하는 단계였다.
태오는 이 차이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렸다. 화살표 끝에는 작은 집 모양의 네모를 그렸다. 한 집에서 편지가 나가고, 다른 집에 도착했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돈은 별도의 선 위에 있었다.
“화살표가 너무 많네요.” 리네아가 말했다.
“줄이 많아야 구별이 돼요.”
“고객들에게 보여 주려면 좀 더 간단해야겠어요.”
그녀는 다른 색 펜으로 편지 길을 점선으로 바꾸었다. 돈 길은 굵은 실선으로 남겼다. 태오는 그 그림을 바라보다 웃었다.
“제가 만든 표보다 이해하기 쉬워졌네요.”
“중개인은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해야 하니까요.”
“또 배웠습니다.”
리네아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오늘 배운 걸 기억해요. 서류의 끝이 곧 사람 일의 끝은 아니라는 거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책상 위에서 두 길은 갈라졌지만, 그 옆에는 나란히 놓인 두 잔의 차가 있었다. 자신과 리네아가 서로 다른 일을 하면서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것처럼, 두 기록도 가까이 있다고 하나가 될 필요는 없었다.
***
태오는 에마의 면담 동의서를 받은 뒤 바로 질문지를 만들었다. 그 안에는 처음에 너무 많은 질문이 적혔다. 결제 승인, 누가 도장을 찍었는지, 누가 돈을 받았는지, 어떤 사람이 청산 준비실에 있었는지. 그는 질문지를 펼쳐 놓고 한숨을 쉬었다.
“이걸 한 번에 다 물으면 무례하겠죠?”
리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당시 문서 분류 담당이었잖아요. 알고 있을 법한 일부터 묻는 게 좋겠어요.”
“인장 사용 목적과 재편철 방식부터요?”
“그렇죠.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 답을 받아들이고요.”
태오는 질문지를 다시 적었다. 첫 질문은 ‘당시 맡았던 업무가 무엇이었습니까’가 되었다. 두 번째 질문은 ‘푸른 끈으로 묶인 문서를 기억하십니까’였다. ‘그때 누가 돈을 가져갔습니까’라는 질문은 지웠다. 에마가 돈을 세지 않았다면 대답을 강요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리네아를 바라봤다.
“저를 너무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관심이 있으니까요.”
“그럼 제 약점도 다 아시나요?”
리네아가 웃었다.
“서류가 쌓이면 밥을 잊어버리는 거요.”
“그건 단점이지 약점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가까이 오면 글씨를 틀리는 거요.”
태오가 펜을 멈췄다. 리네아는 실제로 몸을 기울여 그의 어깨 너머로 질문지를 읽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보세요. 방금 ‘푸른 끈’을 ‘푸른 꿈’이라고 쓰셨잖아요.”
태오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그랬다.
“그건 당신 잘못입니다.”
“어머, 남 탓하시면 안 되죠.”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조금 물러났다. 태오는 틀린 글자를 고쳤다. 기록에 남기는 말은 정확해야 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모든 말이 정확해질 필요는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태오는 새 작업장에서 상담 예약을 정리했다. 어느 상인은 대금을 못 받은 일로 화를 냈고, 또 다른 상인은 이미 지급한 돈을 다시 요구받았다며 불안해했다. 태오는 두 사람이 각각 가져온 증빙 자료의 종류를 구분해 주었다. 계약서, 지급 지시, 금전 인수증이 같은 뜻이 아니라는 설명을 하자 손님들이 표정을 바꿨다.
“이런 것도 일이 되나요?” 한 손님이 물었다.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니까요.”
그는 수수료를 받고 장부를 정리했다. 한동안은 가게의 수입이 많지 않겠지만, 적어도 일을 해서 번 돈이 생기고 있었다. 발카스에게서 돌려받을 85금화가 여전히 중요했지만, 그 돈 때문에 오늘 고객과의 약속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점심 무렵 토른이 찾아와 선반의 높이를 다시 점검했다. 드워프는 보관함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네 방은 제법 사무실 같군.”
“원래 제 사무실입니다.”
“처음엔 서류를 쌓아 둔 임시 피난처 같았거든.”
“부정할 수 없네요.”
두 사람은 웃었다. 태오는 책상 위의 에마 면담 질문지를 서랍에 넣었다. 먼저 오늘의 약속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
저녁에 태오는 기록방에서 손님 장부를 정리했다. 손님은 바닷가 여관을 운영하는 작은 상인이었다. 여관의 객실 예약 기록과 식당 외상 장부가 섞여 있어 매번 돈이 안 맞는다고 했다. 태오는 한 가지를 확인했다.
“예약을 받아도 숙박료를 다 받은 건 아니죠?”
“물론이죠.”
“그럼 예약 금액과 실제 수령 금액을 분리하겠습니다.”
상인은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몰랐지?”
“저도 비슷한 걸 백 번쯤 확인하고 있습니다.”
손님은 웃었다. 그는 태오의 작업장 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가리켰다.
[약속된 돈과 받은 돈을 구분합니다.]
“좋은 문구네요.”
“제 인생에서 나온 문구라서요.”
그날 밤 기록방을 닫으려는데 전달석이 울렸다.
[에마 노윈. 공식 면담 요청 수락. 전제: 본인의 기억을 확정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 개인 주소 공개 금지.]
태오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아주 오랜만에 사람이 직접 말해 줄 기회가 생겼다. 누군가의 이름과 목소리를 얻는 일은 수천 장의 장부를 찾는 일만큼 중요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기억도 원본에 대한 질문의 시작이지 끝은 아니었다.
리네아가 전등을 끄며 물었다.
“좋은 소식인가요?”
“면담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럼 오늘은 축하해야겠네요.”
“아직 증언도 듣지 않았는데요?”
“허락받았다는 사실을 축하하면 되죠.”
태오는 웃었다.
“당신은 제가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중간중간 살아갈 이유로 바꾸는 데 천재입니다.”
리네아가 다가와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일도 도와주고 싶어지는데요.”
“독립 업무 시간에는 안 됩니다. 제 업무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원할 때요.”
“이제 배운 걸 제대로 쓰네요.”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태오는 그날의 마지막 기록을 남겼다.
[푸른 끈은 미결 건 재편철의 흔적. 실제 결제 상태는 상대 원부 추가 확인 필요. 에마 노윈 자발적 면담 예정.]
여전히 원금 85금화는 미환급이었다. 하지만 내일은 새 종이 대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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