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한 환전소에 출근하는 직원이 있을까.
김태오는 이 질문을 입 밖으로 내기 전부터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업을 그만두더라도 세금을 정리할 사람, 임금을 계산할 사람, 마지막 장부를 옮길 사람은 남는다. 문제는 그중 누구에게 어떤 도장을 찍을 권한이 있었느냐였다.
그가 동부 상업문서보관소의 접수창구에 놓은 것은 금고 열쇠가 아니었다. 열아홉이라는 숫자 옆에 두 날짜를 적은 작은 조회 신청서였다.
“동문 공동환전소 인장 보관일지의 폐업 전후 한 달분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노엘 카시가 종이를 훑어보았다.
“인장 사용자는 개인이니 이름은 바로 공개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직책과 사용 사유, 반환 확인부터요. 이름은 필요한 경우 별도로 심사받겠습니다.”
노엘이 눈썹을 올렸다.
“제가 하려던 말을 먼저 하시네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뭔데요?”
“그건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노엘이 웃었다. 뒤에 서 있던 리네아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태오 씨는 이제 대화 세 마디마다 확인 절차가 나와요. 어제 제가 저녁이 맛있냐고 물으니까 접시에 남은 양을 근거로 판단하자더라고요.”
“그건 억울합니다. 맛있다고 먼저 말했어요.”
“그러고는 조리법 원본이 있냐고 물었잖아요.”
“다음에도 먹고 싶어서 그랬죠.”
노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접수 도장을 눌렀다.
“아무튼 여기는 환전소가 아니니, 접수 확인과 자료 열람 허가를 혼동하지 마십시오.”
태오는 두 손을 들었다.
“그 말은 제가 해야 하는데요.”
***
열람 허가가 난 것은 오후였다. 원본은 투명한 보존대 안에 놓여 있었고, 태오와 디아나 벨크가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름을 가린 근무 직책과 관리 표식, 인장 사용 목적이었다. 리네아는 그 시각 자신의 고객 상담이 있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동행하지 않는다고 연인 관계가 흔들리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태오는 그녀에게 별도로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했다.
인장 보관일지의 첫 장에는 폐업 결정 전후의 통상 업무가 있었다. 인장 수령, 창구 마감, 반환, 재봉인. 다음 장에서 형식이 바뀌었다.
[영업 말소 후 잔무 정리용 임시 보관 전환.]
노엘은 종이 가장자리의 가느다란 흰 띠를 가리켰다.
“여기부터는 영업용 인장이 아닙니다. 물건은 같아도 사용 목적이 바뀐 거죠.”
“그럼 폐업 뒤에 찍힌 도장은 합법이란 말씀인가요?”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어요. 전환을 승인한 범위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디아나는 확대 수정으로 열아홉째 날 기록을 살폈다. 날짜 옆에는 작은 체크 표시와 두 글자가 있었다.
[잔무.]
그 아래는 잉크가 번져 읽기 어려웠다. 숫자 같기도 하고, 서명 앞머리 같기도 했다. 태오는 그것을 보고 목이 탔다. 만약 보관일지만 찾으면 모든 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또 실망했을 것이다.
“무슨 문서에 찍었다는 항목은 없습니까?”
노엘은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인장 대여 목적: 인계 대상 서류 대조.]
“결제 승인이라고 적혀 있지는 않네요.” 태오가 말했다.
“결제 승인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과 실제로 결제 승인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른 겁니다.” 디아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는 영업 재개가 아니라 문서 인계가 정식 목적이었다는 근거가 생겼어요.”
태오는 수첩에 줄을 두 개 그었다. 첫째 줄은 인장 보관일지. 둘째 줄은 E-47/4 종료 대조표. 그 사이에는 화살표 대신 물음표를 남겨 두었다. 둘을 잇는 서류 번호가 아직 없었다.
***
점심 식당에서 태오는 뜨거운 수프를 앞에 놓고도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발카스가 보낸 회신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내 재무관의 근무표와 인장 보관 직책을 대조할 준비가 끝났다.]
태오는 바렌에게 답장을 보냈다.
[대조 전에 법적 열람 범위 확인 부탁드립니다. 재무관 근무표는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발카스 님은 그 말을 듣고 숟가락을 구부리셨습니다.]
태오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숟가락은 원상 복구 가능한가요?]
[은제라서 가능합니다. 업무에는 영향 없습니다.]
리네아가 상담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왔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요?”
“드래곤이 식기를 망가뜨렸답니다.”
“그게 왜 좋은 소식이에요?”
“이제 화가 나도 사람이 아니라 숟가락을 구부리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성장하는 드래곤은 처음 들어요.”
그녀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은 중개인으로서 오래된 집의 하자 목록을 작성한 날이었다. 리네아는 설명을 마친 뒤 조용히 물었다.
“기록을 따라다니는 동안 당신이 자기 기록방까지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태오는 식탁 아래 놓인 일감 장부를 떠올렸다. 새 의뢰 세 건 중 둘은 이미 약속한 날짜가 가까웠다. 그는 조사만큼 그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후에는 기록방에서 일을 할 겁니다. 오늘 확인한 건 보관일지의 사용 목적뿐입니다.”
“그리고 도장을 찍은 사람이 죄인이라는 결론은 아직 아니고요?”
“네. 당신이 저보다 먼저 정확해지는 건 반칙인데요.”
리네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중개 수수료로 배운 실력이거든요.”
***
노엘이 열람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작은 문제가 생겼다. 열아홉째 날 인장 보관일지에 적힌 ‘잔무’라는 두 글자가 보존 목록의 새 색인에는 ‘결산’으로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두 말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잔무는 여러 종류의 일을 가리킬 수 있었고, 결산은 돈을 정리하는 일로 오해되기 쉬웠다.
“누가 옮겼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새 색인은 십오 년 단위 정비사업 때 만든 겁니다. 담당자 목록은 따로 남아 있을 겁니다.” 노엘이 답했다.
“그러면 먼저 원본의 글자와 색인의 표제 사이 차이를 보존해 주세요. 어느 쪽이 맞는지 지금 지우지 말고요.”
“왜 그런 부탁을 합니까?”
“어제 누군가의 기록이 ‘업무 종료’에서 ‘지급 완료’로 바뀐 흔적을 봤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다른 사람도 잘못 읽을 수 있으니까요.”
노엘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더니 두 기록을 한 화면에 놓고 서로 다른 출처 표식을 달았다. ‘정정’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표목 차이 확인’이라고 적었다. 아직 잘못되었다고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오는 그 화면을 바라보며 묘한 만족을 느꼈다. 몇 달 전 그는 자신이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검술도 없고 용언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록의 한 단어를 쉽게 바꾸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세상을 뒤집는 힘과는 달랐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잘못된 장부를 보고 집을 잃는 일을 줄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
오후 회의 뒤 그는 발카스 측의 옛 근무 목록과 인장 보관일지의 직책 체계를 따로 그렸다. 자산관리실 서기와 환전소 청산관리인의 직책명은 비슷했다. 둘 다 ‘정산 서기’라고 불렸다. 하지만 서로 다른 기관의 사람일 수도 있고, 임시 파견된 같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바렌이 찾아와 이름을 가린 목록을 읽었다.
“저희 직원 가운데 그 시기에 서부 정산을 담당한 사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업문서보관소의 출입 인명과 일치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직책이 같다고 당장 발카스 님 부하였다고 말해서는 안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발카스 님은 지금 왜 저희를 돕고 계십니까?”
바렌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처음에는 자기 재산의 출처를 확인하려는 마음이 컸을 겁니다. 지금은 세입자 돈을 늦게 돌려준 일이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으로 남는 것도 받아들이시는 듯합니다.”
“그게 죄책감입니까?”
“제가 그분 마음을 대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태오는 웃었다.
“오늘은 바렌 씨도 저와 말투가 비슷해졌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발카스 님은 도장을 찍어야 하는 곳에 화염 자국을 내시려 하고, 당신은 화염 자국의 발급 사유를 물으시니까요.”
두 사람은 아주 잠깐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처럼 웃었다.
***
저녁 손님이 돌아간 뒤 태오는 기록방 진열장을 정리했다. 첫 고객 로벤의 일지 보관함, 헤스가 맡긴 빵집 계약 사본, 소피가 요청한 현재 거주 계약 일정표가 각각 다른 서랍에 있었다. 세 사람은 같은 공동 진정에 참여했지만, 각자의 문제와 허용한 열람 범위는 달랐다.
태오는 서랍에 붙인 이름표를 바꾸었다. ‘드래곤 분쟁 관련’이라는 하나의 큰 분류를 지우고, 고객별 사유와 접근 허가를 따로 적었다. 그때 손님 한 사람이 문을 두드렸다. 오래된 물품 구매 영수증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태오는 늦은 시각을 이유로 내일 오전 예약을 잡았다. 오늘은 서류를 덜 받기로 했다.
리네아는 예약표를 보고 만족한 듯 웃었다.
“그렇게 일하는 게 맞아요. 당신이 다 받아 놓고 잠도 안 자면 누가 책임지죠?”
“기록방 사장이 책임져야겠죠.”
“기록방 사장한테 연인이 있다고도 적어 두세요.”
태오가 장부를 펼치는 시늉을 하자 리네아가 손을 뻗어 덮었다.
“진짜 적지는 말고요.”
그는 웃으며 장부를 제자리에 놓았다. 사람이 지켜야 할 약속 중에는 잘 적어 두는 게 중요한 약속도 있었지만, 때로는 펜을 내려놓아야 지킬 수 있는 약속도 있었다.
***
늦은 오후 노엘이 한 가지를 더 알려 주었다. 인장 보관일지는 본래 시간순으로 적혔지만 새 색인에서는 업무 종류별로 다시 묶였다. 같은 날짜의 서로 다른 행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태오는 날짜와 표제를 겹쳐 보며 말했다.
“그러면 열아홉째 날 도장이 두 번 사용됐더라도 제가 지금 보는 한 줄에는 한 번만 나타날 수 있겠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두 번 사용했는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지만요.”
“그럼 보관일지 전체를 요구하는 대신 그 날짜와 인접 기록의 대응표만 신청하겠습니다.”
노엘은 새 종이를 건넸다. 태오는 한 장의 종이에 열아홉째 날, 인장 대여, 사용 목적, 반환 확인의 네 칸을 만들었다. 또다시 빈칸이 생겼지만 이제는 그 빈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노엘은 그 표를 한참 보더니 말했다.
“자료를 더 달라는 사람은 많아요. 자료가 왜 필요한지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태오는 조금 멋쩍게 웃었다.
“다른 사람의 자료를 잘못 읽으면 제가 곤란해지는 걸 여러 번 겪어서요.”
그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새 문서 한 장으로 과거가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음에 조사하는 사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질문을 남길 수는 있었다.
***
오후에 찾아온 기록방 손님은 자기 아버지가 맡긴 밀가루 대금 영수증을 정리해 달라는 제빵사였다. 태오는 서류의 크기와 종이 재질이 제각각인 것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날짜와 금액, 실제 지급 여부를 열로 나누어 정리했다.
“이건 제가 갚은 돈이 아니고, 갚겠다고 한 돈입니다.” 제빵사가 말했다.
“그럼 이 칸에는 지급 예정으로 적겠습니다.”
“그렇게 나누니 보기 편하네요.”
“저도 좀 더 일찍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요.”
손님이 돌아간 뒤 태오는 받은 수수료를 사업 장부에 기입했다. 보증금 반환액과 한 칸에 적지 않았다. 발카스에게서 아직 못 받은 돈은 여든다섯 금화였다. 누군가의 기록을 정리해 벌어들인 돈으로 그 숫자를 덮고 싶지는 않았다.
해 질 녘 세딘이 보낸 새로운 보존 목록이 도착했다.
[폐업 열아홉째 날 인장 사용 관련 별첨: 보관 인장 인계 확인표 19-나.]
태오는 잠시 문장을 읽었다.
이제 비로소 두 문서 사이에 놓일 수도 있는 다리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별첨이 E-47/4와 연결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태오는 다음 조회를 예약하고 서류를 봉투에 넣었다.
리네아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엔 무슨 조사예요?”
“저녁 식사 조사요.”
“그건 절차가 간단하겠네요.”
“당신이 메뉴를 고르면 저는 맛있다고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길 건가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건 그냥 기억하고 싶어요.”
그날 밤, 기록방 한쪽의 수첩에는 짧은 세 줄만 적혔다.
[환전소 영업 말소 후 19일. 인장 사용 목적은 잔무 인계 대조로 기록됨.]
[실제 사용자·개별 문서 효력 미확정. 별첨 19-나 대조 예정.]
[보증금 미환급 원금 85금화.]
종이의 숫자는 하나 늘었다. 그러나 그날 태오가 확실하게 얻은 것은,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만으로 돈을 지급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아주 작은 진실이었다.
제11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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