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스가 금화를 보낸 날, 태오는 기록방의 문을 잠그려던 참이었다.
그는 늦은 오후까지 서쪽 선착장의 운송 대조표를 살피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들자 바렌이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었다. 바렌의 뒤에는 작은 철제 상자가 놓여 있었다.
“김태오 님. 임대차 보증금 일부 변제 건으로 왔습니다.”
태오는 반가워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물었다.
“서면 통지는 있습니까?”
바렌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있습니다.”
“금액은요?”
“열다섯 금화입니다.”
태오는 상자를 바로 열지 않았다. 기록방 거래와 별개인 개인 채권이므로, 지급 확인을 위해 마르셀 또는 정해진 입회인이 함께해야 했다. 바렌은 그 절차를 이미 예상한 듯 준비된 서류를 펼쳤다.
“지급 재원은 발카스 님의 남부 농장 정기 임대 수익입니다. 계정 47과 관련된 자금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금화 200의 지급 기록과 중복되지 않도록 별도 번호로 처리합니다.”
“좋습니다. 입회 확인 뒤 받겠습니다.”
바렌이 오히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저희도 그 방식을 선호합니다.”
태오는 그 말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드래곤 집주인의 대리인도 사람처럼 변하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사람이었는데 태오가 긴장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
마르셀이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상자를 열었다. 금화 열다섯 닢은 작은 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태오는 각 금화를 손에 쥐고 세었다. 리네아도 옆에서 금액을 확인했지만, 자신의 중개 업무와 분리된 개인 지급임을 명확히 했다.
“하나, 둘, 셋……열다섯.”
태오는 숫자를 다시 세었다. 마르셀이 상자 봉인의 이상 여부를 기록했고, 바렌은 재원 명세와 지급 확인서에 서명했다.
[기존 미환급 원금 100금화.]
[현금 일부 변제 15금화.]
[누적 반환 215금화.]
[미환급 원금 85금화.]
태오는 그 숫자를 오래 바라봤다. 처음 삼백 닢을 돌려달라고 말했을 때는 도저히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남은 돈은 여전히 큰 액수였지만, 자기 삶을 온통 묶을 만큼 거대한 그림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감사합니다.”
바렌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부분에 감사하십니까?”
“돈을 돌려준 것 자체가 아닙니다. 그건 원래 약속이니까요. 제대로 확인할 자료를 가져오신 점입니다.”
바렌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생겼다.
“발카스 님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제 말 앞부분도요.”
“물론입니다.”
마르셀은 웃음을 참는 데 실패했다.
***
지급 절차가 끝난 뒤 발카스의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열다섯 닢을 받았느냐.]
태오는 답장을 썼다.
[받았습니다. 입회 확인과 잔액 기록도 완료했습니다. 남은 원금은 85금화입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내가 그 숫자를 모를 것 같으냐.]
[매번 재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잠시 뒤 세 번째 답장이 도착했다.
[습관을 버리지 마라.]
태오는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에게 영수증을 요구하는 인간이 불쾌해서 으르렁거리던 드래곤이 이제는 계속 확인하라고 했다. 드래곤의 수명이 긴 만큼 배움도 느리게 찾아오는 것인지 몰랐다.
리네아가 메시지를 보고 웃었다.
“둘이 사이가 좋아졌네요.”
“좋은 집주인은 보증금을 정해진 날짜에 돌려주는 집주인입니다.”
“그런가요?”
“저랑 발카스 님은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한 단계 가까워졌네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맞는 말이었다.
***
그러나 오후에 동문 환전소의 새 비교 기록을 보자 태오는 다시 긴장했다. 외부 결제 지시 원부에 적힌 '종료'라는 글자를 후대 색인이 '지급 완료'로 바꾸어 기재한 사례가 발견된 것이다.
“같은 말 아닙니까?” 태오가 물었다.
디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시 업무 규정상 종료는 거래가 끝났다는 뜻일 수도 있고, 취소와 반송을 포함해 해당 지시의 처리가 마감됐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이걸 지급 완료로 옮겼습니까?”
“색인을 편찬한 담당자의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실수였을까요?”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아직 고의 여부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태오는 수첩에 굵은 글씨로 적었다.
[마감과 지급 완료는 다르다.]
그 아래에는 자신이 받은 금화 열다섯 닢의 지급 확인서 번호를 적었다. 실제로 금화를 받은 그에게는 종료라는 애매한 단어가 필요 없었다. 현물을 손으로 세었고, 지급자와 수령자가 확인했다. 바로 그런 차이를 찾아야 했다.
“문서가 끝났다는 기록이 돈을 받았다는 기록처럼 쓰였다면, 누군가의 권리가 잘못 정리됐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디아나가 답했다. “그렇지만 각 거래별로 확인해야 해요. 전부 같은 방식이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열다섯 닢과 타인의 오래된 지급지시서를 같은 칸에 쓰면 안 됐다.
***
저녁에 태오는 소피를 만났다. 소피는 아이의 손을 잡고 기록방에 와 있었다. 최근 집주인과 계약을 연장하기로 했지만, 과거 보증금 문제 때문에 새 집주인이 꺼림칙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래곤한테서 돈을 받으셨다면서요?”
“오늘 조금 더 받았습니다. 제 계약에 대한 돈입니다.”
“그럼 저도 곧 받을 수 있을까요?”
태오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가능성을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제 지급이 다른 계약의 지급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자료를 가지고 소피 씨 몫의 일정과 책임자를 따로 요청해 봅시다.”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태오가 받은 금화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따로 보관했어.”
“왜요?”
“보관한 돈을 잘못 세면 또 문제가 생기니까.”
“그럼 용한테도 수 세는 법 알려 주면 되잖아요.”
태오는 웃었다.
“아마 요즘 배우고 있을 거야.”
소피도 조금 웃었다. 그 웃음은 불안을 모두 없애 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왔다.
***
금화 열다섯 닢을 받았다는 소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졌다. 태오는 지급 확인서의 사적인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마르셀이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채무 일부가 실제 변제됐다는 사실은 전달되었다.
헤스가 빵집 문을 열고 나오며 물었다.
“자네 것은 또 받았다며?”
“네. 오늘 열다섯 닢을 받았습니다.”
“축하하네. 부럽기도 하고.”
태오는 그 말에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없었다. 헤스에게도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이 있었다. 자기 계약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다른 사람이 저절로 구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헤스 씨 계약은 별도 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래도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건 지겹네.”
“그 말은 이해합니다.”
헤스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다가 다시 웃었다.
“그럼 오늘 빵 하나 더 가져가게. 돈 받은 날엔 단 걸 먹어야지.”
“이번에는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예전엔 덤도 잘 받더니.”
“오늘은 제가 기분이 좋아서요.”
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빵값을 치르고 돌아오면서 영수증 한 장을 받았다. 가게가 작고 오래됐어도 헤스의 장부는 놀라울 만큼 정확했다.
그는 문득 로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래전 운송일지를 맡긴 마부는 자신이 돈을 돌려받기 전에 다른 세입자가 먼저 일부를 받았다고 한숨 쉬면서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태오는 그날 오후 로벤에게 연락했다. 공동 진정에 참여한 세입자들에게 지급 상태를 한꺼번에 공개하지 않고, 각자의 동의를 확인한 뒤 필요한 범위에서만 조정 상황을 설명하자고 제안했다.
“자네가 돈 받았다고 우리 것까지 받은 줄 아는 사람이 있더군.” 로벤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내 이름을 억지로 쓰지 말고, 내가 확인한 정보만 쓰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오는 기록방 게시판의 설명을 고쳤다.
[김태오 개인 계약의 일부 변제는 타 임차인의 계약상 청구 및 지급 일정과 별개입니다.]
아무도 자기 이름이 허락 없이 붙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었다.
그날 밤에는 바렌이 보내온 지급 재원 보충 내역이 도착했다. 농장 정기 수익에서 세금과 관리비가 차감된 뒤 지급 가능한 범위를 확인했고, 그 안에서 열다섯 닢이 실제 전달됐다는 내용이었다.
태오는 문서를 보고 조금 놀랐다. 예전에는 어떤 근거를 내놓으라고 해도 발카스 쪽에서 금고가 잠겼다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바렌 씨도 이제 일하기 편하겠어요.” 태오가 말했다.
리네아는 미소를 지었다.
“드래곤 님이 돈을 주는 게 익숙해진 걸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장부가 빨리 옵니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네요.”
태오는 방금 받은 빵을 두 조각으로 나누었다. 리네아에게 더 큰 조각을 건네자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오늘은 왜 제 몫이 더 커요?”
“오늘은 아주 좋은 날이니까요.”
“당신이 열다섯 금화 받았다고요?”
“그것도 좋지만, 당신이랑 이런 얘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어서요.”
리네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빵을 받아 한 입 베어 물고, 그가 기대하지 않은 순간 그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럼 오늘 빵값은 제가 나중에 갚을게요.”
“어떤 방식으로요?”
“비밀이에요.”
태오는 웃었다. 이번에는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그는 기록방 운영용 매출 장부와 개인 채권 회수 장부를 나란히 놓아 두었다. 두 숫자를 합치면 잠시 부자가 된 기분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사업이 잘되는 일과 집주인이 늦게 돌려주는 돈을 받는 일은 서로 다른 이야기였다. 앞으로도 그 차이를 잊지 않기로 했다.
***
태오는 마지막으로 지급 확인서 사본을 보관 봉투에 넣고 원본 위치를 표시했다. 이전에는 받았다는 기쁨 때문에 종이를 아무 곳에나 놓아 둘 뻔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바렌에게는 지급서의 수령 확인을 전달했고, 마르셀에게는 해당 사건 기록의 잔액 갱신을 요청했다. 85금화라는 숫자는 단순히 수첩에 쓰인 소원이 아니라 실제 지급 확인 뒤 정해진 잔액이었다. 그 차이가 소중했다. 기록방의 새 손님이 문을 두드리자 태오는 보관함을 잠갔다. 오늘부터 해야 할 일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날 밤에는 발카스의 조용한 답장이 한 번 더 왔다. [다음 금액도 준비하겠다. 확정되면 알리겠다.] 태오는 날짜와 금액이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계획에 감사드립니다. 실제 지급 일정이 정해지면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드래곤이 화내지 않았다. 짧은 확인 표시만 돌아왔다. 태오는 그것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그는 기록방 창틀을 한 번 쓸었다. 처음 개업할 때는 아무 손님도 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장부를 맡기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맡긴 서류를 책임 있게 보관하는 일은 집주인에게 돌려받을 돈과 다른 종류의 약속이었다. 태오는 그 약속도 잊지 않으려고 업무 수첩에 다음 날의 점검 시간을 적었다.
지급서의 봉인과 수령인의 서명이 모두 확인된 날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는 앞으로 보증금 문제가 끝나더라도 이런 방식을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돈을 받았다는 말과 실제로 받은 돈의 무게는 달랐다.
***
밤에 기록방 계산을 마치자 태오는 두 장부가 나란히 놓인 것을 보았다. 한쪽에는 기록방 의뢰비가 은화 단위로 적혀 있었다. 다른 쪽에는 보증금 반환 누계가 금화 단위로 적혀 있었다. 그는 두 장부를 섞지 않았다.
리네아가 그 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남은 팔십오 닢을 다 받으면 뭘 할 거예요?”
“먼저 그날은 계산기를 안 보려고요.”
“드워프 계산기라도 사려던 건 아니고요?”
“제가 왜 그런 물건을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건 숫자와 저니까요.”
“순서가 틀렸습니다.”
“그럼 어느 쪽이 먼저인데요?”
태오는 리네아를 바라봤다. 그녀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정답을 말씀드리면 앞으로 제게 계산서 검토를 안 맡기실 것 같아서요.”
리네아는 웃음을 터뜨리고 그의 팔에 매달렸다. 태오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날 마지막 장부에는 숫자가 하나 바뀌어 있었다.
[실수령 누계 215금화. 미환급 원금 85금화.]
외부 결제 원부의 종료 코드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조사 중이었다. 그러나 태오가 오늘 받은 열다섯 닢에 대해서는 더 이상 '예정'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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