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시에는 일곱 해 동안 금고에 들어온 것으로 기록된 돈이 있었다.
문제는 그 돈을 실제로 본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김태오는 세딘이 제출한 '현물 반입 대조' 목록을 보고 숨을 멈췄다. 청산 준비실 시절의 기록에는 계정 47로 예정된 금화 수량이 적혀 있었지만, 실물 인계 확인란은 비어 있었다. 옆에는 뒤늦게 '정정 요구'라는 문구가 붙었다. 숫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돈을 건넸다고 볼 수는 없었다.
“여기 적힌 금액이 실제로 없었다는 뜻인가요?” 태오가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세딘이 대답했다. “예정됐지만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다른 보관처로 이송되어 별도 원장에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확인하죠?”
“그날의 운송표, 무게 기록, 인수자의 서명, 실제 금고 보관표를 차례로 대조해야 합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의 설명이 가장 믿음직했다.
***
드워프 토른은 금고의 물리 구조를 다시 설명했다. 계정 47은 여러 집의 계약 정보를 한데 연결한 장부상 계정이고, 지하 금고는 그중 일부 서류와 물건의 보관 기능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한 줄의 입금 접수가 금화 상자 하나와 같지는 않았다.
“예전 장인들이 서류와 돈을 함께 보관한 적은 있네. 하지만 보존실로 들어가는 통로는 여러 개였고, 실제로 문을 통과한 물건마다 무게와 봉인 상태가 달랐지.”
“이 보관표는 왜 비어 있습니까?”
“기록이 빠졌거나, 물건이 안 왔거나, 다른 표로 옮겼겠지. 내가 보지 않은 걸 무슨 수로 단정하겠나?”
태오는 토른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 이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은 자기 전문 분야의 밖에서는 함부로 확신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제4 보전 통로의 원판 보존갑을 아직 개봉하지 않기로 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제3자 정보나 봉인을 훼손하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 옛 운송표와 회계 보조 원장으로 대조 가능한 부분부터 확인했다.
***
리네아는 별도로 세입자들의 반환 일정표를 검토하고 있었다. 김태오는 자신의 잔액 100금화를 확인한 뒤, 다른 사람들의 독립적인 원금과 지급 상태를 한 줄에 합쳐 적지 않도록 작업장 표를 수정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돈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맞아요.” 리네아가 말했다. “소피 씨는 지금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가 급하고, 로벤 씨는 오래된 계약서가 읽힐지가 중요하죠. 헤스 씨는 빵집을 지켜야 하고요.”
태오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처지를 돌아봤다. 처음에는 금화 300닢을 돌려받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받는 과정에서 새 사업을 시작하고, 오래된 친구를 만들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문제 자체가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전부 나쁜 것도 아니었다.
“당신은 후회해요?” 리네아가 물었다.
“뭘요?”
“그 집을 계약한 거요.”
태오는 천천히 생각했다.
“계약서를 더 자세히 읽지 않은 건 후회하죠. 하지만 그 일 때문에 당신을 다시 만난 건 후회하지 않아요.”
“또 그런 말을 연습했어요?”
“이젠 즉흥입니다.”
리네아는 웃으며 태오의 팔에 기대었다.
***
정오가 되어 발카스가 기록국에 나타났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건의 가장 큰 당사자였다.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존재가 자기 명의의 금고와 세입자들의 돈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랐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꽝스럽고 무거웠다.
“내 재무관이 남긴 목록을 가져왔다.”
발카스가 낡은 가죽 상자를 세딘의 책상에 올렸다. 이전 송달 영수증과는 다른 물건이었다. 개인 자산과 공동 보관 관련 자료를 구분한 목록인데, 일부 항목에 계정 47이 언급되어 있었다.
“이것도 원본 대조가 필요합니다.” 세딘이 말했다.
“안다. 오늘은 네게 내 보물이라고 우기지 않겠다.”
태오가 웃었다.
“드래곤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무섭습니다.”
“왜?”
“이젠 정말 협조하시려는 것 같아서요. 몇 달 동안 예상했던 싸움 방식이 다 틀어졌거든요.”
드래곤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평생 인간이 나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는 내가 계약서를 읽는 순간 더 놀라는군.”
“세상에는 전쟁보다 드문 일이 있습니다.”
토른이 옆에서 말했다.
“늙은 용이 장부를 읽는 일이지.”
세 사람 사이에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발카스도 잠깐 입꼬리를 올렸다.
***
오후 청문에서 마르셀은 가짜 신청의 정정 결과를 공식 확인했다. 최근 계정 47 열람 신청의 김태오는 직접 신청자로 인정되지 않고, 자료 확인 요청의 수신 대상자로 바로잡혔다. 확인된 범위에서 그의 증표 47-B를 사용한 인출이나 관리권 집행은 없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제3 대리 통지는 별도 조사 대상으로 남았다.
태오는 오랫동안 그 말을 기다렸다.
“제 이름이 원래 자리로 돌아온 거군요.”
“해당 신청 기록에서는 그렇습니다.” 마르셀이 말했다.
“그럼 이걸로 모두 끝난 건 아닙니까?”
“당신의 이름을 직접 신청자로 취급한 부분은 정정됐습니다. 그러나 누가 왜 자료를 제출했는지, 과거 위임 보완본이 어떤 효력을 가졌는지, 실제 금전은 어디에 있었는지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끝난 문제를 끝났다고 말하는 것만큼, 남은 문제를 남았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했다.
***
저녁이 되어 기록방에 사람들이 모였다. 로벤은 새 장부 보관 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했고 헤스는 작은 빵을 가져왔다. 소피도 아이와 함께 들렀다. 아이는 문 옆에 놓인 은빛 잎사귀 화분을 보고 말했다.
“드래곤이 준 거예요?”
“맞아.” 태오가 대답했다.
“그럼 용이 자라요?”
“아마 꽃이 자랄 거야.”
“꽃이 불을 뿜으면요?”
“그럼 방화 비용을 누가 낼지 먼저 확인해야지.”
어른들이 웃었다. 발카스가 건넨 축하 화분은 아무 일 없이 고요하게 잎을 흔들었다. 아이는 신기한 듯 잎을 만지려다 소피에게 허락을 받았다.
태오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아주 멀리 와 있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검은 산맥으로 혼자 올라갔다. 지금은 그의 작은 방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를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
세딘의 회계 대조 설명은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태오는 그 사이 새로운 표 하나를 만들었다. 가로축에는 옛 기록의 단계가 적혔다. 지급 약속, 접수, 실제 반입, 보관, 외부 결제, 최종 수취. 세로축에는 계약별 번호를 적었지만 사생활 보호가 필요한 이름은 쓰지 않았다.
“보기 편하네요.” 세딘이 말했다.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 이런 겁니다. 다른 사람이 종이를 보고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
“그렇다면 '확인 불가'도 명확히 표시해 주세요.”
태오는 빈칸을 그대로 두지 않고 ‘증빙 미발견’과 ‘검토 중’을 구분했다. 증빙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과 애초에 없었다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카스는 그 표를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내가 일곱 해 전 이런 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일이 달라졌을까?”
“표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 제대로 읽는 건 아닙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래도 무슨 기록이 없는지는 더 빨리 알았겠죠.”
“나는 재산이 많아질수록 장부도 더 복잡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부는 복잡한 돈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도구여야죠.”
드래곤은 잠시 말이 없었다. 태오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발카스가 이제 자기 잘못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한편 이벨은 '외부 결제 예정'이라는 문구를 실제 지급으로 취급하는 신문 기사를 막기 위해 짧은 설명문을 작성했다. 태오는 문구를 읽고 한 곳을 고쳤다.
[외부 결제 예정 기록이 확인되었으나, 실제 지급 여부 및 최종 수취인 확인은 계속 진행 중.]
“이게 정확합니다.” 이벨이 말했다.
마르셀이 서명한 안내문은 다음 날 공개하기로 했다. 확정되지 않은 돈의 흐름을 당장 누군가의 범죄라고 알리면,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다 현재 사람들을 또 다치게 할 수 있었다.
태오는 소피와 로벤, 헤스에게 개별적으로 설명했다. 누군가는 희망을 가졌고 누군가는 더 복잡해졌다고 느꼈다. 그는 그 모든 반응을 이해했다. 아직 돌려받지 못한 돈이 있는 사람에게 '조사 중'이라는 말은 언제나 답답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무슨 조사를 하는지 알겠습니다.” 로벤이 말했다.
“금고를 열 사람만 찾는 게 아니라, 실제 돈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지 확인하려는 거죠?”
“맞습니다.” 태오가 답했다. “그리고 누군가 돈을 받았다 해도 그 사람이 누구의 돈을 어떤 권한으로 받은 건지는 또 확인해야 합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자신이 모든 문제를 풀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각자의 계약을 각자의 이름으로 지키겠다고 말했다.
***
기록국을 나서기 전에 태오는 처음 47-B를 건네받았던 날을 떠올렸다. 검은 산맥 동굴에서 발카스의 거대한 발톱 아래 서 있었던 자신은, 그 비늘이 곧 돈처럼 쓸 수 있는 물건이길 바랐다. 이제는 비늘이 돈이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 그 물건은 기록을 확인할 출발점이었고, 실제 금전 지급에는 별도의 증거가 필요했다.
토른이 그를 보고 물었다.
“백 화 가까이 적어 놓고도 아직 모르는 게 많나?”
“많습니다.”
“그럼 뭐가 달라졌나?”
태오는 한참 생각했다.
“예전엔 제가 뭘 모르는지도 몰랐어요. 지금은 적어도 질문을 구분할 줄 압니다.”
토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이라면 집도 장부도 조금은 오래 버티게 하겠군.”
태오는 웃었다. 그는 토른이 만들어 준 작업장 선반을 떠올렸다. 튼튼한 받침대는 무게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지만, 무엇을 올려놓을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서류와 증거도 다르지 않았다.
***
밤늦게 세딘은 마지막 보고서를 보냈다. 새로 제출된 발카스의 목록과 과거 현물 반입 보조 원장을 대조한 결과, 계정 47 관련 금화 일부가 실제 금고 반입 대신 '외부 결제 예정'으로 처리된 듯한 항목이 있었다. 그러나 외부 결제가 실제로 실행됐는지는 또 다른 원부가 필요했다.
태오는 보고서를 천천히 읽었다.
[실물 반입 미확인. 외부 결제 예정 전환 표기. 최종 수취인 및 실제 결제 증빙 미발견.]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 백 화 동안 그는 금고가 어디에 있고 누가 문을 열 수 있는지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돈의 일부가 애초에 그 문을 지나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다음에는 금고를 열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네요.” 리네아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어요. 누가 돈을 실제로 받았는지부터 확인해야겠죠.”
“그럼 당신에게 남은 백 금화는요?”
“그건 별개입니다. 발카스 님의 반환 의무는 그대로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수첩에 적었다.
[100화. 최초 원금 300금화. 실지급 200금화. 미환급 100금화.]
[계정 47: 실물 반입 미확정. 외부 결제 예정 표기 발견. 실제 지급·수취인 미확정.]
마지막 줄에는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돈이 금고에 없다면, 어디로 갔는지보다 먼저 정말 갔는지 확인하자.]
그날 밤 태오는 47-B 비늘을 잠가 두고 창밖을 바라봤다. 파벨의 밤하늘은 맑았다. 높은 산맥 너머 어딘가에서 오래된 드래곤이 잠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오는 이제 그가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두렵지 않았다. 계약서의 한 줄을 붙잡고 버틴 시간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그때 창밖으로 아주 작은 종이배 하나가 떠올랐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마법 우편이었다. 종이배는 창턱에 멈추더니 스스로 펼쳐졌다.
[외부 결제 원부 확인처: 옛 동문 환전소.]
서명은 없었다. 진위도 확인되지 않았다.
태오는 그 종이를 곧바로 믿지 않았다. 대신 수령 시각을 기록하고 원형을 보존할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리네아를 바라봤다.
“내일은 환전소부터 확인해야겠네요.”
리네아는 한숨을 쉬는 척하다 웃었다.
“그러기 전에 아침은 먹고 가요, 사장님.”
“약속하겠습니다.”
그는 마침내 다음 사건의 문턱 앞에 섰다. 전세금 100금화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계정 47의 진실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이 어떻게 첫 문장을 써야 할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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