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심사 날 아침, 수현의 이름은 신청인 명단 가장 아래에 적혀 있었다. 그 위에는 기관 이름 다섯 개가 있었다. 소환 기록원, 공동보존실, 정정실, 특별 회복 관리국, 왕립용사길드. 수현은 그 명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세드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부서가 많으면 제 의사를 들을 사람이 더 많아지는 걸까요, 아니면 책임을 미룰 사람이 더 많아지는 걸까요?”
“그건 오늘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달렸겠죠.”
세드나의 대답은 늘 현명하면서도 사람 속을 긁는 구석이 있었다. 수현은 웃으며 신청인 자리에 앉았다. 메이는 동의하에 증인석에 앉았다. 카이렌은 원정대에 돌아가 근무 중이었다. 그가 여기 없는 것을 수현은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본인의 일은 본인의 자리에서 해 나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심사관은 먼저 사건의 범위를 읽었다. 이수현의 현장 확인인 배정은 기록돼 있다. 그러나 사전 동의 확인은 없다. 메이의 원문 민원에도 제삼자의 강제 소환 요청은 없다. 이제 실제 실행 절차와 책임 확인을 진행한다.
수현은 문장을 듣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는 아무도 그런 사실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
첫 번째 증언은 정정실의 토베가 했다. 그는 구형 서식을 통합 양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응답 없음'과 '처리 예외'를 구별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술자가 만들었던 변환 규칙은 사람의 의사를 실제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면 오류가 없었다면 신청인이 이곳에 오지 않았을 수 있습니까?” 심사관이 물었다.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실제 이동 실행 기록을 완전히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증언은 통합 이관반의 유스가 했다. 그는 최근 자동 대행 절차를 설명했고, 담당실 지정과 현장 실행 승인이 별개의 처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때 심사관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수현의 사건에는 사람이 사전 동의를 확인했다는 서류가 없었는데도 최종 실행 화면이 '완료'로 표시됐던 것이다.
“누가 완료를 눌렀습니까?”
유스가 고개를 숙였다.
“현재 기록에선 보호된 직무대행으로만 표시됩니다.”
“그 이름을 지금 공개해야 합니까?”
세드나가 말했다. “책임 확인에 필요한 심사관에게 봉인 상태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 공개 재판처럼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는 건 별도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수현은 그 의견에 동의했다. 책임을 확인하는 것과 한 사람의 신상을 무차별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
심사관은 증언이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에게 원문 자료와 해석 요약표를 구분해 제출하라고 했다. 이베른은 옛 보존함의 판독 부분만 담은 서류를 내밀었고, 모라는 그 판독이 어디까지 확정적인지 짧게 설명했다.
“이름이 가려져 있다고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기관 대표가 말했다.
“이름이 공개돼 있어도 거짓일 수 있고, 이름을 가렸다고 사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죠.” 수현이 답했다. “문장의 진위와 이름 공개의 필요성은 따로 검토해 주세요.”
심사관은 허가받은 범위에서 기록을 읽기로 했다. 수현은 원문에 자신의 뜻을 덧씌우지 않으려고 준비한 요약문을 접어 두었다. 오래전 누군가 남긴 질문을 자기 사건을 위한 구호로 쓰고 싶지 않았다.
잠시 뒤 증인석에 앉은 루세는 종이 전달 기록과 실제 장치 가동 기록은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누군가 소환에 관해 잘못된 서식을 만들었다고 해서 기계가 어떻게 사람을 이동시켰는지 전부 설명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실제 기계가 일했다는 증거가 없나요?”
“사람 이동과 관련된 실행 기록의 일부는 확인됐지만 기술적 전 과정은 복원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사전 동의 기록이 없다는 행정 판단과도 별개의 쟁점입니다.”
수현은 두 줄을 수첩에 나란히 적었다. 서류 오류, 이동 원리. 둘은 연결돼 있을 수 있지만 같은 질문은 아니었다. 그 구분을 잊지 않기 위해 일부러 다른 색으로 표시했다.
메이가 다가와 말했다. “수현 씨가 오늘은 조금 덜 무서워 보여요.”
“정확히는 무서운 이유를 좀 더 알게 됐어요.”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두려움과 이름을 붙인 두려움은 분명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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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잠시 중단됐을 때, 기관 대표 하나가 수현을 따로 불렀다. 그의 이름은 카르몬이었다. 공작가 비용 위임 인장 B-13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러 온 실무자였다.
“사건을 오래 끌수록 왕실과 길드의 부담이 커집니다. 일정 조건을 받아들이면 신청인의 귀환 지원 우선순위를 올리는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수현은 고개를 들었다.
“조건이 뭔가요?”
“현재의 이의 제기를 행정 보완으로 변경하는 겁니다. 누군가 강제로 이동시켰다는 표현은 빼고, 연락 절차가 매끄럽지 않았다는 정도로 정리하면 됩니다.”
“제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워지나요?”
“그건 아니지만 더 부드럽게 쓸 수 있죠.”
수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노골적으로 협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절하게 보였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빠른 절차를 미끼로 사실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결코 가벼운 제안이 아니었다.
“제 귀환을 도와줄 수 있는 기술적 근거가 있습니까?”
“검토를 요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아직 도와줄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니군요. 사실관계를 바꿀 이유는 없습니다.”
카르몬은 더 말하지 않았다. 수현은 그 대화를 즉시 세드나에게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요청했다.
***
오후 회의에서는 제0회신함의 오래된 질문을 다뤘다. 공개할 수 있는 문장만 심사 자료로 제출됐다.
[현장 확인인이 자기 의사로 현장을 떠날 수 있습니까.]
몇몇 참석자는 그 문장을 근거로 이미 귀환 절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루세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건 질문입니다. 방법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당시 어떤 기술이 있었는지, 지금 안전하게 쓸 수 있는지도 별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문서라는 말입니까?”
수현이 입을 열었다.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오래전부터 누군가는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으니까요. 답을 모른다고 질문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심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오래된 기록의 가치는 마법의 문을 바로 여는 데만 있지 않다는 점이 보였다. 사람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제도 안에 남겨 두는 일도 중요했다.
***
카르몬의 제안이 기록에 남자 그는 공식 서면으로 자신의 발언을 해명했다. 귀환 지원 우선순위를 올릴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절차 상담의 일반적인 가능성을 설명했을 뿐, 사건 내용을 바꾸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수현은 그 해명을 읽었다. 완전히 틀린 말도, 자신이 들은 것과 정확히 같은 말도 아니었다. 그녀는 기억나는 문장을 그대로 적은 자신의 면담 기록과 카르몬의 서면을 모두 제출했다. 다른 참석자는 없었으므로 두 사람의 진술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표시했다.
“상대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메이가 물었다.
“화는 났죠. 하지만 화난 사실과 그 사람이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구분해야 해요.”
수현은 기록 아래에 자신의 요청을 다시 썼다. 이의 신청을 행정 보완으로 바꾸지 않겠다는 의사, 귀환 지원 요청은 유지한다는 의사, 기술적 위험을 감수한 실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였다.
심사관은 그 요청을 접수했다. 다음 회의에서는 공작가 B-13 비용 위임 인장이 이 절차의 내용 변경 권한을 주는지 검토하기로 했다. 수현은 기존 자료상 비용 위임 인장은 인사 계약이나 개인 이동 동의까지 승인하는 권한으로 확인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공작가 이름으로 제 사건의 내용을 고쳐도 된다면 이상하잖아요.”
세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을 심사해 달라는 이유를 문서로 남기죠.”
수현은 추가 조사에 동의했다. 누가 나쁜 사람인지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누가 어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해 온 일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
결정문 초안은 저녁 늦게 도착했다. 그 안에는 수현을 화나게 하는 문장 하나가 있었다.
[신청인은 사건 종료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함.]
“누가 그렇게 말했죠?” 수현이 물었다.
정정 담당자는 초안이 자동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일정 기한 내에 반박하지 않으면 종결 동의로 처리되는 서식이었다. 수현은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지금 이 사건의 핵심이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의했다고 처리된 문제인데, 결론도 같은 방식으로 쓰시는 건가요?”
실내가 조용해졌다.
세드나는 초안의 기한 규정을 확인했다. 원래는 결정문이 당사자에게 도착한 뒤 시작되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수현에게 실제 전달됐다는 확인도 전에 작성 프로그램이 '이견 없음'을 채워 넣은 것이다.
심사관이 말했다.
“해당 문장은 삭제하고 별도 서면 동의를 받겠습니다. 당사자 통지 전에는 이견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수현은 숨을 내쉬었다. 지치고 화가 났지만, 고쳐진다는 사실에 조금 위로받았다.
***
메이는 마지막 증언 기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날 카이렌이 죽을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치료 약재와 휴식을 달라고 민원을 보냈습니다. 누군가 다른 세계에서 와서 저 대신 싸워 주기를 바랐던 것도 아닙니다. 저는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수현 씨가 동의 없이 끌려오는 데 동의한 적은 없습니다.”
그녀는 손목 고리를 숨기지 않았다.
“저는 아직 제 이름으로 된 돈을 다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제 말로 제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수현 씨 문제도 본인의 말로 들으십시오.”
수현은 메이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남몰래 약초를 찧으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던 치유사였다. 지금은 왕립 기관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선택을 직접 설명하고 있었다.
심사관은 증언을 그대로 기록하도록 지시했다. 수현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아직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메이가 이런 사람이 되는 과정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
결정문 초안이 수정되는 동안 수현은 복도의 물시계를 바라보았다. 긴 회의는 이미 몇 시간째였다. 심사관들 중 한 명은 식사를 건너뛰었고, 서기는 손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수현이 조심스럽게 쉬는 시간을 제안하자 처음에는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중요한 사건이라 오늘 끝내야 합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그래서 더 정확히 처리해야죠. 쉬었다가 검토한 결정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심사관은 잠시 생각하다가 짧은 휴식을 선언했다. 직원들은 먹을 것을 가져왔고, 서기는 새 잉크를 채웠다. 수현은 식당에서 메이와 마주 앉았다.
“제 소환 사건 때문에 심사관들까지 쉬게 만들 줄은 몰랐네요.” 수현이 말했다.
“수현 씨가 처음 하던 일을 아직도 하고 있군요.”
“그러게요. 이곳에 와서 처음 얻어 낸 게 카이렌의 두 시간이었잖아요.”
메이는 빵을 반으로 나눴다. “오늘도 두 시간은 아니어도 잠깐 쉬어서 좋네요.”
회의가 다시 시작됐을 때 심사관은 이전보다 침착하게 초안의 종결 문구를 삭제했다. 수현은 그 과정이 묘하게 상징적이라고 느꼈다. 사람의 동의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사람을 쉴 수 없게 만들어서는 안 됐다.
***
심사 결과는 조건부였다. 강제 이동의 적법한 사전 동의 자료가 없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실제 실행 경위는 별도 조사로 넘겼다. 수현의 귀환 지원 요청은 계속 유효하며, 단순한 기록 종결로 대신하지 않기로 했다. 인체 이동에 관한 실험은 허용되지 않았다.
수현은 결정문을 읽고 세드나에게 물었다.
“드디어 이의 신청이 제대로 접수된 셈이네요.”
“그렇죠. 하지만 아직 어떤 기술로 돌아갈지는 미확정입니다.”
“알아요.”
그녀는 이제 그 답을 들을 때마다 예전처럼 주저앉지는 않았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 올 때도 누군가에게 물어야 했고, 돌아갈 때도 자신의 결정이 중심이어야 했다.
복도에서 마틸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존함의 회신 미작성 문서를 더 읽을 수 있는 기술이 준비됐다는 소식이었다. 다만 그 문서는 원문 질문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별도 사건이었다.
“읽어 보시겠습니까?” 마틸이 물었다.
수현은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
“제 사건과의 관련성이 확인되는 범위에서요. 타인의 이름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닙니다.”
마틸이 웃었다.
“이제 보존실 사람보다 더 보존실답게 말씀하시네요.”
수현은 지친 얼굴로 웃었다.
“그건 별로 기쁜 칭찬이 아닌데요.”
그래도 다음 문장을 읽을 준비는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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