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00화
PAYLUA ORIGINAL · 제100화

100화. 질문을 받는 사람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383자

오프라인 책장
백 번째로 기록을 읽는 날은 아니었다. 수현은 몇 번이나 같은 문서를 읽었는지 이제 세지 않았다. 다만 오늘 공동보존실로 향하면서는 처음 그곳을 찾았던 날보다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더는 나무 상자 하나가 기적을 선물해 주리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안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문서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준비가 돼 있었다. 모라는 방에 들어선 수현에게 새 장갑을 건넸다. 이 장갑은 마법을 부리는 장갑이 아니라 얇은 종이 섬유를 맨손 기름으로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도구였다. “괜히 영웅이 된 기분인데요.” “장갑이 영웅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모라가 대답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용사에게도 휴가 신청서가 필요하니까요.” 세드나가 웃었고, 메이는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 웃으며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수현에게는 큰 변화였다. *** 제0회신함의 두 번째 봉투는 부분적으로 복원돼 있었다. 할드는 오래된 잉크가 남은 곳만 촬영하고, 손상된 부분에는 무리하게 빛을 비추지 않았다. 수현에게 전달된 것은 제한된 내용의 판독본이었다. [회신 미작성 사유. 신청인의 본의와 현장 확인인의 의사 확인이 서로 다른 절차임. 한쪽의 민원을 다른 쪽의 이동 동의로 처리할 수 없음. 담당실 지정만으로 실제 현장 이송을 실행하지 말 것.] 수현은 문장을 읽다가 멈췄다. 너무 익숙한 말이었다. 자신이 수십 번 반복했던 논리가 오래전부터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 적힌 문서일 수는 없었다. 작성 연도가 훨씬 이전이었으니까. “이 문서는 그때도 실제로 적용됐나요?” 수현이 물었다. 모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보여 주는 후속 시행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당시 검토자가 남긴 회신 보류 사유입니다.” “그런데 왜 보존함에 따로 봉인했을까요?” “아마도 훗날 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경우 원문과 검토 이유를 확인할 수 있게 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건 추정이에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한 것은 있었다. 누군가 오래전에 똑같은 종류의 위험을 인식했고, 그 위험을 그냥 종결 처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 모라는 제0회신함의 판독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특별히 두 종류의 목록을 만들었다. 하나에는 실제로 읽힌 문자만 적고, 다른 하나에는 아직 해독할 수 없는 흔적의 위치만 그렸다. 수현은 그 두 목록을 보고 말했다. “읽힌 것과 읽히지 않은 것을 같이 보관한다니 좋네요.”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누군가 추측으로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요.” 보존실 직원들은 문서를 다루는 시간과 휴식을 번갈아 기록했다. 모라가 먼저 제안한 일이었다. 지나치게 집중하면 실수가 늘 수 있으니 두 시간마다 작업을 멈추고 서로의 기록을 대조하기로 했다. 수현은 처음 이 세계에 도착한 날 카이렌을 두 시간 쉬게 했던 일을 떠올렸다. 이제는 보존실의 기록관들까지 쉬는 시간을 적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두 시간이라는 숫자가 저를 계속 따라다니네요.” 세드나가 웃었다. “그 두 시간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겠죠.” “엄밀히는 그 전에 메이 씨 진정서가 먼저였지만요.” 메이가 손을 들었다. “제 진정서가 아니라 그걸 잘못 처리한 사람이 문제였다니까요.” 세 사람은 잠깐 웃었다. 수현은 그 말이 메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사실이 대견했다. 자신이 이 세계를 떠나도 누군가는 책임과 도움을 구분하는 말을 계속할 것이다. 모라는 마지막 보존 사진에 날짜와 서명을 남겼다. 수현은 사진을 확인하고 원본과 판독본의 차이를 설명하는 문서에도 서명했다. 그 작업이 귀환의 문을 열지는 못했지만, 다시는 기록이 조용히 사라지지 않도록 작은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었다. *** 판독본 끝에는 작게 '에린 소렐'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메이는 즉시 수현을 바라봤다. 그 이름은 여러 장부에서 보았던 이름이었다. “이번엔 같은 사람일까요?”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름만으로는 모르죠.” 모라는 직책란을 가리켰다. [회신 검토 기록자 / 구형 소환·회신 공동심사반.] 그 아래에는 다른 서류와 대조 가능한 필체 견본 번호가 있었다. 기록원이 보유한 옛 관리자 서식의 필체와 비교해 보니 형태가 일치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응급 보호 신고에 나왔던 '에린'과 동일인이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에린 소렐이라는 사람이 옛 공동심사반에서 회신 검토를 했다는 건 자료로 확인할 수 있군요.” 수현이 말했다. “서명 원본의 진위를 최종 검정하면 더 강해질 겁니다.” 모라가 답했다. 메이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왜 나중에 같은 문제가 생겼을까요?” 수현은 서고를 둘러보았다. 수십 년간 쌓인 서류와 그 사이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옳은 문장이 문서에 한 번 적힌다고 모두가 그걸 지키는 건 아니니까요.” *** 오후에는 이번 열람 성과를 기록원과 정정실에 전달하는 회의가 열렸다. 수현은 한 가지 요구를 분명히 했다. 오래된 회신 미작성 사유를 자신의 소환 사건에 그대로 가져다 붙이지 말 것. 대신 이 문서가 과거 어떤 위험을 지적했는지, 현행 소환 절차에서 같은 위험을 어떻게 막을지를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다. 심사관이 물었다. “신청인은 귀환 방법에 관한 정보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요청했습니다.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이 보존함이 바로 귀환 장치라고 말할 근거는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 있는 안전 검증 절차를 먼저 확인해야죠. 누가 사람의 이동을 승인할 권한이 있는지, 동의는 언제 어떻게 받는지, 실제로 돌아갈 기술이 있다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요.” 루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자료 중에는 '역방향 경로 안전성 검토'라는 기술 분류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인간 귀환에 적용된 사례를 보여 주지는 않았다. 장치의 전송 경로와 사람의 안전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기술 검토 자체는 할 수 있습니다.” 루세가 말했다. “다만 사람을 보내는 실험은 안전성과 자발적 동의가 확인되기 전까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수현은 그 원칙이 마음에 들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이 강제로 끌려오게 해서는 안 됐다. *** 수현은 카이렌의 보고서에 답장을 쓰기로 했다. 펜을 들었지만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잘하고 있다고만 쓰기에는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보고서에서 가장 좋아한 문장을 옮겨 적었다. [누군가 쉬는 동안 다른 사람이 대신 일해야 한다면, 그 사람의 쉴 시간도 함께 적을 것.] 그리고 아래에 썼다. '이 문장은 어떤 왕국의 법률보다 현실을 잘 바꾸는 말 같아요. 계속 지켜 주세요. 못 지키는 날이 생기면 그 이유도 기록하세요.' 메이는 카이렌에게 별도의 편지를 썼다. 고리의 예비 적립금 표시가 바뀐 소식과 치료 근무표가 이제 다른 치유사에게도 나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녀는 마지막에 '나도 쉬는 날엔 환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적었다. 수현은 그 문장을 보지 않았다. 메이가 스스로 봉투에 넣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을 아는 것이 가까운 사이의 증거는 아니었다. 메이가 무슨 말을 숨길 권리도 존중해야 했다. 밤이 깊어지자 숙소 앞에는 제7원정대에서 온 전달원이 도착했다. 그는 당장 서명을 받지 않고 아침까지 기다려도 되는 편지라고 설명했다. 수현은 웃음이 났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나요?” “카이렌 대장님이요. 잠든 사람을 깨울 만한 응급이 아니면 다음 근무시간에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수현은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든 즉시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전령 때문에 카이렌의 잠을 지켰다. 이제는 전령이 먼저 상대의 휴식을 물었다. 자신이 없어도 달라진 일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날 밤 오래된 휴대폰을 서랍에 넣고 잠이 들었다. 꿈에서 서울의 버스가 지나갔지만, 달려가 붙잡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찾을 수 있는 노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회의가 끝난 뒤 수현은 메이와 함께 제7원정대에서 온 마지막 보고서를 읽었다. 카이렌이 작성한 표에는 휴식과 출정, 부상자 대체, 보급 수령 확인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기록은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직원이 부족해 휴식 시간을 변경했고, 어떤 날에는 부상자가 스스로 무리해서 일을 하려다 동료에게 말렸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록에 남아 있었다. “카이렌이 진짜로 출근부를 쓰고 있네요.” 수현이 말했다. 메이가 웃었다. “용사가 전에는 마왕만 쫓았는데 이젠 출근 시간을 쫓아요.” “마왕보다 출근부가 무서울 수도 있죠.”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보고서 맨 아래에는 카이렌의 짧은 문장이 있었다. [누군가 쉬는 동안 다른 사람이 대신 일해야 한다면, 그 사람의 쉴 시간도 함께 적을 것.] 수현은 오래 바라보았다. 처음 그녀가 온 날 두 시간을 쉬게 하는 것조차 전쟁처럼 어려웠다. 이제 카이렌은 자신이 없을 때도 기록을 이어 가고 있었다. “수현 씨가 돌아가도 괜찮겠네요.” 메이가 말했다. “여러분이 여기서 살아갈 테니까요.” 수현은 그 말을 입 밖에 내고서야 마음 한쪽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떠난다면 모든 게 무너질 거라는 두려움은 상대를 믿지 못하는 마음과 닮아 있었다. *** 저녁에 그레아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전 통지를 받았다는 잘못된 기록이 '실제 수령 미확인'으로 정정됐고, 퇴직 정산에 관한 별도 심사도 접수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기뻐하면서도 자신이 젊은 날 잃었던 시간을 돌려받지는 못한다고 적었다. 수현은 그 말 앞에서 오래 멈췄다. 서류 한 장으로 지난 시간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거짓 기록에 맡겨 두지 않도록 할 수는 있었다. 메이도 손목 고리를 보여 주었다. 이제 그 고리에는 예비 적립비 개인 산정 제외라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다른 비용은 아직 재심사 중이었고 강제 징수 보류도 계속됐다. “제가 빚을 전부 없앤 건 아니에요.” 메이가 말했다. “알아요. 그래도 오늘은 고리가 메이 씨 말을 조금 들었네요.” “나중에는 고리를 풀 수 있겠죠?” “그 절차를 담당할 사람을 찾고, 남은 청구를 따져 봐야죠. 이제 메이 씨가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의 손에 완전히 맡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운 얼굴이었다. *** 수현은 여관 방에 돌아와 고향에서 가져온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는 오래전에 다 닳아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처음 이 세계에 도착한 날에는 그 검은 화면을 보며 절망했다. 지금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익숙한 물건 하나가 집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살던 세계가 있었다는 증거였다. 서랍에는 왕국의 서류가 잔뜩 쌓여 있었다. 메이의 비용 정산, 카이렌의 휴식 기록, 라비엔의 자율적 체류와 보수 정산, 그레아의 통지 정정, 자신의 비자발적 소환 이의 신청.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여야 할 필요는 없었다. 수현은 새 페이지를 폈다. [귀환 지원 요청: 유지. 사전 동의 없는 이동 사실: 행정상 자료 부재 인정. 실행 책임: 별도 심사. 구형 회신 보존함: 관련 위험의 과거 인지 자료 확인. 귀환 기술: 미확인.] 그 아래에 조용히 적었다.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누군가를 대신 희생시키면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말을 적으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 늦은 밤, 세드나가 여관을 찾아왔다. 급한 서류가 있었다. 왕립길드는 이수현 사건의 집행 절차를 재심사하기로 공식 결정했고, 옛 '역방향 경로 안전성 검토' 자료를 기록원에서 이관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방법을 찾은 건가요?” 수현이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자료의 존재를 확인하겠다는 단계예요. 하지만 소환 실행 경위와 귀환 안전 검토를 별개로 진행하겠다는 결정은 나왔습니다.” 수현은 미소 지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너무 오래 남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오늘은 두려움만으로 다음 문을 열지 않아도 됐다. 세드나가 마지막 종이를 펼쳤다. [신규 열람 대상: 왕도 남문 공동기술서고, 역방향 경로 안전 검토 제1권.] 수현은 종이를 보다가 웃었다. “또 서고군요.” “이번엔 위험성 검토 자료입니다.” “네. 그럼 처음부터 안전 조건을 제대로 확인하죠.” 수현은 펜을 들어 신청서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누가 대신 적어 준 이름이 아니었다. 누가 몰래 완료 도장을 찍은 이름도 아니었다. 자신이 읽고 이해하고 선택해 쓴 이름이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질문에는 제가 직접 답하겠습니다.” 멀리서 야간 종이 울렸다. 종소리는 이제 출정 명령처럼 들리지 않았다. 낯선 세계에서 또 하루가 끝났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수현은 다음 날에도 자신의 의사로 문을 열 생각이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00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0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