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보존실은 마침내 본문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완전히 여는 대신 봉인 접착 부분의 상태를 먼저 읽고, 손상되지 않은 측면 접힘을 따라 펼치는 방식이었다. 할드는 작업대 앞에서 열두 가지 도구를 늘어놓았다. 수현에게는 작은 칼과 가느다란 집게만 보였다.
“그게 전부 필요한가요?”
“아니요. 필요하지 않은 걸 골라 내려고 전부 꺼낸 겁니다.”
“괜히 든든하네요.”
할드는 웃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래된 종이의 결에 고정돼 있었다. 세드나는 열람 시간과 참여자의 이름을 정확히 적었다. 메이는 별도 허가를 받고 방 한편에 앉았다. 이 문서가 자신의 민원에 연결된다는 것만으로 모든 개인정보를 읽을 권리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 원칙은 당사자에게도 불편할 수 있었지만, 수현은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보존용 유리 밑에서 봉투가 천천히 펼쳐졌다. 할드는 첫 번째 종이를 꺼내지 않고 윗면만 촬영했다.
[구형 질문 접수 원문 / 현장 확인인 분류 / 최초 회신 미작성]
그 아래 문장은 종이의 한 부분을 가린 후에야 수현에게 보여졌다.
[현장 확인인이 자기 의사로 현장을 떠날 수 있습니까. 신청자의 요청만으로 그를 다른 장소에 묶어 둘 수 있습니까.]
수현은 눈을 깜박였다. 자신이 찾던 귀환 방법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낯선 문장이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린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누구 질문인가요?”
“현재 공개 가능한 범위에선 작성자의 이름이 없습니다.” 모라가 답했다. “당시 긴급 접수자가 남긴 질의로 보이지만 본인 확인표가 같은 봉투에 있는지는 아직 모르죠.”
“날짜는요?”
“기록된 연도는 지금보다 오래전입니다. 수현 씨가 이곳에 오기 전입니다.”
메이가 낮게 말했다.
“우리 이전에도 누군가 이런 일을 겪었다는 건가요?”
수현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같은 유형의 문제에 대한 질문은 실제 사건 없이도 작성될 수 있었다. 고의로 사람을 옮겼다는 뜻도 아니었다.
“적어도 누군가는 저런 가능성을 염려했네요.”
***
두 번째 문장은 일부가 번져 있었다. 서식에는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못한 배정은'이라는 구절이 읽혔다. 이후에 이어지는 글자는 잉크가 젖은 듯 뭉개져 있었다. 할드는 종이를 더 펼치기 전에 멈췄다.
“여기서 억지로 펴면 섬유가 갈라집니다. 오늘은 더 읽으면 안 됩니다.”
“앞 문장만이라도 복원할 수는 없나요?” 메이가 물었다.
“촬영본에 다른 빛을 비추어 비교할 수 있습니다. 원본을 잡아당기는 건 금지하죠.”
루세는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다. 장치 기술자는 유리 밖에서 촬영 결과만 확인했다. 누군가 외부 계열 문자와 연결되는 마법이라며 마력을 흘려보내자는 의견을 냈지만 할드가 즉시 거절했다. 수현도 같은 생각이었다. 종이를 태우고서 얻은 확신은 어떤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라는 기록 작성자의 권리 범위를 살폈다. 오래된 질문에 다른 사람의 환자 정보나 당시 상황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주의문이 있었다. 일부가 읽히자 허가받지 않은 직원 몇 명은 방을 나갔다. 메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열람 범위를 다시 확인하고 자리에 남았다.
“이런 절차가 전에는 답답했어요.” 메이가 말했다.
“지금은요?”
“제 치료 기록을 남들이 멋대로 읽으면 싫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돼요.”
수현은 웃었다. 구체적인 누군가의 입장이 되기 전에는 권리라는 단어가 그저 멋진 구호처럼 들리곤 했다.
***
질문의 작성 연도를 확인하던 모라는 낡은 연호를 현재 연도로 바꾸는 표를 가져왔다. 같은 연호가 지방마다 다른 기준으로 시작되던 시기라 날짜에 며칠의 오차가 있을 수 있었다. 수현은 그 표에 따라 두 가지 시간대를 적었다. 한쪽은 공동심사반 개편 전, 다른 한쪽은 개편 직후였다.
“부서가 바뀌기 전에 접수됐는지 후에 접수됐는지도 모르는군요.”
“그래서 문서 본문 외에 접수 담당자의 직책을 봐야 합니다.” 모라가 답했다.
서류의 첫머리에는 행정 약호가 남아 있었다. 이베른이 대조한 결과 그 약호는 개편 전 구형 접수실에서 쓰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구형 양식을 재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어서 접수 부서 자체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
수현은 옛 질문이 자신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이 문서가 오래된 위험을 지적했다는 점은 자신의 사건과 관계가 있었다.
“누가 먼저 이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네요.” 그녀가 말했다.
메이는 판독본의 가려진 부분을 가리켰다. “이름은 왜 못 보는 거죠? 나쁜 일을 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좋은 일을 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잘못이나 공로를 확인하기 전에 이름부터 꺼내면 둘 다 왜곡할 수 있죠.”
메이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한동안 잘못된 치료비 기록 때문에 부주의한 치유사처럼 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무도 실제 자료를 보지 않고 이름만 말했다.
“그렇네요. 제가 그 기분을 알고 있었는데.”
“이해해요. 지금은 빨리 알고 싶으니까요.”
수현은 그 마음을 탓하지 않았다. 알아내고 싶은 마음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다. 다만 그 마음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 됐다.
***
회의실에서는 첫 번째 질문을 어떻게 분류할지 다투었다. 보존실 직원 한 명이 말했다.
“이건 귀환에 관한 질의로 분류해야 합니다. 그러면 조사 우선순위가 높아질 겁니다.”
수현은 손을 들었다.
“그렇게 부르면 질문 범위를 좁히는 것 아닐까요? '현장을 떠날 수 있는가'는 귀환일 수도 있고, 계약 종료나 이탈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죠.”
“그럼 단순 인사 상담으로 봐야 하나요?”
“단순하다고 말한 건 아니에요. 정확하게 읽자는 거죠.”
세드나는 두 문장을 나란히 적었다. 하나는 원문 그대로, 다른 하나는 '배정 현장 이탈 의사와 수속에 관한 질의'라는 잠정 분류였다.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후자가 원문의 의미를 크게 바꾸지 않는다고 동의했다.
수현은 회의 종료 뒤 세드나에게 말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게 마왕인 줄 알았는데요.”
“그보다 무서운 게 있나요?”
“요약 잘못된 서류요. 자꾸 사람을 딴 사람으로 만들잖아요.”
“그건 부정하기 어렵네요.”
복도에 있던 메이가 박장대소했다. 웃음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수현은 질문 한 줄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열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느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증거가 아닌 결론처럼 적지는 않았다.
***
오후에는 두 번째 봉투를 검사했다. 겉면에는 '회신 미작성 사유'라는 문구가 있었다. 안쪽 내용은 심사관만 먼저 보았다. 그는 오래 읽다가 표정을 굳혔다.
“개인명이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까?” 모라가 물었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현재 살아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무분별한 공개는 피해야 합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허용된 것은 단 한 줄이었다.
[실제 현장 확인인의 의사 확인 경로가 특정되지 않아 회신을 발급하지 않음. 담당자 확인 절차 요청.]
수현은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질문에 답하지 않았던 이유가, 질문을 받을 사람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군요.”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이후 어떤 절차가 진행됐는지는 이 문서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메이가 조용히 손을 들어 질문했다.
“확인인이 없는 상태에서 왜 제 원래 진정서는 처리 완료됐다고 표시된 걸까요?”
모라가 대답했다.
“두 기록이 같은 처리 체계에 속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 문서는 훨씬 오래된 자료입니다.”
메이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그럼 같은 잘못이 되풀이됐을 가능성을 조사해 주세요. 제 신청이 이런 일을 허락한 게 아니라는 건 이미 확인됐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했다. 수현은 메이를 대신해 말을 거들지 않았다. 메이는 이미 충분히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었다.
***
판독실에서 쉬는 동안 메이가 오래된 질문을 자기 말로 다시 설명했다.
“만약 누군가 저 대신 치료해 주러 온다면, 제가 원한다고 그 사람을 붙잡아도 되나요? 이렇게 물은 거죠?”
수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지만, 실제 원문은 '자기 의사로 떠날 수 있는가'에 더 무게가 있어요.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고 싶은 사람의 의사를 묻는 거죠.”
메이는 의자에 앉은 채 한동안 말을 아꼈다. 그녀가 처음 민원을 보냈을 땐 카이렌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그 요청이 누군가를 다른 세계에서 불러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겁이 났다. 이제 그 사실이 자신의 잘못인지, 누군가 서류를 잘못 처리한 것인지 조금씩 구분하고 있었다.
“그럼 수현 씨가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제가 인정해 주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그렇죠. 하지만 최종 결정은 저한테 있어야겠죠.”
메이가 웃었다. “당연하죠. 제가 수현 씨 귀환 신청서를 대신 쓰지는 않을게요.”
그때 모라가 방으로 들어왔다. 판독된 질문 일부를 보존하고, 나머지는 손상 때문에 재검토하기로 했다는 설명이었다. 수현은 항목마다 현재 읽을 수 있는 글자와 추정 글자를 구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모라는 잠깐 펜을 멈추더니 질문했다. “그렇게 하면 보고서가 복잡해집니다. 괜찮습니까?”
“복잡한 사실을 간단히 줄이다가 사람 하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기록을 보고 있잖아요.”
모라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 보고서에는 처음으로 판독 확정, 부분 판독, 추정 구간이 서로 다른 표시로 남았다. 수현은 그 구분이 오래전 질문을 조금 더 정직하게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
그날 저녁, 수현은 책상에 놓인 두 문장을 번갈아 보았다. '자기 의사로 현장을 떠날 수 있는가'와 '의사 확인 경로가 특정되지 않음'. 낯선 장소에 끌려온 사람이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질문이었다. 누가 데려왔는가보다 그 사람은 떠날 수 있는가. 그리고 떠나고 싶다는 말을 누가 듣는가.
“수현 씨.” 메이가 방문을 두드렸다. “카이렌에게 편지가 왔어요.”
수현은 편지를 받지 않고 물었다.
“제 거예요?”
“아뇨. 카이렌이 저에게 보낸 건데, 수현 씨도 걱정할 것 같다고 전해 달래요. 내용은 제가 설명해도 된다고 했어요.”
“그럼 말씀해 주세요.”
카이렌은 일주일간 야간 당직을 둘씩 돌아 맡는 규칙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다고 적었다. 감독관 브레그도 긴급 출동의 기준을 다시 확인했고, 보급창고에는 야간 출고대장이 생겼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전처럼 한 사람의 충성심으로 모든 공백을 메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좋네요.” 수현이 말했다.
“그런데 카이렌은 손등 흉터가 자꾸 뜨겁다고도 했어요. 의료기록에 관한 답은 아직 없고요.”
수현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처음 만났을 때 카이렌은 심한 열에 시달렸고, 지금도 과거 사흘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조사 때문에 그를 다시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본인 진료가 먼저예요. 기록을 찾아 달라는 요청은 여전히 그의 동의 범위 안에서만 진행하자고 전해 주세요.”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모라는 수현에게 열람 결과 요약서를 건넸다. 거기에는 질문의 정확한 부분, 회신을 미작성한 사유, 작성 연도의 범위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에 기이한 문구 하나가 있었다.
[후속 확인 요청의 발송 여부: 미확인. 당시 임시 처리인 서명 대조 필요.]
“임시 처리인이요?” 수현이 물었다.
“질문을 받은 곳에서 누가 그 뒤의 연락을 맡았는지 확인할 열쇠입니다.” 모라가 말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적힌 장부가 따로 남아 있어요.”
“어디에요?”
“옛 소환·회신 공동심사반의 당직 장부요. 지금은 다른 부서에서 관리합니다.”
수현은 순간 웃음이 나왔다. 너무 많이 다녀서 이제는 서고가 새로 등장해도 놀랍지 않았다.
“공동심사반이라. 세상 모든 문제의 끝에 서고 하나씩 붙는 건가요?”
“끝인지 시작인지는 확인해 봐야겠죠.”
모라의 대답은 듣기 싫을 만큼 정확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은 한 가지를 얻었다. 문장이 실제로 있었다. 질문을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현장 확인인의 의사를 물었다. 그 질문에 답이 없는 이유까지 별도의 봉투에 남겨 두었다. 수현은 여관으로 돌아와 메모했다.
[구형 질문 실재 확인. 다른 시기 문서. 현재 소환과의 직접 연결 미확인. 회신 보류 사유는 의사 확인 경로 부재.]
밑에 한 문장을 더 적었다.
[나 역시 떠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이번에는 내게 직접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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