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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90화
PAYLUA ORIGINAL · 제90화

90화. 아직 답하지 않은 사람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868자

오프라인 책장
루세가 가져온 표식 사전은 오래된 기술책이라기보다 지루한 규정집에 가까웠다. ‘응답 대기’, ‘자체 시험’, ‘보존 오류’, ‘재전송 거부’. 페이지마다 짧은 도형이 그려져 있었고 바로 옆에 글씨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수현은 마차에 앉아 첫 장부터 넘겼다. “이건 시험판에서 찍혔던 모양하고 같네요.” “그건 장치가 처음 켜졌을 때 자기 점검을 했다는 표시야.” 루세가 답했다. 메이가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럼 이건요? 수문 탑에서 하나 더 찍힌 표식하고 비슷하지 않아요?” 루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데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 우리가 발견한 판은 오른쪽 홈이 하나 더 있어.” 수현은 확대경을 들었다. 작은 홈 하나는 그림의 의미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었다. 서울에서 계약서의 ‘할 수 있다’와 ‘하여야 한다’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큰 문제였다. “홈 하나가 더 있으면 무슨 뜻이에요?” “이 버전의 표식 사전에는 없어. 나중에 수정됐거나, 다른 제작자가 같은 틀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지.” “그럼 우리가 알고 싶은 건 하나네요. 그 작은 홈이 단순한 흠집인지 원래 설계된 표식인지.” 루세가 웃었다. “처음엔 기계라고 하면 다 마법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이제 그런 질문을 하는군.” “저도 놀라워요. 월급쟁이들 이야기만 하다가 어느새 홈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어요.” 메이가 중얼거렸다. “둘 다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점은 같네요.” 세 사람은 웃었지만 수현의 시선은 계속 작은 점에 머물렀다. 이 점 하나가 독립된 입력의 표시라면, 오래전 누군가가 기록된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거나 아예 대답할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 동부 감독청 기술 심사실에서는 세 개의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관측소의 자동 경고문 원장, 강변 수문 탑의 수신판, 기상 분관의 시간 보정 기록. 수현이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봤던 민원 봉투까지는 아직 여기에 없었다. 그것은 별도의 사건 파일로 관리되고 있었다. 기술 심사관은 먼저 표식 사전의 사용 연도를 확인했다. 오래된 판과 개정판은 홈 하나가 다를 수 있었다. 이전 기술자들이 그렇게 정한 이유는 한 번 찍힌 경고를 실제 답장과 혼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오른쪽 홈은 개정판 표식이라는 뜻입니까?” 세드나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판에 있는 홈이 처음부터 찍혔는지는 표면 상태로 확인해야 합니다.” 루세가 보존 사진을 꺼냈다. “수문 탑의 최초 등록 사진에도 같은 홈이 있습니다. 적어도 보관 중 누가 새긴 것은 아니에요.” “등록 이전에 누가 고쳤을 가능성은요?” 수현이 물었다. “그 가능성도 남습니다.” 심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개정판이 도입된 시기와 수신판 등록 시기는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 시기 기술자가 만든 표식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수현은 메모했다. [추가 홈은 등록 시점부터 존재. 개정판과 형태 유사. 인위적 사후 조작 근거 없음. 최초 생성 경위는 미확정.] 메이는 그 문장을 읽고 한숨을 쉬었다. “확정이라는 말은 언제 나오나요?” “오늘도 꽤 여러 번 나왔잖아요.” 수현이 말했다. “보존 당시 홈이 있었다는 것처럼요.” “제가 듣고 싶은 확정은 그게 아닌데요.” 수현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듣고 싶은 말도 그게 아니었다. *** 다음 검토는 시간 기록이었다. 분관의 물시계와 관측소의 진동판 사이에 교정이 누락된 날이 있었다. 그 탓에 두 수신 기록의 순서를 잘못 연결하면 하나의 자동 경고가 마치 누군가의 대답처럼 보일 수 있었다. 심사관은 두 가지 환산표를 만들었다. 가장 최근 정상 교정값을 적용한 표, 그리고 당시 관측관이 수기로 남긴 수정값을 적용한 표였다. “첫 번째 표로 보면 수문 탑의 기록이 관측소 신호보다 먼저 생깁니다.” 루세가 설명했다. “그럴 수는 있죠. 다른 곳에서 온 신호라면요.” 메이가 말했다. “하지만 둘이 같은 장치를 기록했다면 먼저 생길 수 없겠죠.” 수현이 덧붙였다. “그렇지. 두 번째 표에서는 순서가 반대로 나와. 관측소 신호가 먼저고 수문 탑 판이 나중이야.” 수현은 두 표를 번갈아 보았다. 어떤 시각 기준을 쓰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졌다. 서로 다른 시설에서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은 같아도,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시간을 맞추는 다른 기준은 없나요?” “있을지도 몰라. 그날 강의 수문을 연 시각이 남아 있으면 비교할 수 있지.” 세드나가 자료 목록을 찾아보았다. 수문 탑에는 홍수 대비 개폐 장부가 있었고, 멀리 하류 마을에는 그 명령이 도착한 시간을 적은 장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확인하러 또 가야 하는군요.” 메이가 말했다. “오늘 당장은 못 가겠죠.” 수현이 답했다. 심사관은 수현의 말에 동의했다. “기술 심사 결과는 여기까지 내겠습니다. 독립 보존 경로는 확인했지만, 두 기록의 시간 순서와 원신호가 같은지를 최종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오랫동안 수현이 들었던 어떤 거짓 확답보다 믿음직했다. ***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감독청 직원이 세드나를 따로 불렀다. 수현과 메이는 복도에서 기다렸다. 창밖에는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보였다. 분관에서 보았던 비상 경보가 또 떠올랐다. 하늘이 맑다고 기계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기계가 울렸다고 폭풍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세드나가 돌아왔을 때 얼굴이 조금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감독청에서 옛 관측소 자료의 보존 비용을 줄이겠다고 합니다. 위험한 장치는 철거하고 보존품도 한곳으로 옮길 계획이에요.” 메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우리가 찾는 원본도 없어지나요?”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계 과정에서 자료의 위치가 바뀔 수 있습니다.” 수현은 즉시 화를 내지 않았다. 낡은 장비가 위험하다면 철거가 필요할 수도 있었다. 보존 비용을 영원히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심사 자료의 원본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 계획이 필요했다. “관련 사건이 계류 중이라는 보존 요청을 넣을 수 있겠네요.” 세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존 대상으로 지정된 자료는 이전하더라도 인계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이번에는 원본의 위치와 상태를 사진으로 함께 남기자는 의견을 제출하겠습니다.” 메이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저 때문에 수현 씨가 여기 오게 된 민원도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요. 그 기록도 같이 지킬 수 있어요?” “그 문서는 별도 보존 사건입니다. 메이 씨가 당사자로 신청할 수 있어요.” 메이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번에는 메이 씨가 직접 신청해 주세요. 저는 필요한 자료 정리를 도울게요.” *** 오후에는 보존 신청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처음에는 여러 부서 직원이 누가 원본을 관리해야 하는지 다투었다. 감독청은 기술 장치의 위험을 말했고, 기록원은 인계 절차를 강조했다. 수문 조합은 자신들이 오래 보관한 기록을 이유 없이 빼앗기지 않겠다고 했다. 수현은 참석자로 초청됐지만 발언을 서두르지 않았다. 한참 논쟁이 진행된 뒤 세드나가 그녀에게 물었다. “외부 신청인으로서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수현은 준비해 온 작은 표를 펼쳤다. “제가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세 가지만 명확했으면 합니다. 첫째, 어떤 물건을 옮기는지 목록을 만들 것. 둘째, 옮기기 전과 후 상태를 비교할 것. 셋째, 현재 심사 중인 사건에서 필요한 부분은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존할 것.” 누군가 물었다. “그럼 장치가 위험해도 그대로 두라는 겁니까?” “아뇨. 위험하면 멈추고 안전하게 처리해야죠. 다만 장치를 멈추는 것과 기록을 없애는 건 다른 일이잖아요.” 그 말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로디아는 수문 탑 원본을 계속 관리하겠다고 했고, 네리스는 기상 분관 자료의 보존 사진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루세는 기술적으로 분리 가능한 장치와 분리하면 안 되는 봉인 부분을 구분해 목록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결론은 급하지 않았다. 담당자들이 서로 할 일을 적은 뒤 다음 회의에서 인계 방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모든 자료가 안전해질까요?” 메이가 물었다. “보장할 수는 없죠.” 수현이 답했다. “하지만 위험해질 때 누구에게 먼저 알려야 할지는 알게 됐어요.” 그것만으로도 어제보다 나았다. *** 해 질 무렵 루세가 급히 수현을 찾았다. 그는 오래된 기술 부록과 새로 확인한 검산표를 들고 있었다. “오른쪽 홈의 뜻을 찾았어.” 수현의 가슴이 뛰었다. “뭐였어요?” “개정판에서는 ‘회신을 기다리는 질문’ 표시가 맞아. 그런데 정확히는 사람의 답장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수신 확인이 끝나지 않은 입력이 있다는 뜻이야. 자동 경고문과는 다른 원천 표식을 보존할 때 붙였다고 적혀 있어.” “그럼 적어도 경고문만 있던 건 아니라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졌어. 다만 그 입력이 사람이 보낸 질문인지, 다른 장치가 만든 시험 신호인지는 아직 몰라.” 메이는 수현을 보았다. “그동안 답장이 왔는지만 찾았는데, 먼저 질문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하는 거네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뭘 물었는지, 그 질문을 받을 사람이 있었는지요.” 루세는 부록 뒤의 표를 가리켰다. 보존 표식에는 실제 입력의 원문을 가리키는 작은 칸이 있었다. 그 칸은 판 위에 직접 글을 적는 방식이 아니라 별도의 자료 번호를 참조하게 되어 있었다. “원문 번호가 있어?” 수현이 물었다. “판에 남은 흔적만으로는 완전하게 복원할 수 없어. 하지만 이 표식과 다른 기록을 합치면 원문 보관처가 어디였는지 좁힐 수 있어.” 수현은 메모를 꺼냈다. “어디죠?” 루세가 말했다. “동부 관측소의 다른 시설이 아니야. 당시 수문 탑 아래 있던 ‘제0회신 보존함’이야.” 메이가 놀라 물었다. “0번도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1번부터 찾으니까 오래 잊혔겠지.” 루세가 답했다. *** 수현은 제0회신 보존함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름이 거창하다고 대단한 비밀이 들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번호가 0이라고 해서 사건의 시작일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까지 찾은 두 개의 독립 기록이 같은 보존 구조를 가리킨다는 점은 새로웠다. “그 함은 지금 어디 있나요?” “수문 탑이 폐쇄될 때 분리돼서 옮겨졌다고 해. 어느 서고로 갔는지는 별도 이관 대장을 확인해야 하지.” 수현은 웃음이 나왔다. 또 다른 서고, 또 다른 목록이었다. “이제 놀랍지도 않네요.” 메이가 팔짱을 꼈다. “언젠가 서고를 다 돌아다닌 뒤에야 집에 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왕국 관광은 제대로 하겠네요.” 수현의 농담에 메이가 웃었다. 그러나 루세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번에는 한 가지가 달라. 우리가 단순히 새로운 서고를 찾는 게 아니야. 어떤 표식을 원문과 연결할지 정하는 규칙을 찾았어. 앞으로는 어떤 기록이 그 원문인지 확인할 수 있어.” 수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문장을 읽기 전에 이관 경로부터 확인해야겠네요.” “맞아.” 그날 밤 수현은 제0회신 보존함의 열람 신청서를 작성했다. 가장 중요한 칸은 목적이었다. [옛 외부 계열 기록 중 자동 경고문과 분리 보존된 원문 입력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 사람 이동 시험이나 개인 주소 전송을 요청하지 않음.] 문장을 적는 동안 그녀는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살아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모르는 장치에 손을 뻗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기다릴 수 있었다. 적어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수현은 서류를 덮고 문을 열었다. 세드나가 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왕도 기록원에서 급한 회신입니다. 오늘 제0회신 보존함에 관한 문의가 접수돼서 보관 목록을 미리 확인했다고 합니다.” “벌써요?” “기존 사건과 연결된 보존 신청으로 분류돼 빠르게 조회됐답니다.” 수현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안에는 오래된 이관 목록의 사본이 있었다. 줄마다 수많은 장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제0회신 보존함’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다음 줄을 읽는 순간 수현의 손이 멈췄다. [보존 상태: 외부 입력 원문 1건, 회신 미작성 1건.] 메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뜻이에요?” “적어도 기록원 목록에는 원문 입력 하나가 따로 보존돼 있었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실제로 지금도 있는지, 누가 작성했는지는 아직 몰라요.” 수현은 바로 아래를 읽었다. [수신 대상 분류: 미확인 현장 확인인.] 그녀는 숨을 멈췄다. 자신에게 붙었던 직책과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을 뜻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원본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문서였다. 마지막 줄에는 처음 보는 부서명이 있었다. [이관 책임: 왕도 소환·회신 공동보존실.] 수현은 천천히 봉투를 덮었다. “이제는 실제 문장을 찾으러 갈 수 있겠네요.” 세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만 이번에는 기록을 열람할 권리뿐 아니라, 그 문장에 이름이 적힌 사람의 권리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수현은 미소 지었다. 그건 자신이 지금까지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겨 온 일이었다. “그렇게 하죠.” 창밖에서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출정을 알리는 종이 아니었다. 여관 주인이 저녁 식사를 알리는 종이었다. 수현은 서류를 내려놓고 메이와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직 아무도 누구에게 무슨 질문이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오래전에 누군가가 질문을 남겼고, 그 질문이 단순한 경고문과는 다른 형태로 보존됐을 가능성이 이제 분명해졌다. 수현은 밥을 먹기 전에 작은 수첩에 한 문장만 적었다. [내일 확인할 질문: 제0회신 보존함 원본의 권리자와 열람 가능 범위.] 이수현은 펜을 닫았다. 답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질문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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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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