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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89화
PAYLUA ORIGINAL · 제89화

89화. 아무도 읽지 않은 질문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253자

오프라인 책장
독립 수신점의 위치는 지도에서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동부의 작은 강을 따라가다 보면 폐쇄된 수문 탑이 하나 있었다. 옛 문서에는 ‘제4보조 수신소’라고 적혀 있었지만, 주민들은 그냥 돌탑이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길이 바뀌고 다리가 무너져 마차가 바로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저기까지 가야 한다고?” 데런이 지도를 보며 물었다. 루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등록망 안에 있는 급수탑과는 달라. 저 수신소는 독자적인 시각 장치와 기록판을 갖고 있었어. 보존 상태만 괜찮으면 과거의 외부 입력 여부를 더 정확히 판별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왜 아무도 지금까지 가 보지 않았을까요?” 메이가 물었다. “행정 구역이 달라서.” 세드나가 말했다. “관측소는 감독청, 수문 탑은 강변 수리조합 소유입니다. 두 기관이 서로 상대 시설을 관리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수현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한국에서도 어떤 일이 여러 부서 사이에 놓이면 아무도 자신이 맡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여기에서는 그 결과가 수십 년 동안 잊힌 수신탑이었다. “우선 소유자와 안전 상태부터 확인합시다. 동력을 넣을 수 있든 없든 지금 당장 장치를 켜지는 않아요.” 루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목적은 원본 보존 위치와 측정 방식 확인이야. 동력 실험은 나중에 하더라도 별도 허가가 필요해.” 데런이 마차 바퀴를 살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길 끝까지만 데려다줄게. 이후는 도보로 가야 해. 비가 오면 바로 돌아온다.” “좋습니다.” 수현이 답했다. 그들은 여행을 시작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아졌고 강물은 더욱 빠르게 흘렀다. *** 수문 탑의 관리인은 마흔쯤 되어 보이는 여성, 로디아였다. 그녀는 다리 입구에서 손을 흔들어 일행을 멈춰 세웠다. “어디까지 가시려고요?” “제4보조 수신소 기록을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허가서는 여기 있습니다.” 세드나가 답했다. 로디아는 서류를 꼼꼼히 읽었다. “열람 허가는 맞네요. 하지만 오늘은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 돼요. 어제부터 수문 아래 돌들이 느슨해졌거든요.” 수현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전한 구역까지만 가겠습니다. 붕괴 위험이 있다면 현장 점검부터 해야겠네요.” “당연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조사자는 장치가 중요하다면서 들어가려고 하더군요.” “우린 살아서 돌아가야 다음 조사도 하니까요.” 로디아는 웃었다. 잠시 뒤 기술자들이 외부 벽을 살폈다. 일부 균열은 오래된 것이었지만 수문 쪽 계단은 실제로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데런은 로프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위험한 곳에 사람이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근데 이렇게 멀리 왔는데 아무것도 못 보면 어떡하죠?” 메이가 물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간다는 게 이미 성과예요.” 데런이 답했다.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예전에는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제 데런도 안전을 업무의 일부로 생각했다. 로디아는 수신소 옆에 있는 작은 관리실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에는 탑과 별도로 보관된 교대 장부가 있었다.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니었지만 정식 허가 범위 안에 있었다. *** 교대 장부에는 수신소의 담당자가 남긴 점검 기록이 있었다. 모든 날에 자료가 적혀 있지는 않았다. 비가 많이 온 날에는 문장 대신 작은 경고 표시만 있었다. 수현은 그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현장 안전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루세는 기술 기록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여기 보면 관측소 주 장치가 만든 시험 표식을 이곳에 보냈을 때, 수문 탑은 독자적인 원반으로 시간과 신호를 기록하게 되어 있어.” “독자적인 원반이라면 같은 기계의 복사본이 아닌 건가요?” 수현이 물었다. “그렇지. 단, 원반을 나중에 옮겨 적었다면 그 과정에서 오류가 섞였을 수 있지.” 메이가 장부 옆을 살폈다. “여기도 에린이라는 이름이 있나요?”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특정 이름부터 찾지 말아요. 그 이름이 없더라도 중요한 자료일 수 있잖아요.” 로디아가 오래된 수신판을 보관한 위치를 설명했다. 장치는 이미 동력이 끊겼지만 기록판 원본은 건물 옆 안전 창고로 이관됐다고 했다. 이관 경로는 수문 조합의 장부에 남아 있었다. “그걸 보면 외부 신호가 진짜였는지 알 수 있나요?” 메이가 물었다. “어떤 기록이 남았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루세가 답했다. “독립된 시점에 같은 표식이 들어왔다면 내부 반사라는 설명이 조금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공통된 전송원이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지.” 수현은 그 말을 정리했다. 독립 기록이 있다고 해서 다른 세계의 사람이 있다는 뜻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이상 신호를 자동 오류라고 치워 버릴 이유도 없었다. *** 안전 창고는 마른 땅에 있었다. 로디아가 열쇠를 가져오는 동안 데런이 문 주변을 확인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 문짝이 갑자기 닫힐 위험이 있었다. 그는 작은 나무토막으로 문을 고정했다. 상자 안에는 예전 수신판 여러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먼지가 앉았지만 봉인은 대부분 온전했다. 로디아가 하나씩 번호를 불렀다. 루세는 아까 조사했던 금속판의 고유 홈과 수신소 판의 기록표를 대조했다. “여기 세 자리 값은 또 같아요.” 메이가 말했다. “그럴 수 있어요. 검산값은 겹칠 수 있으니까요.” 수현이 답했다. 루세는 가운데 판 하나를 보고 손을 멈췄다. “이건 홈 배열의 뒷부분이 있어. 우리가 감독청에서 확인한 것과 짝을 이룰 가능성이 있겠는데.” “정말요?” “가능성은 있어. 전체 서명판의 생성 시기를 확인해야 하지.” 그는 기대에 들뜬 목소리 대신 일정한 속도로 설명했다. 수현은 기술자들이 의심을 표할 때마다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그 의심이 있어야 언젠가 믿을 만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로디아가 보존 대장을 펼쳤다. “특이하게도 이 판은 이틀 뒤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네요. 다른 물건보다 늦었습니다.” “원래 수신이 이틀 늦었단 뜻인가요?” 메이가 물었다. “아뇨.” 수현이 대답했다. “이관이 이틀 늦었을 수도 있죠.” 로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물 도착 시각과 신호 수신 시각은 다른 칸에 적었어요.” 수현은 그 말에 안도했다. 적어도 이 서고에서는 두 시간을 혼동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 오후 늦게 바람이 거세졌다. 창고 밖에서 물소리가 커졌고 수문 관리인들은 댐 아래쪽을 점검하러 나갔다. 일행은 작업을 중단했다. 안전 점검 중에 사람을 수신판에 매달리게 할 이유는 없었다. 데런은 마차의 지붕을 단단히 묶고 돌아왔다. “비가 올 것 같아. 해 지기 전에 출발해야 해.”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수현이 말했다. 루세는 아쉽다는 듯 판을 바라봤다. “고유 홈을 더 대조하고 싶었는데.” “보관된 물건이잖아요. 도망가지 않아요.” “물은 도망갈 수 있어.” 로디아가 말했다. “여기서 더 기다렸다간 강이 올라와 다리가 막힐 수도 있으니까요.” 수현은 곧바로 일어났다. 철수하기 전 그들은 열린 상자의 원래 위치와 봉인 상태를 확인했다. 기록판은 허가된 사본으로만 가져갔고 원본은 다시 안전 창고에 넣었다. 로디아는 바깥에서 젖은 외투를 털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늘 오신 분들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네요.” “조사할 수 있는 범위만 건드렸죠.” 수현이 답했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다음번엔 또 와도 되겠어요.” 루세가 웃었다. 그들은 비가 내리기 전 강가를 떠났다. *** 여관에 도착했을 때 루세는 안전 창고의 사진과 원장 사본을 바닥에 펼쳤다. 수현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그가 차례로 기록을 대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것 봐.” 루세가 한쪽을 가리켰다. “우리가 관측소에서 봤던 세 자리 검산값과 이 판의 검산값이 같아. 여기까진 흔한 일이야. 그런데 남은 홈의 위치까지 같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같은 사건이 기록됐다는 뜻인가요?” “아직. 서로 같은 고유 서명판에서 나온 복제 기록일 수도 있잖아. 독립 수신이라는 사실은 별도로 증명해야 해.”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세는 두 사본을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관측소 수신 원장, 다른 하나는 수문 탑의 독립 기록판이었다. 수문 탑 쪽에는 관측소 판에 없는 짧은 표식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이 표식은 뭐예요?” 메이가 물었다. “수신기 자체의 오류 표시일 수도 있고, 원래 신호 일부가 더 남은 것일 수도 있어. 이 장비의 표식 사전을 찾아야겠어.” 수현은 흥분을 참으려 했다. 다른 장부에 새로운 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했다. 그러나 새 표식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메이가 수현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래도 이번엔 우리 장치 밖에서 따로 기록된 판이잖아요.” “맞아요. 독립 보존 경로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에요.” 수현은 서류에 빨간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표시했다. 자신이 발견한 것을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날 밤 수현은 수문 탑 기록의 시간 표시를 다시 확인했다. 관측소의 진동 횟수와 수문 탑의 물시계 기록은 달랐지만, 두 자료 모두 같은 폭풍 경보 기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같은 순간이었는지 판별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한참 계산하다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머리가 아파요.” 메이가 웃었다. “그럴 땐 쉬어야죠.” “그 말은 정말 빠르게 배우셨네요.” “매일 듣고 있는데요.” 수현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잠깐 창밖을 보자 빗방울이 유리를 두드렸다. “메이 씨, 서울에도 이런 날이 있었어요. 비 오는 밤에 퇴근 못 하고 사무실에서 서류를 보던 날요.” “그땐 누구랑 있었어요?” “가끔은 혼자, 가끔은 다른 노무사들이랑요. 다들 퇴근하자고 말은 하면서 계속 일했죠.” “이제는 제가 퇴근하자고 말해 줄게요.” “좋아요. 대신 내일도 조금만 같이 봐 주세요.”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장을 적었다. [수문 탑 독립 기록판 확인. 관측소 기록과 고유 홈 일부 일치 가능성. 보존 경로 독립, 신호 발생원 독립성 및 원본 입력 의미 미확정.] 그때 루세가 문을 두드렸다. “표식 사전에서 그 추가 표식과 닮은 걸 찾았어.” 수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무슨 뜻인데요?”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않음’이라는 뜻일 수 있어. 자동 경고와는 다른 범주야. 다만 정말 같은 기호인지 확인이 필요해.” 메이가 입을 가렸다. “그럼 누군가 질문을 했다는 말이에요?” 루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수신 장치가 미완료 질문처럼 분류한 입력이 있었다는 뜻일 뿐이야. 질문이 사람이 쓴 문장이었는지까지는 몰라.” 수현은 물었다. “그 분류를 내일 안전하게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우선 문서만 대조할 수 있어. 장치 동력 시험은 아직 허가되지 않았어.” “그럼 문서부터 합시다.” 루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에선 여전히 비가 내렸다. 수현은 오늘 자신들이 가져온 것이 답장이 아니라, 어쩌면 존재했을지 모르는 질문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수현이 잠자리에 들 무렵 세드나가 통신용 쪽지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감독청은 수문 탑의 추가 표식이 기록된 시기에 다른 시설에서 어떤 시험을 진행했는지 조회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당시 직원들의 이름까지 보려면 별도 심사와 가족의 권리 보호 절차가 필요했다. “이름은 나중에 봐도 돼요.” 수현이 말했다. “우선 당시 장치가 자동으로 똑같은 표식을 만드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기계의 말을 확인하는 편이 쉽겠군요.” 세드나가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요. 기계는 모른다고 말하지 않거든요. 그냥 숫자를 남겨요. 모른다는 걸 판단하는 건 결국 사람이에요.” 세드나는 창가로 걸어가 빗소리를 들었다. “당신은 답이 나와도 쉽게 믿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요. 그런데 제대로 된 답이라면 몇 번 확인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시험 대상으로 끌려가지 않아야겠지요.” 수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혼자 남았을 때 그녀는 서울행 편지의 봉투를 꺼냈다. 아직 보낼 곳을 쓰지 않았다. 누가 받을지 모르고, 실제로 전송될지도 모르는 편지에 자신의 자세한 주소를 써 넣고 싶지 않았다. 대신 봉투 안에 작은 쪽지를 추가했다. [내가 나중에 돌아갈 수 있다면, 먼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부터 알려 주고 싶다.] 수현은 그 문장을 접어 넣었다. 오늘 발견한 표식이 진짜 다른 누군가의 질문일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자신도 분명한 말을 준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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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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