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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86화
PAYLUA ORIGINAL · 제86화

86화. 여섯 번째 서랍의 빈 칸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02자

오프라인 책장
여섯 번째 서랍은 분관도 감독청도 아닌 오래된 회선 보수반의 창고에 있었다. 수현은 보관처를 확인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도착한 곳은 낡은 다리 아래 작은 건물이었다. 벽에는 전선을 대신했던 은색 실들이 몇 가닥 남아 있었고, 창문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였다. 주위에 장비를 고치는 사람보다 장비를 버리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곳 같았다. “정말 여기예요?” 메이가 물었다. “서류상으로는요.” “서류상으로.” 수현이 익숙한 표현을 하자 메이는 따라 말했다. 관리인은 오랜 세월 보수반에서 일한 톤이라는 노인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말했다. “장비를 켜겠다는 부탁이면 돌아가시오. 오래된 회선은 잘못 건드리면 이쪽 강물까지 들끓게 만들 수 있소.” “켜려는 게 아닙니다.” 수현이 말했다. “여섯 번째 보존 서랍의 인계 목록만 확인하려고 합니다.” 톤은 비로소 문을 열었다. “그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실제 서랍을 열려면 감독청 승인도 있어야 하오.” 수현은 준비해 온 허가서를 꺼냈다. 세드나는 직원증과 함께 열람 범위를 확인했다. 톤은 두 사람의 서류를 한참 대조하더니 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사람 하나 찾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요?” “사람을 찾는 데 필요한 기록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먼저 그 기록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봐야 합니다.” “그런 대답을 들은 건 처음이군.” 톤은 낡은 열쇠를 꺼냈다. 손에 쥐었을 때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메이는 그 소리를 듣고 작은 웃음을 지었다. “요즘은 이 소리가 마법 주문보다 익숙해요.” “열쇠가 있어도 허가가 없으면 못 여는 세상이네요.” 수현이 답했다. *** 서랍 안에는 은색 판 두 장과 종이 뭉치 하나가 있었다. 예상과 달리 비밀 편지나 엄청난 마석은 없었다. 대신 오래된 업무 인수인계서가 부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원장 번호 여섯과 연계된 물건인가요?” 세드나가 물었다. 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선 보수반이 문을 닫을 때 수리한 물건들을 모아 둔 거요. 서랍 번호가 여섯이라는 뜻이지 여섯 번째 메시지라는 뜻은 아니오.” 수현은 즉시 메모를 고쳤다. [6: 보존 위치 번호. 메시지 순서 아님.] 메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가 숫자에 자꾸 속네요.” “숫자가 잘못한 건 아니죠.” “수현 씨가 숫자 편을 들 줄은 몰랐어요.” “돈 받을 때는 특히 숫자 편이에요.” 두 사람의 농담에 톤이 피식 웃었다. 인수인계서의 맨 앞에는 물건의 종류가 있었다. 회선 교정용 시험판, 표면 기록판, 봉인 접착 시험 시료, 작업자 확인표. 수현은 첫 번째 판에 낯선 흠집이 있는 것을 보았다. 빈 홈 다섯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고, 그 옆에 잉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건 문자처럼 보이는데요.” 메이가 물었다. “문자인지, 장비가 찍은 표식인지 아직 몰라요.” 톤이 확대경을 건넸다. 수현은 판을 직접 만지지 않고 확대경으로 살폈다. 구불구불한 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어린 시절 익힌 한글 자음 ‘ㅅ’처럼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서울. 그 단어를 떠올리는 데는 숨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 선 옆에는 똑같이 생긴 다른 표식도 있었다. 인쇄 과정에서 긁힌 자국일 수 있었다. 낯선 모양에 익숙한 글자를 덧씌운 것인지도 몰랐다. “괜찮아요?” 메이가 물었다. 수현은 확대경을 내려놓았다. “네. 방금 제가 보고 싶은 모양을 본 것 같아요.” “뭔데요?” “제 고향 글자랑 닮은 선이 있었어요. 하지만 닮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메이는 섣불리 기뻐하지 않았다. 대신 수현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반가웠겠어요.” “많이요.” *** 톤은 시험판의 표식을 보고 오래된 기술을 설명했다. 회선 점검 때는 사람이 문장을 직접 쓰지 않고 작은 바늘로 선을 새겨 신호의 세기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섯 개의 짧은 선이 남아 있다고 해서 다섯 글자가 전송됐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걸 마법이라고들 하지만 대부분은 전기나 진동을 다룬 솜씨였소. 장치가 낯선 소리를 글자처럼 남기더라도 작업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일이 많았지.” 루세가 측정판을 보며 물었다. “이 장치가 만들어 낸 표식의 예시가 남아 있습니까?” 톤은 별도의 상자에서 실습용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지금 판에서 본 것과 비슷한 곡선이 여러 개 있었다. 루세는 확대경으로 비교한 뒤 몇 가지를 표시했다. “같은 모양을 만드는 기계적인 방법은 확인됐네요. 어떤 입력이 있었는지는 원본 작업일지를 봐야 합니다.” “그럼 제 고향 글자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그것도 아직 몰라. 다만 우리 장비로도 저런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지.” 수현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희망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희망을 설명할 다른 원인이 생긴 것이다. 종이 뭉치 한쪽에서 메이가 낡은 검수표를 발견했다. 검수표에는 ‘원문과 기계 표식 분리’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원문이 따로 있었다는 말인가요?” “검수표의 양식에는 원래 그 항목이 있습니다.” 톤이 말했다. “실제로 원문이 있었다면 위치를 적었을 거요.” 수현은 아래를 살폈다. 항목의 절반이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이유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원문 보관처: —] [표식판 인계처: 동부 감독청] [점검자: 서명 흐림] 수현은 그중 두 번째 줄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비어 있거나 알아볼 수 없었다. “원문이 없었다는 증거는 아니지만, 있었다고 확인할 수도 없네요.” “그렇소.” 톤이 말했다.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두는 게 좋지.” *** 점심때쯤 톤은 오래된 바늘 도구를 꺼내 보여 주었다. 끝이 닳아 있는 도구였지만, 장치를 작동시키지는 않았다. 수현은 시연 없이도 비슷한 선을 손으로 그릴 수 있는지 물었다. 톤은 조심스럽게 모래판에 몇 개의 선을 그렸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곧 닮은 모양이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메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서랍 속 표식이 원래부터 그런 모양이었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겠네요.” “보존 기록상 지금의 표면과 최초 등록 사진이 같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루세가 답했다. “하지만 등록되기 전 누가 만들었는지는 별개죠.” 수현은 자신이 적은 ‘고향 문자 유사’라는 표현을 지웠다. 완전히 삭제하지는 않고 조사자의 개인 인상 항목으로 옮겼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실처럼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세드나는 작업자 명부를 확인했다. 보수반의 검수자 중 하나가 에린 소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서명 옆에는 ‘대리 접수’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이름이 또 나왔어요.” 메이가 말했다. 수현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이제는 그 이름이 나타나면 설렘과 경계가 동시에 몰려왔다. “누구의 대리인가요?” “본인을 대신해 누군가가 서류를 접수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에린 소렐이 다른 담당자를 대신해 접수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세드나가 말했다. 톤은 명부를 오래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일할 때보다 훨씬 전 일이오. 그 이름이 사람 이름인지 부서 코드인지도 모르겠군.” 수현은 톤의 말을 그대로 적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을 기억하는 척하지 않는 증언도 소중했다. *** 오후에는 담당자들이 서랍 안 물건의 봉인을 다시 확인했다. 판은 서고에서 맡아 보존하고, 수현 일행은 허가받은 표면 측정 결과만 받아 가기로 했다. 톤은 마지막으로 인계 증명서를 만들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당신들이 여길 왜 찾나 싶었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건을 가져가 달라고 한 적은 없군.” “제가 가져가면 원래 있던 곳과 연결이 끊어지잖아요.” 수현이 답했다. “가져갈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도 막상 필요할 때 못 돌려주는 경우가 많지.” “그래서 보관을 잘하는 분이 필요하죠.” 톤은 웃으며 도장을 찍었다. 그때 루세가 수리용 종이 뭉치 뒤에서 작은 책자를 찾았다. 표제는 ‘회선 입력 검증을 위한 독립 기준’이었다. “이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어.” 수현은 가까이 다가갔다. 책자는 교정용 신호를 실제 메시지와 구분하는 규칙을 설명하고 있었다. 먼저 자기 장치가 만든 신호를 전송해 반사량을 확인하고, 그다음 서로 다른 물리적 경로에 있는 수신기가 같은 내용을 기록했는지 대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관측소와 급수탑 사이에서 한 시험이랑 비슷하네요.” 메이가 말했다. “하지만 그 시험은 둘 다 같은 등록망 안에 있었어.” 루세가 말했다. “이 원칙을 따라 외부 대역을 확인하려면 등록망 밖의 독립 수신점이 필요해.” “그런 점이 실제로 있었나요?” “목록에는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장비가 살아 있을지는 미지수야.” 수현은 책자의 첫 페이지를 살폈다. ‘시험이 성공하더라도 실물 전송 또는 생체 이동의 안전성을 추론하지 말 것.’ 오래된 기술자들도 같은 경고를 적어 두고 있었다. “그분들도 한 번은 큰 실수를 겪었을까요?” 메이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실수를 막으려고 적었을 수도 있죠.” 수현이 말했다. “중요한 건 아직 살아 있는 우리에게 이 경고가 유효하다는 거예요.” *** 돌아오는 길에 수현은 마음 한쪽이 아린 것을 느꼈다. 분명히 한글과 닮은 표식을 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서울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그 표식이 이 세계 장치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쪽이었다. 메이는 마차 안에서 수현의 표정을 살폈다. “실망했어요?” “네. 많이요.” “수현 씨는 늘 아닌 척할 줄 알았어요.” “안 되는 걸 안 되는 거라고 말하는 데도 이제는 연습이 됐나 봐요.” 메이는 창밖을 보았다. “우리도 처음엔 카이렌이 쉬는 걸 보고 기뻐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또 출정 명령이 나왔잖아요.” “그랬죠.” “그래서 쉬는 규칙을 만들었죠. 한 번의 휴식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무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다음 질문을 정확히 고르는 일이었다. 가방 속의 책자에는 독립 수신점 목록을 관리하는 부서가 적혀 있었다. 동부 감독청의 다른 곳이었다. 수현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오늘만큼은 새 주소를 찾으러 뛰어갈 기운이 없었다. 메이는 그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저녁에 따뜻한 수프 먹을까요?” “좋아요.” “그다음엔 서류 쓰지 말고 일찍 자기.” “그건 협상해 봅시다.” “협상 결렬. 치유사 권한으로 휴식 권고합니다.” 수현은 소리 내 웃었다. 그날 밤 마지막 메모는 아주 짧았다. [여섯 번째 서랍에서 확보한 것은 귀환 증거가 아니라 검증 방법이다.] 그 문장을 적고 나니 조금 덜 외로웠다. 제대로 시험할 방법을 알고 있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한밤중에 수현은 잠에서 깼다. 꿈에서 서울의 지하철 안내 방송을 들은 듯했다. 익숙한 역 이름이 귓가에 남았지만 두 번째로 떠올리려 하자 흐려졌다. 그녀는 잠시 침대에 앉아 손바닥을 바라봤다. 휴대전화 배터리는 이미 거의 없었다. 전원을 켜면 사진을 볼 수 있겠지만, 한번 켜고 나면 그만큼 돌아갈 때 쓸 수 있는 것도 줄어들었다. 그녀는 그 작은 화면을 아직 마음대로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옆 침대에서 메이가 몸을 뒤척였다. “잠이 안 와요?” “서울 꿈을 꿨어요.” “좋은 꿈이었어요?” “모르겠어요. 그리운 건지 걱정되는 건지.” 메이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제가 예전에 마법을 많이 쓰면 손끝이 멍해졌거든요. 그때 사람들이 더 쓰면 나아질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더 썼다가 며칠이나 아무것도 못 했죠.” 수현은 그녀를 보았다. “지금은 안 그래요?” “여전히 무리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멈춰야 한다는 걸 이제 알아요.” 메이는 잠깐 웃었다. “수현 씨도 오늘은 멈춰도 돼요. 표식이 고향 글자 같았던 건 진짜 마음이었잖아요. 그 마음이 틀린 건 아니죠.” 수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얼마 전 자신이 메이에게 죄책감은 증거가 아니라고 말했었다. 메이는 지금 그 말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주고 있었다. 증거가 아니더라도 마음은 마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고마워요.” “대신 아침에는 늦잠 자요. 회의는 오후에 있어요.” “알겠어요.” 수현은 다시 누웠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이곳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오늘 발견한 것은 틀린 단서였다고 정리하고, 내일 새로운 질문을 시작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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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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