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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85화
PAYLUA ORIGINAL · 제85화

85화. 야간 근무는 폭풍보다 길었다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356자

오프라인 책장
왕도에서 돌아온 날, 수현은 동부 분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며칠 전에는 기울어진 간판밖에 눈에 띄지 않던 건물 앞이었다. 오늘은 직원들이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세드나가 먼저 물었다. 문 가까이에 있던 마렌이 수현을 알아보고 손을 들었다. 붕대는 얇아졌지만 아직 손목을 조심스레 움직였다. “오늘 직원들끼리 야간 교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누구에게 항의하는 집회가 아니라 내부 회의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무리 가운데에는 팔짱을 낀 중년 남자도 있었다. 분관의 시설 책임자 에른이었다. “외부인이 오셨군.” 에른은 수현의 가방을 바라봤다. “오늘도 장부를 보러 왔소?” “서고 자료 때문에 왔는데요. 직원들이 모여 있길래 무슨 일인지 여쭤봤어요.” “마렌이 손목을 삐었다고 근무표를 바꾸자고 하더군. 폭풍 경보는 직원 사정 봐 가면서 오는 게 아닌데 말이지.” 수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먼저 누가 회의를 요청했는지, 본인은 의견을 말할 권한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괜히 앞에 나섰다가 이곳 직원들이 외부인에게 의존한다는 오해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네리스가 문 밖으로 나왔다. “이수현 씨, 잠깐 참석해 주실래요? 기록 절차에 관한 의견만 듣고 싶어요.” “직원분들이 동의하신다면요.” 마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직원들도 이견이 없어 보였다. 수현은 메이와 함께 뒤쪽 빈자리에 앉았다. *** 회의가 시작되자 첫 번째 논쟁은 누구 책임으로 손목을 다쳤느냐였다. 에른은 두 사람이 들어야 할 물통을 마렌이 혼자 옮겼으니 개인 과실이라고 말했다. 마렌은 다른 조를 지연시키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수현은 손을 들었다.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리스가 허락했다. “마렌 씨가 혼자 들어 올렸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누군가 혼자 들어야 할 상황이 생긴다는 사실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다친 일의 책임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같은 일을 막으려면 실제 업무 순서를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에른은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누구도 일을 안 하려고 할 거요.” “오히려 업무를 나눠서 계속 할 수 있게 만들자는 얘기예요. 물통을 옮기는 일 자체를 없애자고 한 적은 없습니다.” 마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오 관측 담당이 야간 표를 정리하면 늦게 끝나요. 그래서 다음 날 준비까지 제가 도와주게 돼요. 물통을 옮기라는 지시가 없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일이 남아요.” 다른 직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른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얼굴이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 마렌은 한참 망설였다. “말하면 다음 달 평가에서 제가 협조적이지 않다고 적힐까 봐요.” 회의실이 잠잠해졌다. 네리스는 고개를 숙였고 에른은 말을 찾지 못했다. 수현은 누구의 잘못인지 즉시 판정하지 않았다. 왕국의 인사 규칙도 잘 모르면서 징계나 손해배상을 논할 수는 없었다. 대신 현재 평가표를 확인하고, 교대 인력을 늘리거나 인계 시간을 따로 배정할 수 있는지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실제 몇 시간 일했는지를 먼저 적어야 해요. 출근표상 여덟 시간과 실제 열두 시간이 다르다면, 지금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도 서로 다른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셈이니까요.” 에른은 창밖을 봤다. “그 시간 동안 폭풍이 오면 누가 일하겠소?” 네리스가 답했다. “폭풍이 오면 당연히 비상조가 움직여야죠. 그래서 우리가 교대조를 만드는 거잖아요. 한 사람이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은 아니고요.” 그 말을 시작으로 회의는 책임 추궁에서 업무 분장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 수현은 그 회의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직원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이어 가는 것을 확인한 뒤, 기록실로 옮겨 자료 조회를 했다. 업무 개선안이 정해지면 공개 가능한 부분만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메이가 따라 나오며 말했다. “좀 더 남아서 이야기해 주셔도 됐잖아요.” “제가 이곳 상사도 아니고, 직원 대표도 아니잖아요. 그분들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에는 제가 조금 물러나는 게 좋겠죠.” “예전에는 수현 씨가 다 해결해 주는 줄 알았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을지 몰라요. 사실은 아무것도 못 한 날이 많았어요.” 메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래도 처음에 카이렌이 두 시간 잠든 건 수현 씨 덕분이었잖아요.” “그때 메이 씨가 진정서를 보내지 않았다면 제가 올 수도 없었겠죠.” 두 사람은 잠깐 웃었다. 수현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메이에게 기대는 일이 많아졌음을 깨달았다. 보급과 치료 문제를 넘어, 자신이 너무 급해질 때 속도를 늦춰 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료실에서는 유렌의 두 번째 밤과 연결된 교대 장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상 분관에 남아 있던 것은 원본이 아니라 나중에 만든 요약본이었다. [야간 관측 추가 수행. 인계 지연. 업무 완료.] 딱 세 문장이었다. “내용이 참 깔끔하네요.” 수현이 말했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메이가 물었다. “깔끔하다는 건 여러 사실을 생략했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누가 추가로 일했는지, 왜 인계가 늦었는지, 시간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아무것도 없잖아요.” 요약본의 뒷면에는 기상관측관 유렌의 서명이 아니라 분관장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원본을 직접 읽은 누군가가 자신의 방식으로 요약해 둔 것이었다. 수현은 수신판을 두 개의 봉인으로 본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궁금해졌다. 당시에도 상관에게 보고할 때 편리하게 내용을 줄이거나 합치는 일이 있었을까. 단순한 실무 관행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몇십 년이 지나 다른 사건을 검증할 때는 그런 생략이 크게 보였다. *** 그날 오후 기상 분관의 경보 종이 갑자기 울렸다. 날씨는 맑았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봤다. “폭풍이 오는 겁니까?” 수현이 물었다. 직원이 대답했다. “서쪽 측정판에서 급격한 진동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하늘엔 아무것도 없네요.” 루세가 분관에 와 있던 까닭이 그때 드러났다. 그는 관측소에서 가져온 작은 검사 도구를 들고 경보판 앞으로 걸어갔다. 장치가 보내는 신호의 진위를 확인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신호는 내가 보내지 않았어.” 루세가 말했다. 네리스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그럼 실제 경보일 수도 있겠네요.” 수현은 창문을 열었다. 멀리 구름이 보였지만 가까운 나무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보는 날씨가 서쪽 관측점의 날씨와 같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먼저 서쪽 관측 담당에게 연락해야겠어요.” 네리스가 말했다. 마렌이 일어서다가 손목을 보고 멈췄다. 대신 다른 직원이 전령 새를 보냈다. 수현은 그 작은 멈춤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다친 사람이 자동으로 비상 업무를 떠맡지 않은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직원들은 준비된 비상조 명부를 확인했다. 에른은 직접 두 사람을 지정했다. 어떤 직원도 오늘 휴무인 사람을 당연하다는 듯 불러오지 않았다. 잠시 뒤 서쪽에서 답이 왔다. 기압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지만, 폭풍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측정판 자체의 고장 가능성도 남아 있었다. “무슨 문제였죠?” 메이가 속삭였다. “아직 모르는 거예요.” 수현이 답했다. “대신 모르면서 바로 누군가를 위험한 곳에 보내지 않았죠.” 네리스는 신호 발생 시간을 별도의 장부에 적었다. 표의 한쪽에는 ‘경보 발생’이, 다른 쪽에는 ‘현장 확인 결과’가 나란히 자리했다. “이런 식으로 나눠 적으면 되겠군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일했는지도 따로 적어 주세요.” 네리스는 잠시 펜을 멈췄다가 웃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 저녁에 회의 결과가 나왔다. 분관은 한 주 동안 두 사람 동시 운반 원칙을 지키고, 정해진 업무가 끝나지 않았을 때 그 시간을 따로 적어 두기로 했다. 근무 시간을 늘리는 데 따른 비용은 감독청에 요청하기로 했다. 즉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이 돌아올 가능성도 있었다. 에른이 수현에게 다가왔다. “오늘 얘기한 방법이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소?” 수현은 솔직하게 답했다. “일주일 지나 봐야 알겠죠. 실제로 일이 줄지 않고 기록만 늘었다면 실패한 방법일 테고요.” “그럼 당신이 책임질 수 있소?” “제가 대신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실패한 이유를 정리하는 일은 도울 수 있어요. 아마 이곳 사람들이 그 부분은 더 잘 알 거예요.” 에른은 예상 밖이라는 얼굴이었다. 그는 옳은 답을 가진 전문가가 자신을 꾸짖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직원들이 평가에서 손해 보지 않도록도 해야겠군.” “그건 관리자께서 꼭 확인하셔야 할 문제겠죠.” 수현은 부드럽게 말했다. 에른은 대꾸 없이 돌아갔다. 그러나 마렌을 지나치며 적어도 오늘은 괜한 말을 하지 않았다. *** 밤이 되자 수현은 분관이 보내 준 비상 경보 기록 사본을 펼쳤다. 오늘의 신호는 오래전 유렌의 기록과 닮아 있었다. 맑은 하늘, 갑작스러운 장치 진동, 외부 현장 확인 전에는 기상 사건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경보. 그녀는 두 사건을 같다고 적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를 수 있다는 항목을 나눠 썼다. 장치 제작 시기, 감지 범위, 시각 기준, 고장 이력. 긴 목록이 생겼다. 메이는 가방에서 북방의 라비엔에게 보낸 편지 접수증을 꺼냈다. “오늘 드디어 보냈어요.” “잘됐네요.” “답장이 오면 좋겠어요. 그런데 안 와도 괜찮아요.” “대단한 진전인데요.” “수현 씨한테 배웠어요. 답이 없다고 마음까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수현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자신의 소환 동의 기록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빈칸은 동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동의를 확인할 증거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좀 달랐다. 서울의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요.” 수현이 말했다. “답이 없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죠.” 메이는 창밖을 봤다. “오늘은 폭풍이 안 와서 다행이에요.” “안 온 것인지, 여기에는 안 온 것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면 너무 재미없겠죠?” “아주요.” 그들은 웃었다. 수현은 책상 위 비상 경보 기록을 조용히 덮었다. 마지막 줄에는 오늘 회의를 기록한 네리스의 서명이 있었다. [야간 근무 공백 확인 예정. 신호의 의미와 직원의 책임을 혼동하지 않을 것.] 수현은 새로 만들어진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먼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오늘의 사람들이 조금 다른 선택을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수현이 분관을 떠나기 전 네리스가 작은 종이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오늘부터 사용하기로 한 교대 기록의 빈 양식이 있었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다른 곳에서도 참고할 수 있도록 공개본으로 만들었어요.” 수현이 펼쳐 보니 항목이 단순했다. 계획된 근무 시간, 실제 수행 시간, 비상 대응 이유, 인계받은 사람, 휴식 보장 여부. 마지막에는 당사자가 의견을 적을 수 있는 여백이 있었다. “의견란을 넣으셨네요.” “마렌이 부탁했어요. 사고를 겪은 사람이 나중에 업무 내용을 다르게 설명할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좋네요. 다만 서명이 없다고 그날 일을 안 한 사람처럼 처리하지는 마세요.” “왜요?” “다친 사람, 급히 호출된 사람, 아예 서명할 수 없는 곳에서 일한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 칸은 근무한 사실을 만들어 내는 칸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확인하는 칸이어야 하니까요.” 네리스는 그 말을 듣고 여백에 짧게 적었다. [서명 누락 시 실제 근무 여부 별도 확인.] 수현은 조금 감탄했다. 자기 조언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네리스가 직접 그 조언의 한계를 찾아 묻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분관이 좋아지고 있네요.” “일주일 뒤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이곳에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어느 순간 열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누군가 자신 없이도 이 방법을 바꿔 쓰는 게 좋았다. 메이가 문 밖에서 마차를 불렀다. 수현이 인사를 하려는 순간 네리스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수기 부록의 두 번째 밤에 관한 자료, 하나 더 찾았습니다. 관측소 폐쇄 이후에 작성된 교정표 사본입니다. 감독청 봉인 수신판과는 다른 보존 경로라고 하더군요. 원본 보존함 번호가 여섯입니다.” “여섯?” “기상 분관 자체의 여섯 번째 서랍은 아닙니다. 회선 보수반이 넘겨준 별도 서랍입니다.” 수현은 인사를 마친 뒤 마차에 올랐다. 숫자 여섯을 크게 동그라미 쳤다. 이야기는 다시 장비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넘겼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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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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