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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80화
PAYLUA ORIGINAL · 제80화

80화. 주소 없는 편지의 끝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52자

오프라인 책장
동부 중계 관측소의 조사 종료 보고서를 쓰던 이수현은 마지막 장을 비워 두었다. 보고서에 넣을 결과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확인된 사실은 충분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는 앞으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쓰고 싶었다. 루세가 종이를 훑었다. “세 자리 식별자만으로 원본을 특정할 수 없다. 관측소 내부 안전 경고문이 외부 응답처럼 섞일 수 있다. 두 시설 사이의 제한적 문자 전송은 확인됐다. 이 정도면 오늘 발표할 내용은 있지.” “그런데 아직 지난번 확인한 원본 신호가 정말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요.” “맞아.” “그럼 그걸 미결이라고 분명하게 쓰겠습니다.” 수현은 펜을 들었다. 답을 얻지 못한 것을 숨기지 않는 보고서가 필요했다. 누군가 이 자료를 읽고 근거 없는 희망으로 위험한 실험을 시작하지 않도록. *** 최종 보고서 작성을 시작한 날 아침, 아델라는 수현에게 관측소 열쇠를 잠시 보여 주었다. 손잡이가 닳아 있었고 열쇠 몸통에는 세로로 금이 가 있었다. “여기 있는 것도 이제 갈아야겠어요.” 아델라가 말했다. “열쇠를 바꾸면 옛 기록과 맞지 않지 않나요?” “변경 이력을 남기면 됩니다. 위험한 열쇠를 오래 쓴다고 보존이 되는 건 아니죠.” 수현은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아델라는 출입 허가 한 글자도 놓치지 않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보존과 안전이 서로 반대편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함께 배우고 있었다. 그날 회의에는 기술자와 기록원뿐 아니라 마을 대표도 참석했다. 보르 여관 주인도 그중 하나였다. 수현은 장치의 안전 시험 결과를 먼저 설명하고, 주민 의견을 따로 적었다. “다른 세계와 연락이 됐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정말입니까?” 보르가 물었다. “아직 그런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탑이 다시 열리면 누군가 멀리 떠날 수도 있다는 소문은요?” “사람을 이동시키는 실험은 한 적 없고 계획도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먼저 알려져야겠네요. 장치가 커지면 사람을 태우고 날아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수현은 작은 웃음을 삼켰다. 실제보다 빠른 소문은 어느 세계에서나 똑같았다. 다만 소문을 믿는 사람이 위험한 기계 안으로 들어간다면 웃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루세는 주민 대표에게 앞으로의 시험 일정을 사전에 알리고, 야간 소음을 측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필요한 경우 시험 장소를 바꾸겠다는 내용도 적었다. “이제 관측소의 주인도 기술자만은 아니군요.” 메이가 말했다. “원래도 그렇지 않았어요. 마을 사람들이 이곳의 소리를 듣고 살아왔으니까요.” 수현이 답했다. *** 보고서 공개 범위를 논의하는 날, 의외로 갈등이 벌어졌다. 기술자 하나가 외부 계열 신호라는 말을 크게 발표하면 왕국에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이만큼 성공했는데 굳이 조심스러운 단어만 써야 합니까?” 수현이 물었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잘못된 말을 해도 된다는 겁니까?” “아니요. 하지만 가능성을 보여 줘야 하잖아요.” 루세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종이를 가리켰다. “가능성은 결과 항목에 적을 수 있어. 그러나 외부 세계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면 거짓말이야.” 세드나가 지원 신청 초안을 가져왔다. [구형 기록 보존과 안전한 장거리 문자 통신 기초 검증 연구.] “이렇게 쓰면 됩니다.” “다른 세계가 빠졌네요.” “입증되면 그때 쓰면 되죠.” 수현이 말했다. 그 기술자는 오래도록 종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비가 필요한 마음도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그 마음을 채우려다 결론을 앞당기면 모두가 더 위험해질 수 있었다. *** 며칠 뒤 메이의 분쟁 심사에도 작은 진전이 있었다. 동부 정산실은 예비 적립금의 개인 청구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1차 검토 결과를 전달했다. 강제 징수 유예는 계속됐다. 최종 취소가 아니며, 실제 사용된 물품과 본인 부담 가능 항목은 추가 심사한다는 단서도 있었다. 메이는 기록을 읽다가 수현을 바라봤다. “아직 고리를 풀지 못했어요.” “네.” “그래도 이번에는 제가 청구서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 말이 수현을 웃게 했다. 시작할 때는 메이가 자신에게 빚의 이유를 묻고 있었다. 이제는 청구 담당자에게 계산 근거와 결정 경위를 요구하고 있었다. “다음 심사에는 혼자 가 볼까요?” 메이가 물었다. “원하면요. 혼자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알아요. 혼자 말해 보고 싶어서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스스로 앞에 나서고 싶어 한다면 한 걸음 물러서는 것도 좋은 도움이었다. *** 카이렌에게서 도착한 편지에는 근무 시험의 두 번째 평가표가 들어 있었다. 휴식 중 호출 횟수는 줄었고, 부상자 복귀 기준은 조금씩 구체화됐다. 긴급 보급 요청은 별도 표시를 하도록 바뀌었지만, 일부 전령은 아직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저는 검을 다루는 법보다 인수인계표를 쓰는 법이 더 어렵습니다.” 카이렌의 편지 끝에 적힌 한 줄을 읽고 수현은 소리 내어 웃었다. “진짜 용사다운 말이네요.” 메이가 편지를 읽더니 말했다. “그럼 이제 용사에게 직업이 하나 더 생긴 거네요. 관리자.” “급여부터 제대로 지급해 달라고 하셔야죠.” 두 사람은 웃었다. 카이렌에게는 아직 해결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두 시간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의 휴식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그 변화가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 보고서 마지막 장을 완성하기 전, 르네가 작은 봉투를 보냈다. 봉투 겉면에는 ‘안전 조치 확인서 사본, 원본 위치 재확인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현은 즉시 개봉하지 않고 아델라와 이베른이 남긴 보존 번호를 대조했다. 번호는 일치했다. 봉투 안의 종이에는 오래된 수신 장치의 경고 문구 목록이 있었다. [상대 주소 불명: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응답 비강요 설정: 답장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수현은 숨을 멈췄다. 처음에는 마치 누군가 보낸 편지처럼 읽혔던 문장이 두 개 모두 여기에 있었다. “그럼 그 편지는 기계가 만든 건가요?” 메이가 물었다. “그 문장 자체는 기계가 붙였을 가능성이 아주 커졌어요.” “그럼 아무도 답하지 않은 건가요?” “그건 아직 몰라요. 경고문이 붙기 전 어떤 입력이 들어왔는지를 알아야 하니까.” 수현은 한동안 종이를 내려다봤다. 어쩌면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첫 번째 답장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원통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을 속인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이 서둘러 만든 해석이었다. *** 여관 마당에서 수현은 처음 작성했던 서울행 편지의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받는 사람의 이름도 주소도 쓰여 있지 않았다. 메이가 곁에 섰다. “이제 보내 볼 거예요?” “아뇨. 오늘은 다시 봉인할 거예요.” “왜요?” “이 편지는 정말 누군가 받을 수 있는 경로가 확인될 때 보내고 싶어요. 아무에게나 던져 놓고 답장이라고 믿는 건 싫어서요.” 메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건 괜찮죠?” 수현은 한참 후에 대답했다. “그럼요. 바라는 건 언제나 괜찮아요.” *** 서류를 정리하던 중 이베른은 낡은 원장의 책갈피를 건넸다. 허가받은 자료의 사본이 아니라, 기록원에서 직접 만든 작은 안내 카드였다. 표제에는 ‘옛 관측 일지 열람 안내’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카드도 따로 있나요?” “종종 있습니다. 사람이 원장을 직접 찾다가 다른 책을 훼손하지 않도록요.” 수현은 카드의 보관 번호를 확인했다. 옛 관측 일지의 일부는 폐쇄 당시 기술실이 아니라 기상 기록실로 이관됐다고 되어 있었다. 수신 원장과 이름이 닮았지만 관측 대상이 달랐다. “마지막 관측 일지라면 이쪽일까요?” “가능합니다. 다만 통신 기록인지 기상 기록인지는 목록을 열어 봐야 해요.” 수현은 카드가 가리키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했다. ‘동부 감독청 기상 분관’. 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다음에 갈 곳이 정해졌네요.” 메이가 말했다. 수현이 웃었다. “아직 허가도 없고, 누가 담당인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이번에도 신청서부터요?” “네. 이번엔 자료 이름을 정확히 적어서요.” 둘은 한동안 웃었다. 초반에는 거대한 마법문을 찾아야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책갈피와 출입 신청서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쪽이 더 믿을 만했다. *** 조사 종료 회의에서는 동부 관측소의 기계실을 그대로 봉인하기로 했다. 안전 점검이 끝날 때까지 동력 접속은 금지됐다. 기술자들은 가까운 두 시설 사이의 통신 시험을 단계적으로 이어 가기로 했다. 인체 이동 실험은 승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델라는 마지막 인계서에 사인하면서 말했다. “관측소에 사람들 발길이 다시 오니까 조금 기쁘네요. 다만 자꾸 지붕이 무너질까 걱정됩니다.” “지붕 보수가 먼저죠.” 데런이 대답했다. 루세는 수현에게 원반의 그림을 돌려주었다. “처음에 네가 그린 그림이야. 기억하냐?” 수현은 엉성한 꽃 모양을 보고 웃었다. “그걸 왜 아직 갖고 있어요?” “원본 보존 번호가 적혀 있거든. 그림은 엉망이지만 누구 손에서 나왔는지 확실하잖아.” 수현은 그것을 소중히 접었다. 정답이 아니어도 다시 질문할 수 있게 만드는 기록이었다. *** 밤이 깊어질 무렵 수현은 자신이 처음 도착했던 야전 진료소를 생각했다. 카이렌이 고열에 시달렸고, 메이는 빈 약병을 붙잡고 있었다. 누군가가 두 시간만 쉬자고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메이는 자기 빚을 직접 따지고 있었고, 카이렌은 대원들에게 쉴 시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수현은 자문 계약을 끝낸 뒤에도 그들의 편지를 받고 있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그 사람의 삶을 대신 결정하지 않아도 동료가 될 수 있었다. 수현은 돌아갈 날에 대한 기록을 썼다. 특정 날짜를 정하지 않았다. 대신 확인할 조건을 적었다. 독립된 외부 수신의 진위, 전달 상대의 의사, 전송 경로의 안전, 귀환 의사의 재확인. 아직 어느 것도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다. “너무 많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목록을 찢지 않았다. 진짜 집으로 돌아가려면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누군가 자신의 서명을 대신하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희망을 빌미로 위험을 떠넘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창밖의 바람이 멎었다. 오래된 탑의 종은 그날 밤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현의 책상에는 충분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 기록을 잠시 덮어도 됐다. *** 그날 밤 수현은 최종 보고서를 마쳤다. 확인된 사실, 미확정 사실, 다음 조사에 필요한 조건을 구분해 적었다. 마지막 줄에는 짧은 문장을 넣었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귀환을 원한다. 그 의사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록에서 지워져서는 안 된다.] 보고서를 제출한 뒤 수현은 숙소로 돌아왔다. 메이는 잠든 상태였다. 고리에서 나는 희미한 붉은 빛이 이불 끝에 걸려 있었다. 수현은 메이를 깨우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서울의 밤이 얼마나 깊어졌을까. 그곳의 시간과 여기의 시간이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자신이 깨어 있는 이 밤이 진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나온 길도 진짜였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이곳 사람들이 스스로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서로를 지우지 않았다. 그때 문 아래로 작은 종이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발신인은 없었다. [봉인된 고유 서명판의 복원 신청은 접수됐습니다. 외부 대역 검증에 사용할 독립 기준값을 확보하려면, 동부 관측소 폐쇄 이전의 마지막 관측 일지를 대조하십시오.] 수현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원래의 장치가 무슨 기록을 남겼는지 알아내는 새로운 단서였다. 하지만 이 종이 또한 누가 보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달려나가지 않았다. 종이의 재질과 시간, 문 앞의 통행 기록을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보존 봉투에 넣었다. 그런 다음 펜을 들었다. [다음 질문: 마지막 관측 일지의 원본은 어디에 있으며, 누가 접근할 권한을 갖는가.] 이수현은 불을 껐다. 아직 주소를 쓸 수 없는 편지는 가방 속에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확인할 질문만큼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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