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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76화
PAYLUA ORIGINAL · 제76화

76화. 고리의 값, 사람의 이름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224자

오프라인 책장
카이렌의 편지에는 작은 종이가 한 장 더 들어 있었다. 본인이 열람을 허용한 치료 기록의 일부였다. [안정 장치 사용: K형. 착용자 신원 비공개. 의식 상태 확인: 미완료.] 이수현은 줄을 읽고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어디에도 카이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또 K형이네요.” 메이가 말했다. “네. 카이렌의 첫 글자라고 생각했던 표시가 장비 유형이라는 건 이미 알았잖아요.” “그럼 이 자료는 왜 온 거죠?” “본인의 진료기록과 같은 종류의 장비가 등장한다는 걸 확인하는 단계 같아요. 바로 동일인이라고 읽을 수 없고요.” 세드나는 서신의 동의 범위를 읽었다. 카이렌은 K형 장치의 일반 사용 방식과 본인 관련 여부를 조회해 달라고 했지만 다른 환자의 신원은 열람하지 말라고 명시해 놓았다. “이런 동의서를 카이렌이 직접 썼네요.” “제가 아는 카이렌이라면 전에는 그냥 다 보라고 했을 텐데.” 메이가 미소 지었다. 수현은 그 변화가 반가웠다. 지켜야 할 사람이 모든 일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용사가, 이제는 본인의 정보도 스스로 지키고 있었다. *** 그들은 성역 보급 담당 나리에게 문의했다. 그는 K형 장치가 몸을 살리는 장비인지, 치료를 보조하는 장비인지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대개 치유술이 불안정할 때 마력 흐름을 일정하게 붙잡아 주는 보조품입니다. 아주 큰 부상을 입었다고 반드시 쓰는 것도 아니고, 썼다고 소생했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죠.” “장치마다 고유 번호가 있나요?” “있습니다. 다만 낡은 장치 가운데는 재사용하면서 번호판을 갈아 끼운 것도 있어서 완전히 믿을 순 없어요.” 수현은 종이에 도식을 그렸다. “사람의 기록, 장치의 번호, 지급 창고의 장부가 셋 다 있어야 연결할 수 있겠네요.” 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역은 수리 기록이 따로 있어요. 찾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쉬울 거라고 기대했으면 노무사를 안 했을 거예요.” 나리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노무사가 무엇인가요?” “사람이 일하다 생긴 문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직업이라고 설명하면 될까요.” 나리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보급창고에도 필요하겠군요.” *** 동부 정산실의 키아가 방문했을 때 메이는 먼저 자기 손목의 붉은 고리를 탁자 위로 내밀었다. 고리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금속에는 아직 미정산 표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지난번에 예비 적립금 일부를 개인 청구 계산에서 빼고 다시 보겠다고 했죠?” “네. 잠정 보류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뭘 확인하러 오셨어요?” “실제 사용된 치료 물품의 출고 기록입니다. 원장에는 청구된 마석 세 개가 있는데 보급 출고는 두 개입니다.” 메이의 얼굴이 굳었다. “하나는 제가 개인 돈으로 샀어요.” “영수증이 남아 있습니까?” “작은 약방에서 받은 종이가 있어요. 다만 길드 도장은 없어요.” 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사본을 제출하고 본인의 사용 목적을 설명해 주세요. 인정 여부는 심사 후에 결정합니다.” “아직 돈을 돌려주는 건 아니네요.” “그렇습니다.” 메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현은 대신 화내지 않았다. 메이가 자신의 자료를 직접 제출할 시간을 기다렸다. “전에는 저한테 남은 금액이 얼마인지도 알려 주지 않았어요.” 메이가 말했다. “이번엔 계산 근거를 전부 보여 주세요.” 키아가 준비한 내역서를 펼쳤다. 세 사람은 오래도록 마석 이름과 날짜를 하나씩 대조했다. *** 고리에는 놀라운 점이 하나 있었다. 메이의 손목에 새겨진 금액은 키아의 정산표에 적힌 금액보다 컸다. 두 계산법 사이에는 예비 적립비 항목이 있었다. “잠정 제외된 금액이 고리에서 바로 줄어드는 건 아니군요.” 메이가 말했다. “고리는 이전 총액을 그대로 표시하는 장치라서요. 심사 결과가 확정돼야 바뀐다고 합니다.” “그럼 사람들은 저걸 보고 아직 전부 빚이 있다고 생각하겠네요.” 키아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수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금액을 바꿀 권한이 없다면, 분쟁 중이라는 표시를 추가할 수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완전히 확정된 금액처럼 보이면 문제가 되니까요.” 키아가 메모했다. “가능한지 알아보겠습니다.” 메이는 고리를 손으로 쓸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리가 붉게 빛나면 몸부터 굳었다. 이제는 거기에 적힌 숫자가 계산된 경로를 알아내려고 했다. 수현은 그것이 용기의 다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 메이가 비용 내역을 한 줄씩 읽는 동안 키아는 정산실에서 쓰는 용어를 설명했다. ‘잠정 유보’, ‘실지급 확인’, ‘예비 비용’, ‘개인 귀속’. 이름은 비슷하지만 뜻이 다르다고 했다.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 다시 말해 볼게요.” 메이가 종이를 펴며 말했다. “마석이 세 개 필요한 걸로 예산을 잡았지만 실제 출고는 두 개였어요. 그런데 청구서는 세 개 값으로 만들어졌고, 그중 하나는 미리 잡아 둔 예비 비용이라는 거죠?” “현재 장부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 예비 비용은 실제로 쓴 돈이 아니잖아요.” “예비 비용도 지급 준비에 따른 비용일 수는 있습니다. 다만 개인에게 어떤 근거로 부담시키는지 검토가 필요해요.” 메이는 잠깐 말이 없었다. “저는 치료할 때 비용을 계산할 여유가 없었어요.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였죠. 그렇다고 실제로 쓰지 않은 물건까지 제 빚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수현은 그 말을 적었다. 분노가 너무 당연해서 굳이 대신 크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키아가 정산 원장에서 초록색 선을 그어 보였다. “이곳 비용은 분쟁 중으로 분류해 추가 강제 징수에 포함하지 않겠습니다. 최종 판단 전까지는 원장 자체를 바꾸지 않아요.” “왜요?” “그동안 어떤 숫자가 쓰였는지 남겨야 나중에 변경 사유를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설명은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바뀌기 전과 바뀐 뒤를 둘 다 보여 주세요. 저는 제 손목의 숫자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현은 한숨을 돌렸다. 메이가 납득하지 못한 채 도장만 찍던 시절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 키아가 돌아간 뒤 메이는 병원에서 쓰던 낡은 천 가방을 펼쳤다. 안에는 빈 약병, 끊어진 실, 구겨진 영수증이 있었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의심해서 보관한 것들은 아니었다. 쓰다 남은 물건이 언젠가 쓸모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넣어 둔 것이었다. “이런 종이가 증거가 될 줄 몰랐어요.” “모든 종이가 증거가 되진 않아요. 그래도 날짜와 금액을 확인하는 데 도움은 되겠죠.” 수현은 영수증의 잉크가 번진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다. “원본은 따로 두고 사본을 만듭시다.” “그럼 제 가방은 이제 보존실이네요.” “비 오는 날 들고 다니지 마세요.” 둘은 웃었다. 그러나 메이의 손은 여전히 고리를 의식하며 움직였다. “언젠가 이걸 빼면 손목이 가벼울까요?” 수현은 대답을 생각했다. “물리적으로는 그럴 겁니다.” “그 말 말고요.” “아마도요. 다만 고리가 풀리면 그때까지 했던 일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메이는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목이 다시 평범해지는 순간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은 고리가 없어진 다음에도 치료할 사람을 고르는 권리, 무리해서 마력을 소진하지 않을 권리, 필요할 때 쉬어도 된다는 확신이라고 했다. 수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음 계약을 맺을 때 꼭 이야기해요. 제가 대신 정해 줄 일이 아니고요.” “네. 제가 직접 말할게요.” *** 저녁에는 데런이 길드에서 온 말을 전했다. 카이렌이 본인의 K형 안정 고리 관련 자료를 더 자세히 요청했는데, 성역이 ‘다른 환자의 정보가 함께 있으니 그대로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는 내용이었다. “화가 났겠네요.” 수현이 말했다. “전에는 그랬겠죠. 이번에는 자기 것만 분리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습니다.” 데런이 대답했다. 수현이 미소 지었다. “점점 제 일이 없어지는 느낌인데요.” “아뇨. 본인이 일을 하게 만드는 것도 일이죠.” 그 말에 수현은 웃었다. 며칠 전 카이렌이 보내온 짧은 편지에는 몸이 나쁜 날 쉬기로 했다는 말이 있었다. 그날 밤 전령이 왔지만 젠에게 담당을 넘겼다고도 했다. 예전 같으면 본인이 쓰러진 뒤에야 멈췄을 사람이다. 이제는 전령을 맡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젠은 괜찮았어요?” 수현이 물었다. “대체 업무로 수신만 맡았습니다.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요.” “좋아요. 업무가 나뉘면 사람도 덜 다치니까요.” 데런은 고삐 자국이 남은 손등을 문질렀다. “마차도 그렇습니다. 한 마리에게만 계속 끌게 하면 결국 쓰러지죠.” 수현은 창밖에서 말이 사료를 먹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서는 말과 사람 모두 쉬어야 했다. 어느 쪽이든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움직일 수는 없었다. *** 키아가 돌아간 자리에 두 장의 내역서가 남아 있었다. 하나는 치료 물품의 실제 사용 목록, 하나는 길드가 지급을 준비한 예산 목록이었다. 메이는 종이 끝을 맞춰 놓았다. “이 둘이 처음부터 따로 있었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요.” “누군가는 편하다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편한 계산이 정확한 계산은 아니니까요.” 메이는 개인 돈으로 구매한 약재의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그날은 카이렌이 고열로 누워 있던 날이었다. 약방 주인은 문을 닫으려다 그녀를 보고 늦게까지 기다려 주었다고 했다. “그때 주인이 그러더라고요. 급하게 쓰지 말고 용량을 다시 보라고.” “좋은 말을 했네요.” “전 급해서 그냥 뛰어왔어요.” 메이는 힘없이 웃었다. 급박한 현장에서 자신이 그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처리했는지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잘못한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확인하는 거예요.” 수현이 말했다. “누군가 구해 달라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 모든 영수증을 정리할 순 없잖아요.” 메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음엔 봉투 하나를 치료실에 두고 영수증을 모아 두겠다고 했다. 그건 누구의 잘못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자신이 했던 일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작은 준비였다. *** 그날 저녁 라비엔의 편지가 북방 회복소에서 도착했다. 다리 치료는 계속되고 있으며 계약 정산 질의에 대한 답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오르카에게는 봄이 오면 자신이 방문을 신청해 보겠다는 짧은 안부가 있었다. 수현은 오르카에게 보낼 봉투를 따로 준비했다. 라비엔의 사생활에 관한 부분은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본인이 보내 달라고 허락한 내용만 옮겼다. 메이가 물었다. “라비엔이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그랬으면 좋겠죠. 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 사람의 선택이에요.” “그럼 수현 씨는요? 돌아갈 길을 찾으면 정말 떠날 거예요?” 수현은 고개를 들었다. 메이는 장난치지 않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그런 질문에 쉽게 답했을 것이다. 지금은 여기서 웃고 울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네. 떠나고 싶어요.” “알아요.” “하지만 여러분이 잘 지내는지 알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건 저도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반드시 같은 곳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 다음 날 나리에게서 K형 장치 수리 이력의 일부분이 도착했다. 놀랍게도 숫자판 안쪽에는 ‘K형 안정 고리 1개, 결함으로 봉인’이라는 기록이 있었다. 봉인 사유는 안전한 분리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카이렌이 착용한 장치일까요?” 메이가 물었다. “번호가 일치하는지 봐야 해요.” 수현이 답했다. 세드나는 수리 장부와 카이렌 동의서의 범위를 비교했다. “다음 조회를 위해서는 카이렌의 착용 기록 번호가 필요해. 지금 제공된 문서에는 유형밖에 없으니까.” “그럼 여기서 멈춥니다.” 수현은 문서 아래에 썼다. ‘K형 결함 봉인 장치 확인. 카이렌 착용 장치와 동일 여부 미확인. 관련자 사생활 보호.’ 그는 잠시 고리의 형태를 떠올렸다. 메이 손목의 징수 고리와 카이렌 손등의 흰 상처. 모양은 비슷했지만 작동 원리와 목적이 완전히 다른 물건들이었다. 닮았다는 이유로 같은 원인을 상상하면 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었다. 메이는 문서를 접어 놓고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제 고리가 조금 덜 무서워요.” “왜요?” “저 숫자가 신의 판결이 아니라 누군가 계산한 값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잘못 계산할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는.” 수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신성한 금속에 적혔다고 해서 모든 숫자가 진실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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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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