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관측소에서 돌아오기 전날, 아델라는 수현을 작은 식당으로 불렀다.
“보존 원장은 읽었으니 이제 끝난 줄 알았는데, 제게 확인할 것이 더 있다더군요.”
“두 가지입니다. 당시 경보가 울린 시각에 누가 현장에 있었는지, 그때 작성된 교대 기록이 어디로 갔는지요.”
아델라는 낡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원장에는 관측기 숫자가 남아 있어도 사람이 남아 있지 않죠.”
“그렇습니다.”
“옛 근무 대장은 감독청이 폐쇄 전 전부 가져갔어요. 그런데 직원들 개인 기록이 몇 장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수현은 다급하게 묻지 않았다. 누구의 개인 기록인지, 어떤 이유로 남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 아델라는 자신이 보관 책임자로서 볼 수 있는 항목을 찾아 주겠다고 말했다.
***
왕도 감독청의 근무 문서 창구는 뜻밖에도 밝고 조용했다.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이 탑 점검을 신청하러 온 기술자였다. 수현이 옛날 교대 기록을 찾는다고 하자 담당자는 창밖을 보았다.
“그 관측소 문 닫은 지 한참 됐는데요.”
“그러니까 오래된 기록을 찾고 있습니다.”
“관측 장비 목록은 이쪽, 근무자 자료는 저쪽. 다만 근무자 개인정보가 있습니다.”
“개인별 주소나 가족 정보는 필요 없습니다. 해당 날짜에 근무 체계가 어떻게 운영됐는지만 확인하려고요.”
담당자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럼 비식별 교대표는 열람할 수 있을지 검토하겠습니다.”
“근무자 성명은 가려 주세요. 사고와 업무 인수만 대조하면 됩니다.”
“그렇게 적어 두겠습니다.”
세드나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수현의 요청을 듣자마자 ‘근거부터 대라’고 했지만, 이제는 어떤 범위라면 권한을 지킬 수 있는지 함께 찾고 있었다.
***
비식별 교대표에는 이상한 공백이 있었다. 밤 열한 시부터 다음 날 새벽 세 시까지, 경보 기록은 연속으로 존재했지만 근무자 인수 표시가 비어 있었다.
“야간조가 없었나요?” 메이가 물었다.
담당자는 고개를 저었다.
“없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교대표가 누락됐을 수 있죠.”
수현은 다른 자료를 찾았다. 그날의 식사 지급 장부와 지붕 점검 일지였다. 식사 지급 장부에는 다섯 명 몫의 수프가 기록됐고, 점검 일지에는 ‘후반조 인계 후’라는 문장이 있었다.
“사람은 있었을 가능성이 높네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왜 근무자 수가 비었을까요?”
아델라가 옛 서류를 넘겼다.
“근무자의 이름보다 기계 번호를 중요하게 본 모양입니다.”
그는 곧 옛날 기술자들이 남겼다는 현장 메모를 하나 찾았다.
[폭풍 경보 이후 전반조 퇴근 지연. 인계표 재작성 필요.]
수현의 눈이 그 문장에서 멈췄다. 퇴근 지연. 자신이 서울에서 보던 단어였다. 여기서는 마법의 탑에서도 똑같이 쓰고 있었다.
***
근무기록 창구를 나오자 세드나가 수현을 불렀다.
“오늘은 네가 기록을 요구하면서도 아주 많은 걸 가렸더라.”
“이름까지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아내야 한다면?”
“그땐 사유를 분명히 해서 범위를 넓혀 신청해야죠. 조사 목적이 바뀌면 열람 범위도 바뀔 수 있으니까요.”
세드나는 웃었다.
“예전에 네가 길드 보급창고에 들어갔을 때는 외부인이 장부를 들여다보는 게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
“그때도 위험했을 거예요. 저는 사전에 허가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규정 보여 달라고 했지.”
“규정 안 보여 주고 화부터 내면 저도 난감해요.”
둘은 웃었다.
세드나는 오래된 서류 담당자들의 편지를 보여 주었다. 관측소가 폐쇄될 무렵 임시 기록 인력에게 지급해야 할 추가 수당이 누락됐다는 진정이었다. 수현은 반가운 마음에 종이를 잡으려다 멈췄다.
“이건 왜 지금 보여 주시죠?”
“사람들이 밤에 교대하지 못했던 이유를 추정하는 자료가 될 수 있어. 다만 정산 담당의 판단이 남아 있지 않아.”
“이건 옛 근무자 임금 문제군요. 우리의 수신 기록과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알아. 그래서 먼저 의논하는 거야.”
수현은 수당 진정의 당사자를 대신해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누락됐다는 주장과 지급 내역이 일치하는지 더 살펴봐야 했다. 지금 벌이는 외부 수신 조사와 구분해 근무 기록의 보존이 필요하다는 의견만 적었다.
감독청 내부 도서실에는 폐쇄 당시 감사 지적 사항이 남아 있었다. 수현은 목차를 훑다가 ‘비상 근무 인계 개선’ 항목을 찾아냈다. 거기에는 경보 때마다 후반조에 이름 없이 일을 더 맡긴 사례가 반복됐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시간 표식이 잘못 적혔을 수도 있겠네요.” 메이가 말했다.
“있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신호가 가짜라는 뜻은 아니에요.” 수현이 답했다.
“그럼 무엇을 확인해야 하죠?”
“같은 시각을 독립적으로 기록한 원천이 더 있는지요. 탑의 자동 시계, 출입 장부, 보존실 인계 시각 같은 것들이요.”
이베른은 별도 목록을 만들었다. 경보 발생 시각은 기계가 자동으로 찍은 시간, 교대표 공백은 사람이 작성한 시간, 운송장 도착은 마차 통행기록의 시간이었다. 세 가지가 같은 시간대를 가리킨다고 해도 쓰인 시계가 서로 달라 곧장 한 줄로 놓을 수는 없었다.
“관측소의 옛 시계는 매일 저녁 종소리에 맞춰 조정했다고 합니다.”
“마차 통행기록은요?”
“날씨에 따라 달라졌어요. 해가 지는 시각을 기준으로 적었죠.”
수현이 한숨을 쉬었다.
“이 세계에도 시간대 문제가 있네요.”
“시간대가 뭔데요?” 메이가 물었다.
“같은 순간을 서로 다르게 적는 문제라고 할까요.”
그는 표의 제목을 ‘기록 시각의 출처’로 바꾸었다. 숫자를 정확히 모으는 것과 서로 다른 기준을 하나로 변환하는 것은 다른 작업이었다.
오후에는 낡은 교대 숙소를 둘러보았다. 현재 직원 숙소로 쓰이지 않는 건물이었지만 문마다 작은 못이 박혀 있었다. 옛 근무자들이 가족 사진이나 교대표를 걸었던 자리라고 했다. 벽에는 희미하게 문장 하나가 남아 있었다.
[다음 사람이 온 뒤에 퇴근할 것.]
메이가 그 문장을 읽고 조용히 말했다.
“다음 사람이 오지 않으면요?”
그 말에 수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오래전에 본 병원의 당직표와 새벽까지 닫지 못한 사무실이 겹쳐졌다.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앞사람을 끝없이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그럼 사람을 더 배치해야죠. 아니면 업무를 멈추고 안전하게 정리할 방법이 있어야 하고요.”
아델라는 그들의 말을 듣더니 건물 안쪽으로 안내했다. 옛 감독청이 썼던 비상 인력 호출용 종이 남아 있었다. 줄을 당겨도 이제는 울리지 않았지만, 종을 치기 위한 인원 배정표는 벽에 있었다.
“당시에는 호출 순번만 있고 응답하지 않았을 때의 대책이 없었네요.”
수현은 표를 가리켰다.
“그럼 후반조가 오지 못하면 전반조가 계속 남았겠죠.”
세드나는 작은 숨을 내쉬었다.
“지금 제7원정대에서도 같은 문제를 고치고 있잖아.”
수현은 카이렌의 새 전령 교대표를 떠올렸다. 그는 호출을 무조건 수락하는 규칙에서 벗어나, 위험을 평가하고 대체자를 마련하도록 바꾸고 있었다. 몇십 년 전 관측소와 오늘의 원정대가 같은 오류를 겪는 것은 놀랍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오래된 일이니까 지금 바로 고칠 수 있는 것도 있겠네요.”
수현은 감독청에 옛 교대 기록의 보존 요청을 제출했다. 지나간 누락 임금을 지금 본인 없이 다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기록을 폐기하지 말라는 요청은 할 수 있었다. 관리관은 예상 밖의 신청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런 것까지 관심을 가집니까?”
“누가 일했는지 모르면, 무엇을 누가 기록했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 답을 듣고 관리관은 보존 요청 접수 도장을 찍었다. 수현은 도장 소리가 이상하게 반가웠다. 한 줄의 기록이 다시 사라지는 것을 막았다는 작은 실감이었다.
***
그날 저녁 데런은 숙소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조용히 말했다.
“기계가 고장 나면 고장 난 이유가 오래 남는데, 사람이 무리한 기록은 사라지네요.”
“기계가 고장 났다고 적은 사람은 누가 남겼는지도 중요한데 말이죠.” 수현이 답했다.
“저도 한 번은 밤새 마차를 몰고 장부에 출근하지 않은 사람처럼 적힌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요?”
“말이 피곤해 보여 대신 쉬게 했는데, 다음 날 감독관이 마부가 근무하지 않았다고 써 놨죠. 말에게 수당을 줘야 한다는 농담이 돌아다녔어요.”
“마부한테도 줘야죠.”
“그때는 농담으로 웃고 넘겼습니다.”
수현은 데런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손등에는 고삐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어떤 노동은 완료한 물건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수행한 사람의 몸에만 남았다.
***
왕립용사길드에서 온 편지는 뜻밖의 안도감을 주었다. 카이렌이 야간 전령 교대표를 고쳤다는 내용이었다. ‘긴급’이라고 적힌 메시지를 모두 대장에게 전달하지 않고, 위급성 판단 항목을 만들었다고 했다.
편지에는 작은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다섯 단계로 나눠진 상황표였다. 불이 나거나 사람이 다쳤을 때만 즉시 호출, 나머지는 다음 근무 시간에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메이가 편지를 읽고 웃었다.
“카이렌이 이렇게 숫자를 잘 세는 줄 몰랐어요.”
“새로운 능력을 발견했네요. 검 휘두르는 것보다 교대표 만드는 게 더 어렵기도 하죠.”
“젠은 아직도 그림에 화살표를 그려 놨어요. 급한 건 이쪽으로 보내라고.”
수현은 그림 아래 구석에 작은 글씨를 발견했다.
[시험 기간 동안 휴식 중 호출된 횟수: 전주 대비 감소.]
단순한 숫자였지만 어쩌면 누군가 밤에 잠들 수 있게 된 증거였다. 그녀가 없는 동안 원정대가 멈추지 않는 것이 좋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빠지면 모든 게 옛날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지금은 그 걱정이 조금씩 사라졌다.
***
그날 밤 세드나가 사라진 인수 표시의 이유를 알아냈다. 관리부가 아니라 관측실의 원래 규정에 있었다.
[폭풍 경보 시 교대 기록은 비상 원장으로 이관하고 근무 장부에 재기입할 것.]
“재기입한 기록은요?” 수현이 물었다.
“없어요. 적어도 보존 목록에는.”
“비상 원장은?”
“지난번 열람한 책과 다른 권입니다. 원래는 관측소 지하 보존함에 있었다고 해요.”
수현은 잠시 침묵했다.
어떤 사건에서는 증거가 거짓이라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두 책에 나누어 쓰고, 한쪽을 다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의 틈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럼 다음 단계는 비상 원장의 보존 경로 확인이네요.”
“네.”
“그런데 그 안에 근무자의 건강 정보까지 들어 있다면 필요한 부분만 봐야 해요.”
“동의합니다.”
***
메이는 낮에 보았던 오래된 교대 숙소를 다시 떠올렸다. 누군가는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 잠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교대자가 오지 않아 빈칸을 남긴 채 장비 앞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
“그 사람들한테 나중에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수현은 잠시 고민했다.
“당신이 일했다는 걸 누군가 제대로 기록했으면 좋았겠다고요.”
“그것만요?”
“그리고 일이 끝났으면 집에 갔어야 한다고요.”
메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차가 작은 돌을 넘을 때 두 사람의 어깨가 함께 흔들렸다. 수현은 기록에 남지 않은 시간을 사람의 잘못이라고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수현은 숙소에서 그날 조사 기록을 마무리했다. 현재 확인된 사실은 이것이었다. 오래전 폭풍 경보 시각에 교대기록 공백이 생겼고, 비상 원장으로 이관했다는 규정은 있지만 재작성한 일반 장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 공백이 그 미검증 수신을 설명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메이가 문을 두드렸다.
“잠이 안 와요?”
“조금만 더 쓰고요.”
“시간 정했어요?”
수현은 벽시계를 보았다. 본인도 오늘 해야 할 일을 어제부터 계속 미루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휴식을 지키겠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이 정작 자기 잠을 반납하는 건 흔한 모순이었다.
“지금 끝내겠습니다.”
“잘됐네요. 저도 차를 끓여 놨어요.”
수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줄에는 추측과 사실을 구분해 적었다.
[근무자 인수 기록 누락: 확인. 폭풍 경보와 관련 가능성: 있음. 누락이 고의였다는 증거: 없음.]
그 아래에 더 적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오늘 밤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바깥에서는 먼 종이 세 번 울렸다. 수현은 그 소리를 세지 않았다. 메이가 가져온 따뜻한 차를 마시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새벽까지 일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지금의 자신이 새벽까지 일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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