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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73화
PAYLUA ORIGINAL · 제73화

73화. 기계가 대신 보낸 말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59자

오프라인 책장
봉인된 기계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통지를 받은 날, 이수현은 허가서보다 점검 보고서를 먼저 읽었다. [서쪽 바닥 하중 약화. 전도 가능성이 있는 금속 지지대 두 곳. 잔류 마력 유무 불명.] 그 뒤에는 굵은 글씨로 적힌 문장이 있었다. [동력 접속 금지. 관람 인원 최대 네 명.] “네 명이면 누가 들어가죠?” 메이가 물었다. “기술자 루세, 시설 관리인 아델라, 보존 전문가 이베른. 그리고 실무 확인을 할 사람 한 명.” “수현 씨요?” 수현은 잠깐 망설였다. 자기는 마법 기술자가 아니었다. 구형 장치가 무슨 소리를 내는지 해석할 능력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서류가 어떻게 작성됐는지 확인하는 사람은 필요했다. “제가 들어가되, 기계에는 손도 안 댈게요. 세드나 씨는 밖에서 시간과 반출품을 기록해 주세요.”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려고 했지만 수현이 먼저 말했다. “메이 씨, 원래 민원은 당신 것이에요. 결과를 알릴 때는 제 해석이 아니라 원문부터 보여 드릴게요.”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다친 사람 나오면 곧바로 알리고요.” 이렇게 역할이 정해졌다. 용사가 없어서 누군가의 대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 기계실 문은 철판 세 장이 포개진 구조였다. 아델라가 첫 열쇠를, 이베른이 보존함의 두 번째 열쇠를 사용했다. 세 번째 열쇠는 기계실 안쪽에 매달린 작은 판에 꽂혀 있었다. 열쇠를 돌리자 먼지가 쏟아졌다. “기계가 꺼져 있는데 왜 열쇠를 세 개나 쓰죠?” “옛날에는 여기서 사람을 가두는 사고가 있었어요.” 아델라가 답했다. “경보가 나면 안에서만 문을 열 수 없게 만들었죠.” 수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위험할 때 탈출을 막는 구조였다고요?” “침입자가 기록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보안 장치였죠. 그래서 폐쇄하면서 바깥쪽 비상 걸쇠를 달았습니다.” “보안과 안전 중에 뭘 먼저 챙길지 아주 오래된 고민이네요.” 루세가 바닥에 차폐 천을 놓았다. 그는 녹슨 단자에 측정기를 가까이 대고도 아무것도 연결하지 않았다. “오늘은 전기처럼 마력을 흘리지 않습니다. 숫자판의 모양만 확인할 거예요.” 장비는 돔 아래에 놓인 뼈대 같았다. 빛을 반사하는 자줏빛 금속들이 사선으로 교차했고 중앙에는 손바닥만 한 원반이 달려 있었다. 원반에는 낯선 자모가 둥글게 새겨져 있었다. *** 이베른은 작은 거울로 원반 안쪽을 비춰 보았다. 가장자리에 깨진 틈이 있었다. 틈 안에는 유리 조각처럼 얇은 판 하나가 끼어 있었다. “이게 고유 서명판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꺼내면 깨질 수도 있어요.” 루세가 손을 내저었다. “지금은 접촉하지 마. 사진을 그려 남기자.” 수현은 종이에 원반의 홈을 옮겨 그렸다. 혼자 그리기 시작했다가 금세 이베른에게 넘겼다. 그녀가 그린 것은 숫자판이라기보다 잘못 그린 꽃이었다. “이런 그림을 증거라고 낼 순 없겠네요.” “왜요? 틀린 그림의 주인을 분명히 적으면 훌륭한 참고 자료입니다.” 이베른이 말했다.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데요.” “칭찬 맞습니다. 출처 불명의 정확한 그림보다 출처가 있는 서툰 그림이 나을 때가 있죠.” 수현은 웃었다. 원반 한쪽에는 ‘내부 되먹임’이라고 번역되는 옛 용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굵은 선 하나가 다른 원으로 돌아왔다. 루세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 회로는 수신된 문장을 한번 되비추는 시험을 했을 수 있겠어.” “그럼 지난번 미검증 답장도 여기가 만든 메아리일 수 있나요?” “그 가능성이 더 커졌지. 그렇다고 자동 확정은 아니고.” *** 기계실을 빠져나온 뒤, 루세는 수현에게 전선 대신 작은 원판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오래된 장비에서 쓰던 자동 경고문 원판, 다른 하나는 새로 만든 시험용 복제판이었다. “둘의 차이를 알아보겠어?” 수현은 표면을 자세히 보았다. 문자 위치가 조금 달랐고 낡은 판에는 한쪽 모서리가 깨져 있었다. “깨진 건 알겠는데, 그 외엔 모르겠어요.” “그게 정상이지. 중요한 건 원판을 읽었다는 사실과, 원판이 실제로 신호를 내보냈다는 사실은 다르다는 거야.” “왜요?” “건물 벽에 비상 탈출 안내문이 있다고 누가 대피했다는 뜻은 아니잖아.” 수현은 납득했다. 장비 설명에 경고문이 적혀 있다는 사실은 기록판의 문장과 닮은 이유를 알려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 경고문이 작동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루세는 상태표를 그렸다. 입력이 들어오면 자동 경고문을 붙이는 모드, 수신되지 않아도 자기 상태를 기록하는 모드, 내부 시험 신호가 돌아와 경고를 다시 기록하는 모드. 셋은 겉으로 남기는 문장이 비슷하다고 했다. “이 중 하나라도 실제 시험 당시 켜져 있었는지 알아야겠네요.” “맞아. 그런데 지금 그걸 확인할 원래 설정판이 없지.” “봉인된 고유 서명판은요?” “번호 식별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작동 상태를 바로 말해 주진 않아.” 수현은 서둘러 공책에 두 칸을 그렸다. ‘문자 출처’와 ‘작동 상태’. 흔히 하나로 묶어 버리는 정보를 나눠 놓자 생각이 조금 맑아졌다. 아델라는 벽에 걸려 있던 폐쇄 당시 안전 공고를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장치 재가동 금지’라는 문구와 함께 시설의 잔류 경고음 기록이 붙어 있었다. 루세는 그 공고가 이번의 안전 조건과 일치한다고 확인했다. “그럼 장치를 다시 켜면 바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유엘이 물었다. “아니.” 루세의 대답은 단호했다. “잔류 마력의 성질도 모르는 걸 켜는 건 조사도 실험도 아니야. 그냥 위험한 행동이지.” 유엘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질문은 좋아. 실제로 하자는 뜻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물어.” 수현은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기술자와 위험한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하는 조수. 그런 사람들이 함께할 때 실험은 조금 더 믿을 만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자 관측소 앞에 주민 두 사람이 와 있었다. 그들은 관측소가 다시 열려 커다란 빛이 난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되어 왔다고 했다. 아델라는 직접 출입 금지선을 보여 주었다. “오늘은 기계를 켜지 않았습니다. 원장과 안전 문구를 확인했습니다.” 한 주민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왜 마차가 세 대나 왔죠?” “원장을 읽는 사람들도 먹고 자고 이동해야 하니까요.” 수현이 대답했다. 주민은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예전에 여기서 밤새 종이 울렸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다 잠을 못 잤어요. 또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싫습니다.” 수현은 그 말을 듣고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관측소의 경보음이 마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조사한 기록은 아직 없었다. “걱정하시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 주실 수 있을까요? 시끄러웠던 시각이나 당시 피해가 있었다면요.” “우릴 조사하겠다는 겁니까?” “아뇨. 저희 실험의 영향을 확인하려는 겁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아델라가 민원 접수처를 안내하자 조금 누그러졌다. 수현은 향후 시험을 하게 되면 주민들에게도 소음을 알리고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그날 밤 수현은 장치의 자동 문구보다 주민의 짧은 말이 더 오래 기억났다. ‘잠을 못 잤다.’ 관측소가 무엇을 관측했는지와 별개로, 그 결과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오래된 기술의 안전성을 확인하려면 기계의 상태뿐 아니라 주변 사람의 삶도 살펴야 했다. *** 잠시 뒤 임시 작업대에 앉았을 때 아델라는 낡은 쪽지를 꺼냈다. “폐쇄할 때 남긴 시설 설명입니다.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 안에는 한 문장이 있었다. [안전 경고 수신 시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없음’이라는 고정 문구를 회신함.] 수현의 가슴이 철렁했다. 옛 수신 기록의 문자열 앞부분과 너무 비슷했다. “그럼 그 답장은 사람의 답장이 아니었네요.” 메이가 말했다. 수현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오래된 경고문에 자기 기대를 실어 놓았다는 사실이 아팠다. 하지만 아직 기록판 문장 전체를 이 경고문에서 만들 수 있다는 근거는 없었다. “앞부분은 이 경고문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아요. 뒷부분도 확인해 봐야 해요.” 루세가 두 문장을 종이에 나란히 적었다. 첫 번째는 안전 경고 회신의 고정 문구였다. 두 번째는 미검증 기록판의 문장이었다. 두 문장 모두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달랐다. “정말 외부에서 온 거라면 이런 공통 문장을 왜 썼을까요?” 메이가 물었다. “상대도 같은 규칙을 썼거나, 내부 경고가 붙어서 기록됐거나, 아예 같은 기계가 다 만들었거나.” 루세가 차례로 손가락을 접었다. “세 가지 다 남겨 둬야 해.” *** 오후에는 관측소 밖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아델라의 조수 유엘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받이를 피하다 발목을 접질렀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걸음을 제대로 디딜 수 없었다. 메이가 붕대를 들고 달려왔다. “치유술을 쓸까요?” 유엘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저었다. “마력을 쓰면 비용이 나오지 않나요?” 그 말에 메이의 손이 멈췄다.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고리를 한 번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이번 치료 비용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정확히 확인하고 정해야 해요. 우선 상처를 살피고, 움직이지 않게 하죠.” 수현은 유엘을 평평한 돌 위에 앉혔다. 메이는 무리하게 치유술을 쓰지 않고 부종을 확인한 뒤 냉찜질과 고정을 했다. 아델라는 부상 경위를 장부에 적었다. “지붕 위험이 있다는 걸 오늘 아침에도 말했었는데.” 유엘이 중얼거렸다. 수현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누구에게요?” “감독청 점검원에게요. 기록실만 안전하면 된다고 했죠.” “시설을 쓰는 사람은 기록실 안에만 있지 않아요.” 수현은 사고 접수서에 지붕 물받이의 흔들림과 이전 신고 사실을 적도록 제안했다. 관리인 아델라는 필요한 보수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오래된 기록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종이를 지키느라 사람을 다치게 하면 남길 사람이 없어졌다. *** 그날 저녁 세드나가 왕도에서 온 두 번째 문서를 읽었다. 보존 원장의 끝 부분을 필사한 공식 사본이었다. [기계실 경고 문구 표준판은 각 관측소에 배포됨. 외부 대역 확인으로 분류된 항목 중 일부는 표준판 자동 삽입 후 인계될 수 있음.] “이제 당시 남아 있던 문장 일부는 설명할 수 있겠네요.” “예. 그런데 그 흔적 전체가 내부 반사였는지는 아직 몰라요.” 수현은 서류 가장자리에 두 가지 항목을 따로 적었다. ‘문자열 출처: 안전 경고문 가능성 높음.’ ‘수신 경로: 미확정.’ “왜 자꾸 둘을 나눠 적어요?” 아델라가 물었다. “문장이 익숙하다고 보낸 사람이 같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른다고 모두 제 친구는 아닌 것처럼.” 이베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장과 경로. 내용과 작성자. 장소와 보존 책임. 수현이 쪼개 놓은 항목들은 답을 늦추기도 했지만, 틀린 답을 내기 어렵게 했다. *** 아델라는 방문자들의 안전 점검표를 따로 보관했다. 수현은 원본을 돌려주며 장비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항목에 확인 표시를 했다. 관측소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새 사고가 없었다는 사실도 기록에 남았다. 화려한 발견은 없었지만, 무사히 귀가할 수 있다는 점은 조사 결과의 일부였다. *** 수현은 늦은 저녁 홀로 여관의 창에 기대어 서울을 떠올렸다. 그 미검증 문구를 읽었을 때 잠깐은 누군가 자신을 찾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 상상은 따뜻했지만 뾰족했다. 붙잡고 있을수록 손바닥을 찔렀다. 메이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돼요?” “네.” 메이는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유엘이 스스로 적은 사고 경위서였다. “한 줄을 더 써 달래요. 아프다고 말했다는 사실요.” “왜요?” “앞으로 지붕에 올라가는 사람이 자기도 아프면 내려올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대요.” 수현은 종이를 보았다. 바람 한 번에 날아갈 것 같은 얇은 종이였다. 그러나 유엘에게는 자기 몸의 신호를 기록할 첫 번째 문서였다. “좋은 문장이네요.” “오늘 중계실에서 찾은 것보다요?” “종류가 달라요. 이건 누가 보냈는지 확실하잖아요.” 메이는 웃었다. 수현은 오래된 표준 경고문을 공책에 다시 옮겨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 썼다. [모르는 말을 아는 말로 바꾸지 않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면, 아직 모른다고 말한다.] 창밖에서 관측소의 기울어진 금속 날개가 바람에 한번 울렸다. 들을 수 있는 소리였지만 그 소리가 누구에게 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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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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