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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72화
PAYLUA ORIGINAL · 제72화

72화. 세 자리 숫자의 함정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365자

오프라인 책장
자료 열람 승인이 도착했을 때 수현은 기뻐하기보다 먼저 허가 기간을 읽었다. 단 하루, 일출부터 해 질 무렵까지. 원장 반출 금지. 필사 가능 범위는 요청한 세 자리 식별자 생성 규칙과 지정 기간의 시험 표제에 한정됐다. “하루면 충분할까요?” 메이가 물었다.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래서 오늘 해야 할 질문을 셋으로 줄였습니다.” 수현은 종이를 펼쳤다. 첫째, 세 자리 표식은 무엇을 뜻하는가. 둘째, 기록판 두 장의 생성 시점은 같은가. 셋째, 관측소가 남긴 값이 실제 외부 응답의 내용인가 아니면 내부 장치가 만든 표시인가. 루세는 손가락으로 첫 항목을 두드렸다. “셋째는 오늘 결론 못 낼 수 있어.” “그럼 결론 못 냈다고 쓰죠.” “그 말이 이렇게 시원할 때가 있다니까.” *** 관측소 문이 열리자 어제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작은 체구의 젊은 남자였고, 왼쪽 소매에 잉크가 묻어 있었다. “유엘입니다. 감독청에서 보존 자료의 열람 절차를 참관하라고 보냈어요.” 아델라가 소개했다. “원장 관리자는 저지만 서지 표기의 옛 규칙은 유엘이 더 잘 압니다.” “정말요?” “책으로만요.” 유엘이 솔직하게 답했다. “실제 장비를 조작해 본 적은 없습니다.” 수현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책에서 배운 규칙과 낡은 기계가 하는 일은 가끔 달랐다. 둘을 구분할 사람을 만난 셈이었다. 원장은 사람 키만 한 두꺼운 책이었다. 금속 모서리마다 작은 갈고리가 붙어 있었고, 보존탁에는 책등을 받치는 나무 쐐기가 놓였다. 이베른이 손을 씻은 뒤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가 울었다. 마른 나뭇잎을 건드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문제의 기간은 여기입니다.” 유엘이 날짜 줄을 짚었다. 수현은 바로 숫자를 찾아내려 하지 않고 표제부터 읽었다. [시험 기입 번호의 끝 세 자리는 주차·관측기·순번을 합친 검산 표기임.] “끝 세 자리라고요?” “네. 그 자체가 고유 식별자는 아닙니다.” 수현은 펜을 멈췄다. 지난 며칠 사이 모두가 따라오던 숫자 세 개가, 사실은 한 장의 기록을 특정하지 못하는 값이었던 것이다. *** 유엘은 빈 종이에 작은 표를 그렸다. 첫 번째 칸에는 주차, 두 번째 칸에는 관측기 번호, 마지막 칸에는 그날 처리된 묶음의 순서를 적었다. 셋을 정해진 방식으로 합하면 끝 세 자리가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값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수현이 말했다. “많습니다.” “같은 주에 다른 관측기가 같은 값을 만들 수도 있고.” “맞습니다.” “그럼 다른 원장에서 앞서 확인한 숫자와 똑같은 걸 찾아도 같은 시험이라고 단정하면 안 되는군요.” “거기까진 정확합니다.” 메이가 의자에 깊숙이 앉았다.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찾은 줄 알았는데….” “중요해요. 숫자 하나가 답이 아니라는 걸 찾았으니까.” 수현도 실망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회의 자료를 검토하다 같은 사업자 등록번호가 다른 회사에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오류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어떤 숫자는 겉으로 보기에 똑똑했지만 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부정확했다. “전체 식별자에 필요한 요소는 뭘까요?” 유엘이 목록을 읽었다. “관측소의 고유 서명, 연도표, 하루 안의 정식 묶음 번호, 그리고 검산 세 자리요.” “그중 남아 있는 건요?” “지금은 마지막 세 자리와 보관소 기호뿐입니다.” 루세가 혀를 찼다. “그럼 절반도 안 되네.” “절반이라는 말도 정확하진 않아요.” 수현이 말했다. “어떤 정보가 빠졌는지가 더 중요하니까.” *** 그들은 날짜가 겹치는 열여섯 장의 시험 항목을 찾았다. 같은 검산값은 무려 네 번 나왔다. 메이가 손으로 종이를 가렸다. “이건 우리 기록이 아니죠?” “아직 모릅니다.” 수현은 항목마다 오른쪽 끝의 작은 문양을 비교했다. 한 장에는 비가 오는 구름, 한 장에는 파도, 나머지 두 장에는 동그라미가 겹친 모양이 있었다. 아델라는 문양들이 장비 상태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파도는 신호가 되돌아온 경우, 구름은 누출 경고, 겹친 동그라미는 두 계통의 비교 시험이었다. “외부 계열 응답처럼 분류된 흔적이 겹친 동그라미라면 희망이 있겠네요.” 메이가 말했다. “무슨 희망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루세가 말했다. “두 장치가 비교했다는 뜻이지, 한 장치가 다른 세계에 닿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수현은 목이 바짝 말랐다. 서울로 돌아갈 가능성을 좁히는 일과, 자신에게 달콤한 해석을 차례로 지우는 일이 거의 같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 허가 시간을 계산하는 사이 유엘이 작은 계산판을 내밀었다. 세 자리 식별자를 만드는 방법을 실습할 수 있는 나무판이었다. 위쪽에는 주차와 관측기를 표시하는 칸이, 아래쪽에는 검산값을 옮기는 홈이 있었다. “이거 직접 돌려 보실래요?” 수현이 판을 잡았다. 수학 문제에 자신 없었던 학창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제가 틀리면 기계가 고장 나진 않죠?” “나무판이라 괜찮습니다.” 그는 임의로 세 조건을 정했다. 수현이 계산대를 밀자 마지막에 숫자 세 개가 나타났다. 유엘이 다른 조건을 정했을 때도 똑같은 숫자가 나왔다. “와.” “놀라셨죠?” “기계가 너무 부정확한 건 아닌가 싶어서요.” “검산은 원래 고유번호 대신 쓰라고 만든 게 아닙니다. 종이를 옮기면서 숫자가 틀어졌는지 확인하는 용도예요.” 수현은 장부의 용도를 잘못 읽으면 무엇이든 엉뚱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출석표를 급여 명세서라고 믿는다면, 출석한 날마다 돈이 들어왔다고 오해하는 것처럼. “그러면 원래 전체 식별자는 어떻게 생겼어요?” 유엘이 나무판 아래 작은 패를 꺼냈다. “고유 서명, 날짜, 장비 일련번호, 처리 순서가 붙고 마지막에 검산 세 자리가 와요. 보관 중에는 앞부분이 밀봉돼 있어도 검산은 밖에 적곤 했죠. 상자를 잘못 옮겼는지 확인하려고요.” 수현은 기억 속 앞서 본 보존판을 떠올렸다. 그 판에서 보인 세 자리는 신호 내용이 아니라 상자 겉면에 붙인 검사표였을 수도 있었다. “그럼 정말 필요한 정보는 오래전에 다른 종이로 나뉘어 있었군요.” “그럴 수 있습니다.” 이베른은 새로운 조사표를 만들었다. 열여섯 장 후보를 각각 ‘검산 일치’, ‘관측 기간 일치’, ‘보존 경로 일치’로 구분했다. 첫 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은 네 장이었다. 두 번째를 더하자 두 장으로 줄었다. 세 번째는 어느 쪽도 확인되지 않았다. “후보가 둘이면 둘 중 하나가 답인가요?” 메이가 물었다. “둘 다 아닐 수도 있어요.” 수현이 대답했다. 이베른은 미소 지었다. “이제 기록원이 되어도 되겠는데요.” “월급이 있으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곳 월급은 기록이 남습니다.” 모두 웃었다. 잠시 후 원장을 덮는 과정에서 책등 안쪽의 작은 접착 흔적이 발견됐다. 유엘은 누군가 낱장을 떼어 간 게 아니냐며 눈을 크게 떴다. 이베른은 접착 흔적을 살핀 뒤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당시 파손된 페이지를 보강하려 붙인 종이일 수도 있다고 했다. “원장이 원래 몇 쪽인지 아는 분이 있나요?” 수현이 물었다. “폐쇄 당시 인계표가 있어야 합니다.” 아델라가 답했다. “그럼 원장의 쪽수가 맞는지부터 대조해 볼까요?” 그들은 새로 열린 페이지 대신 인계 목록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원장 자체의 쪽수와 별지의 장수가 분리돼 있었다. 현재 원장 본문은 원래 분량과 맞았다. 다만 별지 두 장은 이관 당시 이미 별도 보관함으로 옮겼다는 표기가 있었다. “누가 종이를 뜯어 간 흔적은 아니라는 거네요.”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 한 줄 때문에 오전의 조사가 헛되지 않았다. 어떤 악의를 상상한 뒤 증거를 찾는 게 아니라, 증거를 찾은 만큼만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점심이 지난 뒤 수현은 유엘에게 과거 업무의 흐름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관측기에서 나온 기록은 담당 기술자가 일지에 적고, 보존실이 날짜를 붙여 넘기고, 감독청이 요약표를 받아 갔다. 세 자리 검산값은 그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졌다. “그러면 수신이 먼저이고 검산은 나중이군요.” “대개는요.” “오래된 판에 남은 세 자리만 보고 수신 시각을 확정하면 안 되겠네요.” “그렇죠. 나중에 인계된 날짜가 적혔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때 메이가 손을 들었다. “잠깐요. 최초 민원의 봉투는 삼항-칠로 시작하잖아요. 그건 끝 세 자리가 아닌데요?” 유엘이 잠깐 생각했다. “‘삼항-칠’은 보관함을 뜻하는 표제일 수도 있어요. 동일한 숫자처럼 보여도 생성 규칙이 전혀 다릅니다.” 수현은 허탈하게 웃었다. “오늘 숫자의 친척이 너무 많네요.” 이베른은 두 번호를 다른 줄에 적었다. 메이의 민원 봉투는 보존함 분류로, 관측소 기록판은 검산값으로. 서로 닮은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번호 체계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렇게 적고 나서야 원장을 훑는 눈이 조금 덜 조급해졌다. 처음부터 원하는 답이 적혀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으니, 뜻밖의 다른 정보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상 경고가 있었던 밤에 관측소가 두 차례 장치를 껐고, 다시 켰을 때마다 다른 검산 방식을 사용했다는 메모였다. 루세는 메모를 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한 장치의 앞뒤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도 서로 다른 설정에서 나온 값일 수 있어.” “나중에 확인할 항목이 하나 더 늘었네요.” “맞아. 오늘은 결과가 늘지 않고 질문만 늘었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이 정확해지면 나중의 답도 정확해질 것이다. 그녀는 그 기대만큼은 지우지 않았다. *** 원장 뒤쪽에서는 사건과 직접 관계없어 보이는 작은 메모가 나왔다. [비 오는 날 열쇠 세 개를 모두 보존실로 옮길 것. 관측 야간조에 식사 제공.] “이런 건 왜 시험 원장에 써 놓았죠?” 데런이 물었다. 아델라가 물었다. “예전에는 보존실 문이 비에 젖으면 안에서 걸렸대요. 열쇠를 옮기지 않으면 밤새 못 나가는 일이 있었죠.” “야간조 식사는요?” “경보가 울리면 조리실까지 못 내려갔거든요.” 수현은 그 줄을 천천히 읽었다. 누군가 정확한 관측을 하려면 그날 배가 고팠는지도 중요했다. 장비만큼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오래된 기술 문서에서도 근무자에게 밥을 주라는 문장이 끝에 남아 있었다. “당시 기록 작성자 이름이 있나요?” “감독관 서명은 있습니다.” 페이지의 마지막에는 ‘에린 소렐’이 아니라 ‘조감독 토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현은 그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에린이 담당자였다고 하더라도 이 원장을 직접 작성한 사람은 아니네요.” “그 기록과 지금 이 원장을 연결할 증거부터 찾아야 합니다.” 이베른이 말했다. *** 정오가 지나자 관측소 외벽에서 비명이 들렸다. 출입문 위에 달린 오래된 쇠판이 바람에 떨어질 뻔한 것이다. 아델라가 경고선을 치고 방문자 모두를 뒤쪽 통로로 보냈다. 루세는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측정기를 내려놓고 작업대 전원을 차단했다. 수현은 허가된 시간을 절반 가까이 잃게 됐다. “이렇게 멈춰도 되나요?” 유엘이 물었다. “장비가 떨어지는 건 아직 시험 조건에 없으니까요.” 수현이 대답했다. 구름이 걷힌 뒤 다시 들어갔을 때 그들은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일부 항목은 사진 같은 탁본으로 남기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베른은 재료를 대기만 해도 종이가 손상될 수 있다며 거절했다. “필사로 충분합니다. 아까 읽은 목록은 저도 확인했어요.” 수현은 읽을 수 있는 범위만 옮겨 적었다. 부족한 정보가 있다고 원본을 훼손해도 된다는 허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 종료 시각 직전, 유엘이 마지막 표를 발견했다. 전체 식별자를 만들 때 관측소의 고유 서명은 시험을 시작하는 날마다 새로 생성했지만, 그 생성 방식은 본관의 봉인된 작은 번호판에 보존한다는 내용이었다. “번호판이 남아 있나요?” 아델라의 표정이 굳었다. “봉인된 장비라면 기계실에 있을 겁니다. 그런데 거긴 출입 금지예요.” “안전 점검을 먼저 받으면 열 수 있나요?” “가능은 합니다. 다만 오래 걸릴 겁니다.” “그럼 신청할게요.” 수현은 마지막 페이지에 열람 종료 시각을 적었다. 세 자리 값만으로는 답장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신 실제로 대조할 수 있는 전체 식별자를 복구할 경로가 생겼다. 관측소 계단을 내려갈 때 메이가 말했다. “오늘은 전진한 것 같아요, 후퇴한 것 같아요?” “전진했죠. 우리가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났으니까.” “수현 씨는 이런 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네요.” “전혀요. 속으로는 속상해 죽겠어요.” 메이가 웃다가, 수현의 얼굴을 보고 조용해졌다. 수현도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제가 집을 찾아간다면, 남의 집 문을 열어 놓고 여기가 맞다고 우길 수는 없잖아요.” 두 사람은 빈 손이 아니었다. 원장에는 답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쓰여 있었다. 그날 밤 수현의 공책에는 작은 제목이 하나 더 생겼다. [다음 질문: 봉인된 고유 서명판을 누가, 언제 마지막으로 확인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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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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