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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8화
PAYLUA ORIGINAL · 제68화

68화. 전령이 쉬는 날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30자

오프라인 책장
제7원정대의 첫 번째 휴무 대체 훈련은 시작부터 실패했다. “전령 담당이 오늘 쉬는 날입니다!” 젠이 소리쳤다. 카이렌은 천막 밖에서 멈췄다. 평소라면 용사에게 명령서를 가져오던 사람이 없으니 직접 본부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와 대원을 깨워 출정을 준비했을 것이다. 모든 일을 빨리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숨을 고르고 물었다. “급한 출정입니까, 일반 연락입니까?” “모릅니다. 전령이 없으니까요.” “그럼 먼저 확인합시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주변 대원들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카이렌은 조금 민망했다. 세 달 전만 해도 자신은 질문을 한 번 더 하는 사람을 느린 대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수현에게 전해진 소식은 이틀 뒤였다. 카이렌의 편지에는 그날 일어난 일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본부에 도착했을 때 긴급이라고 표시된 문서는 사실 창고 수리 날짜를 알려 주는 일반 공지였다. 그 공지를 전달하려고 원정대의 휴무 대원을 깨울 필요는 없었다. [전령 담당은 그날 낮까지 잤고, 다음 날 본인이 공지를 접수했습니다.] 카이렌이 썼다. 수현은 그 문장을 읽고 웃었다. “그래서 전쟁이 난 것처럼 소란스럽지 않았네요.” 세드나가 물었다. “저쪽에서 또 도움을 요청했어?” “아니요. 결과를 알려 준 거예요. 상담 계약은 끝났으니까 읽을지 말지는 제가 정할 수 있고요.” “네가 너무 바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도요. 사실은 누가 저 대신 쉬라고 말해 줄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수현은 편지를 접었다. 일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건 대단한 선언보다 이런 평범한 하루를 늘리는 일인지도 몰랐다. *** 오후에는 카이렌이 자기 손등에 남은 흰 고리 흉터에 관한 질의를 보냈다. 북방 회복소에서 본 K형 안정 고리의 표식과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그는 몇 주 전부터 과거 진료기록을 확인하고 싶다고 요청해 왔다. 이번에는 자신의 서명과 열람 범위를 직접 적었다. [본인의 당시 진료 기록 중 장비 착용 여부 및 의식 소실 기간에 대한 부분만 확인하고자 합니다. 제3자의 병력은 열람하지 않습니다.] 수현은 세드나에게 문서를 보여 주었다. 세드나는 정식 접수처를 안내할 수 있지만 결과를 대신 받을 권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수현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카이렌 씨가 직접 신청했으니까 답장도 본인에게 가야죠.” “맞아. 그리고 K형 고리의 K가 그의 이름이라는 추정은 이미 틀렸어.” “네. 장비 유형이죠. 흉터만으로 그 장치를 착용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수현은 회신 끝에 짧은 말을 적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다만 답을 듣기 전까지는 어떤 결론도 미리 떠안지 마세요.] *** 그날 저녁 원정대는 가까운 마을의 작은 다리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받았다. 개울물이 불어나 돌다리 틈에 나무가 걸려 있었다. 주민들은 용사가 와서 힘으로 나무를 치워 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카이렌은 즉시 출정하지 않았다. 먼저 길드에서 긴급 구조인지, 마을 유지보수인지 구분했다. 인명 위험은 없었고 다른 통로도 열려 있었다. 그래서 방패 기사의 부상 회복 상태와 대원들의 휴게 시간을 확인한 뒤 다음 날 안전 인력을 배정했다. “지금 바로 치우면 더 빨리 끝날 텐데요.” 마을 이장이 말했다. “밤에는 물살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민이 건너지 못하도록 표지부터 세우겠습니다.” 그는 나무를 베기보다 위험을 먼저 막았다. 주민들은 처음엔 불만스러워했다. 영웅이 왔는데 왜 일을 미루느냐고 했다. 카이렌은 사정을 설명했고, 다음 날 새벽이 아니라 해가 뜬 뒤에 수리팀과 함께 작업했다. 데런은 말에게 먹이를 주던 중 안전줄과 손수레를 챙겨 왔다. 젠은 사람들을 우회로로 안내했다. 일이 끝났을 때 카이렌은 누구의 공로인지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그날 밤 메이가 받은 보고서는 짧았다. [다리 통행 정상화. 야간 위험 작업 없음. 개인 부상 없음. 다음 근무 전 휴식 확보.] 메이는 그 문장을 수현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예전이라면 카이렌 혼자 밤새 강에 들어갔을 거예요.” “지금은요?” “지금은 용사님이 사람을 살리려면 먼저 자기 몸도 지켜야 한다는 걸 알아요.” 수현은 미소 지었다. 그 변화가 무엇보다 기뻤다. *** 하지만 좋은 소식만 있지는 않았다. 보급 담당 창고에서 일부 긴급 출고를 처리하지 못해 상처 치료용 붕대가 잠시 부족했다. 새로운 본인 확인 절차가 너무 엄격해져 야간 대체 담당자가 서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문제는 예상할 수 있었어요.” 메이가 말했다. “맞아요. 그래서 시험 운영이 필요한 거죠.” 수현이 답했다. “그럼 실패한 건가요?” “실패했다고만 하면 내일도 똑같이 막히겠죠. 왜 대체자가 없었는지, 누가 승인할 수 있는지 바꾸면 돼요.” 메이는 대원들에게 임시 절차를 제안했다. 야간 응급 출고는 본인 확인을 유지하되 대체 담당자 두 명 중 한 사람을 지정하고, 다음 날 원본을 대조하는 방식이었다. 최종 채택은 현장 운영 책임자들이 결정했다. 카이렌이 회신에 적었다. [빠르게 하는 것과 아무 확인 없이 하는 것은 다르다고 배웠습니다. 이번에는 늦게라도 고쳐 보겠습니다.] 수현은 그 한 줄을 읽고 웃었다. 예전의 그녀는 이세계에 노무사의 자리가 있을까 의심했다. 지금은 그들이 자기들의 기준을 만들고 있었다. *** 카이렌이 보낸 편지에는 휴무 대체 훈련의 뜻밖의 결과도 적혀 있었다. 전령 담당이 쉬는 동안 임시로 그 일을 맡은 젠이 같은 길을 세 번 오갔다가 발목을 삐끗했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래요?” 메이가 편지를 읽으며 말했다. 수현은 글씨를 따라갔다. 긴급 공지와 일반 공지의 배달 경로가 달랐고, 길드 부서마다 서로 다른 양식에 서명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한 부서에서 문서가 접수된 사실을 다른 부서가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 “이러면 전령이 하루 쉬어도 대체하는 사람이 다칠 수 있죠.” 수현이 말했다. “젠은 괜찮대요?” “붕대를 감고 하루 쉬기로 했대요. 본인이 괜찮다고 적었지만 실제 치료 결과는 제가 추정하지 말아야겠죠.” 메이는 조용히 웃었다. 수현이 늘 하던 말이어서였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건 다를 수 있었다. 메이는 곧장 젠에게 진료소를 방문했는지 확인하는 편지를 보냈다. 며칠 뒤 젠의 답장이 왔다. 그는 발목 상태를 확인받았고, 궁수 훈련 대신 천막 안에서 출고 장부를 정리했다고 했다. 카이렌은 전령의 업무를 누가 대신할지만 정하지 않고 업무 자체가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살펴봤다. 결국 하루에 여러 번 다녀오던 일반 공지는 지정 시각에 모아 받도록 바꾸기로 했다. [전령이 빠지면 누가 그만큼 더 뛰어야 하는지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카이렌이 썼다. 수현은 한참 미소 지었다. 일을 맡은 사람을 늘리기 전에 불필요한 일을 줄이는 것. 서울에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오래된 관행은 누가 시켰는지조차 잊힌 채 그대로 남았다. “용사님이 매번 영웅답게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남들이 안 뛰어도 되는 방법을 찾는군요.” 메이가 말했다. “그게 더 오래 가는 영웅 아닐까요?”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에는 브레그 감독관의 공개 의견서가 도착했다. 새 규칙 때문에 창고에서 물품 지급이 늦어진 날이 있었다며 보완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고만 했을 사람이 이번에는 지급이 실제로 지연된 횟수와 환자에게 미친 영향을 나눠 적어 보냈다. “수현 씨.” 메이가 놀라 말했다. “이거 브레그 감독관님이 쓰신 거 맞아요?” “도장까지 있는데요.” “처음 만났을 땐 이런 분이 아니었잖아요.” “사람도 변하죠. 좋은 쪽으로요.” 물론 그가 원정대 운영을 완전히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브레그는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이유로 일부 절차를 줄이자고 제안했다. 카이렌과 대원들은 어떤 검사를 생략할 수 있고 어떤 확인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회의를 열었다. 가장 힘든 점은 누구의 시간을 아껴 줄 것인지였다. “처음엔 수현 씨가 이런 표를 다 만들어 줬는데.” 메이가 말했다. “지금은 본인들이 더 잘 알 거예요. 현장을 매일 겪는 사람들이잖아요.” 수현은 답장을 쓰다가 멈췄다. 본인의 의견을 적을 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판단을 대신하는 문장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규칙은 일을 방해하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안전하게 일하도록 돕기 위해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 지연 사례를 기록해 보완해 주세요.] 그녀는 그 문장 뒤에 또 적었다. [무엇을 줄일지는 그 일을 하는 사람과 책임자가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그날 밤 카이렌은 메이에게 짧은 별도 소식을 보내 왔다. 자신이 이전처럼 모든 위험을 대신 떠안고 싶은 순간이 아직 많다고 했다. 부상자가 생기면 쉬라는 말을 하면서 정작 자기는 괜찮다고 여기는 습관도 남아 있었다. [제가 남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제게도 적용하려고 합니다.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메이는 그 문장을 수현에게 보여 주었다. 수현은 웃으면서도 마음이 찡했다. “어렵겠죠.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변화예요.” 메이가 물었다. “수현 씨도 자신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나요?” 수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책상에는 밤늦게까지 풀지 못한 질문들이 가득했다. 메이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서 내일 오전엔 정말 쉬는 거예요.” “알았어요.” “서류 읽지 말고요.” “그럼 가볍게 공책만….” “안 돼요.” 수현은 두 손을 들었다. 이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꾸 자신의 말을 돌려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누군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과, 누군가 자기를 쉬게 해 준다는 사실이 이제 함께 존재했다. *** 휴식 일정표를 만든 수현은 막상 아침이 되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서성였다. 손이 저절로 공책을 찾았다. 그녀는 창가에서 공책을 내려놓고 물 한 잔을 마셨다. 메이가 문을 두드렸다. “산책할래요?” “오늘은 일 이야기를 안 하기로 했는데요.” “그러니까 산책이죠.” 둘은 시장을 지나 강가로 걸었다. 수현은 처음으로 왕도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과 강을 건너는 작은 나룻배를 바라봤다. 메이는 약재값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수현도 중계 기록을 꺼내지 않았다. 한참 뒤 수현이 말했다. “서울에 돌아가면 이런 날을 좀 더 자주 만들고 싶어요.” “돌아갈 수 있으면 꼭 그러세요.” “그럼 메이 씨는요?” “전 고리가 풀리기 전에도 쉴 거예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문제가 끝나야만 쉴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휴식은 오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해가 높아질 때까지 강을 바라봤다. 돌아오는 길에 수현은 달력을 다시 확인했다. 그날 아침 비워 두었던 칸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드물게 계획대로 끝낸 일이었다. *** 밤이 깊었을 무렵 르네에게서 통지가 왔다. 제7원정대의 과거 출정 장부를 정리하던 길드 담당자가 K형 안정 고리와 관련된 장비 반납표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동일 규격 장비 한 점, 회수 위치 표기 불명확. 대상자 신원 관련 자료는 별도 보호 기록에 보존.] 수현은 서둘러 문장 끝에 표시했다. ‘동일 규격’은 카이렌이 그 장비를 썼다는 뜻이 아니다. ‘회수 위치 불명확’도 장비가 사라졌다는 의미와 같지 않았다. 그녀는 카이렌에게 알리고 정식 열람 신청 결과를 기다리자고 적었다. 이따금 사람들은 빈칸을 상상으로 채우고 싶어 했다. 특히 마음이 불편한 질문일수록 그랬다. 하지만 카이렌에게 필요한 건 겁을 주는 추리가 아니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었다. 메이는 편지를 접으며 말했다. “수현 씨, 용사님이 이제 처음보다 훨씬 잘 쉬어요.” “그럼 잘됐네요.” “대신 수현 씨는 요즘 제대로 못 쉬죠?” 수현이 말문이 막혔다. 자기 방 책상에는 귀환 기록과 원정대 편지, 메이의 비용 자료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 것까지 닮을 필요 없는데요.” 메이가 말했다. 수현은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다음 날 오전의 기록원 방문은 한 시간 뒤로 미뤄도 큰일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일정표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내일 오전: 휴식.] 누군가가 대신 적은 동의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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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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