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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7화
PAYLUA ORIGINAL · 제67화

67화. 돌아오지 않은 글자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55자

오프라인 책장
수현은 시험장 입구에서 계약서보다 두꺼운 안전 안내문을 받았다. “제가 연구원이 된 건 아니죠?” 루세가 장갑을 끼며 말했다. “오늘도 관찰인일 뿐이야. 시험을 중단할 수는 있지만 장치를 건드려서는 안 돼.” “그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왕도 서쪽 폐전신탑 아래의 작은 작업실은 며칠 전과 달랐다. 낡은 마석 접속부가 교체됐고, 선반 위에는 서로 다른 문양의 기록판이 두 장 놓여 있었다. 한 장은 송신용, 다른 장은 수신용이었다. 그 사이에는 평범한 돌벽이 있었다. “이게 다른 세계로 통신하는 장치입니까?” “아직은 같은 건물 안에서만 시험할 거야.” “알고 있어요. 매번 물어서 죄송합니다.” “매번 대답해도 결과는 같을 거야.” 수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초조한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서울의 작은 사무실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물건들, 그리고 그 물건들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밤마다 떠올랐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면서도 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묻는 날이 있었다. *** 시험은 지루할 만큼 천천히 진행됐다. 루세는 송신판에 일회용 숫자 여섯 개와 짧은 문장을 적었다. 이베른이 봉투에 넣어 봉인한 다음, 별도의 담당자가 기록번호를 적었다. 수신판을 감시하는 사람은 송신 내용을 볼 수 없었다. “검증을 위해서 이렇게 나누는 거예요?” 메이가 물었다. “네. 같은 사람이 모든 단계를 알면 결과가 새더라도 모를 수 있으니까.” 수현이 답했다. “그럼 연구원들이 서로 못 믿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서로를 의심한다기보다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거죠.”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물품 수령 서명이 도용됐을 때,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안 믿는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확인하는 절차가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시험에서 송신판의 글자들이 수신판에 거의 완벽하게 나타났다. 마지막 글자 하나가 흐려졌을 뿐이었다. 작업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려는 순간 루세가 손을 들었다. “아직 박수 치지 마.” “왜요?” “수신판이 벽 건너의 신호를 받은 건지, 이 방의 공명음을 그대로 비춘 건지 구분하지 못했어.” 루세는 기록을 남기고 전원을 끊었다. 수현은 그가 시험을 멈춘 이유를 이해했다.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야말로 사람들은 덜 확인하고 싶어졌다. *** 두 번째 시험에는 차폐석을 더했다. 원래라면 송신판과 수신판 사이의 내부 공명을 약하게 만드는 돌이었다. 하지만 마법이란 물리 실험처럼 일정한지 아직 수현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용어를 모르는 만큼 이상한 점을 그냥 넘기지 않으려 했다. “차폐석이 정말 신호를 막는다고 누가 검증했나요?” 루세는 대답 대신 오래된 시험표를 보여 줬다. “열 번에 아홉 번 정도 내부 반사를 낮췄어. 다만 옛 장치에선 편차가 크지. 그래서 오늘은 이것만으로 외부 신호를 판별하지 않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더 긴장하게 돼.” 차폐석을 놓자 첫 번째보다 훨씬 적은 글자만 나타났다. 숫자 여섯 개 중 두 개가 빠졌고, 한글자처럼 보이던 기호가 거꾸로 뒤집혔다. “글자가 사라졌네요.” 메이가 말했다. “외부 통신에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야.” 루세가 말했다. “애초에 외부로 보낸 것도 아니니까. 이건 내부 전달 모델의 손실을 측정한 거야.” 수현은 공책에 그 말을 적었다. ‘받지 못했다’와 ‘보낸 적 없다’는 전혀 달랐다. 그녀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할 때도 그 둘이 종종 섞였다. 세 번째 시험에선 전원을 연결하지 않은 수신판에서 희미한 문양이 나타났다. 작업실이 술렁거렸다. 누군가는 외부 응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잠깐.” 루세가 다시 손을 들었다. “이 판은 지난번 시험에 사용한 기록판이야. 잔류 잉크 반응부터 확인하자.” 조사 결과 문양은 이전에 새겼던 숫자의 일부였다. 작업실은 조용해졌다. “이런 걸 외부 응답이라고 발표했다면 큰일 날 뻔했네요.” 수현이 말했다. “크게 될 뻔했지.” *** 수현은 잠시 복도로 나왔다. 문가에서 기다리던 세드나가 따뜻한 물을 건넸다. “너는 정말 기대하는 얼굴이었어.” “보였어요?” “응. 저 안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수현은 잔을 양손으로 감쌌다. “이젠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먼저 뛰어요. 그러고 나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말리는 게 일이 되고요.” “그건 약하다는 뜻이 아니야.” “알아요. 그래도 피곤하네요.” 세드나는 한참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처음엔 네가 이 세계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자신감이 보였거든.” “전 처음부터 겁났는데요.” “지금은 알아. 네가 고치려던 건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 네가 모든 걸 대신 처리하는 게 아니었어.” 수현은 잔을 내려다봤다. “고맙네요. 그 말.” “그러니까 오늘 너도 네 선택을 지켜. 마음이 급하다고 위험을 떠안지 말고.” “네. 사람 실험 안 할 겁니다.” “알아.” *** 오후에는 작업실 안전회의가 열렸다. 루세는 첫 번째 결과가 내부 복제 성공일 가능성이 크며 두 번째는 차폐 상황에서 불완전했고 세 번째는 잔류 반응이었다고 정리했다. 어느 결과도 외부 세계로 신호가 갔다는 증거가 되지 못했다. “그럼 다음엔 뭘 할 건가요?” 이베른이 물었다. “시험판을 완전히 새것으로 바꾸고, 수신 장치가 없는 빈 공간을 대조군으로 넣겠습니다. 이상 신호가 나오면 그 시점에 중단하고, 재검증을 요청하죠.” “외부 계열 주소는요?” 수현이 물었다. “주소의 의미부터 기술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주소를 대입하면 어디로 보내는지도 모르는 시험이 돼요.” 수현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위험한 기술을 다루는 사람에게 재촉하는 것은 쉬웠다. 실패의 대가를 다른 사람이 치르지 않게 하는 건 어려웠다. 그날 저녁 작업실 문을 닫기 전, 메이가 수현에게 말했다. “돌아가지 못했다고 실망해요?” “많이요.” “그런데 저는 오늘 조금 안심했어요. 수현 씨를 또 아무 설명 없이 데려갈까 봐 무서웠거든요.” 수현은 메이를 바라봤다. 자기는 빨리 돌아갈 방법을 찾고 싶었고, 메이는 수현이 또다시 강제로 이동하는 걸 걱정하고 있었다. 둘의 바람은 반대가 아니었다. “다음에 문이 열리더라도 제 발로 걸어갈게요.” “약속이에요.” *** 시험장 안쪽에는 작은 관람석이 있었다. 그런데 의자가 딱 세 개뿐이었다. 수현은 의아해했다. “오늘 실험을 보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왜 의자는 세 개예요?” “보는 사람이 많으면 실험이 공연이 되거든.” 루세가 말했다. “그럼 실패했을 때 멈추기 어려워져.” 수현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사고가 난 뒤 작성된 보고서를 수없이 읽었다. 위험을 알면서도 기계를 멈추지 못한 사연이 많았다. 일정, 비용, 상사의 기대,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 그런 이유들은 고장 난 기계를 정상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럼 오늘은 제가 박수를 치지 않아도 되겠네요.” “제발.” 그들이 장치 앞에서 할 첫 작업은 실험이 아니라 점검이었다. 수현은 체크리스트를 읽었다. 작업자 교대 명단, 중단 권한, 차폐석 상태, 긴급 탈출 경로. 루세는 종이 한 장을 들고 모든 내용을 확인했다. 메이가 손을 들었다. “중단 권한은 누구에게 있나요?” “장치를 다루는 사람 전부.” 루세가 답했다. “외부 관찰인이 이상 신호를 발견하면 즉시 중단 요청을 할 수 있고, 그때 원인을 확인하기 전까지 재시동하지 않아.” “책임자가 허락하지 않으면요?”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조건보다 높은 명령은 없어.” 수현은 루세를 바라봤다. 현장에서는 말처럼 지키기 어려운 규칙이었다. 그러나 시작도 전에 모두가 동의하고 기록했다면 한 사람의 반대가 작업을 멈추게 만들 수 있었다. 첫 시험 전 루세는 실제로 빈 수신판에 한 줄을 새겼다. [이 장치는 아직 사람과 물체의 이동 안전성을 증명하지 않았다.] “기계한테 경고하는 건가요?” 메이가 물었다. “사람들한테.” 수현은 웃었다. 아무리 오래된 마법 설비라도 고장이 아니라 사용자의 기대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었다. 잠깐 쉬는 동안 다른 연구원인 나드가 다가왔다. 그는 차폐석을 다루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지난번 사고 이후 밤근무를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나드가 말했다. “젊으니까 하루쯤 더 일해도 된다고요. 그런데 마석 불빛이 두 개로 보이기 시작해서.” “그럼 진작 쉬셨어야죠.” 수현이 말했다. “쉽게 말할 수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루세가 말을 받았다. “이제는 기준에 넣었어. 시야 이상이나 손떨림이 있으면 즉시 교대하도록.” 나드는 부끄러워하는 대신 고마워했다. 수현은 제7원정대의 진료소와 이곳의 작업실이 생각보다 비슷하다고 느꼈다. 현장이 다르면 위험도 달랐지만, 쉬지 못하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었다. “용사든 연구원이든 피곤하면 똑같군요.” “둘 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루세가 말했다. 그때 수현은 코웃음을 쳤다. “저도 그런 편이었나 보네요.” “지금은 좀 나아졌어.” 그들은 웃었다. 시험 기록에는 큰 진전이 없었지만 작업자의 안전 기준이 보강되고 있었다. 수현은 그 사실을 별도 메모에 남겼다. 외부 통신이 언젠가 가능해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몸을 망가뜨리면 성공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는 수신판을 지우는 절차를 지켜봤다. 오래된 문자 잔류가 다음 시험에 섞일 수 있으므로 기록을 옮긴 뒤 판의 상태를 독립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베른이 작은 표식을 두 장의 종이에 나눠 적었다. “원본 하나로만 보존하면 안 되나요?” 수현이 물었다. “종이가 타면 둘 다 사라지니까요.” “그렇다면 보존처도 나눠야겠네요.” “맞습니다. 사본을 두 장 만들고 같은 서랍에 넣어 두는 건 안전한 백업이 아닙니다.” 수현은 그 말을 귀환 신청서에도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의사와 동의 기록이 한 부서의 장부에만 남는다면, 다시 누군가의 편한 해석에 맡겨질 수 있었다. 그녀는 르네에게 중복 보존의 필요성을 물었다. 르네는 정식 신청서를 제안했다. 개인정보 노출을 줄이면서 서로 다른 보관 담당에게 독립된 사본을 남기는 절차였다. 오늘 시험은 외부 통신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일의 기록은 오늘보다 더 정확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 수현은 작업실의 작은 벽난로 앞에서 기록판을 말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판에는 그날 작성된 시험 번호가 적혀 있었다. 전날의 번호와 비슷했지만 같지는 않았다. “번호 하나만 달라져도 다른 시험이 되는군요.” “그래야 같은 결과를 두 번 측정했다고 착각하지 않아.” 루세가 말했다. “저도 요즘 비슷한 걸 배워요. 같은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 들었다고 두 사람이 직접 본 건 아니더라고요.” 루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 내부에서 확인한 오류를 다음 날 팀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다가왔지만 메모를 남겨 놓으면 다음 사람이 이어받을 수 있었다. 수현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 지금은 퇴근하세요.” “네가 나한테까지 그 말을 해?” “직업병입니다.” 루세는 장갑을 벗었다. 문을 나서는 그에게 나드가 내일의 실험을 대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루세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그대로 나갔다. 수현은 웃었다. 오래된 장치를 고치는 사람도 조금씩 쉬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메이는 빈 작업실을 둘러봤다. “오늘은 글자가 제대로 건너가지 않았는데도 좋은 일이 있었네요.” “네. 나쁜 결과가 나오면 사람을 몰아붙이는 대신 다음에 뭘 고칠지 알게 됐잖아요.” 두 사람은 작업실 문을 닫았다. *** 밤에 루세가 실험 로그를 전해 왔다. 마지막 줄에는 새 기호가 있었다. [외부 계열 표지 검증용 모의 주소 생성 승인. 실제 외부 전송은 보류.] 그 아래 한 줄이 더 쓰여 있었다. [구형 장치 작동 이력 중, 내부 송신 없이 수신판에 잔류 반응을 남긴 사례 1건. 해당 기록의 원본 보관처 재조회 필요.] 수현은 펜을 멈췄다. 이것도 외부 수신 증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누가 어떤 실험을 했는지 확인할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기록을 접고 조용히 웃었다. “글자가 돌아오지 않는 걸 확인했는데, 질문은 더 많이 돌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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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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