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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57화
PAYLUA ORIGINAL · 제57화

57화. 용사가 작성한 휴가 계획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37자

오프라인 책장
카이렌의 첫 휴가 계획은 두 줄이었다. [날짜: 내일.] [사유: 쉴 예정.] 이수현은 종이를 읽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전의 카이렌이라면 휴가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쉬겠다는 사실만 적어 내면서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걱정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사유를 적지 않아도 됩니까?” 카이렌이 물었다. “적어야 한다고 정해진 규정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개인적인 사정을 굳이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긴급 출동이 생기면요?” “교대 담당자를 지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카이렌은 곧바로 젠과 데런의 이름을 적었다. 그때 젠이 옆에서 손을 들었다. “저는 모레 가족 편지를 받으러 가기로 했는데요.” “아.” 카이렌의 펜이 멈췄다. 수현은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이제 원정대는 카이렌이 책임지는 곳이었다. 팀원들끼리 협의할 수 있는 문제에 외부인이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잠시 뒤 데런이 말했다. “저는 오전만 맡을 수 있습니다. 오후에는 마차 수리를 맡기로 했거든요.” 카이렌이 근무표를 다시 펼쳤다. 오르카가 후방 상황 보고를 맡고, 젠이 편지를 받으러 가기 전까지 연락 체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멀리 나가지 않는 비전투 대원이 빈 시간의 긴급 연락을 맡겠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한 번씩 자기 일정을 말하고 나서야 내일 근무표가 완성됐다. “그럼 이대로 하겠습니다.” 카이렌은 조심스럽게 웃었다. “제가 없어도 되는군요.”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좋죠. 책임자가 자리를 비웠을 때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볼 기회니까요.” “전 항상 제가 있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조직은 책임자한테도 위험해요.” 카이렌은 그 말을 다시 근무표에 적을 것처럼 진지하게 들었다. *** 제7원정대의 서른 날 시험 운영 평가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브레그 감독관은 지난 한 달간 기록한 자료를 한꺼번에 달라고 요구했다. 수현이 별도 자문 계약이 끝났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브레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는 결국 우리가 보고서를 제대로 쓰는지 봐 주지 않겠다는 건가?” “보고서에 들어갈 사실을 이미 대원들이 정리하고 있어요. 제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과거 계약 기간의 업무까지입니다.” “지금 와서 선을 긋는다?” “원래부터 있었던 선을 다시 설명하는 거예요.” 카이렌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감독관님, 평가 자료는 제가 내겠습니다.” 브레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수현에게 일을 넘기지 않았다. 자료에는 치료 지연 건수, 보급품 수령 확인율, 계획된 휴식 중 실제 지킨 시간, 부상자가 스스로 복귀에 동의했는지 여부가 포함돼 있었다. 일부 기록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빈칸도 함께 제출하겠습니다.” 카이렌이 말했다. “빈칸이 많으면 성과가 나빠 보일 텐데.” 브레그가 걱정했다. “확인하지 못한 사실을 채우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수현은 뒤편에서 몰래 웃었다. 자신이 하던 말을 카이렌이 더 짧고 단단하게 말하고 있었다. 회의 중 데런은 물품 출고 기록에 서명하지 않는 대원이 늘었다고 보고했다. 수현은 놀랐다. 확인 절차를 도입했는데 서명이 줄었다니. “왜죠?” “예전에는 물건을 받기 전에 이름부터 적었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받아 본 다음에 적으니까, 늦게 도착한 물건의 서명이 아직 없어요.” “그거라면 좋은 변화네요.” “그런데 감독관님은 출고 확인율이 떨어졌다고 하십니다.” 브레그가 헛기침했다. 수현은 표에서 기준을 살폈다. 출고 예정량을 분모로 삼은 것과 실제 전달량을 분모로 삼은 것이 섞여 있었다. “기준이 다르면 비교가 안 됩니다. 이전 수치도 동일한 방식으로 다시 계산해야 해요.” 카이렌이 즉시 적었다. “예정량과 전달량 구분.” 감독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용사를 이렇게 장부에 밝은 사람으로 만들 줄은 몰랐군.” 카이렌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전장에서도 누가 남았는지 숫자를 셉니다. 물품도 같은 원리 같습니다.” 그 말에 원정대가 잠시 조용해졌다. 카이렌은 싸움에서 물러나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세는 법을 배운 셈이었다. *** 수현은 카이렌의 휴가 계획을 본 뒤 멀지 않은 작은 시장을 걸었다. 그곳에서 원정대 대원들의 가족에게 보낼 물품을 살 수 있었다. 젠은 오래전에 여동생에게 보내기로 했던 작은 나무 장난감을 골랐다. 데런은 마차 바퀴를 수리할 못을 계산했다. “휴가를 가면서도 이런 걸 사야 합니까?” 수현이 물었다. “젠의 동생이 생일이라네요.” 데런이 대신 답했다. “그건 좋은데요. 카이렌 씨는요?” 카이렌은 한참 물건을 둘러보다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다. “저는 특별히 필요한 게 없습니다.” “쉴 때 하고 싶은 일은요?” “글쎄요. 예전엔 쉬는 날이 없어서 생각을 못 했습니다.” 수현은 카이렌의 얼굴을 바라봤다.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빠른 결정을 내리던 사람이 자기 휴가에는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슬펐다. “그럼 작은 것부터 해 보죠. 아무 목적 없이 걸어 본다거나, 먹고 싶은 걸 골라 본다거나.” 카이렌은 잠시 고민하다 시장의 끝에 있는 빵집을 가리켰다. “저 가게에서 사는 꿀빵을 한번 먹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럼 그걸 사세요.” “비싸 보이는데요.” “오늘은 영웅의 식비가 아니라 본인 돈으로 사는 간식이잖아요.” 카이렌이 조심스럽게 지갑을 꺼냈다. 수현은 속으로 웃었다. 마물 앞에서 겁먹지 않는 사람이 빵집 계산대 앞에서 저렇게 망설일 줄이야. 빵집 주인이 작은 꿀빵 하나를 건넸다. 카이렌은 한 입 베어 물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달콤한 줄 몰랐습니다.” “마음에 드나요?” “네. 그런데 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먹어 봤을까요?” 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자기 삶의 사소한 기쁨을 미뤄 온 사람에게는 그런 질문이 아플 수 있었다. 그날 오후 카이렌은 훈련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천막 옆 벤치에 앉아 젠이 건넨 오래된 여행책을 읽었다. 수현은 멀리서 그 모습을 봤다. 카이렌은 종종 책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어려운 훈련이 될 수 있었다. 저녁에 그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휴가 중에도 세상은 돌아가는군요.” “네. 놀랍죠?” 수현이 미소 지었다. *** 오후에는 카이렌의 개인 진료 기록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북방 회복소에서 확인한 K형 안정 고리는 장비 분류 기호였고, 카이렌의 손등 흉터와 동일한 물건에서 생겼다는 증거는 없었다. 소생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메이는 카이렌에게 새 통지가 왔다고 말했다. “본인 신청 범위 안에서 과거 진료 기록과 현재 손등 상태를 비교하는 면담이 가능하대요.” “언제입니까?” “휴가 다음 날부터요.” 카이렌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럼 휴가를 미룰까요?” 수현이 웃음을 참았다. “의료진이 급하다고 했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쉬고 나서 결정하셔도 되겠네요.” 카이렌은 제 손등을 내려다봤다. 흰 고리 모양 흉터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흘이 다른 사람의 손에서 어떻게 기록됐는지, 언젠가 알게 될지 모른다. 다만 지금 그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휴가를 버릴 필요는 없었다. “예전에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그날 제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면 용사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기억이 없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수현은 말했다. “모른다는 상태에서 더 조심하면 되는 거죠. 우선 몸부터 돌보고요.” 카이렌은 어깨를 조금 폈다. “그럼 휴가는 계획대로 쓰겠습니다.” “좋습니다. 그게 오늘 가장 좋은 결정 같네요.” *** 며칠 뒤 카이렌은 휴가가 끝난 뒤의 첫 일정을 대원들과 상의했다. 누군가 한꺼번에 밀린 일을 가져올까 봐 걱정한 젠이 말했다. “쉬는 동안 쌓인 서류는 용사님만 보시면 안 됩니다.” “그럼 누가 봐야 하죠?” 카이렌이 물었다. “급한 것과 그렇지 않은 걸 먼저 나누면 됩니다.” 데런이 답했다. 그들은 큰 탁자에 서류를 펼쳐 놓았다. 출정 요청 세 건 중 한 건은 이미 다른 부대가 처리했고, 하나는 일반 순찰로 변경돼 있었고, 나머지 하나만 실제로 다음 근무에서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다. “전부 오늘 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카이렌은 쓰게 웃었다. 오르카가 말했다. “예전에는 출정 명령이 오면 발신 날짜도 안 보고 달려갔죠.” “그래서 한 번은 이미 끝난 작전을 또 가려 했습니다.” 젠이 덧붙였다. 모두 웃었다. 수현은 그들 곁에서 허가 없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이 요청이 아직 유효한지는 누가 확인하나요?” “이번부터는 상황실이요.” 카이렌이 말했다. “정확히는 전령이 임무 상태를 확인하고, 저는 위험 수준을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좋네요.” 수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후에는 원정대의 새 견습병이 휴가 날짜를 잘못 적었다며 당황해했다. 카이렌은 종이를 살펴보고 말했다. “틀렸으면 고치면 되지. 실수했다고 네 휴식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견습병은 놀란 눈으로 용사를 올려다봤다. 카이렌은 한참 뒤에야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수현을 돌아봤다. “제가 예전엔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죠?”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 하시는 거겠죠.” 카이렌은 새 근무표에 적힌 견습병의 날짜를 직접 정정했다. 잉크가 마르는 동안 견습병은 꼭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수현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을 바꾸는 건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쉬어도 되는 날을 지워 버리지 않는 아주 작은 결정일 수도 있었다. *** 원정대 밖에서는 그들의 시험 운영을 흉보는 사람도 있었다. 한 방문 감독관은 용사가 휴가를 쓰는 동안 부하들이 나태해질 거라며 빈정거렸다. 카이렌은 화를 내지 않고 지난 며칠의 출동 기록을 보여 주었다. “필수 업무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비상 연락 체계도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용사가 쉬는 걸 부하들이 알면 권위가 떨어지지 않나?” 카이렌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제가 쉬었다는 걸 알아야 대원들도 쉬어도 된다고 믿을 겁니다.” 방문 감독관은 그 말을 믿기 어렵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수현은 카이렌이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무조건 자신이 참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원이 잠을 자는 동안 마을을 지키는 일은 영웅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서로 역할을 나누는 준비에서 시작됐다. 카이렌은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었다. 카이렌은 휴가 계획서 끝에 날짜를 다시 적었다. 쉬는 날도 자신의 인생에 실제로 있었던 날이라고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현은 그가 서명하는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 밤이 되자 메이는 수현에게 작은 종이 봉투를 건넸다. 안에는 제7원정대 대원들이 각자 한 줄씩 적은 메모가 있었다. [수현 씨가 없을 때도 인수 확인을 두 번 하겠습니다. — 데런] [다쳤으면 다쳤다고 말하겠습니다. — 젠] [회복 중이라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 오르카] [오래된 부채가 새 생명을 결정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 메이] 마지막에는 카이렌의 글씨가 있었다. [다음에 오시면 제가 휴가를 썼는지 먼저 확인해 주십시오.] 수현은 손가락으로 종이 끝을 눌렀다. 웃으면서 읽었는데도 목이 메었다. 이들은 이제 자신이 있지 않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 사실이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때 메이가 물었다. “정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예요?” “네.” 수현은 답했다. “여러분이 좋아진 것과 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건 둘 다 진짜예요.”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두 가지를 다 응원할래요.” 수현은 봉투를 품에 넣었다. 그날 밤 카이렌은 다음 날 출동 요청이 들어와도 자신을 깨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긴급 상황 발생 시 교대 담당자가 판단하고, 자신의 판단이 반드시 필요한 때에만 연락하라는 조건을 덧붙였다. 수현은 그 문장을 읽고 아주 오래 웃었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에게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부재중 자동응답을 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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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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