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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53화
PAYLUA ORIGINAL · 제53화

53화. 목소리 없는 편지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34자

오프라인 책장
쉬는 날 아침, 이수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정확히는 일과 관련된 종이를 읽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 계획은 여덟 시쯤 실패했다. 숙소 문밖에서 종이 봉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수현은 이불을 걷다가 멈췄다. 받으면 일을 하게 될 것이 뻔했다. 무시하면 하루 종일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할 것도 뻔했다. 그녀는 이불 안에서 세 번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때 옆방에서 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현 씨, 오늘은 쉬는 날이죠? 제가 대신 봉투를 받아 두기만 할게요!” “읽지는 마세요!” “그럼 쌓아만 둘게요!” 듣기만 해도 불안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수현은 고개를 다시 베개에 묻었다. 이렇게 누워 있는 시간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자신이 싫었다. 그녀는 원래 서울에서도 휴무일에 사무실 메일을 몇 번씩 확인했다. 누가 부탁하면 일단 도와줄 방법부터 찾았다. 그러다 몸이 지치면 자신보다 더 바쁜 사람이 많다며 넘어갔다. 카이렌에게 했던 말이 돌아왔다. 두 시간쯤 쉬어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고. 정작 자신에게 그 말을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낮이 지나서야 수현은 마당에 나왔다. 메이는 나무 의자 위에 봉투를 얌전히 쌓아 두었다. 세 통 가운데 하나는 익숙한 공식 도장이었고 다른 두 통은 발신자가 없었다. “처음 것만 접수증이고, 나머지는 제가 건드리지 않았어요.” “고마워요.” “열어도 되나요? 궁금해서요.” “오늘은 안 열 겁니다.” 메이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네. 쉬는 날이거든요.” 수현은 장담했다. 다만 그 뒤 오 분 동안 봉투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 괴로워 보여, 메이가 웃다가 눈물을 훔쳤다. *** 다음 날 오전 두 사람은 공식 서류부터 확인했다. 고대 민원 중계실의 제3연락기록반 자료가 일부 보존돼 있다는 통보였다. 나머지 익명 편지 두 통은 별도 접수 기록이 없었다. 서체도 봉투도 달랐다. 첫 번째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소리를 찾지 마라. 멈춘 편지는 목소리가 없다.] 두 번째에는 작은 숫자 두 개만 있었다. [3 / 7] “누가 장난치는 걸까요?” 메이가 말했다. “가능하죠. 하지만 내용과 발송 경로가 일치하는지는 확인할 수 있어요.” 수현은 봉투를 뒤집었다. 하나에는 오래된 밀랍이 묻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최근 왕도 우편국이 쓰는 엷은 실이 붙어 있었다. 수현이 구분해 기록하자 세드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봤다. “두 사람이 보냈을 수도 있고, 한 사람이 다른 방법으로 보냈을 수도 있지.” “둘 다 아직 추정입니다.” “이제 내 말을 먼저 고치는군.” “직업병이에요.” 세 사람은 기록원에 편지를 그대로 가져가지 않았다. 익명 발신자의 개인정보도 보호할 필요가 있었고, 허락 없이 편지를 공개 자료로 등록하면 보존된 기록과 섞일 위험이 있었다. 수현은 내용을 옮겨 적되 출처를 '미확인 개인 전달'로 표시했다. 이베른은 종이에 쓰인 문구를 읽더니 오래된 접수 장부를 찾아왔다. “소리가 없는 편지라는 말이 완전히 낯설진 않군요.” 수현의 손끝이 멈췄다. “여기서는 그런 편지가 실제로 있습니까?” “과거 원거리 통신 장치에서 소리 자료와 문자 자료를 구분했습니다. 귀환이나 소환을 의미하는 문구는 아니에요. '목소리가 없다'는 건 수신인의 음성 인증이 없었다는 업무 표기였지요.” “그럼 편지 한 장으로 사람을 확인할 수 없다는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수현은 안심과 실망을 동시에 느꼈다. 익명의 조언자가 비밀을 모두 알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정체도 모르는 사람의 편지로 자기 신원을 증명할 생각은 없었다. “3 / 7이라는 표기는요?” “기록 번호일 수도 있고, 보존함 칸 번호일 수도 있습니다. 맥락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메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늘 그렇게 끝나는군요.” “전 좋은 답이라고 생각해요.” 수현이 말했다. “모른다고 말하는 건 나중에 정정할 자리를 남겨 두니까.” *** 수현은 서랍 속 편지를 만지작거리다가 메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연습 삼아 서로에게 편지를 써 볼까요?” “지금 같이 있는데요?” “받는 사람이 당장 옆에 있어도, 종이에 적으면 다르게 보일 수 있어요. 대신 서로 읽어도 되는 것만 적기로 해요.” 메이는 신이 나서 펜을 들었다. 수현은 한참 고민하다 종이에 적었다. [오늘 함께 빵을 먹어서 좋았습니다. 당신이 쓰지 않은 약값을 본인이 모두 부담할 필요가 없는지 끝까지 확인해 주세요.] 메이는 편지를 읽고 뺨을 부풀렸다. “정말 편지에도 업무 이야기를 써야 해요?” “아.” 수현은 자신이 쓴 문장을 보며 웃었다. 메이는 종이를 뒤집고 커다란 글씨로 한 줄을 적었다. [오늘 같이 빵을 먹어서 좋았어요. 내일도 먹을래요?] 수현은 한 번 더 읽었다. “이쪽이 훨씬 낫네요.” “그렇죠? 편지는 이렇게 써야죠.” 메이는 수현의 펜을 빼앗아 책상 끝에 놓았다. 쉬는 날도 아닌데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잠시 뒤 메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수현 씨가 어디 있는지 모르시겠죠?” “아마 그럴 거예요.” “많이 걱정하실 텐데.” “그렇겠죠.” 수현은 종이 끝을 만졌다. 아무리 말을 아껴도 걱정이 사라지진 않았다. 서울에서 그녀가 연락 없이 사라졌다면 누군가는 경찰을 찾고, 누군가는 병원을 돌아보고, 누군가는 그날 상담 예약표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제가 마음대로 괜찮을 거라고 말하면 안 되겠네요.” 메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도, 정말 괜찮은지는 모르니까.” 수현은 메이를 바라봤다. 전에 같으면 메이는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무조건 잘될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제는 모른다는 말을 함부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 말이면 충분해요.” 수현이 답했다. 그날 밤 수현은 서랍 속 편지를 다시 꺼냈다. 안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지만, 다급한 마음으로 절차를 건너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언젠가 편지가 닿는다면 무엇을 증명해야 할지를 적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 누가 이 편지를 정말 보냈는지, 받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약속. 그 목록을 적고 나서야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좋은 편지를 보내려는 게 아니라, 누군가 자신이 보낸 편지를 믿을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것이었다. *** 오후에 수현은 왕도 우편국으로 갔다. 발신자를 찾아내겠다고 하면 거절당할 걸 알았다. 그래서 물은 것은 익명 편지에 찍힌 배송 표식의 의미였다. 창구 직원은 장부를 확인하더니 세 번째 집배 구역을 가리켰다. “이 실은 이 구역에서만 씁니다. 누구에게서 받았는지는 공개할 수 없어요.” “필요 없습니다. 발신 기록이 존재하는지만 확인해 주세요.” “하나는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편국에서 취급한 물건이 아닙니다.” 수현은 작은 수수료를 내고 공식 확인서를 받았다. 봉투 하나가 정상 배송망에 실렸다는 사실만 적혀 있었다. 메이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게 도움이 될까요?” “나중에 누가 이 편지를 근거로 위험한 곳에 가자고 할 때, 그 사람이 실제 보냈는지 물을 수 있잖아요.” “수현 씨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군요.” “저는 사람의 말을 믿고 싶어요. 그래서 어떤 부분이 확인된 말인지 나눕니다.” 거리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낡은 제과점 처마 아래 잠시 비를 피했다. 빵 굽는 냄새가 골목에 퍼졌다. 수현은 문득 서울의 동료들이 생각났다. 그녀가 사라진 뒤 맡았던 사건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휴대폰에는 아직 읽지 못한 문자들이 있을까. 사무실 화분은 누가 물을 주고 있을까. 그녀는 무심코 가방 속 휴대폰을 만졌다. 이미 전원이 꺼진 지 오래였다. 꺼진 기계가 고향의 시간을 증명해 줄 수는 없었다. “저도 편지를 보내고 싶네요.” 수현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누구에게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요. 제가 살아 있고,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고요.” 메이는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답이 올지 모르더라도 써 볼 수는 있잖아요.” 수현은 눈을 들었다. “그럴까요?” “저도 예전에 길드에 편지를 썼잖아요. 누구한테 닿을지 모르고요.” 맞는 말이었다. 다만 사람을 소환한 봉투를 안전한 편지 배달 서비스로 취급해선 안 되었다. 수현은 메이에게 그 차이를 설명했다. 보내는 건 종이일 수 있어도, 주소를 어디에 남길지, 누가 읽을지는 당사자가 결정해야 한다고. “그러면 수현 씨 편지에는 뭘 쓸 거예요?” “아주 짧게요.” 그녀는 빗소리를 들으며 고향 사람들에게 보낼 문장을 머릿속에 적어 보았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찾아갈 방법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제 연락이 닿으면 확인 질문부터 해 주세요.’ 거기까지 적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예전에는 휴가를 미루면서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안 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알 것 같았다. *** 수현은 우편국을 다시 지날 때 문득 창구 옆에 놓인 반송 서류함을 보았다. 편지들이 되돌아오는 이유는 다양했다. 주소가 불분명한 경우, 받는 사람이 거절한 경우, 이미 이사한 경우. 반송되었다고 반드시 누군가가 보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라비엔 씨의 편지도 그렇게 돌아왔을까요?” 메이가 말했다. “가능하죠. 하지만 실제로 어느 구간에서 막혔는지는 그분의 반송 기록을 확인해야 해요.” “제가 대신 신청하면 될까요?” “라비엔 씨의 편지라면 먼저 그분께 물어보세요.” 메이는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찾아낸 라비엔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이 모든 편지를 공개해도 된다는 허락은 아니었다. 수현은 우편함 위의 작은 표지판을 읽었다. '받지 못한 편지에도 주인이 있다.' 처음엔 장식적인 문구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편지가 어디로 갈지 정하는 일과 그 속을 열어도 되는 일은 분명히 달랐다. *** 다음 아침 메이는 익명 편지 두 통을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 수현은 원본을 꺼내지 않고 자신이 작성한 내용 요약만 보여 주었다. 편지는 모두 누구의 소유인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수현이 함부로 찢거나 변경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발신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먼저 본인이 보냈는지 확인할 방법부터 묻겠죠.” 수현은 말했다. 사람을 믿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아무에게나 중요한 결정을 맡길 순 없었다. *** 기록원의 마감 시간 직전, 이베른에게서 보조 통지가 왔다. 제3연락기록반의 남은 색인 가운데 ‘3 / 7’이라는 표기가 정확히 한 번 나왔다. 다만 그 숫자는 원격 실험을 뜻하는 부호가 아니라, 오래된 목차의 '제3항, 7번 보존함' 위치였다. “너무 간단하네요.” 메이가 말했다. “누군가 일부러 찾기 쉽게 보낸 걸 수도 있어요. 위험한 함정일 수도 있고요.” 수현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보존함 열람에는 절차와 입회인이 필요했다. “신청부터 합시다. 그리고 그 편지를 누가 보냈는지 찾아내려는 일은 별도의 동의나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하고요.” 세드나는 그녀가 작성한 신청서를 검토했다. “요청 목적이 너무 좁군. 제3항 7번 함의 목록과 문서 종류만 먼저 확인하겠다고?” “네. 무슨 물건이 있는지 모르고 문을 열 수 없으니까요.” “정말 당신답네.” 그날 밤, 수현은 자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름과 자세한 주소는 적지 않았다. 대신 본인만 알 수 있는 문장을 선택했다. 서울 사무실의 창문은 비가 많이 오는 날 오른쪽 틈에서 작게 떨렸다는 사실. 동료에게라면 이상한 문장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검색 가능한 개인 정보가 아니었다. 종이를 접기 전, 수현은 마지막 줄에 적었다.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직접 답장을 확인할 때까지 누구의 이동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참 별난 편지였다. 안부 인사보다 조건이 많았다. 노무사란 직업은 이세계에서도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현은 편지를 봉투에 넣지 않고 책상 서랍에 보관했다. 답장이 오갈 안전한 경로부터 알아본 다음에 보내기로 했다. 아직 고향으로 닿는 우편함이 실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창밖의 비가 그칠 무렵 공식 회신이 도착했다. [제3항 7번 보존함: 원격 수신 기록 사본, 폐기 보류 상태. 목록 열람 승인. 보존함 개봉은 별도 심사.] 수현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직 편지를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누가, 어떤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지 확인할 창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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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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