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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5화
PAYLUA ORIGINAL · 제5화

5화. 전투 수당은 어디로 갔습니까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209자

오프라인 책장
북쪽 다리에서 돌아온 카이렌은 약속대로 기록을 남겼다. 물론 돌아오자마자 쓴 건 아니었다. 갑옷을 벗기도 전에 메이에게 붙잡혀 치료 천막으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번에는 그 순서가 맞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오늘 전투 시간은?” “한 시간 조금 넘었습니다.” “행군은요?” “왕복으로 세 시간쯤…….” “잠깐. 주민 대피 지원도 했다고 했죠?” “네. 다리 근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옮겼습니다.” 수현은 종이에 작은 칸을 그려 넣었다. 전투, 이동, 구조, 치료, 휴식. 이것만 해도 다섯 항목이다. “이렇게 적으면 되는 건가요?” 카이렌이 물었다. “처음이니까 대충요. 날짜와 시간이 틀리면 나중에 고치면 됩니다.” “왜 이런 걸 적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어요.” 수현은 펜을 돌리며 웃었다. “그런데 어제는 언제 쉬었냐고 물었더니 기억 못 하셨잖아요. 내일은 기억할 수 있어야죠.” 카이렌은 한참 종이를 바라봤다. “그럼 오늘 제가 쉰 시간도 적을까요?” “당연하죠.” 그의 눈이 둥그레졌다. “쉬는 것도 기록합니까?” “네. 그래야 얼마나 못 쉬었는지도 알죠.” 카이렌은 이상한 걸 배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는 그런 카이렌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눈 밑이 시커멨다. 본인은 쉬지 못한 얼굴이었다. 수현이 그녀를 가리켰다. “메이 씨도 쓰세요.” “저도요?” “본인이 더 급해 보이는데요.” “아, 저는 괜찮…….” “괜찮다는 말 금지. 제7원정대에는 오늘부터 금지어가 두 개 생겼습니다.” “하나는 뭔데요?” “혼자면 됩니다.” 카이렌과 메이가 동시에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천막 안에 오래 남았다. *** 이번 전투에서 마을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건 주민 대피 덕분이었다. 마물은 일곱 마리가 아니라 넷이었고, 다리를 넘기 전에 기사단이 도착했다. 카이렌이 선두에 서긴 했지만 혼자 싸우지는 않았다. 나이 든 병사가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 마물의 발목을 묶었고, 원정대 궁수가 언덕 위에서 엄호했다. 사람들을 먼저 빼놓으니 후퇴할 길도 생겼다. 수현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놀란 건 카이렌의 태도였다. 그는 분명 실력 있는 전사였다. 부상 중인데도 몇 번이나 마물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동료를 구했다. 하지만 자기 역할을 끝낼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제가 한 마리를 놓쳤습니다.” “다른 부대가 처리했다면서요.” “그래도 제가…….” “그 마물을 놓친 게 아니라 역할을 분담한 거죠.” 카이렌은 입을 다물었다. 수현은 그의 손등에 올려진 붕대를 바라봤다. 책임감이 큰 사람은 칭찬보다 자책을 더 잘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몫을 무한정 늘렸다. “카이렌 씨가 못 한 일이 아니라, 같이 해서 끝낸 일이에요.”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이번엔 네가 돌아왔잖아.” 카이렌이 그제야 작게 웃었다. *** 그날 저녁 길드 공지판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북쪽 수로 안전 확보. 제7원정대 공적 인정.] 주변에서 박수가 나왔다. 수현도 박수를 쳤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공지 아래쪽의 작은 숫자가 눈에 걸렸다. [전투 공로 지원금: 은화 60닢.] “메이 씨, 전투 수당이 나왔네요?” 메이는 깜짝 놀랐다. “정말요?” “여기요. 공로 지원금이요.” 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희한테는 아직 아무 말도 없었는데.” 수현은 공지판을 조금 더 읽었다. [지급처: 제7원정대 담당관실.] 아. 늘 그렇지. 돈은 있다. 다만 어디에 멈춰 있는지가 문제다. 수현은 바로 계약관리실로 갔다. 세드나는 저녁식사로 보이는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또 너야?” “반갑습니다.” “나는 하나도 안 반갑다.” “그럼 짧게 물어볼게요. 제7원정대 전투 지원금 은화 60닢은 어디로 지급됐나요?” 세드나가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그건 비공개 회계다.” “지원 대상 원정대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원칙상 지출 명세는 담당관실이 관리한다.” “그러면 담당관실에서요.” 세드나가 한숨을 쉬었다. “너는 왜 그렇게 일을 늘리는 거지?” “제가요?” “서류가 없으면 요청서를 만들고, 요청서가 있으면 영수증을 달라고 하고, 영수증이 있으면 날짜를 따지잖아.” 수현이 잠깐 생각했다. “이상한 점을 확인하다 보면 원래 그렇게 됩니다.” “피곤하겠군.” “네. 저도 피곤해요.” 세드나가 헛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서랍에서 장부 하나를 꺼냈다.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지급 확인만이다. 계정별 내역은 담당관실에서 받아라.” 수현은 장부를 받아 들었다. [북쪽 수로 작전 지원금: 은화 60닢.] [담당관실 수령 확인: 은화 60닢.] “담당관실에서 받았다는 건 확인되네요.” “그렇지.” “그다음에 원정대원에게 나눠 준 기록은?” 세드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건 저쪽 업무다.” “그렇겠죠.” 수현은 기록을 베껴 적었다. 하나의 돈이 조직 안에서 움직일 때는 길이 남아야 한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누가 받았는지,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중간이 비면 그 돈이 사라졌는지 아직 기다리는 중인지 알 수 없었다. 수현은 지원금 장부를 적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메이 씨. 은화 예순 닢이면 이 동네에서 어느 정도 돈이에요?” 메이가 잠깐 생각했다. “원정대가 일주일 동안 먹을 건 살 수 있어요. 붕대하고 물약까지 넉넉하게 사면 모자라겠지만요.” “그럼 아주 큰돈은 아니군요.” “우리한텐 큰돈이에요.” 메이가 똑바로 말했다. 수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돈이 큰돈인지 작은 돈인지는 가진 사람의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에선 커피 두 잔 값으로 끝나는 액수도 야영지에선 사람 한 명을 살릴 약값이 될 수 있었다. “지원금이 개인 보수인지 운영비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왜요?” “운영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개인 급여까지 받은 걸로 치면 안 되니까요. 반대로 개인에게 지급된 돈이라면 그 사람이 선택해서 쓸 수 있어야죠.” 카이렌이 손을 들었다. “저는 사실 돈을 써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정말요?” “길드에서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니까요. 제 몫이 있다고 해도 대원들이 다치면 물약을 사는 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이렌 씨 본인한테 쓰는 건요?” 카이렌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건 사치라고 들었습니다.” 수현은 한숨을 삼켰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양말 한 켤레 사는 것까지 사치라고 생각한다면, 누군가 그 말을 아주 정성껏 가르쳤을 것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신발을 갈아 신는 건 사치가 아니에요.” “용사한테도요?” “특히 용사한테요.” 메이가 카이렌의 닳은 장화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신발 좀 바꾸랬잖아.” 카이렌은 민망한 얼굴로 장화를 뒤로 숨겼다. 수현이 손을 들어 말렸다. “일단 돈의 성격을 구분해 보죠. 운영비로 살 물건, 개인에게 지급할 보수, 위험해서 추가로 들어간 비용. 따로 적어야 합니다.” 그녀는 종이에 세 칸을 그렸다. [원정 운영비 / 개인 보수 / 치료·위험 비용] 데런이 뒤에서 들여다봤다. “그럼 말먹이는요?” “운영비죠.” “말이 다치면요?” “치료 비용이요.” “제가 다치면요?” “그것도 치료 비용이죠.” 데런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네요. 길드에서는 가끔 말이 저보다 대접이 좋거든요.” 다들 웃었다. 그 웃음에는 조금 씁쓸한 구석이 있었다. 수현은 빈 칸이 많은 표를 바라봤다. 몇 줄 긋는다고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 빠져 있는지는 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 *** 저녁 식사 때 젠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부대에는 예전에 보급 담당이 따로 있었어요.” 수현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요?” “인원 부족이라고 없앴죠. 그 사람이 하던 일은 데런이 맡고, 데런이 하던 일은 제가 맡고, 제 몫은 카이렌이 더 하게 됐고요.”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유사도 두 명이었어요. 지금은 저 혼자고.” “인원은 줄었는데 임무는 그대로군요.” 수현이 말했다. “오히려 늘었어요.” 카이렌이 조용히 덧붙였다. “마물 출현 지역이 늘었다고 했거든요.” 수현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현장 인원이 줄면 일이 줄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줄어든 인원만큼 일이 어떻게 배분됐는지는 봐야 한다. 단순히 모두가 조금씩 더 하면 된다는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 업무 분장표도 만들어야겠네요.” 젠이 놀랐다. “또 종이요?” “네.” “수현 씨는 종이 없이 못 사는 겁니까?” “지금 이곳은 종이가 사람보다 오래 버티는 것 같아서요.” 젠이 크게 웃었다. 그날 식사는 소박했다. 질긴 고기와 묽은 수프였다. 그런데 수현은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음식 맛을 기억했다. 사람들과 마주 앉아 먹는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 담당관실에 들어가자 감독관 브레그가 책상에서 서류를 덮었다. “아, 또 너냐.” “반갑습니다.” “나는 안 반갑다!”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내가 분명 군무에 간섭하지 말랬지!” 수현은 방문을 닫지 않고 문턱에 섰다. 복도에는 병사 몇 명이 있었다. 목소리를 낮추되 혼자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지는 않는 편이 좋았다. “전투 수당 이야기를 하러 왔습니다.” “그건 전투 수당이 아니라 원정 지원금이다.” “공지에는 공적 인정이라고 적혀 있던데요.” “공적을 인정했으니 지원금을 주는 거지.” “그러면 어디에 썼습니까?” “보급비.” “어떤 보급이요?” “식량, 화살, 말먹이, 뭐 그런 것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영수증이 있겠네요.” 브레그가 책상을 쾅 내리쳤다. “마물과 싸우는 데 영수증이 필요해?” “싸울 땐 필요 없죠. 그런데 돈을 쓰고 나면 필요하죠.” 그가 입술을 비틀었다. “대체 누구 편이냐?” 수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질문은 한국에서도 많이 받았다. 노동자 편이냐, 사장 편이냐, 조직 편이냐. 편을 묻는 사람들은 대개 사실을 묻는 걸 불편해했다. “제가 보고 싶은 건 돈이 어디에 갔는지입니다.” “그럼 답은 끝났군. 보급에 썼다고 했다.” “무슨 보급이냐고 물은 건 아직 답을 못 들었는데요.” 브레그는 이를 악물었다. “나가.”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답변 거부로 기록하겠습니다.” “뭐?” “현재는 지급 여부를 확인할 자료가 없다고요. 혹시 나중에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브레그가 종이 뭉치를 집어 던졌다. 수현은 간신히 몸을 피했다. 서류가 복도까지 흩어졌다. 큰일 날 뻔했다. 종이가 아니라 잉크병이었으면 얼굴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감독관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 카이렌이 서 있었다. “저는 제가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브레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너까지 나한테 대들겠다는 거냐?” 카이렌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 부대 이야기라서요.” “그럼 전투나 잘해!” “전투는 하겠습니다. 다만 동료들이 치료받을 물약도 필요합니다.” 수현은 그를 바라봤다. 카이렌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방금 전 전장에서보다 지금이 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일지도 몰랐다. 브레그는 길게 숨을 뱉었다. “좋다. 내일 아침까지 내역을 내주지.” “감사합니다.” 수현이 바로 대답했다. “내일 아침 몇 시까지요?” “…….” “열 시쯤이면 될까요?” 브레그가 눈을 감았다. “열 시.” “네. 기록했습니다.” *** 천막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이렌이 말했다. “제가 나서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본인 돈 이야기인데요. 왜 안 돼요?” “그동안은…… 담당관님이 알아서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럴 수 있죠. 믿고 맡기는 게 잘못은 아니에요.” “그럼 뭐가 잘못입니까?” 수현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믿고 맡겼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게 되는 게 문제죠.” 카이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메이가 오래된 나무 상자에서 작은 종이봉투를 꺼냈다. “이건 라비엔이 떠나기 전에 남긴 거예요.” “라비엔이요?” “네. 그냥 버리라고 했는데 왠지 못 버리겠더라고요.” 봉투 안에는 은화 한 닢과 짧은 메모가 있었다. [지원금이 모자라면 내 몫에서 빼라고 했다. 그런데 나한테는 원래 몫이 있었나?] 수현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누군가 돈을 훔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몫이 사라졌다는 느낌만큼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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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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