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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4화
PAYLUA ORIGINAL · 제4화

4화. 용사도 출근부가 필요합니다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484자

오프라인 책장
“의식을 잃은 사흘 동안 출정했다고요?” 수현은 카이렌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는 오른손 손등의 흉터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작은 흰 고리 모양이었다. 수현이 처음 봤을 때는 오래된 화상 자국인 줄 알았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없다는 말씀이죠?” “예. 눈을 떴더니 사흘이 지나 있었고, 길드에선 그동안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고 했어요.” “그때 어디에 계셨는데요?” “성역 의무실이라고 들었습니다.” 메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난 그때 카이렌을 못 봤어요. 본부에서 치료 중이니 접근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수현은 종이에 선을 그었다. 첫째 날, 북쪽 협곡 임무. 둘째 날, 성역 이송. 셋째 날, 기록 불명. 넷째 날, 임무 복귀. 그리고 따로 적었다. [길드 공식 기록상 셋째 날까지 전투 수행.] 이상했다. 정말 전투에 나간 게 맞다면 누군가 카이렌 대신 검을 들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전투에 나가지 않았다면 길드가 기록을 잘못 작성한 셈이다. 어느 쪽이든 확인이 필요했다. “이걸 확인해 봅시다.” 카이렌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요?” “지금은 쉬세요.” “하지만 제 기록인데요.” “그러니까 더더욱 쉬어야죠. 기록은 도망가지 않지만 사람은 쓰러지거든요.” 그 말에 메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아. 이번엔 내 말 좀 들어.” 카이렌은 순순히 침대로 돌아갔다. 순순히 돌아가는 모습이 오히려 수현에게는 낯설었다. 그렇게 싸우러 가겠다고 고집하던 사람이, 기록 문제에는 한없이 조용했다. “카이렌 씨.” “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억이 안 나는 건 안 난다고 말해도 됩니다.” “괜찮습니까?” “그게 사실인데요. 기록은 사실을 적어야 하니까요.” 카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그제야 천막을 나왔다. ***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원정대 상황실이었다. 상황실이라고 해 봐야 작은 천막에 지도 세 장과 칠판 두 개를 세운 곳이었다. 다만 입구를 지키는 병사 둘은 꽤 무서워 보였다. “출정 기록을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외부인은 출입 불가다.” “카이렌 씨의 동의서를 가지고 왔는데요.” “안 된다.” “그럼 담당자라도 불러 주세요.” “안 된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아주 일관적이네. “그럼 어디서 신청해야 합니까?” 병사 하나가 잠깐 눈을 깜빡였다. “뭘?” “출입 허가요. 안 된다고 하셨으면 되는 방법도 있으실 거 아니에요.” “그건…….” “설마 여기는 안 되는 규정만 있고 되는 규정은 없나요?” 옆의 병사가 헛기침했다. 첫 번째 병사가 얼굴을 붉혔다. “계약관리실의 허가를 받아 와라!” “알겠습니다. 담당자 이름은요?” “세드나.” “좋네요. 아는 분이네요.” 수현이 웃으며 돌아서자 두 병사는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저 여자는 뭐 하는 사람이야?” “모른다. 근데 이름을 자꾸 적더라.” 그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수현은 피식 웃었다. 이 세계에서 새로운 직업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름 적는 여자. *** 세드나는 요청서를 두 번째로 받았을 때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는 정산표더니 오늘은 출정 기록인가?” “네. 바쁘시죠?” “너 때문에.” “저도 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원래 나라로 돌아가면 뭐 할 생각이냐?” 뜻밖의 질문이었다. 수현은 그제야 펜을 멈췄다. “돌아갈 수 있나요?” 세드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온 방법을 모르나?” “모릅니다. 종이가 빛나더니 여기로 왔어요.” “그렇다면 소환 주문을 쓴 자를 찾아야겠군.” “찾을 수 있어요?” “나는 계약관리실 직원이지 대마법사가 아니다.” 수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확인할 곳이 하나 생겼다. “그럼 소환 관련 서류를 어디서 찾는지도 나중에 알려 주세요.” “너는 질문이 끝도 없구나.” “먹고사는 일이 원래 그렇습니다.” 세드나는 결국 출정 기록의 열람을 허용했다. 단, 수현이 직접 작성한 요청서에 카이렌의 서명을 받고, 원본은 상황실 밖으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수현은 그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무리한 요구를 막는 절차가 있다는 건 상대가 완전히 엉망인 조직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류를 받아 나온 그녀는 카이렌에게 다녀왔다. “한 장만 서명해 주세요.” “또요?” “네. 이 세계에선 서명이 생각보다 귀합니다.” “혹시 제 서명을 받고 위험한 계약을 맺으시는 건 아니죠?” 그 말에 수현은 멈칫했다. 카이렌이 처음으로 농담 비슷한 걸 했다. “그럴 땐 내용을 끝까지 읽으셔야죠.” 수현이 답하자 카이렌이 웃었다. 메이는 그 웃음을 보고 따라 웃었다. 이 정도면 이틀 동안의 가장 좋은 성과였다. 상황실에서 나온 뒤 수현은 원정대 막사에 들러 직접 근무 기록 양식을 그렸다. 메이는 종이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이 칸은 뭐예요?” “업무 종류요. 여기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했는지 적는 거예요.” “전투랑 치료는 적을 수 있겠는데…… 이동은요?” “그것도 적죠.” “길드에선 이동은 일한 걸로 안 봐요.” “길드 기록하고 별개로, 사실을 남기는 거예요.” 수현은 펜으로 선을 하나 더 그었다. “아직 이 세계의 보수 규칙은 잘 몰라요. 그래도 나중에 뭘 확인하려면 기록이 있어야 하니까요.” 메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 지금까지 마력을 얼마나 썼는지도 자세히 안 적었어요.” “그건 어떻게 확인하죠?” “몸이 알려 줘요. 손이 떨리고 눈이 흐려지죠.” 수현은 손을 멈췄다. 그렇게 몸이 망가져야만 남은 자원을 알 수 있다면, 계산 방법이 잘못된 게 아닐까. “혹시 작은 마석으로 남은 마력을 확인할 수는 없어요?” “있어요. 진료소에 비치된 걸 본 적 있어요. 하지만 외부 원정대는 못 빌려요.” “왜요?” “의무실 직원만 쓸 수 있대요.” 수현은 하늘을 바라봤다. 이곳의 시설들은 꼭 그런 식이었다. 위험을 확인하는 기구는 있는데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사용할 수 없었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방법부터 만들죠.” 수현은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괜찮음 / 주의 / 중단 필요] “정확한 숫자를 몰라도 세 단계 정도는 말할 수 있잖아요. 어느 단계인지 매번 알려 주세요.” 메이가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중단이 필요하면 정말 중단할 수 있을까요?” “그걸 알아보려고 기록하는 거예요.” “그렇구나.” 메이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제7원정대 막사 벽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붙었다. 누구도 그걸 공식 출근부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냥 '오늘 상태'라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그 종이 앞을 자주 서성였다. 젠은 화살 손질로 손가락이 아프다고 적었고, 데런은 행군 중 말이 절뚝거렸다고 적었다. 오르카는 왼팔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 아래 카이렌은 반듯한 글씨로 한 줄을 남겼다. [오늘은 피곤함. 그래도 할 수 있음.] 수현은 그 문장을 보고 조금 웃다가 마지막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할 수 있음'은 남이 확인해야 할 말이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 믿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카이렌 씨, 이거 몇 단계예요?” “주의쯤 될까요?” “그럼 주의라고 적어 주세요.” “제가 그렇게 써도 됩니까?” “누구 몸인데요?” 카이렌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주의'라는 글씨를 적었다. 그게 첫 번째였다. 그가 자신에게 주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건. *** 출정 기록은 놀랄 만큼 자세했다. 일별 전투 위치, 사용한 화살 수, 토벌한 마물 수, 심지어 분실한 말굽 수까지 있었다. 수현은 처음엔 감탄했다. 그런데 조금 넘기다 보니 문제가 보였다. 출정 기록에는 카이렌의 이름이 모든 날에 들어 있었다. 그가 의식을 잃은 날도. 그가 치료받았다는 날도. 그의 검이 성역에 보관됐다는 날도. 수현은 가장 먼저 전투 확인자 이름을 살폈다. 서명란에는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상급 감독관 브레그.] 카이렌을 깨우려 하던 그 사람이다. “이분은 모든 임무에 따라다니나요?” 상황실 서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보통은 본부에서 보고를 받습니다.” “그럼 직접 보지도 않고 확인 서명하는 건가요?” “현장 대장의 보고를 믿는 거죠.” “현장 대장은 누구고요?” 서기가 장부를 넘겼다. “카이렌 님입니다.” 수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카이렌이 의식을 잃어 있는 동안 카이렌 이름으로 보고가 올라왔고, 본부는 그걸 믿고 승인했다는 뜻이었다. “작성자는 따로 있나요?” “출정대 서기가 작성합니다.” “이 시기 담당자 이름 좀 알려 주세요.” 서기는 다시 장부를 뒤졌다. “라비엔.” 수현의 눈이 커졌다. 메이가 말한 사람. 마지막으로 길드에 끌려갔다던 방패 기사였다. “그 사람, 지금도 여기 있습니까?” “다른 부서로 옮겼습니다.” “어디로요?” “전입지가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다고요?” “네. 특별 전출로 처리돼서.” 수현은 고개를 숙여 기록을 다시 읽었다. 전출 날짜는 카이렌이 의식을 잃은 다음 날이었다. 우연일 수 있었다. 부서를 옮기는 일은 어느 조직에나 있다. 하지만 우연이 세 번쯤 겹치면 적어도 메모해 둘 가치가 있었다. *** 상황실 밖에서 뿔나팔이 울렸다. 이번엔 한 번이 아니었다. 짧게 둘, 길게 하나. 서기들의 얼굴이 굳었다. “북쪽 수로가 뚫렸답니다!”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마물 다섯, 아니 일곱! 민가 쪽으로 내려오고 있어요!” 수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제와는 달랐다. 이번엔 실제로 사람들이 위험했다. 상황실에 모인 기사들이 정신없이 장비를 챙겼다. 누구도 보고서에 서명할 시간이 없어 보였다. 그 틈에서 수현은 지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민가는 어디죠?” 서기가 강줄기 아래쪽에 찍힌 점을 가리켰다. “저기요. 삼십 가구쯤 됩니다.” “대피시킬 인원은요?” “민병대가 있긴 합니다.” “그럼 일단 주민을 빼야죠.” “전투는 용사님이…….” “지금 용사님은 치료받는 중이잖아요. 주민 대피부터 연락하세요.” 서기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걸 왜 여기서 말하죠?” “여기 지도랑 전령이 다 있으니까요!” 수현의 목소리가 잠깐 높아졌다. 지금까지 그나마 침착할 수 있었던 건 서류 앞에서였기 때문이다. 현실의 위험이 눈앞에 닥치자 손끝이 차가워졌다. 마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피 경로를 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좁은 다리 하나는 읽을 수 있었다. “여기 다리 건너편에 마을이 있죠?” “네.” “마물이 다리를 넘어오기 전에 주민을 이쪽 언덕으로 이동시키면 안 됩니까?” 서기가 눈을 깜빡였다. “원래는 용사가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용사가 없으면 사람들이 그냥 기다려야 해요?” 서기가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던 나이 든 병사가 지도를 내려다봤다. “저 언덕은 길이 좁아. 아이들이 먼저 가면 가능하겠어.” “그럼 지금 전령을 보내세요.” 병사는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가겠다.” 그가 뛰어나가자 수현은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 아, 무섭다. 계약서에 줄을 긋는 건 익숙했지만, 사람 목숨이 오가는 자리에서 말을 꺼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 카이렌은 소란을 듣고 천막 밖으로 나와 있었다. 메이가 그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안 돼! 지금 나가면 또 쓰러져!” “민가가 위험해.” 카이렌은 검을 들었지만 얼굴빛이 창백했다. 수현은 둘 앞으로 다가갔다. “주민 대피 명령이 내려갔습니다.” 카이렌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대피요?” “네. 싸움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잖아요.” 그는 잠깐 말을 잃었다. 수현은 그의 손에 들린 검을 보며 말했다. “카이렌 씨가 나가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먼저 준비부터 합시다. 물약은 있나요? 동료는 몇 명이죠? 후퇴 경로는요?” “저 혼자면 됩니다.” “그 말 금지요.” “……네?” “지금부터 제 앞에서 그 말 쓰지 마세요. 혼자라서 되는 일보다 혼자니까 망하는 일이 훨씬 많거든요.” 메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 카이렌은 잠시 수현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러면…… 같이 준비해 주세요.” “그건 가능합니다.” 수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바로 그때, 상황실에서 뛰어나온 전령이 외쳤다. “북쪽 다리에서 마물의 이동이 멈췄습니다! 주민들은 언덕으로 이동 중입니다!” 메이는 눈을 크게 떴다. 수현도 놀랐다. 처음으로 자신이 한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다리 건너편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카이렌이 검을 고쳐 쥐었다. 수현은 그의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약속해요.” “뭔데요?” “살아 돌아와서 오늘 몇 시간 일했는지 직접 적기.” 카이렌이 웃었다. “그런 부탁은 처음 듣습니다.” “저도 용사한테 출근부 쓰라고 하는 건 처음이에요.” 그는 망설이다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한참 뒤, 수현은 그 약속이 얼마나 어려운 부탁이었는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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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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