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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42화
PAYLUA ORIGINAL · 제42화

42화. 돌아갈 권리는 누구에게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212자

오프라인 책장
“종료와 귀환은 별도 절차.” 수현은 로벨에게 받은 쪽지를 읽고 다시 읽었다. 보통 이런 문장은 안내문 가장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쓰인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내용을 놓치기 좋은 자리였다. “그럼 일을 끝냈다고 집에 보내 준다는 뜻은 아니군요.” 메이가 말했다. “맞아요. 그래서 확인부터 해야 해요.” 수현은 탁자에 선을 두 개 그었다. 왼쪽에는 '민원 종료', 오른쪽에는 '귀환'. 한쪽에 체크 표시를 해도 다른 쪽이 저절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행정 절차였다. 한 번 신청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별도 신청서가 튀어나오는 경우. 세드나는 마을 서기 로벨의 허가를 받아 목판 그림을 베꼈다. 두 개의 봉투가 맞닿은 그림 옆에는 작은 손 모양이 있었다. 기존 R-0 문양과 닮았지만 도장이 너무 닳아 같다고 판정하기는 어려웠다. “직접 확인을 하러 왕도 기록원으로 갈 건가요?” 오르카가 물었다. 수현은 자문 계약서를 펼쳤다. 일주일 연장 계약의 남은 기간이 길지 않았다. 데런이 북부에서 왕도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고 세드나가 공적 기록 열람에 필요한 절차를 적었다. 마차를 갈아타도 시간이 촉박했다. “무조건 왕도로 갈 수는 없어요. 출장 목적과 비용, 여러분 일정부터 맞춰야죠.” “우리 중에는 집이 가까운 사람이 한 명도 없군요.” 데런이 웃었다. “있긴 있어요. 근데 제 경우는 마차가 아니라 차원이 필요하네요.” 수현의 말에 메이가 잠시 웃다가 입을 다물었다. “수현 씨, 정말 돌아가고 싶어요?” 질문은 조심스러웠다. 수현은 처음에는 왜 묻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메이가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에서 답을 찾았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을 붙잡는 것처럼 보일까 봐 두려운 얼굴이었다. “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녀는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도 그 명확한 대답에 표정이 편해졌다. *** 왕도 기록원의 공개 목록을 열람하기 위해 일행은 먼저 서부 성역에 서신을 보냈다. 세드나는 자신의 직책으로 왕국 전체 문서를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문의는 성역 기록관리 담당자의 소개와 수현 본인의 귀환 의사 신청 번호를 함께 첨부해 정식으로 보내야 했다. 여관의 편지 접수대에서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한 소년이 서명란에 자기 이름을 적지 못해 접수인이 편지를 돌려보냈다. 소년의 손에는 오래 접힌 봉투가 들려 있었다. “글씨를 몰라요.” 소년이 말했다. “그럼 가족에게 써 달라고 해.” 접수인은 바빠 보였다. 수현은 뒤에서 기다리다 끼어들어도 되는지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부분이 어렵니?” “보내는 사람 이름이요. 글은 우리 누나가 썼는데, 이름을 제가 쓰면 누나가 쓴 편지가 아닌 것처럼 되잖아요.” 수현은 접수 규정을 확인했다. 대필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용 작성자와 실제 접수인이 누구인지 구분하게 돼 있었다. 그녀는 소년에게 두 칸을 가리켰다. “누나가 쓴 편지인 건 그대로 적고, 오늘 여기 가져온 사람은 너라고 적으면 돼. 서명이 어렵다면 접수인의 확인을 받을 수 있대.” 접수인은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소년은 수현이 알려 준 대로 그림처럼 자기 이름을 따라 쓰고 편지를 접수했다. “고맙습니다. 내일이면 누나한테 답장이 올까요?” “언제 도착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접수 번호는 받았잖아. 그걸로 확인할 수 있어.” 소년은 접수증을 꼭 쥐었다. 세드나가 수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의 신청서까지 봐주다간 귀환 신청 전에 늙겠군.” “그러게요. 근데 저 아이 편지는 적어도 보내는 방법이 적혀 있네요.” 자신이 받은 민원 봉투에는 보낸 사람도, 돌아갈 곳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이 다시 마음에 걸렸다. *** 오후에 회신이 왔다. 왕도 기록원의 소장 목록 중 고대 민원 중계실 관련 문건은 대부분 공개 연혁이었다. 다만 한 묶음만 '현재 운영 여부 미확인'으로 분류돼 있었다. 문건 제목은 '현장 확인인 보호와 복귀에 관한 초기 약정'이었다. “복귀라는 말이 있네요.” 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다. “있기는 하네요.” 수현은 좋아서 손뼉을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제목만으로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복귀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간다는 뜻인지, 단순히 원래 근무지로 돌아간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세드나는 안내문을 끝까지 읽었다. “문서 원본 열람은 이해관계자의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어.” “저는 신청인도 아니고 현장 확인인인 것 같다고 했죠. 그 신원을 무슨 수로 증명하죠?” “배정 기록의 원본과 네가 넘어온 경위를 대조해야겠지.” 수현은 한숨을 쉬었다. 입사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사원증이 없는 탓에 퇴사 상담도 못 받는 상황이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신청서 초안을 썼다. 이름, 현 소속, 이세계 도착 일자, 민원 원본을 처음 확인한 장소, 귀환 의사. 그녀는 몇 번이나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이동'이라고 적었다. 메이는 곁에서 작은 약병을 정리했다. 부상자를 위해 사둔 물약이 다 떨어질 때마다 예전에는 곧바로 자기 부담 비용에 적었다고 했다. 이제는 업무 중 사용, 개인 사용, 길드가 사후 인정해야 할 비용을 구분했다. “그렇게 나눠 놓으니 일이 더 많아졌어요.” “맞아요. 그래서 원래는 담당 부서가 했어야죠.” “그런데 적어도 제가 뭘 썼는지는 보이네요.” 메이가 종이를 손으로 눌렀다. “제 이름을 적는 게 겁나지 않아요.” 수현은 펜을 멈췄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지금 가장 중요했다. 그렇지만 이 세계에서 시작된 변화도 누가 대신 적어 준 한 줄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 기록원 회신을 기다리는 동안 데런은 마차의 바퀴 축을 갈아야 한다고 했다. 산길을 다녀온 탓에 나무가 일부 갈라져 있었다. 부품을 구하려면 반나절은 더 필요했다. 누군가는 왜 하필 바쁠 때 고장이 나느냐고 불평했지만, 데런은 태연했다. “바쁘지 않을 때만 고장 나는 바퀴가 있으면 저도 보고 싶습니다.”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수리점 주인은 부품값을 원래 가격보다 높게 불렀다. 외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겨울을 앞두고 물자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데런은 다른 가게 두 곳의 가격을 확인하고, 부품의 종류와 마차 규격을 대조했다. 수현은 옆에서 흥정을 하지 않았다. 현장 실무는 데런이 훨씬 잘 알았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에선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그녀가 말했다. “그럼 노무사님도 제게 일을 맡기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마차가 안전한지까지 제가 판단하면 위험해요.” 데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수현은 일행이 단순히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동료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마차를 고치는 동안 오르카는 라비엔에게 답장을 썼다. 그가 새로 시작한 기록 협력 업무에 대해 어디까지 물어봐도 되는지 고민하며 문장을 세 번 고쳤다. “'다리는 좀 어떤가'라고 쓰면 치료 상황을 캐묻는 건가?” “괜찮을 수도 있지만 라비엔 씨가 대답하기 싫을 수는 있겠죠.” 수현이 말했다. 오르카는 그 말에 '답변이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보고 싶다'는 짧은 문장을 마지막에 적었다. 수현은 그 문장을 굳이 고치지 않았다. 편지에는 사실관계도 필요하지만 진심도 필요했으니까. *** 그날 마을 우편 접수대에서는 작은 소동이 이어졌다. 아이의 편지를 받아 주었던 접수인이 다른 지역으로 갈 편지 두 통을 같은 자루에 넣었다가 다시 분류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줄이 느려진다고 불평했다. “한 사람만 담당해서 그렇지요.” 접수인은 땀을 닦았다. 수현은 업무를 방해하지 않을 거리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나중에 줄이 줄었을 때, 왜 두 자루의 색깔을 다르게 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접수인은 자루 색깔을 바꾸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눈이 나쁜 직원은 색만으로 구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 색과 큰 글자를 같이 쓰면 어떨까요?” 메이가 말했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요?” 접수인이 되물었다. 데런이 제안했다. “방향마다 모양을 다르게 묶는 건요? 북쪽은 두 매듭, 남쪽은 한 매듭.” 접수인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당장 시행할 수는 없지만, 시범으로 사용해 볼 만하다고 했다. 업무를 해 본 사람의 제안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수현은 다시 느꼈다. 그 순간 한 여인이 들어와 전날 접수한 편지가 왜 아직 출발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접수인은 교체된 배송 일정표를 가리켰다. 여인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고 했다. 수현은 누구의 잘못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접수증에 예정일이 적혀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익일 출발 예정'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기상 악화 시 변경'이라는 문구는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분이 화나는 이유는 약속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수현이 말했다. “그럼 지금 가능한 출발일을 분명하게 알려 드리는 게 좋겠네요.” 접수인은 여인에게 새 배송 예정일을 적어 주었다. 여인은 얼굴이 풀어졌다. 편지가 빨리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지는 알게 됐다. *** 여관으로 돌아온 수현은 자신이 쓴 귀환 의사 신청서를 또다시 펼쳤다. '원래 거주지'라는 말을 적었지만 주소를 쓸 칸은 비어 있었다. 서울의 집 주소를 이세계 관리 기관에 무작정 넘겨도 되는지 고민스러웠다. 정보를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제공하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왜 비워 두셨어요?” 세드나가 물었다. “필요한 정보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어요. 제 집을 찾는 데 정말 상세한 주소가 필요한지, 제가 사는 세계를 확인하는 데 더 기본적인 정보면 되는지부터요.” 세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에서도 주소를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물론 한국의 개인정보법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 이곳에서 사용 가능한 절차는 정보 목적과 열람 범위를 서면으로 요청하는 것이었다. 수현은 귀환 지원 신청과 함께 정보 취급 질문서를 보냈다. 반환될 자료의 보관 기한, 담당자의 이름 또는 직책, 제3자에게 전달될 가능성. 그 질문은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메이가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다 말했다. “수현 씨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무 말이나 다 하실 줄 알았어요.” “저도 그렇게 될까 봐 조금 무서웠어요.” 수현은 웃었다. “절박할수록 내가 원하지 않는 조건까지 받아들이기 쉬우니까요.” 메이는 자신의 손목 고리를 바라봤다. 계약을 서둘러 맺었을 때 무엇을 감수했는지도 모르고 서명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팔찌를 옷소매로 가리지 않았다. “그럼 우리 둘 다 서두르지 말아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되자 마차 수리 소식이 도착했다. 내일은 정상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 반나절 늦어졌지만 바퀴 상태는 더 나아졌다. 안전한 지연이었다. *** 다음 날, 세드나는 공식 공문을 받았다. 제7원정대 30일 시범 운영의 첫 정식 평가회의가 사흘 뒤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카이렌이 대면 참석을 요청했고 브레그도 출석할 예정이었다. 메이의 비용 문제는 회복 관리국 별도 심사였지만 제7원정대 개선을 지속할지 여부는 그 회의에서 결정될 수 있었다. “수현 씨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메이가 물었다. “저는 회의에서 확인할 내용이 있어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 저 없이는 말도 못 한다면, 그건 우리가 준비를 잘못한 거겠죠.” “아직은 직접 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좋아요. 가되 우리가 뭘 확인할지 미리 정해요.” 수현은 카이렌에게 전달할 질문지를 쓰기 시작했다. 위험 임무 사전 설명, 실제 휴식 기록, 치유 비용, 보급품 본인 수령 확인, 부상자의 복귀 결정권. 답변자는 각각 달라야 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말하게 하면 결과가 다시 영웅 한 명의 판단으로 돌아가 버린다. 해질 무렵 데런이 통행 계획을 가지고 들어왔다. “제7원정대로 돌아가면 왕도는 반대 방향입니다. 중계실을 찾으려면 시간이 더 걸립니다.” “알아요.” 수현이 말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가려 해요. 게다가 귀환 절차가 실제로 있더라도 지금 당장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녀는 왕도 기록원에 보내는 신청서를 봉했다. 그리고 복귀라는 단어 옆에 작은 별표를 그렸다. [복귀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누가 결정하는가.] 지금까지 수현이 받아 본 모든 계약에는 목적지보다 명령이 먼저 있었다. 이번만큼은 목적지를 먼저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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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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