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40화
PAYLUA ORIGINAL · 제40화

40화. 지워지지 않는 서명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272자

오프라인 책장
북방 회복소에 온 지 닷새째 되는 아침, 수현은 세 장의 서류를 받았다. 첫 번째는 라비엔의 기록 열람 결과 접수증이었다. 두 번째는 메이의 C-47 채무자 변경 신청에 관한 중간 통지였다. 세 번째는 자신의 일주일 자문 계약 연장안이었다. 세드나가 문서를 나란히 놓자 수현은 웃음부터 나왔다. “이 세계는 사람을 쉬게 해 주는 대신 종이를 쉬게 하지 않는군요.” “네가 종이를 너무 잘 찾아다니는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어요.” 그녀는 빵을 베어 물고 문서부터 읽었다. 서두르면 세 가지 일을 하나로 섞어 버릴 것 같았다. 라비엔의 신청에는 계약 상태 심사가 접수됐다는 내용만 있었다. 아직 종료 여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메이의 신청에는 분쟁 금액에 대한 강제 징수 보류를 유지하되, 비용 산정 부서와 채무자 지정 근거를 추가 확인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수현의 연장안은 일당 은화 두 닢, 일주일, 비전투 자문, 숙식과 안전한 이동 보장, 귀환 시 이탈 조건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제 서명하면 되나요?” 세드나가 물었다. “제안만 온 거니까 먼저 확인해야죠.” 수현은 연장 계약의 발효일을 짚었다. 기존 열나흘 계약이 끝나는 다음 날부터 일주일로 되어 있었다. 중간 공백이 없고 자동 연장이 아닌 별도 계약이었다. 그녀는 이름을 적었다. “제 의사로 연장합니다. 다만 귀환 방법이 확인되면 절차에 따라 떠날 수 있다는 조항은 유지해 주세요.” “확인했어.” 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류에 서명했다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음 일주일 동안 어디까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지 조금은 분명해졌다. *** 메이는 자신의 고리를 들여다봤다. 붉은빛이 약해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붙어 있었다. “강제 징수 보류가 유지되면 이제 안심해도 될까요?” “당장은 위험한 징수가 재개되지 않는다는 의미겠죠. 채무 자체가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에요.” 수현이 말했다. “알아요. 그래도 오늘은 조금 기뻐해도 되겠죠?” “그럼요.” 메이는 환하게 웃었다. 수현도 웃었다. 작은 진전까지 기뻐하지 못하면 조사하는 사람들은 끝내 지쳐 버릴 것이다. 오후에 북방 회복소와 서부 성역을 잇는 공동 통신문이 열렸다. 세드나는 계약관리실, 베라는 회복소 행정실, 아스텔은 성역 보존실을 대표해 참석했다. 수현은 정식 심사위원이 아니라 신청인의 위임을 받은 자문인으로 질문했다. “서부 성역 운송장의 숫자와 이곳 입소 기록이 일치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요?” 베라가 답했다. “일부 운송조합 인장과 날짜의 연관성은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환자 신원은 공개 범위가 제한돼 있으므로 동일인 여부를 이 자리에서 발표할 수 없습니다.” “라비엔의 L-4 기록은요?” “당사자 동의 아래 본인이 외부 기록 협력자로 등록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당시 전출 통지 경위는 아직 심사 중입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모두 해결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을 못 했는지 분리했다. *** 아스텔이 R-0 원계약 관련 보존 심사 결과를 읽었다. 임시 보호 계약을 개인 채무로 자동 변환할 근거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으며, 추가로 제출된 정산표에는 별도 전환 문서의 번호가 빠져 있었다. 세드나가 말했다. “따라서 메이 명의 분쟁 금액의 강제 징수 보류는 유지한다는 게 현 중간 결정입니다. 채무 소멸이나 위법 확정은 아닙니다.” 메이가 직접 질문했다. “그럼 제가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뭔가요?” “비용 산정 부서의 근거 자료 제출을 기다리고, 도착하면 본인 열람 신청을 이어가면 됩니다.” 메이는 노트에 적었다. 누군가 대신 질문을 해 주지 않아도 자기 사건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때 통신판에서 하르벤의 목소리가 들렸다. 특별 회복 관리국은 정산이 지연되면 현장 치료 예산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분쟁과 무관한 비용은 계속 집행할 수 있도록 분리 검토해 주십시오.” 아스텔이 말했다. “그 부분은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분쟁 중인 개인 채무를 근거 없이 징수하는 문제와 별도로 다뤄야 합니다.” 수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불합리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게 만드는 일과 실제 치료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함께 해결해야 했다. 진실을 밝히겠다고 환자들에게 약이 끊기는 결과를 만들어서는 안 됐다. *** 오후에는 라비엔이 오르카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수현이 동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친구로서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것이어야 했다. 수현은 복도에서 메이와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둘이 무슨 말을 할까요?” 메이가 물었다. “몰라요. 그리고 꼭 알 필요도 없죠.” “맞아요.” 둘은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면담이 끝났을 때 오르카는 눈가가 붉었지만 얼굴이 훨씬 편해져 있었다. 라비엔도 보조 간호사와 함께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두 사람은 다시 연락할 날짜를 정했다고 했다. “그럼 라비엔 씨가 돌아오나요?” 데런이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오르카가 대답했다. “그건 라비엔이 결정할 일입니다.”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아주 작게 웃었다. 오르카가 이 세계에 처음 온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답하는 것 같았다. *** 회복소의 행정실에서는 라비엔이 과거에 보낸 편지의 배달 실패 사유를 다시 조사하고 있었다. 주소가 바뀌는 동안 발송처와 수령처가 서로 다른 명부를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일부는 행정 착오로 볼 수 있었지만, 세 번째 편지의 접수증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누군가 일부러 없앴을 수도 있겠죠.” 오르카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어요. 단순 누락일 수도 있고요.” 수현이 답했다. “확실한 건 앞으로 보내는 편지는 접수와 수령을 같이 남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둘은 작은 약속을 적었다. 라비엔의 편지와 오르카의 답장에 각각 발송 번호를 매기고, 어느 한쪽에서 연락이 끊기면 담당 창구에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대단한 마법도 영웅의 능력도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래된 이별을 끝내는 방법이었다. *** 해가 질 무렵 서부 성역에서 또 다른 회신이 왔다. 수현이 제출한 귀환 의사 통지에 대한 첫 실무 답변이었다. [소환 원문 민원 분류번호 R-0의 발신 기록을 재조회한 결과, 외부 현장 확인인 배정 기록은 존재함.] 수현은 눈을 크게 떴다. “현장 확인인이면 저를 말하는 건가요?” 세드나가 서류를 살폈다. “그럴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이름은 적혀 있지 않네.” 그다음 문장은 더 이상했다. [배정 종료 확인이 접수되지 않은 경우, 원문 민원은 임의 종결 불가.] “배정 종료 확인이라니.” 수현은 중얼거렸다. 자기가 이세계로 온 날은 서울의 사무실에서 진정서를 펼쳤을 때였다. 그 뒤 누군가 자신에게 업무를 맡긴 것도, 종료 조건을 설명한 것도 아니었다. 왜 이런 절차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혹시 현장 확인 절차가 끝나야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일까요?” 메이가 물었다. 수현은 한참 답하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문서만으로는 알 수 없어요. 종료 절차가 귀환을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은 없으니까요.” 그녀는 문서의 마지막 줄을 읽었다. [종료 확인 권한의 기원: 고대 민원 중계실. 소재 및 현 운영 주체 확인 필요.] 수현은 그 말을 노트에 옮겼다. [고대 민원 중계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귀환 의사와 연결된 실무 창구가 나타났다. *** 공동 통신문이 끝난 뒤 수현은 회복소 복도를 따라 걸었다. 창밖에서는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다. 며칠 동안 쌓인 눈이 한 번에 녹지는 않았지만, 길을 내려면 오늘의 눈부터 옮겨야 했다. 그녀는 주디를 만나 일주일짜리 교대 기록 시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다. “처음엔 반대가 많았습니다. 오늘도 사람마다 불만이 있어요.” 주디가 말했다. “그럴 수 있죠.” “그래도 재고를 확인하는 시간이 줄었어요. 직원들에게 중간 평가를 묻고 있습니다.” “불이익이 생겼다는 사람은 없나요?” “한 명이 자기가 실수자로 찍힐까 봐 걱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조와 함께 수량을 재확인하도록 했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적인 관리자의 한마디보다 실제로 바뀐 절차가 더 의미 있었다. 그날 저녁 데런은 마차 출발 준비를 마쳤다. 그는 말발굽 상태와 돌아갈 길의 기상 예보를 다시 점검했다. 오르카는 라비엔의 면담 시간을 적어 놓은 작은 종이를 가방에 넣었다. 종이는 구겨져 있었지만 글씨는 선명했다. “이건 왜 보관하세요?” 수현이 물었다. “처음으로 그 친구가 제게 시간을 내겠다고 한 기록이니까요.” “좋네요. 그런데 다음에는 편지로 약속해도 되겠죠?” 오르카는 웃었다.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수현은 메이와 함께 여행 경비를 계산했다. 예상보다 하루가 늘어난 탓에 숙박비가 조금 초과됐다. 그러나 호송 중단 판단으로 사고를 피했다면 그 비용을 단순한 손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데런은 다음 이동 때도 안전 예비비를 따로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그건 꼭 기록해 둬요.” 수현이 말했다. 메이는 여행 장부 맨 아래에 자신이 사용한 치유 소모품을 적었다. 지난번과 달리 그 비용을 개인 빚으로 바로 계산하지 않았다. 누가 업무를 요청했고 어떤 위험을 처리했는지 먼저 적었다. “이것도 달라졌네요.” 수현이 말했다. “제가 치료했다는 이유로 전부 제 돈을 쓴 건 아니니까요.” 메이는 단호했다. “맞아요. 먼저 업무 비용인지 확인해야죠.” 수현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설명하지 않아도 메이는 자신에게 생긴 비용을 스스로 질문하고 있었다. 늦은 밤에는 카이렌에게서 짧은 소식이 왔다. 원정대의 다음 출정표에 교대 대기 인원이 별도 기재됐고, 젠이 부상자의 실제 휴식 여부를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브레그는 여전히 까다로웠지만 공개된 수령 장부를 매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고 했다. “수현 씨가 돌아오면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두었습니다.” 카이렌이 말했다. “좋아요. 그런데 저 없을 때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해요.” “그렇습니다. 이제는 우리 일입니다.” 통신이 끊긴 뒤 수현은 한참 미소를 지었다. 도움을 주러 왔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자신도 도움을 받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녀는 언젠가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이 있어서 고대 민원 중계실이라는 낯선 단서를 조금 덜 무서워할 수 있었다. 다음 장소에서 또 무엇을 알게 될지 몰랐지만, 적어도 자신이 누구의 삶을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는 원칙만은 잊지 않으려 했다. *** 그날 밤 작은 송별 식사가 열렸다. 데런은 다음 날부터 이동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었고, 세드나는 회복소 자료를 서부 성역으로 가져가 추가 확인할 계획이었다. 라비엔은 오래된 편지 한 통을 오르카에게 직접 건넸다. “이번에는 제대로 받았네.” 오르카가 말했다. “그러게.” 두 사람은 웃었다. 수현은 빵을 나누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는 부당한 빚의 징수를 멈추게 했고, 누군가는 실종된 친구와 다시 만났으며, 누군가는 이제 자기 휴식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출발할 때와는 달랐다. 오르카는 누군가를 억지로 데려가려 하지 않았고, 메이는 자신의 신청서를 직접 읽었으며, 세드나는 규정을 핑계 삼지 않고 규정의 빈칸을 확인했다. 수현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지를 펼쳤다. [확인: 라비엔 생존 및 자발적 면담. L-4 외부 기록 협력 이력.] [확인: R-0 원계약만으로 개인 채무 자동 전환 불가. C-47 중간 심사 계속.] [미확인: 카이렌의 기억 공백과 K형 안정 고리, 에린의 소재, 공작가 인장 실제 사용 경위.] [신규 단서: 소환 원문 민원 종료 확인의 담당 경로. 고대 민원 중계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내일 해야 할 일: 짐을 싸고,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하고, 돌아갈 길을 다시 묻기.] 수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새로운 길이 보인다고 곧장 집으로 가는 문이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무조건 끝내라는 사람의 말보다, 왜 그 일을 해야 하고 언제 끝낼 수 있는지를 묻는 자신의 목소리가 더 믿음직했다. 창밖에서 북쪽의 바람이 불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서울의 지하철 안내 방송을 떠올렸다. 다음 역의 이름이 더는 기억나지 않을까 봐 조금 두려웠다. 그러나 아직은 기억하고 있었다. 회사 건물 앞에서 팔던 붕어빵 냄새도, 빨갛게 뜨던 휴대폰 배터리 경고도. 이수현은 눈을 감았다. 이번 세계에서 그녀는 누군가의 계약서를 읽어 주는 사람으로 시작했다. 어쩌면 앞으로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계약서는, 자기가 동의한 적 없는 자신의 소환 기록인지도 몰랐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40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4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