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봉한 답신은 예상보다 작았다.
베라는 아침 식당으로 달려온 오르카에게 바로 봉투를 내밀지 않았다. 먼저 두 사람을 접견실로 안내하고, 출입 기록을 남겼다. 오르카는 문턱을 넘을 때 발이 걸렸다.
수현이 옆에서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오르카는 의자에 앉았다. 이제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베라는 답신의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
“연락을 전달받은 사람은, 본인을 찾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장소에서 짧은 면담을 허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르카가 숨을 멈췄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면담 당시 본인이 직접 신원을 밝힐 예정입니다. 시설은 먼저 이름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장소는요?”
“회복소 외부 접견실. 오늘 오후. 환자의 치료 구역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얼마나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지 수현은 알 수 있었다. 손잡이를 쥔 손등의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수현 씨도 함께 들어올 수 있을까요?”
베라가 말했다.
“상대방에게도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동행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 물어봐 주세요.”
수현은 오르카가 자신에게 동행을 부탁한다는 사실에 잠시 놀랐다.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친구를 만나기 전에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했다.
***
오후까지의 기다림은 참을 수 없이 길었다. 메이는 수현에게 차를 세 번 권했고, 수현은 세 번 다 찻잔을 놓는 위치를 바꾸었다. 세드나는 그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너도 긴장했구나.”
“당연하죠.”
“아침에는 오르카에게 차분하라고 하더니.”
“그건 그분한테 필요한 말이었고요. 제가 안 떨린다는 말은 안 했어요.”
세드나는 작게 웃었다.
오르카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현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고 점심을 가져다주었다.
“안 들어가도 됩니다.”
그가 안쪽에서 말했다.
“밥만 놓고 갈게요.”
“……감사합니다.”
잠시 뒤 문이 열렸다. 오르카는 이미 갑옷을 입고 있었다.
“면담에 갑옷은 반입이 안 될 것 같은데요.”
“알고 있습니다. 습관이라서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수현은 그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라비엔 씨라면 제일 먼저 흉터부터 보겠죠?”
“그 친구라면 갑옷의 끈부터 확인할 겁니다. 늘 제가 대충 묶었거든요.”
수현은 웃었다. 오르카도 조금 웃었다.
***
접견실 안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 세 개가 있었다. 창문 하나가 마당을 향하고 있었고, 문 옆에는 위급할 때 부를 수 있는 종이 달려 있었다. 회복소 담당자는 면담 시간이 삼십 분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났다고 당사자를 억지로 밖으로 내보내는 건 아닙니다. 다만 피로를 줄이기 위한 기준입니다. 연장이 필요하면 본인과 담당자의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이나 기록을 무단으로 남기지 말라는 조건도 확인했습니다.”
문이 열렸다.
먼저 들어온 사람은 젊은 보조 간호사였다. 그녀가 의자를 하나 당겼고, 그 뒤로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은 오른쪽 다리를 조금 끌었다. 수현은 그의 외투 소매 끝이 유난히 닳아 있다는 것부터 보았다.
오르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비엔?”
들어온 사람이 멈췄다. 그 얼굴에는 오르카와 비슷한 세월이 흘러 있었다. 눈가에 주름이 깊어졌고, 턱에는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그렇게 부르지 않은 지 오래됐어.”
목소리가 낮았다.
오르카가 두 걸음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손을 들었다.
“잠깐. 먼저 앉아.”
오르카는 그대로 멈췄다.
남자는 오르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기억을 확인하듯 눈썹과 턱, 어깨를 차례로 살폈다.
“너 여전히 끈을 엉망으로 묶는구나.”
오르카가 눈을 감았다. 수현은 그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방패 기사의 기록과 이름, 수리 날짜를 아무리 확인해도 대신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살아 있었구나.”
오르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래.”
남자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살아 있었어.”
***
수현은 두 사람에게 자기 소개를 하려다 멈췄다. 남자가 먼저 수현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수현인가요?”
“네.”
“오르카가 보내 준 연락문에 이름이 있더군요. 외부 자문인이라고요.”
“맞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오르카 씨의 동행인일 뿐이에요.”
“그렇게 하죠.”
남자는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말했다.
“내 이름은 라비엔입니다. 예전에 제7원정대에서 방패 기사로 일했죠. 나중에는 출정 기록도 맡았습니다.”
오르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왜 연락을 안 했어? 방패만 돌아왔잖아.”
라비엔은 시선을 내렸다.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어.”
“그럼 대답해.”
“조금만 천천히.”
라비엔의 목소리는 단호하지 않았다. 힘겹게 숨을 고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수현은 오르카의 팔을 가볍게 건드렸다.
“질문을 나눠서 하면 어떨까요? 지금 다 물어볼 필요는 없잖아요.”
오르카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엔은 물을 마신 뒤 말했다.
“그날 나는 전투 후 쓰러졌어. 제대로 걷지 못했고, 옮겨지는 동안 의식이 왔다 갔다 했지. 내 방패는 수리에 맡기라고 했어.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건 방패뿐이었겠지.”
“전출 처리됐어.”
“그 사실은 나도 뒤늦게 알았어.”
수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록 담당 일을 맡았다는 것도 본인 의사였나요?”
“처음에는 그래요. 환자들 명부를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죠. 내가 읽고 쓸 줄 안다는 이유로요.”
“언제까지요?”
“정확히는 기억이 흐립니다. 다친 데다 약을 많이 썼거든요. 회복소에서 확인한 날짜는 있지만, 그날 하루하루를 내 기억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의 빈칸에 대해 누구보다 조심해야 할 이유가 새로 생겼다. 기록은 있고 기억은 흐릿한 사람이 여기에 있었다.
***
오르카는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그래도 돌아올 수 있었잖아.”
“처음 몇 달은 걷는 것조차 힘들었어. 나중에는 시설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존하는 일을 맡게 됐어.”
“그럼 왜 편지를 안 썼어?”
라비엔은 한참 말이 없었다.
“썼어.”
“뭐?”
“한 번. 너한테 직접 보내는 편지는 아니었어. 원정대에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기록 담당자 계약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서였지.”
“받은 적 없어.”
“그래서 나도 궁금했어. 어디서 멈춘 건지.”
수현은 펜을 꺼냈다가 라비엔에게 물었다.
“지금 말씀하신 부분을 제가 기록해도 될까요? 오르카 씨와 공유할 개인적인 대화와 공식 확인할 사실을 구분해서 적겠습니다.”
“내가 직접 검토할 수 있다면요.”
“물론입니다.”
라비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북방 회복소는 격리 환자와 외부 기록관의 계약을 별도로 관리했다. 문제는 전출 통지가 원정대에 전달됐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근무 관계를 종료 처리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본인이 계속 여기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원래 계약에서 어떤 의무가 남아 있는지 설명받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누가 나를 가둬 놨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라비엔이 말했다.
“시설 직원들은 치료를 해 줬고, 나중엔 내 부탁도 들어줬어요. 하지만 내 원정대 기록이 어떻게 정리됐는지는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했다. 외부에서는 그를 납치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겪은 경험은 더 복잡했다.
***
삼십 분이 가까워지자 라비엔은 조금 지친 얼굴로 등을 기댔다. 보조 간호사가 상태를 확인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셔야겠어요.”
오르카는 일어서지 못했다.
“한 가지만 더.”
라비엔이 그를 보았다.
“말해.”
“집에 올 생각은 없어?”
라비엔은 천천히 답했다.
“아직은 모르겠어. 내가 여기에 남겨 둔 일도 있고, 여기서 회복해야 할 몸도 있어.”
오르카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어.”
“하지만 너한테 연락하는 건 계속하고 싶어.”
오르카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
“응. 다만 어떤 이야기부터 할지는 내가 정할게.”
오르카는 손을 내밀었다. 라비엔이 그 손을 잡았다. 방패를 함께 들었던 두 사람의 손이 오래 만에 다시 닿았다.
***
접견실에서 나온 뒤 라비엔은 잠깐 복도 벤치에 앉아 쉬었다. 보조 간호사는 면담이 생각보다 큰 피로를 남길 수 있다며 물을 건넸다. 수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만난 사람은 오래된 전설 속의 인물이 아니었다. 다리와 몸이 불편한 한 사람이었다.
라비엔은 수현에게 손짓했다.
“당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대충 들었습니다.”
“제7원정대의 기록과 계약을 확인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그럼 내가 남긴 기록이 문제를 만든 겁니까?”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렇게 판단할 자료는 없어요. 오히려 누락된 기록을 찾는 데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오늘 당장 이야기하실 필요는 없어요.”
라비엔은 손끝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돌아왔다고 하면 잃어버린 몇 년을 한 번에 설명하라고 해요.”
“저도 궁금한 게 많아요. 그래도 모든 답을 오늘 받아야 할 이유는 없죠.”
“오르카에게도 그렇게 말해 주시겠습니까?”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그래도 다시 이야기할게요.”
라비엔은 미소를 지었다.
“그 친구는 예전엔 적이 보이면 방패를 들고 무조건 앞으로 뛰어들었어요. 오늘은 내가 손을 들자 멈추더군요.”
“많이 연습했어요.”
“그런가요.”
라비엔은 잠시 웃더니 숨을 골랐다.
“그게 더 어려운 싸움일 때가 있죠.”
수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두 방패 기사는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싸움을 해 온 것 같았다.
잠시 뒤 베라가 합석했다. 그녀는 면담에서 나온 사실 가운데 행정 기록에 남길 항목을 확인했다. 수현은 라비엔의 현재 연락 의사를 오르카에게만 전달할 수 있다는 점과, 그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체류 정보를 공개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구분해 달라고 부탁했다.
“소문이 퍼지면 또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베라가 말했다.
“그건 라비엔 씨에게 물어야 할 문제죠.”
“맞습니다.”
베라는 새 연락 채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라비엔이 매번 당직 사무실에 편지를 맡길 필요 없이, 본인이 지정한 수령 장소를 이용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라비엔은 오래 생각한 뒤 회복소 행정실을 임시 주소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주소 변경은 언제든 요청할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수현은 그 장면이 좋았다. 살아 있는 사람을 확인하는 일이 그를 새로운 장부 속에 가두는 일이어서는 안 됐다.
밤에 오르카는 데런에게 라비엔의 방패 수리 기록을 다시 찾을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데런은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을 만났으니 물건은 나중에 확인해도 되죠.”
“그렇군.”
오르카는 손을 펴 보였다. 오랫동안 라비엔의 방패만 붙들고 있었던 손이었다.
“이젠 그 친구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겠네요.”
수현은 맞은편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방패의 수리 날짜를 확인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누군가 자기 이름으로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
면담이 끝난 뒤 수현은 한동안 말하지 못했다. 오르카는 창문 앞에 서서 눈이 내려앉은 마당을 바라봤다.
“살아 있었네요.”
그가 말했다.
“네.”
“그것만으로도 기쁘면서, 왜 이렇게 화가 날까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시간 때문일지도 모르죠.”
“당장 데려오고 싶어요.”
“그분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요.”
“알고 있습니다.”
오르카는 눈물을 닦았다.
“이번에는 기다리겠습니다. 대신 편지가 가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수현은 웃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발송과 도착을 둘 다 기록하면 되죠.”
그날 수현은 일지에 한 줄을 적었다.
[확인: 라비엔 본인과 면담. 생존 및 현지 체류 확인.]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른 줄을 적었다.
[미확인: 과거 전출 통지 미도달 경위, 원정대 계약 종료의 정당성, 당시 응급 환자의 신원.]
누군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를 확인했다고 해서 그의 삶에 관한 모든 질문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 라비엔의 이야기를 라비엔에게 물을 수 있었다.
수현은 그 사실을 오늘의 가장 큰 성과로 남겼다.
제3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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