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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35화
PAYLUA ORIGINAL · 제35화

35화. 쉬지 못하는 회복소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18자

오프라인 책장
회복소의 새벽은 종소리 대신 발소리로 시작됐다. 수현은 숙소 문밖에서 수레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이곳에는 환자가 많고 직원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 말은 낮에 들을 때보다 새벽에 들으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식당으로 내려가자 노엘이 작은 의자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반쯤 식은 차와 계산 장부가 놓여 있었다. 메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외투를 덮어 주었다. “어젯밤도 일했나 봐요.” “당직이었겠죠.”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여기 있네요.” 수현은 장부를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렸다. 잠든 사람의 사적인 업무 메모를 마음대로 들춰 볼 수는 없었다. 대신 식당 담당자에게 노엘이 쉴 곳이 있는지 물었다. “원래 당직 후에 휴게실에서 두 시간 쉬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고 있네요.” 담당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동할 힘도 없었나 보죠.” 노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났다. 외투를 보고 메이에게 감사를 전하면서도 시간표를 먼저 찾았다. “오늘 오전엔 약재가 들어오는데…….” “노엘 씨.” 메이가 그의 말을 끊었다. “지금은 쉬어야 하지 않아요?” “쉬고 있었죠.” “식탁에서요?” “두 시간은 못 채웠지만 조금 잤어요.” 수현은 손에 든 빵을 내려놓았다. 굳이 노엘에게 조언부터 하지 않았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했다. “교대 근무표는 누가 만드나요?” “간호 총괄이요. 그런데 그 사람도 밤새 일했어요.” “그럼 현재 보급 담당은 몇 명인가요?” “명부에는 세 명. 실제 근무는 둘이에요. 한 명은 손을 다쳤고요.” 수현은 메이를 바라봤다. 메이의 눈빛에는 자신이 야전 진료소에서 밤새 사람을 치료하던 날의 기억이 비치는 것 같았다. “필요한 건 사람을 더 채용하는 일인데요.” 노엘이 말했다. “그 말을 하려면 장부를 내야 하죠. 근데 장부를 만들 사람도 없어요.” 수현은 조금 웃었다. “그럼 아주 짧게 시작할 수 있겠네요.” *** 한 시간 뒤 수현은 노엘과 베라, 간호 총괄 주디가 있는 작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 앉은 것은 업무 개선 제안을 해 보겠느냐는 노엘의 부탁 때문이었다. 수현은 먼저 선을 그었다. “저는 왕국의 의료 감독관이 아닙니다. 허가 없이 진료실 운영을 바꾸거나 직원들에게 일을 시킬 수 없어요.” 주디는 경계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선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현재 어디에서 일이 막히는지 당사자들의 말을 듣고, 선택 가능한 방법을 정리할 수는 있겠죠. 실제 변경은 책임자와 직원들이 합의해야 해요.” 베라가 수현에게 종이를 건넸다. “회의록은 제가 남기겠습니다.” 주디는 직원 명부와 하루 업무량을 비교해 보자고 했다. 수현은 환자 정보를 제외하고 직무별 작업 수만 집계해 달라고 부탁했다. 보급품 입고, 소독, 물약 배분, 야간 재고 확인. 그 네 가지 업무가 같은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사람이 부족하면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건 이해해요.” 수현이 말했다. “하지만 계속 급한 일만 처리하면 언제나 같은 사람이 밤을 새게 됩니다. 응급과 정기 업무를 따로 나누고, 기록을 매일이 아니라 교대 때 짧게 남길 수 있을까요?” 노엘이 손을 들었다. “그렇게 하면 저는 밤에 재고를 다 다시 세지 않아도 됩니다. 입고할 때 수량을 확인하고 다음 조가 이어서 적으면 되니까요.” 주디는 잠깐 계산했다. “대신 전날 기록을 신뢰해야겠군.”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도 같이 정하죠. 확인한 사람이 이름을 쓰고, 수량이 틀리면 고치기 전 기록이 남도록요.” 베라는 회의록에 적었다. 그제야 주디가 조금 안심한 얼굴로 말했다. “일주일 정도 시범으로 해 보겠습니다. 단, 환자 안전에 영향이 있으면 즉시 중단하고 보고하죠.” “좋습니다. 저는 제안 내용을 정리할 뿐이고, 승인 권한은 여기 계신 분들에게 있어요.” *** 회의가 끝나자 메이는 수현을 복도로 끌고 나왔다. “수현 씨는 어딜 가나 근무표부터 고치네요.” “그게 제일 잘 보이나 봐요.” “저는 여기 와서 약재가 얼마나 있는지만 봤는데.” “메이 씨는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지 먼저 보는 거잖아요. 서로 다른 걸 보는 게 좋죠.”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목의 붉은 고리를 만졌다. “이제는 남의 치료비 계산을 볼 때마다 조금 화가 나요. 전에 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냈으니까요.” “그때 몰랐던 일로 자신을 탓하진 마세요. 지금 바꾸고 싶은 게 생겼으면 그걸 할 수 있죠.” “그럼 돌아가서 제7원정대 보급 장부부터 다시 볼래요.” 수현은 웃었다. “그건 제가 따라가야겠네요.” *** 점심때 베라가 다시 찾아왔다. 부속 이관실에서 발견한 인수 확인 날짜 두 개에 관해 테르논의 중간 답이 나왔다고 했다. “두 번째 도장은 정정이 아니라 ‘재인수’ 표시에 가깝다는군요.” “재인수라면 이미 받은 물건을 다시 받았다는 건가요?” “사람일 수도 있고 문서일 수도 있습니다. 옛 규정에는 임시 인수 뒤 보존 책임자가 바뀌면 다시 인수 확인을 하는 절차가 있어요.” “그럼 사흘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가 중요하겠네요.” 세드나가 물었다. “맞습니다.” 테르논은 별도 첨부표가 없어져 왜 재인수가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기록 보존 규칙에는 첨부표가 떼어진 경우 원문서의 한 귀퉁이에 작은 구멍이 남도록 묶어 두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어제 수현이 보았던 구멍이었다. “서류가 없어진 게 아니라 다른 곳에 묶인 것일 수도 있다는 거군요.” 수현이 말했다.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찾기 전에는 모릅니다.” 베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수현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서류를 조금 다룬다고 해서 모두가 무조건 자기 편을 들어주는 건 아니었다. 각자의 규칙과 일의 무게가 있었다. *** 오후에는 뜻밖의 항의가 들어왔다. 주디가 제안한 간단한 교대 기록을 두고 다른 간호사 한 명이 반대했다고 했다. “왜 우리가 매번 이름을 써야 하죠?” 그 간호사는 수현을 직접 찾아와 물었다. “나중에 재고가 없어지면 이름 적힌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 아닙니까?” 수현은 대답하기 전에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전에도 분실 물품 책임을 마지막 근무자에게 떠넘긴 적이 있다고 했다. 기록이 보호 장치가 아니라 처벌의 근거가 됐던 것이다. “그 걱정이 이해돼요. 그럼 이름을 적는 목적부터 명확히 해야겠네요.” “목적이 뭐든 결국 이름을 보겠죠.” “그래서 책임 판단은 재고 기록 한 줄만으로 하지 않는다고 적고, 오류가 나면 이전 조와 다음 조가 같이 확인하는 절차를 만드는 게 어떨까요?” 간호사는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었다. “실제로 지켜질까요?” “그걸 제가 보장할 순 없어요. 그래서 일주일 시범 기간에 불이익이 생기면 중단하고 문제를 바로 검토하도록 조건을 넣어야죠.” 간호사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수현은 그에게 즉시 서명하라고 하지 않았다. 반대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 개선은 새로운 명령이 될 뿐이었다. *** 주디는 저녁 회의를 앞두고 직원들이 작성한 건의문 세 장을 수현에게 가져왔다. 종이마다 표현이 달랐다. 한 사람은 휴식 시간 보장을 요구했고, 다른 사람은 보급품 부족을 걱정했다. 마지막 종이에는 ‘잘못된 기록을 이유로 마지막 근무자에게만 책임을 묻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용이 너무 제각각이라 하나의 안으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주디가 말했다. “모두 하나로 묶을 필요는 없죠.” 수현은 종이를 나란히 놓았다. “근무표, 보급품, 책임 판단은 서로 연결돼 있지만 다른 문제잖아요. 각각 결정할 사람도 다르고요.” 노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담당자를 정해 둘까요?” “좋아요.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해 보죠.” 직원들은 먼저 재고 점검 방식을 시험하기로 했다. 그러나 밤에 재고가 맞지 않을 때는 점검을 다시 수행한 뒤 다음 교대자와 함께 원인을 분류하도록 했다. 개인의 고의나 실수는 다른 자료를 통해 확인하기 전까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무조건 제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일은 없겠죠.” 한 간호사가 말했다. “당장 없어지진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이 절차를 근거로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겠죠.” 수현의 말에 간호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 뒤 주디는 보급품을 운반하는 사람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창고에서 병실까지 옮기는 직원은 근무표에 이름조차 따로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담당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가장 바쁜 사람이 맡는 일이었다. “누가 그 일을 하는지 적어 봐야겠군요.” 주디가 말했다. 수현은 동의했다. “숨겨진 일이 많으면 인원이 충분해 보이기 쉽거든요.” 그날 밤 주디는 직접 물품 수레를 밀며 복도를 한 바퀴 돌았다. 수현은 그와 나란히 걷다가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회복소 복도는 모두 비슷한 색 돌로 만들어져 있었고, 각 병동 입구에는 작은 기호만 붙어 있었다. “외부인이 여기서 일하면 하루 종일 헤매겠어요.” 수현이 말했다. “신입 간호사도 그래요.” 주디가 답했다. “그럼 신입 안내 지도는 있나요?” “없습니다. 선배를 따라다니며 외워요.” 수현은 벽마다 병동 이름을 써 붙이면 어떠냐고 제안했다가, 환자 정보 보호 때문에 기호를 쓰는 이유를 들었다. 그제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상세 표지판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 직원 전용 안내표를 만들면 되겠네요. 새로 온 사람에게만 주고 반납받는 방식으로요.” “그건 가능하겠군요.” 주디는 메모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덤비다 이유를 먼저 듣고 방향을 바꾼 순간이었다. 수현은 자기가 모든 답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한국에서 익힌 경험이 이곳에서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곳의 사람들이 쌓아 온 사정까지 건너뛸 수는 없었다. 잠시 뒤 직원 전용 휴게실 앞을 지나던 수현은 노엘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수레가 옆을 지나가도 일어나지 않았다. 교대자에게 업무를 넘기고 실제로 쉬는 중이었다. “오늘은 좀 쉬나요?” 수현이 물었다. “네. 주디가 직접 보내 줬어요. 재고도 같이 확인했고요.” 노엘은 찻잔을 들어 보였다. “제가 이렇게 앉아 있는 게 괜히 죄짓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낫네요.” 수현은 그를 보며 웃었다. 서류 한 장이 사람을 바로 쉬게 하는 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류에 적힌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은 분명 있었다. 그날의 기록은 아주 짧았다. [임시 교대 점검 시범 시작. 휴게 시간 실제 사용 여부를 별도 확인.] 수현은 그 문장을 읽고 만족했다. 이 회복소에서 적어도 한 사람이 오늘 제대로 차를 마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해 질 무렵 기록 보존실 앞에 작은 소란이 생겼다. 테르논이 오래된 접수함의 바닥에서 종잇조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완전한 첨부표는 아니었다. 낡은 실에 매달린 작은 꼬리표였다. 그 위에는 숫자 세 개와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제2차 인수 확인은 사람의 재입소가 아닌 책임 보관의 변경을 뜻함.] 오르카가 그 문장을 읽고 어깨를 조금 내렸다. “그럼 사흘 뒤에 다시 들어온 환자가 있었던 건 아니군요.” “적어도 이 꼬리표가 같은 기록에 붙어 있었다면요.” 수현이 답했다. 테르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결된 원문서가 맞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실 색과 구멍의 간격을 대조할 거예요.” 수현은 오래된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중요한 것은 도장이 하나 더 찍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책임이 누구에게 옮겨갔는지 밝히기 위해 굳이 두 번 확인했다는 점이었다. 그때 베라가 말했다. “이 경우에는 실제 보관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근무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담당자가 외부 기록관이었다면 좀 복잡해질 겁니다.” “외부 기록관도 맡을 수 있었나요?” “예외적으로요. 비상시에 현장 기록을 함께 이송한 사람에게 맡긴 적이 있습니다.” 수현은 오르카를 돌아봤다. 그는 이미 그 이름을 떠올린 얼굴이었다. 라비엔. 그러나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름 하나를 추측하는 대신, 그들은 다음 날 담당자 대장 열람 신청서를 작성했다. 근무표에서 시작된 하루가 다시 근무표로 끝났다. 수현은 웃고 싶었다. 자기는 세상이 바뀌어도 결국 출근부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출근부에는 누군가의 행방이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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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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