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속 이관실의 문은 회복소 본관 뒤편에 있었다.
낡은 석조 건물의 반쯤 지하로 내려가면 철제 문이 하나 나오고, 그 문을 열면 다시 작은 문이 이어진다고 했다. 수현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조금 질렸다. 문 두 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문마다 다른 부서에서 열쇠를 관리한다는 사실이었다.
“한 사람이 두 열쇠를 모두 가지면 안 됩니다.”
베라가 설명했다.
“첫 번째는 우리 행정실, 두 번째는 성역 보존 감독관이 보관합니다.”
“그럼 둘 중 한 사람이 휴가면요?”
“대리자를 지정합니다.”
“대리자가 없으면요?”
“출입이 미뤄집니다.”
수현은 탄식하려다 참았다. 어쩌면 바로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중요한 기록이 지켜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장 난 절차는 나중에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부속 이관실 기록을 확인하려면 접수 누락 사건의 관계 자료를 증명해야 했다. 수현 일행이 가진 것은 서부 성역 운송장 사본, R-0 보호 계약의 일부, 비식별 인계 기록이었다. 베라는 우선 자료의 일치 여부부터 확인하겠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행정 담당과 보존 감독관 두 명입니다. 신청인은 별도 대기실에서 허가된 목록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오르카가 곁에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수현은 그의 얼굴을 보고 덧붙였다.
“오늘 문을 열어도 라비엔 씨를 바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정말 알고 있죠?”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 수현 씨가 열 번 넘게 말했으니까요.”
***
열쇠를 기다리는 동안 메이는 보급 담당 간호사 노엘과 이야기를 나눴다. 노엘은 회복소의 물약과 붕대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왼손 손가락에 작은 화상 흉터가 있었다. 메이는 자신의 손목 고리를 보여 주며 개인 비용 청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물었다.
“여기는 회복 대상자에게 직접 물품 비용을 청구하지 않아요.”
노엘이 말했다.
“그럼 누가 내나요?”
“회복소 예산에서 먼저 지급합니다. 다른 계약이 있으면 이후에 정산하지만 치료 전에 본인에게 보증금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다행이네요.”
“다행인가요? 저는 원래 그래야 하는 줄 알았는데.”
메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메이의 손목이 이번에도 옅게 붉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강제 징수가 중단된 상태일 뿐, 빚이라는 표시는 여전히 몸에 붙어 있었다.
“손목 고리 자체는 어떻게 제거하나요?”
수현이 물었다.
노엘은 고리를 살피고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해제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닙니다. 발행 기관과 계약 담당자의 승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마력 장치를 억지로 풀면 피부를 다칠 수도 있어요.”
수현은 메이에게 고개를 저었다. 섣불리 빼려 들지 말자는 뜻이었다.
노엘은 보급 현황을 설명하다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요즘은 물약보다 보존용 마석이 더 부족해요. 회복 대상자가 늘어서요.”
“환자가 늘어난 건가요?”
“다른 시설에서 보내 오는 장기 회복 대상자가 많아졌습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예요. 진료 사정은 제가 공개할 수 없지만요.”
“그럼 물품과 인력 부족에 대한 건의는 어디에 하나요?”
메이가 물었다.
노엘은 멋쩍게 웃었다.
“대개 식당에서 서로 불평하고 끝나죠.”
메이는 자기 노트를 펼쳤다.
“저희 원정대도 그랬어요. 지금은 기록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았거든요.”
수현은 메이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배운 방식을 전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
오후에 보존 감독관이 도착했다. 키가 작은 남자로 이름은 테르논이었다. 그는 서류 묶음마다 다른 색 실을 감고 있었고, 자기가 잠깐 지켜보는 동안 누구도 기록실 문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자꾸 왜 기록을 안 보여 주느냐고 합니다. 보여 줄 수 있는 건 보여 줍니다. 다만 원본이 없어진 뒤에는 누구에게도 보여 줄 수 없죠.”
수현은 그 말에 동의했다.
“원본에 접근하는 분들부터 먼저 목록에 남겨 주시겠어요? 오늘 저희가 누가 안에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요.”
테르논은 눈썹을 올렸다.
“외부인이 그걸 왜 알아야 하죠?”
“나중에 자료가 나오더라도 그걸 언제 누가 확인했는지 알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름을 공개하기 곤란하면 담당 직책과 서명 일련번호라도 괜찮아요.”
“나에게 기록 방법을 가르치는 겁니까?”
“아뇨. 확인 가능한 방법을 여쭤보는 겁니다.”
그는 잠시 수현을 바라보다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열람 일지를 참관인에게도 제공하겠습니다. 이름 일부는 가립니다.”
“감사합니다.”
테르논은 첫 번째 열쇠를 베라에게 받아 확인하고, 두 번째 열쇠로 안쪽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들어간 뒤 문은 다시 닫혔다.
기다림이 시작됐다.
***
오르카는 기다리는 일을 끔찍하게 못했다. 첫 한 시간 동안 창밖을 네 번 보고, 복도를 세 번 왕복하고, 자신의 방패가 경비실에 잘 있는지 두 번 확인했다.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 허가된 구역이 아니에요.”
수현은 차를 내밀었다.
“그럼 차라도 드세요.”
“지금 차가 목으로 넘어가겠습니까?”
“안 넘어가면 식혀서 드세요. 목이 타면 더 힘들잖아요.”
오르카는 마지못해 잔을 받았다. 수현도 자신의 말을 곱씹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진정시키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불안을 이유로 함께 온 사람들을 몰아붙이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라비엔은 저보다 두 살 많았습니다.”
오르카가 문득 말했다.
수현은 시선을 들었다.
“전투가 끝나면 제가 항상 방패를 대충 내려놨죠. 그러면 라비엔이 어디 긁혔는지 확인하고 기록했어요.”
“기록을 좋아했나 보네요.”
“아뇨. 귀찮아했어요. 하지만 누가 다쳤을 때 다음 전투에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적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르카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한번은 제가 ‘영웅은 흉터로 배운다’고 했더니 이런 말을 했죠. 흉터가 생기기 전에 배우면 더 싸게 먹힌다고.”
수현은 작게 웃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라비엔이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제가 좋아할 말이네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
기록실에서 나온 베라는 먼지에 얼룩진 장갑을 벗었다.
“인계 대조표를 찾았습니다. 당시 인수 문서 중 한 장이 짝이 맞지 않아 별도로 보관됐더군요.”
수현은 서둘러 물었다.
“내용을 볼 수 있을까요?”
“먼저 공개 가능한 범위를 검토했습니다. 인계하는 쪽은 서부 성역 북문 운송조합. 받는 쪽은 북방 회복소 행정실입니다. 그런데 한 줄에 날짜가 두 번 적혀 있어요.”
“두 번이라고요?”
“출발 날짜와 도착 날짜가 아니라, 같은 항목의 ‘인수 완료’가 서로 다른 날 두 차례 찍혀 있습니다.”
세드나가 표를 들여다봤다.
“정정 이력일 수도 있겠네.”
“네. 문제는 정정 사유란이 비어 있다는 겁니다.”
수현은 날짜가 적힌 줄만 허가받아 베꼈다. 종이에 찍힌 도장 자국을 보니 두 번째 인수 확인은 첫 번째보다 사흘 뒤였다. 카이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흘과 같은 길이였다.
심장이 빨라졌다.
그러나 수현은 연필을 내려놓았다.
“기간이 같다는 이유로 같은 사건이라고 말하진 않을게요. 이 인수 문서가 환자에 관한 건지, 서류에 관한 건지도 먼저 확인해야 하니까요.”
오르카가 실망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적어도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네. 조사할 만한 이유는 충분해졌어요.”
수현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것은 결론과 다른 종류의 확신이었다.
***
이관실의 문이 열리기 전 데런은 수현에게 낡은 금속패를 하나 보여 주었다. 그것은 서부 성역의 운송조합에서 쓰던 인계 확인패와 비슷한 물건이었다.
“여관 주인의 아버지가 쓰던 표준표를 기억하십니까? 거기 그려진 모양과 닮았습니다.”
수현은 금속패를 받아 들고 글씨를 읽었다. 한쪽에는 교역로 번호, 반대쪽에는 서부 성역의 창고 인장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어요?”
“여기 마차를 고치는 공방에서 봤습니다. 오래된 부품을 담는 상자에 들어 있더군요.”
“소유자가 누구예요?”
“공방입니다. 구경만 했고 가져온 건 아니에요. 이건 모양을 베낀 나무패입니다.”
수현은 웃었다.
“이제 남의 물건을 무턱대고 가져오지 않으시네요.”
“수현 씨가 그러면 먼저 압수 목록부터 작성하라고 하시잖아요.”
그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수현은 표식을 자기 기록과 비교했다. 닮았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조합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부품을 담는 상자는 오래된 물건이 섞여 있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이 패를 정식 증거 목록에 넣기보다는 비교 자료로 따로 표시했다.
“공방 주인이 원한다면 예전 운송 표식을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데런이 물었다.
“물어보는 건 괜찮겠죠. 대신 그분이 모르는 사건의 증인인 것처럼 몰고 가면 안 돼요.”
데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뒤 공방 주인에게서 짧은 답이 왔다. 과거 회복소로 운송하던 마차는 병상 수뿐 아니라 서류 함의 개수도 따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서류 함이 환자와 함께 왔다가 보존실로 이동하면, 재인수 도장이 찍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인수 날짜 두 개가 꼭 환자 이동을 뜻하는 건 아니네요.”
수현이 말했다.
“그렇죠. 다만 당시에도 같은 방식이었는지는 오래된 규칙을 확인해야 합니다.”
세드나가 덧붙였다.
수현은 이 대화를 요약해 베라에게 전달했고, 참고 진술로만 분류해 달라고 했다. 사실을 찾는 과정에서 작은 단서를 부풀리고 싶지 않았다.
문이 열린 뒤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수현은 간단한 목록을 만들었다. 첫 줄은 문서 번호, 둘째는 작성 부서, 셋째는 확인된 날짜, 넷째는 미확인 사항이었다. 오르카가 그 목록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쓰면 중요한 게 금방 보이는군요.”
“그렇죠. 대신 빠진 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원본 확인은 계속해야 해요.”
“라비엔이 전에도 그런 표를 만들었습니다.”
오르카는 손가락으로 빈칸을 짚었다.
“그 친구는 여기에 늘 ‘누가 직접 봤는가’라고 적었죠. 누군가 대신 들은 소문과 자기가 본 일을 섞지 말자면서요.”
수현은 그 칸을 새로 그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이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고민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대조표는 그날 밤 베라가 인수 날짜를 검토할 때 유용하게 쓰였다. 단서를 발견한 사람보다 그 단서를 누가 확인했는지 알고 싶은 담당자에게 도움이 된 것이다.
오르카는 방으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언젠가 라비엔을 만나면 이 표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분이 보고 싶다고 하면요.”
수현이 말했다.
오르카는 잠시 눈을 감더니 웃었다.
“그렇죠. 이제는 그 질문부터 해야겠네요.”
***
테르논은 대조표 원본에 손상이 있어 추가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부 성역에서 봉인했던 관련 자료와 직접 비교하기 전까지는 누구의 실수인지 판단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정정 도장을 찍은 담당자 번호가 그날의 근무조 목록에서 보이지 않아요.”
“퇴직했거나 파견된 직원일 수도 있지 않나요?”
수현이 물었다.
“그럴 수 있죠. 그래서 번호가 쓰이던 기간의 담당자 대장을 확인할 겁니다.”
“그럼 그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베라는 여전히 두 장의 서류를 비교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표식 위치가 이상하네요.”
“뭔가요?”
“두 번째 도장의 옆에 있는 작은 구멍. 예전 기록관들이 문서 한 장을 다른 기록철에 임시로 연결할 때 쓰던 표시예요.”
오르카의 눈빛이 변했다.
“기록관이라면 라비엔이…….”
“아직은 그런 말을 할 근거가 없어요.”
수현이 먼저 말했다.
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 구멍에 연결됐던 종이를 찾으면, 왜 사흘 뒤에 다시 인수 확인이 찍혔는지는 알 수 있겠죠.”
문은 다시 잠겼다. 열쇠는 각자 원래 담당자에게 돌아갔다.
수현은 대기실로 걸어가며 오르카를 바라봤다. 그는 아까보다 차분했지만 눈은 여전히 붉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겠네요.”
오르카가 말했다.
“네.”
“이번에는 기다리겠습니다.”
수현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에게 필요한 용기가 언제나 앞으로 달려가는 힘인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닫힌 문 앞에서 손을 떼고 서 있는 일이 더 어려웠다.
그날 확인된 것은 인수 날짜 두 개와 빈 정정 사유, 그리고 사라진 첨부 종이 한 장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이제 알았다.
이 사건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적은 이름이 아니라, 아무도 이유를 적지 않은 빈칸이라는 사실을.
제3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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