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그친 다음 날, 마차는 북방 격리 회복소의 검은 철문 앞에 도착했다.
철문 위에는 두 마리의 새가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는 문장이 있었다. 자세히 보면 새들이 아니라 접힌 날개 같기도 했다. 수현은 문장을 한 번 더 살펴봤다. 소환 서고에서 본 봉투의 표식과 닮은 구석이 있었지만 동일한 문양은 아니었다.
“여기가 맞습니까?”
오르카가 물었다.
데런이 지도를 펼쳐 확인했다.
“현재 표기된 북방 격리 회복소가 맞습니다.”
회복소는 성벽처럼 높은 담에 둘러싸여 있었다. 안쪽에서는 굴뚝 연기가 났고,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수현이 상상했던 감옥 같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료 시설이라고 하기엔 경비가 지나치게 많았다.
철문 앞의 경비병이 입구를 막았다.
“방문 목적을 밝히십시오.”
세드나가 예비 승인서를 내밀었다.
“서부 성역 기록 보존 심사와 관련해 비식별 운송 기록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면담과 개인 기록 열람은 별도 심사 대상임을 알고 있습니다.”
경비병은 인장을 확인한 뒤 일행의 무기를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르카가 방패를 만졌다. 라비엔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래된 방패였다.
“내 방패까지?”
“환자가 있는 구역에는 무기와 대형 보호구를 반입할 수 없습니다.”
“방패가 무기입니까?”
수현은 오르카를 돌아봤다.
“지금 여기 들어와서 싸울 생각 없잖아요.”
“없습니다.”
“그럼 맡기죠. 인수증 받고요.”
그는 한참 동안 방패를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경비병에게 건넸다. 경비병은 보관 번호를 적은 나무패를 주었다.
수현은 그 패를 보고 중얼거렸다.
“오늘은 우리 물건에도 번호가 생겼네요.”
메이가 웃음을 참았다.
***
회복소 행정실장은 베라라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두꺼운 털옷 위에 회색 앞치마를 둘렀고, 탁자에 놓인 쌓인 서류를 한 번에 세 무더기로 나눴다.
“접수 신청인, 동행인, 실무 열람인으로 구분하겠습니다.”
수현은 자기가 실무 열람인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신청인에게 위임을 받았고, 원문 열람 권한이 확인된 범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성역에서 인정한 사본을 여기서도 무조건 보여 주는 건 아닙니다.”
“이해했습니다.”
베라는 놀란 표정이었다.
“보통은 여기서 한참 소리를 지릅니다.”
“소리 지르면 허가가 빨리 나나요?”
“아뇨.”
“그럼 저도 아껴야죠.”
베라는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비식별 운송 장부 열람은 오후에 가능했다. 그동안 일행이 머물 수 있는 곳은 방문객 식당과 작은 대기실뿐이었다. 병실 복도는 출입 금지였다. 메이가 의료 소모품 보급 체계를 알아보겠다고 하자 베라는 별도 직원 면담 시간을 잡아 주었다.
“치료 환경을 보고 싶은데요.”
메이가 말했다.
“환자 공간은 어렵습니다. 대신 보급 담당 간호사와 이야기는 할 수 있어요. 시설 규정과 환자의 동의가 별도로 필요합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메이가 대답했다.
수현은 그 짧은 답이 좋았다. 이곳에 온 이유가 라비엔 하나 때문이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환자의 얼굴을 구경거리처럼 보아서는 안 됐다.
***
점심 식사는 끓인 보리와 묽은 채소 수프였다. 수현은 국물을 떠먹으며 대기실 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월별 방문자 수와 직원 휴게 시간이 적혀 있었다.
“이쪽은 쉬는 시간이 꽤 정확하네요.”
메이가 말했다.
“표에만 적힌 게 아닐까요?”
수현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근무표가 있는 곳에서 진짜 쉬는지 확인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옆자리의 간호사가 수프를 먹다 말했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교대로 먹어요. 오늘은 제가 늦게 먹는 순서고요.”
“휴게 시간에 호출도 받으세요?”
수현이 물었다.
“위급한 환자가 있으면요. 대신 그날 다른 시간에 쉬게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돼요?”
간호사는 잠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대체 인력이 있을 때는요.”
수현은 더 묻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 직장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캐묻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비공개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
오후 열람실에서 베라는 두꺼운 장부 네 권을 가져왔다. 그녀는 먼저 붉은 끈으로 묶인 부분을 가리켰다.
“개인 기록은 가리고, 시설의 접수 인원과 발송·수령 시각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회복소 내부 번호는 의료 정보와 연결되므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수현은 허가된 표의 열을 확인했다.
성역에서 가져온 옛 운송장은 폭설 밤 이송 대상 둘, 동행 기록 담당 하나를 적고 있었다. 회복소 장부에는 같은 날짜 전후로 ‘응급 입소 둘’과 ‘서류 접수 하나’가 있었다.
“이거면 같은 건가요?”
오르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직요.”
수현이 답했다.
“같은 날에 들어온 둘이라고 해서 같은 두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당시 경유지가 맞는지, 운송 주체가 맞는지 확인해야 해요.”
베라는 별도 장부를 꺼냈다. 출입 수레의 휘장과 책임자 인장만 남긴 기록이었다. 그중 하나가 서부 성역 기록에 찍힌 운송조합 인장과 같았다.
“인장 형태는 일치하네요.”
세드나가 말했다.
“사용자가 같은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해.”
수현은 자료를 나란히 놓았다. 그날의 큰 줄기만큼은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환자 두 사람의 신원도, 동행 기록관의 이름도 가려져 있었다.
“서류 접수 하나라는 건 사람 한 명이 입소했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베라가 말했다.
“서류 한 건이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서류를 들고 온 사람은 출입 기록의 다른 칸에 적힙니다.”
오르카는 고개를 숙였다. 수현은 허무한 마음을 이해했다. 숫자 하나를 찾을 때마다 사람 한 명과 연결하고 싶어지는 마음이었다.
***
그날 저녁 베라가 먼저 연락해 왔다.
“옛날 인계 기록을 보고 싶다고 했죠? 우리 시설은 옛 인계자 이름 대신 당직 조 번호를 보관합니다. 접수 목적이 맞으면 근무 배치표의 비식별 부분을 확인할 수 있어요.”
“왜 이름을 가리나요?”
“과거 분쟁이 많았습니다. 직원 이름이 밖으로 나간 뒤 협박 사건이 있었거든요.”
수현은 잠깐 대답하지 못했다. 그 사정을 듣고 나니 무조건 다 공개하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확인하고 싶은 건 기록관이 환자였는지, 서류를 인계한 사람인지 정도예요.”
“그 정도는 검토할 수 있습니다.”
세드나는 별도의 열람 요청서에 ‘인계 역할 구분 및 당직표 대조’라고 적었다. 수현은 서류에 한 줄을 더 넣었다.
[직원 성명 등 개인 식별 정보 공개는 요청하지 않음.]
베라가 확인 도장을 찍었다.
***
숙소로 쓰는 외부 방문객 방은 몹시 추웠다. 창문 틈에서 바람이 들어왔고, 온돌석 하나가 방 한가운데 조그맣게 빛났다. 메이는 목도리를 풀지도 못한 채 침대에 앉았다.
“수현 씨, 너무 멀리 온 것 같지 않아요?”
“거리로만 따지면 엄청 멀죠.”
“이렇게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알면 어떡하죠?”
수현은 외투를 접어 베개 옆에 두었다.
“아무것도 못 알아낸 건 아니에요. 같은 날짜에 같은 운송조합 인장이 쓰인 건 확인했죠.”
“하지만 사람이 누군지 모르잖아요.”
“그렇죠. 그건 아직 못 알아냈어요.”
메이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엔 잘 모르면 그냥 누가 책임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저도 가끔 그래요.”
“수현 씨도요?”
“당연하죠. 다만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알아채면 한 번 더 확인하려고 하는 거예요.”
메이가 웃었다.
“생각을 고치는 것도 연습이군요.”
수현은 대답 대신 담요를 덮어 주었다.
***
그날 오후 식당에서 만난 간호사는 수현에게 회복소가 왜 담장을 높게 쌓았는지 설명해 주었다. 과거에는 격리 대상이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소문이 퍼지면 치료 중인 이들이 돌을 맞기도 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가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을 숨기는 곳이라고 믿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수현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실제로 그런 환자가 있는지는 확인된 적 있나요?”
“그건 제가 공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다만 여기가 소생 전용 시설은 아닙니다. 전쟁 후유증, 마력 손상, 장기 치료를 모두 맡아요.”
메이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소생 비용 때문에 시작된 조사라 그곳의 모든 환자가 소생과 관계된 사람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제가 멋대로 생각했네요.”
메이가 말했다.
“그런 소문이 많으니까요. 처음 오신 분들이 흔히 그래요.”
간호사는 담담했다. 그러나 그가 덧붙인 말은 수현에게 오래 남았다.
“밖에서 누군가 이곳 환자를 괴물이라고 부르면, 안에 있는 사람은 회복하려던 마음부터 잃어버립니다.”
수현은 이를 일지에 적지 않았다. 의료 정보가 아니라 한 사람의 말이었고, 그 사람에게 허락받은 이야기도 아니었다. 대신 자신이 어떤 태도로 병실을 바라봐야 할지 마음속에 새겼다.
저녁에는 데런이 회복소의 보급 창고 외곽을 둘러보고 왔다. 마차 바퀴를 고칠 장소를 물었더니 관리인이 창고 뒤편에 공방이 있다고 알려 줬다고 했다.
“공방이라면 방패 수리 기록도 남아 있을까요?”
오르카가 물었다.
“여기는 의료 장비를 주로 고친다고 합니다. 라비엔의 방패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오르카는 생각보다 쉽게 물러섰다. 수현은 그가 예전처럼 모든 단서를 라비엔에게 연결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았다.
데런은 공방의 접수대에 맡겨 둔 바퀴 핀 교체증을 보여 줬다. 수현이 적힌 번호를 확인하자 그는 웃었다.
“이제 저도 무슨 종이든 접수증부터 챙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좋은 버릇이죠.”
“다만 제 아내가 보면 마차보다 종이를 더 많이 가져온다고 할 겁니다.”
수현은 웃었다. 먼 북쪽에서 자신과 같은 농담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뜻밖에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밤에는 외부 방문객 숙소를 점검하던 경비가 난방용 돌을 교체했다. 수현은 낡은 온돌석을 돌려주며 사용 시간을 물었다. 경비는 하루 두 차례 교체한다고 답했다. 방문객이 별다른 권한도 없이 시설 직원들에게 물품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럼 정해진 기준만 알려 주시면 돼요.”
수현이 말했다.
“사용량이 부족하면 정식으로 추가를 요청할게요.”
경비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수현은 자신이 특별히 친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에게 사정을 묻고 답을 듣는 것이 이상한 일이어서는 안 됐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때때로 그런 일이 아주 작은 신뢰를 만들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방문객 구역의 비상 대피로였다. 수현은 메이에게 어느 문으로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고, 오르카에게 경비 호출 종이 있는 위치를 설명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환자를 치료하거나 눈보라를 막을 수는 없지만, 길을 잃지 않도록 해 줄 수는 있었다.
내일 열람할 문서가 누군가의 삶에 닿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오늘 잠을 잘 자고 내일 제대로 읽는 것이 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
다음 날 아침 베라가 건넨 심사 결과에는 세 줄이 적혀 있었다.
[해당 날짜 서류 접수의 외부 전달인: 1명.]
[입소 환자 수: 2명.]
[외부 전달인은 의료 입소 대상에 포함되지 않음.]
오르카는 종이를 여러 번 읽었다.
“그러면 라비엔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전달인이었을 수도 있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은 있죠. 하지만 라비엔이 그 사람이라는 근거는 없어요.”
“환자일 가능성도 있죠?”
“네. 현재 확인한 정보만으로는 제외할 수 없어요.”
오르카가 입술을 다물었다.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지 수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없는 확신을 만들어서 그를 달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베라가 다른 봉투를 내밀었다.
“보존실에서 직접 답을 보냈습니다. 오래된 ‘인계 누락 사건’에 관해 기록 확인을 요청할 수 있다는 안내입니다.”
봉투 맨 아래에는 묘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원본 보존 위치: 회복소 지하 기록실이 아닌 부속 이관실.]
“부속 이관실이 어디 있죠?”
수현이 물었다.
베라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예전에는 쓰던 곳입니다. 지금은 평소 출입하지 않아요.”
“왜요?”
“몇 해 전 자료가 한 번에 이동하던 날, 인수 확인이 맞지 않아 출입을 제한했거든요.”
세드나가 수현을 바라봤다. 수현 역시 그 시선을 알아차렸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다시 서류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번 서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 놓은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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