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문에서 출발한 지 세 시간 만에 데런은 마차를 세웠다.
“바퀴가 깨졌나요?”
수현이 물었다.
“아뇨. 앞쪽 노면이 얼었습니다. 발굽을 바꿔야 해요.”
오르카가 마차에서 몸을 내밀었다.
“이 길은 예전에도 다녔습니다. 조금만 속도를 줄이면…….”
말이 미끄러지면서 그 뒤의 문장은 완성되지 못했다. 데런이 고삐를 당겨 가까스로 마차를 바로잡았다.
수현은 손잡이를 붙든 채 말했다.
“경험담은 감사한데요. 이제는 실험으로 증명됐네요.”
“무슨 실험 말입니까?”
“이 길에서 속도를 줄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실험이요.”
데런은 먼저 말부터 안전한 곳에 세웠다. 오르카가 자신의 방패를 받쳐 바퀴가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수현은 마차에서 내리려다 멈췄다. 자신이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눈길에 서툰 사람이 괜히 나섰다가 한 명의 부상자가 더해질 수도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 있나요?”
“짐 목록에서 여분 쇠못 있는지 봐 주세요.”
데런의 대답은 정확했다. 수현은 상자에서 쇠못을 찾고 건넸다. 전투력도 마력도 없지만 쇠못의 개수는 셀 수 있었다.
***
첫 번째 숙박지인 겨울나무 역참은 지도보다 작았다. 낡은 돌집 두 채와 외양간 하나가 전부였다. 그곳을 지키는 여관 주인 테사는 일행의 얼굴을 살피더니 바로 머릿수를 세었다.
“다섯 명. 객실은 세 개뿐이에요.”
“한 방에 둘씩 자면 되겠군요.”
데런이 말했다.
“잠깐.”
세드나가 끼어들었다.
“손님이 전부 다섯이면 누군가는 혼자 쓰고, 누군가는 둘이 써야 한다는 거잖아. 요금은 어떻게 계산합니까?”
테사는 양피지 가격표를 내밀었다. 방값에는 난방용 돌과 물 한 통이 포함됐고 추가 온수는 별도였다.
“목욕은?”
메이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눈 녹인 물 데우려면 밤새 기다려야죠.”
메이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졌다.
수현은 여관이 싫지 않았다. 적어도 무엇이 포함되고 무엇이 별도인지 적혀 있었다. 어떤 세계에서는 그것만으로도 꽤 훌륭한 계약이었다.
짐을 푼 뒤 여관 주인은 마차를 밖에 두면 밤에 바퀴가 얼어붙을 거라고 했다. 데런은 말과 마차를 외양간에 넣고 다음 날 경비를 계산했다.
“여기서는 말을 맡기고도 잠을 자야 하니까, 말의 숙박비가 우리보다 비쌉니다.”
그 말에 오르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적어도 우리의 목숨을 책임지니까.”
“그럼 카이렌 씨 월급이 말보다 적었다는 얘기네요.”
수현이 무심코 말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데런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메이는 웃다가 기침을 했다. 오르카만이 조용히 방패 끈을 만졌다.
수현은 웃음을 멈췄다. 농담처럼 꺼낸 말의 끝에 실제 누군가의 생활이 붙어 있었다.
“돌아가면 그 부분도 계속 확인해야겠네요.”
“돌아갈 겁니다.”
오르카가 말했다.
“누구를 찾든 못 찾든, 일단 살아서요.”
수현은 그 대답이 반가웠다.
***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역참에 호송 담당자 이르반이 도착했다. 그는 마른 수염에 오른쪽 장갑의 손가락 하나만 유난히 닳아 있었다. 북쪽에서는 지도를 그리는 것보다 날씨를 읽는 일이 먼저라며 창밖을 가리켰다.
“오늘 밤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내일 오후에는 고개를 닫아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다시 열리나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닫는 기준은 정해져 있나요?”
“바람에 날린 눈 때문에 앞사람의 횃불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그리고 경비대가 정한 경고 신호가 울리면 바로 회항합니다.”
수현은 장부에 적었다. 호송대원 네 명의 이름과 약속된 시간, 경보 신호, 숙영지까지의 거리도 확인했다.
이르반은 그녀가 적는 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걸 적어서 뭘 합니까? 눈보라가 종이에 적힌 대로 불겠습니까?”
“안 적는다고 덜 불진 않죠. 그런데 경보가 울렸을 때 서로 다른 말을 하면 더 위험하잖아요.”
이르반은 한동안 그녀를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좋소. 그럼 내가 멈추자고 할 때도 믿어 주시오.”
“이동 판단은 현장 책임자에게 맡길게요. 사유와 상황만 같이 공유해 주시면 됩니다.”
“그건 어렵지 않소.”
악수는 짧았다. 수현은 상대가 처음부터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에서 누구 말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지 명확한 편이 더 중요했다.
***
다음 날 오전, 북쪽 고개에서는 생각보다 큰 바람이 불었다. 일행이 세 번째 굽이를 돌 때 뒤쪽에서 짧은 비명이 들렸다.
마지막 수레의 짐꾼이 길 가장자리로 미끄러진 것이다. 수레를 끌던 말이 놀라 몸을 틀었고, 짐이 한쪽으로 쏟아졌다.
오르카는 반사적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이르반이 소리쳤다.
“멈춰! 아무도 개별 행동하지 마!”
오르카가 발을 멈췄다. 그 한 걸음이 놀라웠다. 몇 달 전의 그였다면 이미 눈더미 속에 몸을 던졌을 것이다.
이르반은 로프를 세 명에게 묶고 지면을 확인했다. 데런이 다른 수레의 바퀴를 고정했다. 메이는 다친 짐꾼을 받을 준비를 했다. 수현은 이르반이 말한 신호를 일행에게 전달했다.
“앞쪽 수레는 그대로 대기하고, 뒤쪽 사람은 로프 안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짐꾼은 다행히 깊게 추락하지 않았다. 그를 끌어올리자 왼쪽 발목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메이가 치유술을 사용하려다가 잠깐 손을 멈췄다.
“골절인지부터 봐야 해요. 함부로 서게 하면 안 됩니다.”
수현은 그 짧은 망설임이 반가웠다. 이전의 메이라면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즉시 마력을 쥐어짰을 것이다. 지금은 자기 마력과 환자의 상태를 함께 생각하고 있었다.
이르반이 다친 짐꾼을 가까운 역참으로 돌려보낼 준비를 했다. 짐꾼의 상관은 인원이 줄면 운송료가 깎인다며 불평했다.
“계약상 인원이 여섯 명이어야 한다고!”
수현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
“그럼 부상자가 짐을 들고 고개를 넘어야 비용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그런 뜻이 아니라…….”
“계약서에는 어떻게 되어 있죠? 안전하게 운송해야 할 물건이 중요하다면, 다친 사람이 더 다치지 않도록 대체 인원을 부르는 방법이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 어디서 그런 사람을 구합니까?”
“없으면 운송 지연을 보고해야겠죠. 사람이 짐처럼 바뀌진 않으니까.”
메이는 짐꾼의 발목을 고정하고 통증을 줄이는 정도만 치유했다. 호송대는 부상자를 안전하게 보내는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수현은 수레가 아닌 사람에게 먼저 눈길이 모인다는 사실을 유심히 보았다.
***
사고를 수습한 뒤 한참 지났을 때 바람이 거세졌다. 횃불 불꽃이 옆으로 길게 눕고 앞사람의 발자국이 눈 속에 묻혔다. 이르반이 경고 나팔을 불었다.
“회항한다!”
오르카의 얼굴이 굳었다.
“회복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까?”
“반나절.”
“반나절이면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못 갑니다.”
이르반의 대답은 짧았다. 수현은 그들 사이에 들어갔다.
“오르카 씨, 우리 약속했잖아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라비엔 씨를 찾으러 가는 거지, 실종자 수를 하나 더 늘리러 온 게 아니에요.”
오르카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왼손이 떨렸다. 부상 때문인지, 속이 상해서인지 수현은 알 수 없었다.
“하루 더 기다립시다.”
데런이 낮게 말했다.
“제가 말 먹이를 계산했을 때부터 이럴 수도 있다고 봤어요.”
그 말이 웃길 상황은 아니었지만 수현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준비라는 것은 좋은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마법이 아니었다. 나쁜 일이 벌어졌을 때 최악으로 가지 않도록 붙드는 장치였다.
***
고개에서 되돌아온 짐꾼은 저녁 무렵 작은 부목을 하고 식당에 나타났다. 메이가 재검진을 부탁하자 그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부상 때문에 일거리가 끊길까 봐 걱정돼서요.”
그 말에 수현은 의자 하나를 끌어왔다.
“오늘 운송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예요? 짐꾼 개인인가요, 운송조합인가요?”
“조합에서 하루 단위로 불렀습니다.”
“그럼 부상 중인 사람에게도 운송을 강요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수현은 조합장에게 직접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다. 짐꾼이 거절한다면 억지로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허락했다. 데런은 목격한 사고 경위와 이르반의 회항 신호를 메모해 주었다.
조합장은 처음에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도 오늘 물건을 못 날라 손해를 봤어요.”
“그건 사실이겠죠. 그래서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고 누가 통행 판단을 했는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수현은 책임을 가리기 전에 사실관계를 먼저 정리했다. 짐꾼은 출발 전 바퀴 고정 장치를 확인하는 임무를 맡지 않았고, 길 가장자리로 밀린 수레의 끈을 붙들다가 미끄러졌다. 조합장은 그제야 사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부상자는 임시 휴식 조치를 하고, 치료와 운송 지연 비용은 계약에 따라 별도 검토합시다.”
이르반이 말했다.
조합장은 잠시 불평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짐꾼에게 내일 당장 다시 출근하라고 하지 않았다.
짐꾼은 식당에서 나오며 수현에게 물었다.
“제가 쉬면 다른 사람이 더 힘들어질 텐데요.”
“그건 다른 사람을 배치해야 할 문제예요. 아픈 다리로 짐을 옮기는 게 해결책일 순 없잖아요.”
“그럼 내일도 조합에 제가 못 걷는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는 부목을 바라보았다. 통증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일당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프다는 말을 해도 되는 순간이 생겼다.
나중에 메이가 수현에게 속삭였다.
“전에는 저런 부상자를 봐도 바로 걷게 하려고만 했어요.”
“왜요?”
“부상자도 누군가의 출정을 따라가야 하니까요. 마력을 조금 더 쓰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요?”
“움직일 수 있다고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현은 메이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자신이 수십 번 설명해도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한편 데런은 짐꾼에게서 운송조합이 최근 북방 회복소로 보급품을 보내는 날짜가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입소 환자가 늘었다는 말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운송량 자료를 확인해 보겠다고 했지만, 수현은 환자 숫자를 추정하기 전에 운송 목적을 구분하자고 말했다.
“겨울에는 식량과 난방용 돌도 많이 필요하잖아요. 물건이 늘었다고 사람이 늘어난 건 아닐 수 있어요.”
데런은 고개를 끄덕이고 항목을 나눠 적었다. 마차를 몰던 사람에게는 물건의 무게가 가장 정확한 정보였다. 수현은 그가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르반은 다음 날의 바람을 확인한 뒤, 출발 전 전원에게 통행 중단 신호를 다시 알려 주었다. 종이로 적은 합의가 현장에서 진짜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수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을 삼켰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녀에게 용사가 되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해 달라고 했고,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것을 부탁했다.
그런 방식이면 적어도 내일 고개를 넘을 때 서로를 조금 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역참으로 돌아왔을 때 낯선 노인이 화덕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회복소로 향하는 짐수레를 십 년 넘게 몰았다고 했다. 데런이 운송장 사본의 예전 경유지를 보여 주자 노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표식은 지금 쓰지 않아. 옛날엔 환자를 옮길 때 통과 확인을 따로 찍었지.”
“어떤 확인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환자와 짐을 섞어 싣지 않았다는 확인. 또 환자가 몇 명이고 동행인은 몇 명인지.”
“그럼 우리 기록에 있는 ‘2+1’도 같은 방식일까요?”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표기 방법은 담당 관청마다 달랐어.”
노인은 낡은 가죽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옛 운송 표준표였다. 표에는 이송 인원과 동행인, 보호 장치의 개수를 각각 따로 적는 칸이 있었다.
“이거 복사해도 될까요?”
“원본은 못 줘. 우리 아버지가 쓰던 거니까.”
“그럼 제가 베껴 적을게요. 출처도 남기고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환자 둘과 기록관 하나’라는 증언을 다시 떠올렸다. 그 세 사람이 같은 날 북방 회복소에 들어갔다고 판단하기엔 아직 부족했다. 이송장에 적힌 세 개의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노인은 종이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당신들은 북방 회복소에 왜 가는가?”
“사라진 사람의 기록을 확인하려고요.”
“기록을 찾는 사람은 많은데, 찾아낸 뒤에도 그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적더군.”
수현은 답하지 못했다. 노인은 화덕에 장작을 넣었다.
“그곳에서는 모두 번호로 불렸거든.”
밤이 깊었다. 바람은 여전히 지붕을 때렸지만 다음 날 새벽에는 약해질 예정이었다.
수현은 새로 베낀 표준표를 기록철에 끼웠다.
[이송장의 숫자와 북방 회복소 내부 번호는 별개일 수 있음.]
그리고 한 줄을 덧붙였다.
[번호를 찾았다고 사람을 찾은 것은 아니다.]
두 문장은 닮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이 훨씬 무거웠다.
제3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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