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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31화
PAYLUA ORIGINAL · 제31화

31화. 북쪽으로 가기 전에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740자

오프라인 책장
서부 성역의 아침 종은 세 번 울렸다. 이수현은 두 번째 종이 울릴 때 일어났고, 세 번째 종이 울릴 때까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밤새 북쪽 지도를 읽느라 잠을 설친 탓이었다. 지도에는 산줄기와 강, 오래된 교역로가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다. 정작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거의 없었다. 북방 격리 회복소에 누가 있는가. 그곳에서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가. 가는 길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마물이 나오는가. 마지막 질문만큼은 지도 제작자도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수현 씨, 일어났어요?” 방문을 두드린 메이가 두꺼운 외투를 들고 있었다. 아침인데도 뺨이 붉게 얼어 있었다. “북쪽은 이렇게 추워요?” “여긴 아직 남쪽이에요.” 수현은 다시 이불을 보고 싶어졌다. 식당에는 세드나가 먼저 나와 있었다. 그녀는 식사 대신 서류를 펼쳐 놓고 도장이 찍힌 곳을 비교하고 있었다. 수현이 다가가자 세드나는 빵 한 덩이를 밀어 주었다. “먼저 먹어. 굶은 사람의 판단은 잘 믿지 않아.” “저도 동의해요. 다만 서류가 밥을 먹고 기다려 주는지 모르겠네요.” “이건 기다려 줘.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방으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출발해도 되는지 확인하는 거니까.” 세드나가 내민 종이의 제목은 ‘외부 기록 확인을 위한 시설 방문 신청서’였다. 그 아래 별도로 ‘보호 대상 면담 신청서’가 붙어 있었다. “이 둘은 다른 건가요?” “전혀 달라. 시설에 간다고 환자의 얼굴을 볼 권리가 생기진 않아. 더군다나 격리 회복소라면.” “그럼 면담 신청 대상의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신청하죠?” “식별 가능한 기록 번호와 신청 목적을 적어. 환자 정보는 시설이 심사할 거야. 상대가 누구든 만나겠다는 조건을 붙이면 안 되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을 찾는 것과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같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 라비엔이 있다고 해도 그녀가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라비엔은 실종된 동료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자기 이야기를 누구에게 어디까지 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말을 오르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수현은 잠시 고민했다. 고민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오르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말과 마차가 준비됐습니다.” “신청서는 아직 준비 안 됐습니다.” “제가 미리 예약했습니다.” “예약금을 냈나요?” “……네.” “환불 규정은요?” 오르카는 수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제 친구를 찾으러 가는 겁니다.” “알아요.” “그런데 마차 값부터 묻습니까?” “그 돈 아끼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방문이 거절되면 며칠이고 길에서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까요. 돌아올 돈까지 계산하자는 거예요.” 오르카의 얼굴이 굳었다. 수현은 괜히 딱딱하게 말했나 싶어 덧붙였다. “라비엔 씨를 찾는 데 오르카 씨가 쓰러지면, 저희는 조사보다 구조부터 해야 해요.” “그건 그렇죠.” “게다가 오르카 씨 왼팔, 아직 무리하면 아프죠?” 그는 시선을 피했다. 수현은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 성역 북문 사무소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도에 길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행의 이름을 쓰는 일이었다. 데런은 운송 책임자 칸에, 세드나는 공식 기록 확인 동행자 칸에, 메이는 비용 분쟁 신청인 칸에 이름을 적었다. 오르카는 방문 목적을 적다가 한참 멈췄다. ‘라비엔 수색.’ 그가 그렇게 쓰자 접수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색 명령서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여기는 시설 방문 사무소라서 수색으로 접수할 수 없습니다.” 오르카의 턱이 굳었다. 수현은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적을 바꾸라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신청할 일을 정확하게 쓰자는 거예요. 기록 확인 요청과 면담 가능 여부 조회부터요.” 오르카는 펜 끝을 종이에 눌렀다. 한참 뒤 고쳐 적었다. ‘과거 동행자 관련 기록 확인 및 당사자 동의하에 면담 요청.’ 접수관은 그 문장을 받아들였다. 다만 면담 대상의 확인 가능 여부는 방문 허가와 별도로 통지된다고 했다. 서류를 내고 나오자 오르카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을 찾는다는 말도 마음대로 못 하는군요.” “찾고 싶다는 마음을 막을 수는 없죠. 다만 다른 사람의 문을 열 권한과는 다른 문제예요.” “라비엔은 내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오르카 씨가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 사실은 사라지지 않아요.” 오르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누군가 사라졌다면 당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찾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사라진 사람일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치료를 받는 사람이고, 누군가는 숨겨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지키려는 권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짓밟을 수는 없었다. *** 점심 무렵 회복소에서 전송한 회신이 도착했다. 얇은 종이에는 검은색 날개 모양 인장이 찍혀 있었다. [공공 출입 구역 및 비식별 운송 장부의 제한 열람: 예비 승인.] [보호 대상 성명 및 병력 조회: 당사자 또는 적법한 대리인의 신청과 별도 심사 필요.] [산길 통행: 기상과 경비 여건에 따름.] “예비 승인입니다.” 수현이 말했다. “이 정도면 가도 되는 거 아닙니까?” 데런이 물었다. “통행 조건이 남아 있어요. 겨울 산길을 모르는 제가 보기엔 특히 중요해요.” 데런은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물품 목록을 꺼냈다. 기름칠한 방수포, 여벌 바퀴 핀, 사흘치 건량, 마력 온돌석 두 개, 눈길용 말발굽, 비상 횃불. 수현은 끝에서 두 번째 항목에 동그라미를 쳤다. “‘호송대 현장 결정’이라고요? 그러면 당일에 못 갈 수도 있네요.” “그렇습니다. 눈이 오면 전초역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대기 비용은?” “여관에 하루 은화 한 닢 정도.” “그럼 사흘치 예비비는 별도로 둡시다.” 데런이 피식 웃었다. “수현 씨는 마물보다 돈 계산을 더 무서워하는군요.” “마물은 도망이라도 치죠. 돈은 도망칠 틈을 안 줘요.” 잠시 웃음이 돌았다. 수현은 그 사이 자기 계약서를 다시 펼쳤다. 21화에서 체결한 열나흘짜리 외부 자문 계약이었다. 서부 성역에서 이미 여러 날을 보냈다. 정확한 종료일까지 출발과 귀환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했다. “이동 기간 동안 자문 업무가 계속되는지, 길드에서 연장 협의를 할 담당자는 누구인지 적어 두고 싶어요.” 세드나가 말했다. “이건 정식으로 기록할 수 있어. 하지만 네 계약 기간을 우리가 임의로 늘릴 수는 없어.” “당연하죠. 계약이 끝나면 끝난 거고, 새로 맡을 일이 있다면 다시 물어봐야죠.” 오르카가 곁에서 듣다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수현 씨를 붙잡고 있는 겁니까?” “붙잡힌 건 아닌데, 귀환하는 방법을 아직 몰라서요.” 수현이 말했다. 웃으려고 던진 말인데 식탁이 조용해졌다. 메이가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그날 제가 봉투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건 나중에 따져 봐도 돼요. 지금은 누구 잘못이라고 결정하지 말아요.” 수현은 제 휴대폰을 꺼내 잠깐 화면을 켰다. 남은 배터리는 6퍼센트였다. 충전할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엄마의 마지막 부재중 전화 기록을 지우지 않으려고 화면을 바로 껐다. “저도 집에 가고 싶어요. 그 마음이랑 지금 할 일을 하는 건 함께 있을 수 있죠.” *** 오후에 아스텔은 북방 회복소에 보낼 봉인된 요청서에 두 가지 첨부문서를 넣었다. 하나는 R-0 원계약이 임시 보호와 기록 보존을 위한 것이며 개인 채무 전환을 확정하지 않는다는 비식별 심사 결과였다. 다른 하나는 과거 폭설 밤 북쪽으로 향한 운송장이었다. “이 서류로 환자 기록을 보여 달라고 할 순 없습니다.” 아스텔이 말했다. “알아요. 출처를 확인하는 데 사용할 겁니다.” “그런데 조심할 게 있어요.” 아스텔은 회복소의 회신 맨 아래에 있는 작고 희미한 문장을 짚었다. [이송 대상의 임시 식별번호는 시설 내 식별번호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 “이게 왜 중요한가요?” 메이가 물었다. “서부 성역에서는 들것 두 개에 임시 표시를 붙였겠죠. 북방 회복소에 도착하면 다시 번호를 매겼을 수 있어요. 같은 숫자라는 이유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수현은 그 말을 노트에 썼다. [번호의 출처, 부여 날짜, 부여 기관을 먼저 확인할 것.] 단서가 많아지면 진실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서로 다른 출처의 숫자를 한 줄에 놓으면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수현은 그런 실수를 수없이 보아 왔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이 사건 기록에서 서로 바뀌는 일은 흔했다. *** 성역 북문을 돌아오는 길, 수현은 작은 게시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외부인 출입 시 보호자 또는 보증인 필수’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증인은 정확히 무엇을 책임지나요?” 수현이 접수관에게 물었다. “방문객이 시설을 손상하면 변상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치료비나 이송비까지 책임져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건 별도 동의가 있어야 하죠.” 수현은 게시판 옆에 붙어 있던 작은 설명문을 읽었다. 역시나 보증의 범위는 시설 손상에 한정돼 있었다. 오르카는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이름을 보증인 칸에 쓰려던 참이었다. “보증인이 필요하다면 제가 쓸 수 있겠지만, 정확히 무엇을 책임지는지는 알고 싶습니다.” 오르카가 말했다. “그렇죠. 이름이 들어가는 칸마다 무게가 다르니까요.” 수현이 대답했다. 그날 저녁 세드나는 통행 허가와 면담 허가, 시설 출입 보증을 각각 다른 봉투에 넣었다. 종이 세 장의 색이 비슷해 자칫 뒤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현은 봉투마다 큰 글씨로 목적을 적었다. 그 모습을 보던 데런이 말했다. “수현 씨가 동행하는 일에는 왜 이렇게 봉투가 많습니까?” “잘못된 봉투 하나가 사람을 엉뚱한 곳으로 보낼 수 있거든요.” “말은 사람이 몰아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종이가 사람을 모는군요.” “맞아요. 그래서 종이를 좀 잘 다뤄 보려는 거죠.” 마지막으로 수현은 전령에게 날씨 통보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정해진 시간은 없습니다. 통행이 불가능할 때만 알립니다.” “그럼 아무 소식이 없으면 길이 안전하다고 믿어야 하나요?” “그렇게 해 왔습니다.” 수현은 출발 시각을 확정하기 전에 통행 가능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할 방법을 요청했다. 전령은 처음에는 번거롭다는 얼굴이었지만, 결국 북문 경비대의 새벽 확인 신호를 알려 주었다. “그 신호가 없다면 출발하지 않겠습니다.” 수현이 말했다. 그녀는 귀환의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쓸데없이 길을 잃을 이유까지 있는 건 아니었다. 오르카도 그 말을 듣고 허가서 옆에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 밤에 방으로 돌아온 수현은 서울에서 쓰던 작은 노트를 펼쳤다. 이전에는 출근 시간과 의뢰인 면담 약속을 적던 칸이었다. 이제는 말 사료와 겨울 산길의 통행 신호, 마법 인장 번호가 들어가 있었다. 집에 돌아가 이 노트를 보여 주면 누가 믿어 줄까. 그 생각에 실없이 웃다가, 수현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누가 믿어 주는지는 집에 돌아간 뒤에 생각할 문제였다. 오늘은 내일 출발할 사람들의 이름을 정확히 적는 일이 먼저였다. *** 해가 넘어갈 무렵 성역의 작은 통신문이 울렸다. 카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북방으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허가를 받은 부분부터 확인할 예정이에요. 카이렌 씨, 몸은 좀 어때요?” “좋습니다. 어제는 예정대로 쉬었습니다.” “좋네요.” “예전 같으면 쉬었다고 보고할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수현은 그 말에 웃었다. 잠시 침묵하던 카이렌이 낮게 덧붙였다. “제 이름이 기록에서 나오더라도, 먼저 저한테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할게요. 본인과 관련된 자료라면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드리죠.” “혹시 무서운 일이 적혀 있어도요?” “사실인지부터 확인해야겠죠. 그리고 본인이 알아야 할 일이라면 전달할 방법을 함께 정하고요.” 카이렌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 사흘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시간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대신 기억을 만들어 드릴 수는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대신 무엇이 기록됐는지 확인할 수는 있겠죠.” 통신이 끊긴 뒤 수현은 가만히 장치를 바라봤다. 마법을 쓰는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겪지 못한 시간에 대한 설명을 원했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 자기 이름으로 무엇을 결정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밤에 방문을 잠그려는데 세드나가 접수증 하나를 가져왔다. “소환 서고에서 네 귀환 의사 신청을 접수했다고 해.” “귀환 방법을 찾았대요?” “아니. 담당 심사관이 원문 민원의 도착 장소를 재확인하겠다고 했어.” 수현은 접수증을 읽었다. 짧은 문장 아래에 생소한 기호가 있었다. 서부 성역 소환 서고의 뒤집힌 봉투 문양과 비슷했지만 모서리가 하나 달랐다. “이건 북방 회복소 인장인가요?” “몰라. 그래서 물어봐야 해.” 수현은 종이를 덮었다. 답을 모른다는 말에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 있었다. 다음 날, 그들은 북문에서 출발할 예정이었다. 라비엔이 거기에 있을지, 카이렌이 그곳을 지나갔는지, 수현이 집으로 돌아갈 실마리를 찾을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번에는 누구도 ‘영웅이니까 무조건 가야 한다’는 말만으로 마차에 타지 않았다. 각자 자기 이름을 쓰고, 돌아오는 길을 확인하고, 위험을 듣고 나서야 출발을 결정했다. 수현은 마지막으로 지도 위에 북쪽 길을 표시했다. [예비 승인. 기상 조건 확인 후 출발.] 명령보다 길고, 기적보다 느린 문장이었다. 그래도 적어도 그 문장에는 사람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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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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