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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28화
PAYLUA ORIGINAL · 제28화

28화. 돌아오는 봉투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51자

오프라인 책장
이수현에게 가장 오래 남은 물건은 휴대폰이었다. 쓸 수 있는 기능은 거의 없었다. 통신도 안 되고 충전도 안 됐다. 배터리는 이제 9퍼센트. 메모장에는 이 세계에서 본 날짜들이 잔뜩 저장돼 있었고, 사진함에는 서울의 사무실 창가와 고양이 사진 하나가 남아 있었다. 고양이는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었다. 상담을 받으러 왔던 의뢰인의 고양이였다. 수현은 사진을 보다가 휴대폰 화면을 껐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며칠 전부터 고정된 배경음처럼 따라다녔다. 일을 할 때는 잊다가, 일이 끝나면 다시 커지는 소리였다. 그때 아스텔이 방문을 두드렸다. “소환 서고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수현이 벌떡 일어났다. “귀환 방법이 나온 건가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먼저 내용을 보세요.” 서류에는 차원을 넘는 민원 전달 규정의 일부가 적혀 있었다. 신청인과 처리 담당자 사이에 현장 확인인이 소환되는 경우가 있다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사용 조건과 귀환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빠져 있었다. [현장 확인 종료의 증빙은 원문 민원과 대조하여 별도 심사한다.] “종료되면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아스텔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쓰여 있지는 않습니다.” 수현은 숨을 내쉬었다. 희망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 있다고 확신할 근거도 없었다. 계약서를 읽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답게 그녀는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 했다. “원문 민원은 누가 보관하나요?” “메이 씨가 보낸 봉투의 사본은 제7원정대에 있겠지요. 하지만 차원 전달 전 원문은 소환 서고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럼 그 원문을 먼저 확인해야겠네요.” “서고에서는 신청인의 신원을 재확인하려 합니다.” “메이 씨요?” “네. 그리고 현장 확인인인 수현 씨의 의사도.” 수현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자기 의사를 묻는 절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처음 끌려올 때는 아무도 의사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 메이는 봉투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적었다. 길드 게시판에서 낡은 봉투를 찾은 날, 도움을 요청한 문장, 빈 상자에 넣고 닫았을 때 봉투가 사라진 과정. 수현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놀랐지만, 이제는 더 자세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봉투에 받는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나요?” “없었어요.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도 진실을 보낼 수 있다'고만 적혀 있었죠.” “제 이름이나 직업은요?” “전혀요.” “그럼 누가 저를 특정한 건지 모르네요.” 메이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수현 씨를 여기로 데려온 건가요?” “그 봉투를 보낸 건 메이 씨지만, 제가 온 이유와 원리는 아직 몰라요.” “그래도 미안해요.” 수현은 잠깐 메이의 손을 잡았다. “저도 집에 가고 싶어요. 그 마음은 숨기지 않을게요. 하지만 메이 씨가 도움을 요청한 일을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메이의 눈가가 붉어졌다. “만약 또 그런 봉투가 있으면 쓰지 않을게요.” “그건 내용을 알고 나서 결정해요.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데려오는 물건이라면 경고해야 하고, 안전한 방법이 있다면 그걸 써야겠죠.”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세드나는 소환 서고의 기호를 대조하다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수현이 처음 본 봉투의 문양과 성역에 남은 뒤집힌 문양이 한 쌍으로 등록돼 있었다. “요청과 답신을 구분하는 표시야.” “돌아오는 봉투가 정말 있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답신이 사람을 돌려보내는 뜻인지는 별개야.” 수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종이 한 장에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싫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길의 방향이 하나 생긴 것 같았다. “원문 대조 신청서를 낼게요.” “당사자의 의사 확인이 필요해.” “메이 씨 서명은 받았어요. 제 서명도 하고요.” 세드나는 신청서를 받으려다 멈췄다. “너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생기면 즉시 떠나고 싶다고 했지.” “네.” “그럼 라비엔 조사는?” 수현은 대답을 고르느라 잠시 시간을 썼다. “여러분이 이어서 할 수 있게 기록을 남길 거예요. 내가 여기 계속 있는 걸 전제로 만들어 놓으면 안 되니까요.” 세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네 방식이군.” “그게 제일 책임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 그날 오후 수현은 아스텔에게 작은 서고를 안내받았다. 소환에 관련된 오래된 항목들은 누구나 볼 수 없었지만 공개 규정집 일부는 열람 가능했다. 책은 먼지가 심해 수현이 재채기를 세 번 했다. “이상하네요.” “무엇이요?” “이렇게 강력한 봉투가 있다면 왜 다들 쓰지 않는 거죠?” 아스텔은 책장을 넘겼다. “실패한 사례가 많고, 실제로 연결되는 상대가 누구인지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내는 이가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위험한 도구군요.” “그렇지요. 그래서 오래전에 사용이 제한됐다고 합니다.” 수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세상이 달라져도 '편리해 보이는 새로운 기능'은 종종 사용 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긴다. “그럼 메이 씨가 찾은 건 제한된 물건이었네요.” “오래된 길드 게시판에 남아 있었다는 게 이상합니다.” 아스텔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수현도 서두르지 않았다. 소환을 설계한 사람이 고의로 메이를 이용했을지, 단순히 관리가 부실했을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 저녁에 제7원정대의 카이렌이 통신을 걸어 왔다. 북쪽 수로의 마물은 당일 당직조가 처리했고, 카이렌은 직접 출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가 없을 때도 일이 돌아갑니다.” “그걸 조금은 기쁘게 생각하세요.” “그렇지만 제가 필요 없어지는 건 아닐까요?” 수현은 웃었다.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늘 쓰러질 필요는 없어요. 사람들이 카이렌 씨를 믿는 이유가 오직 혼자 싸우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카이렌은 한참 생각했다. “오늘은 젠이 다친 병사에게 식사를 먼저 갖다 줬습니다. 예전엔 제가 그런 일을 전부 했는데요.” “그럼 젠이 좋은 일을 한 거죠.” “네. 처음엔 내가 해야 할 일을 빼앗긴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고마웠습니다.” 수현은 화면에 비친 그의 흐릿한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게 팀이죠.” *** 소환 서고의 답변을 받은 수현은 메이와 함께 오래된 게시판의 형태를 다시 그렸다. 그때의 게시판을 직접 본 것은 메이뿐이었다. 수현은 자기가 떠올린 모양이 메이의 기억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질문을 최대한 간단히 했다. “게시판은 나무였어요, 돌이었어요?” “나무요. 왼쪽 모서리가 깨져 있었고, 게시물이 여러 장 겹쳐 있었어요.” “봉투는 그중 어디에 있었나요?” “맨 아래요. 다른 종이들이 가리고 있어서 처음엔 못 봤어요.” “누가 새로 붙인 흔적은 있었나요?” “아뇨. 먼지가 엄청 많았어요.” 수현은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오래된 봉투라는 뜻일 수는 있지만 실제 제작 시기를 알려 주는 증거는 아니었다. “당시 같이 있던 사람이 있어요?” 메이가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창고지기한테 붓을 빌렸어요. 봉투에 글을 쓰려고요.” 수현은 고개를 들었다. 제7원정대 보급창고에서 물품 지급을 기록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럼 그날 게시판에 봉투가 있었다는 건 다른 분도 확인할 수 있겠네요.” 메이는 표정이 밝아졌다가 곧 난처해했다. “그분은 제가 왜 그런 봉투를 쓰는지 모르셨어요.” “괜찮아요. 본 것만 확인하면 돼요.” 수현은 그에게 정식 질문서를 보냈다. 메이가 진정서를 쓰던 날 게시판과 붓을 본 기억이 있는지, 봉투를 직접 본 적은 있는지만 물었다. 어떤 답이든 원래 기억대로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 *** 그날 저녁 수현은 잠깐 홀로 성역 정원을 걸었다. 석등 사이에는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고 참배객들이 남긴 소원 종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한국에서라면 지금쯤 어디 있을까. 달력을 보지 못하니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어렴풋했다. 휴대폰 시간은 여전히 서울 기준으로 흘렀지만, 이곳의 날짜와 맞물리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지구에서는 단지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똑같이 수십 일이 흘렀을까. 수현은 어느 쪽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릴 때 쓰던 노트를 떠올렸다. 이사가 잦아 친구들과 헤어질 때마다 주소를 적어 두던 공책이었다. 손으로 주소를 써 둔다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길을 찾을 때 출발점이 되어 주었다. 수현은 수첩 첫 장에 서울 사무실 주소를 적었다. 낯선 곳에 오래 머물수록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 아래에는 다른 문장을 적었다. [돌아갈 길이 열리면 돌아간다.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넘길 수 있도록 정리한다.] 그 문장을 쓰고 나니 이상하게 숨이 편해졌다. 누군가를 돕는 마음과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경쟁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 다음 날 소환 서고에서 작은 질문지가 왔다. 현장 확인인에게 직접 묻는 문항은 세 개였다. [소환 과정에 자발적으로 동의하였는가?] [현재 현장 확인을 지속할 의사가 있는가?] [귀환 절차를 별도로 안내받기를 원하는가?] 수현은 첫 번째 칸에 망설임 없이 ‘아니오’라고 적었다. 두 번째에는 조건을 붙였다. [현재 유효한 자문 계약 범위에서만 활동. 귀환 수단을 알게 될 경우 즉시 검토 의사 있음.] 세 번째에는 ‘예’라고 적었다. 세드나는 그 답을 보더니 놀랐다. “동의하지 않고 왔다고 분명히 적었네.” “그게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네가 여기서 도운 사람이 많잖아.” “도운 사람과 소환에 동의했는지는 다른 이야기죠.” 수현은 서류를 접었다. “지금 이곳에서 제가 선택한 일은 제 의사로 한 거예요. 하지만 처음부터 제 선택이었다고 바꾸진 못하잖아요.” 세드나는 오랫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길드에서도 그런 구분을 해야 할 때가 있겠군.” “있겠죠. 카이렌 씨 계약도 그런 문제가 있었잖아요.” 둘은 잠깐 말이 없었다. 차원을 넘는 민원과 왕국의 계약이 묘하게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소환 서고 담당자에게 문서를 전달한 다음 수현은 메이와 장기 계획을 상의했다. 귀환이 가능해지는 순간 누가 원정대의 기록 업무를 맡을지 정하는 일이었다. “카이렌이 출정표를 보고, 젠은 실제 시간 기록을 하고, 데런은 운송 증거를 보관하죠.” 메이가 말했다. “그리고 제 치료비 문제는 제가 직접 신청서를 쓰고요.” “맞아요. 어려운 부분은 세드나와 상의하고요.” 메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수현 씨가 없어도 되는 거예요?” “그게 제일 좋은 결과일지도요.” “서운한 대답인데요.” “저는 조금 서운한 게 좋아요. 다들 저 하나만 바라보다가 멈추는 것보단요.” 메이는 웃다가 수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럼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도 같이 도울게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그녀의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살피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 사실이 뜻밖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날 밤 메이는 자신이 보낸 민원 원문을 기억나는 대로 다시 썼다. “카이렌을 쉬게 해 달라고 했어요. 치료할 물품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도요. 그리고… 누가 제 말을 믿어 줬으면 좋겠다고 썼어요.” 수현은 마지막 문장을 오래 보았다. 거창한 소환 주문은 없었다. 누군가 들어 달라는 평범한 문장뿐이었다. “제가 온 이유를 알게 되면, 그 문장만큼은 남겨 두고 싶네요.”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잠들기 전 소환 서고의 두 번째 답신이 도착했다. 편지는 생각보다 짧았다. [현장 확인인의 귀환 의사 접수. 대조 심사 진행. 해당 민원의 최초 작성 시각 확인 필요.] “최초 작성 시각이요?” 수현이 되물었다. 세드나는 메이의 기록을 펼쳤다. 메이가 봉투에 글을 써 넣은 날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봉투 자체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른다. “봉투가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 조사해야겠어.” “그럼 게시판 설치 기록이 필요하겠네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텔이 마지막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원문 민원의 분류: 회복 계약 이의. 참조번호 R-0.] 방 안이 조용해졌다. “왜 여기도 R-0이죠?” 메이가 속삭였다. 수현은 답하지 않았다. 소환과 회복 계약이 한 번호로 묶여 있다는 사실만 확인됐다. 누가 그 번호를 붙였는지, 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아직 몰랐다. 그러나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와 돌아가는 길이 같은 기록철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은 떨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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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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