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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25화
PAYLUA ORIGINAL · 제25화

25화. 용사가 잃어버린 사흘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347자

오프라인 책장
카이렌의 답장은 짧았다. [저는 서부 성역에 가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운송 기록에 제 이름이 있다면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수현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기억이 없다고 해서 그곳에 간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기록에 이름이 있다고 실제로 이동했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 둘을 구별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카이렌 씨에게 바로 오라고 할까요?” 메이가 물었다. “의학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판단을 받은 다음에요. 그리고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 절차인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성역에는 옛 환자 명부가 보관돼 있었다. 그러나 카이렌의 진료 기록을 제삼자가 마음대로 열 수 없었다. 세드나는 카이렌이 직접 작성한 열람 요청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통신판을 통해 보낸 서명은 예비 신청에는 쓸 수 있어도 민감한 의료 기록을 전부 공개하는 용도로는 부족했다. “이 세계도 은근히 개인정보를 소중히 여기네요.” 수현이 말했다. 아스텔은 손에 쥔 열쇠를 돌리며 답했다.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묘하게 무거웠다. 수현은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 오후에 카이렌과 통신을 연결했다. 낡은 마력 수정판 위에 그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얼굴 전체가 보이지 않아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았죠?” 수현이 묻자 카이렌이 작게 웃었다. “데런이 없는 동안 젠과 브레그 감독관이 출정을 나눠 맡았습니다. 저는 오후에 쉬었고요.” “좋아요. 이제 기록 이야기만 조금 할게요.” 카이렌은 긴장한 듯 숨을 들이켰다. “제가 의식을 잃었던 날, 손등에 하얀 흉터가 생겼습니다. 깨어났을 땐 모두가 큰 상처를 치료한 흔적일 거라고 했어요.” “그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해요?” “메이가요. 메이는 그때 직접 본 적은 없었고, 이전 치유사에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배치된 날에는 이미 흉터가 있었어요. 정확한 치료 기록은 못 봤어요.” “성역으로 마차가 이동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뒤였어요. 데런이 말했죠.” 카이렌은 손등을 펼쳤다. 흐릿한 영상에서도 둥근 흰 테두리가 보였다. “그 안쪽에 처음에는 붉은 빛이 돌았는데, 요즘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수현은 그림을 그렸다. 흉터의 크기와 방향을 적고, 본인이 언제 인지했는지도 구별했다. 사람의 기억은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쉽게 바뀔 수 있었다. 특히 의식이 없던 기간이 포함돼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했다. “카이렌 씨, 그 사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도 괜찮겠어요?” “무섭습니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채로 다시 같은 일이 생기는 건 더 무서워요.” 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록 열람 범위를 본인이 정해 주세요. 의료 기록부터 볼지, 운송 기록부터 볼지.” “운송 기록부터요. 치료 사실을 보기 전에,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 카이렌이 보낸 동의서가 도착한 뒤 성역 운송실장이 관련 기록 일부를 내놓았다. 대상자 이름은 ‘K’로 표시됐고 날짜는 카이렌이 의식을 잃었던 사흘과 겹쳤다. 그러나 이 운송장이 카이렌 개인을 뜻하는지 확인할 식별번호는 지워져 있었다. “이름 첫 글자가 맞는데요.” 데런이 말했다. “이 세계에 K로 시작하는 사람이 카이렌뿐일까요?” 수현이 되물었다. “그건 아니겠죠.” 운송장에는 ‘고리형 보호 표식 부착, 응급 보존 사유’라고 적혀 있었다. 메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고리형 보호 표식이라면 소생술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거 하나만으로 소생됐다고 판단하진 말아요.” “알아요. 다만 성역 사제들이 큰 치료를 할 때 보호 표식을 남기기도 하거든요.” 수현은 운송실장에게 물었다. “표식은 살아 있는 환자에게도 쓰나요?” “그렇습니다. 마력이 불안정한 사람을 이동시킬 때도요. 심지어 부상자를 식별하기 위한 임시 표시로 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 문구는 처치 유형까지 증명하지 못하겠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선 기록을 지나치게 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적혀 있는 것보다 많은 뜻을 만들어 내니까요.” 수현은 그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낯선 세계에서 듣기엔 지나치게 익숙한 충고였다. *** 운송실 뒤편에는 사람보다 오래된 종소리가 남아 있었다. 매일 정해진 시각마다 울리는 작은 종이었다. 수현은 운송장에 적힌 시간이 그 종을 기준으로 기록됐다는 설명을 듣고 갑자기 멈춰 섰다. “그날의 종은 정상적으로 울렸나요?”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카이렌 씨의 공식 출정표와 이동 시각이 겹쳐요. 두 곳의 시계가 같았는지 알고 싶어서요.” 운송실장은 오래된 일지를 꺼냈다. 문제의 날에는 폭설 때문에 종탑의 추를 수리했고, 저녁 종이 한 차례 늦게 울렸다고 적혀 있었다. 길드의 시간 기록은 도시 경비 종을 기준으로 했고, 성역의 운송장은 성역 종을 기준으로 했다. “시간이 조금 다를 수 있겠네요.” 세드나가 말했다. “몇 분에서 한 시간 정도요. 하지만 사흘 전체가 사라지는 이유는 아니에요.” 수현은 출정표와 운송장을 나란히 놓았다. 불일치 중 일부는 시간 기준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카이렌이 의식 없는 상태에서 지휘했다고 기록된 문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하나씩 덜어 내야겠네요.” 수현이 중얼거렸다. 메이가 그녀를 보았다. “뭘요?”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 중 실제로 의심할 필요 없는 부분이요. 그래야 진짜 이상한 부분이 남죠.” *** 운송실을 나선 뒤 세드나는 성역에서 쓰는 작은 지도를 가져왔다. 수현은 지도 왼쪽 위에 카이렌이 머물렀던 야영지를, 오른쪽 위에 성역을 표시했다.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데런이 계산했다. “말이 빠르면 하루도 안 걸리지만, 환자를 누인 마차라면 이틀은 잡아야 합니다.” “공식 출정표에는 그사이 카이렌 씨가 마물 추적을 지휘했다고 돼 있어요.” 수현이 말했다. “그 명령이 실제로 실행됐나요?” 세드나가 출정표를 펼쳤다. “추적 명령 발령과 종료 보고는 있어. 하지만 지휘자 서명은 같은 인장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군.” “카이렌 씨 인장이요?” “길드가 보관한 대표자 인장.” 수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지휘자 이름으로 문서가 발행됐다는 것과 그 사람이 현장에서 지휘했다는 것은 다른 사실이었다. 카이렌은 애초에 의식을 잃은 기간이었으니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이 낮았다. 하지만 누군가 대리로 문서를 작성하는 절차가 존재했을 수도 있었다. “이 규정이 정당했는지 살펴보죠. 대리 발령 권한과 실제 지휘자를 구분해야 해요.” 데런이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그날 마물은 누가 잡은 겁니까?” “그것부터도 확인해야죠. 종료 보고에 출동 대원 이름이 없나요?” 세드나는 명부를 훑었다. “지원 부대가 맡았다는 기록이 있어.” “그렇다면 지원 부대 보고가 남았을 거예요.” 데런은 손가락으로 지도를 따라갔다. 지원 부대의 위치는 카이렌의 치료 경로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럼 카이렌은 동시에 두 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던 거네요.” “그럴 수 있어요. 명의상 지휘자로 기록됐더라도 실제 작전은 지원 부대가 했다면요.” 수현은 그 가능성을 별도 줄에 적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인지, 오래된 관행 때문에 기록이 사람의 상태를 반영하지 못한 것인지 아직 갈라지지 않았다. *** 저녁 식사 전에 수현은 카이렌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보냈다. 의식을 잃기 직전 무엇을 기억하느냐는 것이었다. 금방 답할 수도 있고, 끝내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한참 뒤 카이렌의 음성이 돌아왔다. “밤에 비가 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전투가 끝난 뒤 누군가 넘어지는 모습을 봤어요. 그 사람을 붙잡으려고 했고, 이후에는 기억이 없어요.” “그 사람 얼굴은 기억나요?” “아뇨. 갑옷이 젖어 있었고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누구 이름인지도 모르겠고요?” “그렇습니다.” 카이렌은 말을 멈춘 뒤 조용히 덧붙였다. “저는 용사인데 그 사흘 동안 동료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수현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지키지 못한 책임을 그대로 씌우는 건 이상해요. 지금 필요한 건 그때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확인하는 거죠.” “제가 현장에 있었어도 결과가 달랐을까요?” “그건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몸이 버티지 못했는데도 모든 책임을 지라고 하면 누구라도 무너질 거예요.” 카이렌은 잠시 침묵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수현은 마음이 찡해졌다. 해결되지 않은 사흘의 기록을 앞에 두고도 그는 자기를 비난하는 일부터 멈추려 했다. 그 변화는 어떤 판결문보다 소중할지도 몰랐다. *** 그날 밤 수현은 자신이 쓴 사건 연표를 세드나에게 보여 주었다. 붉은 줄은 문서상 명의, 파란 줄은 직접 목격, 검은 줄은 확정되지 않은 진술로 구분했다. “색깔을 이렇게 많이 쓰는 이유가 뭐야?” “눈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잖아요. 서류상 카이렌의 이름이 많이 등장해도 실제 목격란에는 공백이 크다는 걸요.” “그럼 우리에게 부족한 건 목격자군.” “목격자와 당시 기록, 두 가지 다요. 그래야 기억의 빈자리도 함부로 채우지 않을 수 있어요.” 세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그는 지도의 북쪽 끝을 가리켰다. “보호 대상 이송이 추가로 있었다면 이 길이 쓰였을 거야.” “성역이 아니라 북쪽 초소로 이어지는 길이네요.” “그래. 예전 검역 길인데 지금은 군용도로 바뀌었어.” 수현은 펜을 놓았다. 한 장의 그림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어느 기록을 찾아야 할지 조금씩 알게 됐다. 늦은 오후, 아스텔은 수현을 치료실 밖의 작은 벤치로 불렀다. “예전에 보호 표식을 담당하던 사제가 계셨습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지요.” “카이렌의 치료 기록을 알고 있나요?” “그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의 표식 방식을 설명해 줄 수는 있어요.” 그 사제는 오랜 세월 회복 마법을 연구한 노인이었다. 이름은 베른. 작은 안경을 끼고 허브차를 마시던 그는 수현이 그린 손등의 고리를 보자 고개를 기울였다. “흰 테두리만으로는 무슨 처치인지 알 수 없어. 같은 도구로 여러 종류의 봉인을 만들었거든.” “도구가 같다면 기록 번호가 남나요?” “남아야 하지. 표식을 만든 마석에는 고유한 맥이 있으니까.” “그 맥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죠?” “사용한 마석 대장과 환자 표식 검사를 비교해야 해. 다만 환자가 동의해야 하고, 검사 자체가 몸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수현은 그 말을 즉시 적었다.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그 방법이 카이렌에게 위험하다면 다른 길을 먼저 찾아야 했다. “비침습적인 기록 대조부터 하겠습니다.” “좋은 선택이네.” 베른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죽었다 살아났다는 소문에 쉽게 휘둘리지 말게. 이 세계의 회복술은 대단하지만, 대단하다는 사실이 기적을 늘 보장하진 않으니까.” 수현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 밤에 돌아온 수현은 통신판에 카이렌의 얼굴을 다시 띄웠다. 이번엔 메이와 세드나가 함께 있었다. “확인한 것부터 말씀드릴게요. 의식이 없던 기간과 겹치는 운송장이 있습니다. 보호 고리라는 기록도 있어요. 다만 그 대상이 카이렌 씨인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카이렌이 한참 침묵했다. “그럼 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요?” “아뇨. 정확히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됐어요.” 카이렌이 허탈하게 웃었다. “노무사님 대답은 가끔 사람을 더 답답하게 만듭니다.” “저도 답답해요. 그런데 틀린 답을 드리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렇죠.” 그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검사로 알아낼 수 있다면, 제가 위험을 이해한 뒤 선택하겠습니다.” “좋아요. 먼저 부담 없는 방법부터 찾고요.” 통신이 끝나고 수현은 벤치에 앉아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카이렌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더 불안해질 수도 있었다. 진실을 찾는다는 말이 언제나 상대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아스텔이 작은 종이 조각을 들고 다가왔다. “운송실에서 찾은 보조 기록입니다. 오래돼서 일부만 남았어요.” [응급 보존 대상 2명. 고리 표식 1건. 동행 기록관 1명.] 수현은 메모를 다시 읽었다. 대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줄곧 한 사람의 실종과 한 사람의 기억 공백만 따로 조사해 왔다. “동행 기록관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나요?” “조사하면 알 수 있을지도요.” 아스텔이 답했다. 수현은 종이를 수첩에 끼우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사흘을 설명할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 기록을 들고 있던 사람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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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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