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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92화
PAYLUA ORIGINAL · 제192화

192화. 서울이 아닌 원점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201자

오프라인 책장
검토실 뒤쪽 창고에는 지도가 열두 장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중 일곱 장은 북쪽이 위가 아니었다. 동쪽이 위인 지도, 바다를 중심으로 펼친 지도, 왕도의 성벽을 원점으로 삼는 지도가 제각각 쌓여 있었다. 수현은 어린 시절 지리 시험을 보는 기분으로 지도를 들었다가, 결국 가장 무거운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렇게 보니까 원점이라는 말은 정말 위험하네요.” 나엘이 작은 자로 지도 모서리를 눌렀다. “지도에서의 시작점은 사람이 돌아갈 집과 아무 관계가 없어요. 처음에는 당연한 일인데, 서식이 여러 부서를 지나면서 같은 칸으로 옮겨 적혔죠.” 루세는 지도 옆에 세 종류의 봉투를 늘어놓았다. 하나는 편지 발신처를 표시하는 봉투, 하나는 시험물의 포장 창고를 표시하는 봉투, 나머지 하나는 수신인이 실제 거주하는 마을을 적는 봉투였다. 봉투마다 출발을 뜻하는 똑같은 고어가 쓰여 있었다. 번역자는 이를 모두 ‘원점’이라고 옮겼다. “제가 돌아갈 곳은 제 물건이 만들어진 공장이 아니죠.” 수현이 말했다. “그리고 당신의 휴대전화를 만드는 데 쓰인 금속의 출처도 아닙니다.” “그 말은 하지 마세요. 지금 그것까지 찾자고 하면 여섯 권짜리 보고서가 나오겠어요.” 한참 만에 루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술자들이 웃을 때를 알 수 없던 수현에게는 소중한 장면이었다. 오래된 검토 사례에는 바닷가 어부의 부채가 등장했다. 그 부채는 먼 지방에서 만들어져 왕도에서 팔렸고, 어느 상점에 보관됐다가 수리되었다. 어느 기술자가 부채의 원점을 찾기 위해 첫 제작지를 선택했고, 결과 보고서는 해당 물품을 ‘반환 준비 완료’로 표시했다. 어부는 부채가 필요해서 반환을 신청했지만 정작 준비된 곳은 그가 살아 본 적 없는 공장이었다. “실제로 보냈습니까?” 수현이 물었다. “아니요. 당시엔 운반 승인 전에 어부가 정정을 요청했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정정 요청을 받아들인 담당자는 실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주의를 받았습니다.” 수현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오류를 막은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조직은 결국 오류를 완성하게 만든다. 그녀는 어부의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가림 종이를 올린 뒤 담당자의 주의 사유를 적었다. 그날 지도실에는 실무 교육을 받으러 온 신입 직원들이 있었다. 나엘은 수현의 허락을 받아 어부 사례에서 개인 이름과 주소를 지운 교육용 사본을 만들었다. 수현은 신입들에게 답을 가르치기보다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됐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한 직원은 원점 번호가 틀렸다고 했고 다른 직원은 보관 창고의 확인 도장이 빠졌다고 했다. 세 번째 직원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어부가 부채를 어디에서 받고 싶은지 물어본 기록이 없어요.” “그렇죠.” 수현은 웃었다. “부채가 어디서 왔는지보다 그 부채를 받을 사람이 어디 있는지가 중요할 때가 있어요.” 신입 직원은 자신 있게 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어부가 답하지 않으면 접수를 취소해야 하지 않습니까?” “답이 없으면 우선 왜 답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야죠. 취소할지, 보류할지, 다른 안전 조치를 할지는 사건에 따라 달라요. 답이 없다는 상태와 답이 거절이라는 상태는 같지 않아요.” 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지만 수현은 그 정도로 교육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같은 사례를 다시 정리해 보고, 다음 주에 실제 서류에서도 빈칸을 구별해 보겠다고 했다. 나엘은 수현에게 교육 자료 작성을 정식 업무로 요청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웃으며 말했다. “제 원정대 계약은 끝났고, 지금 저는 귀환 조사 중이에요. 별도 업무라면 적정한 보수와 기간부터 정해야겠죠.” 나엘은 부끄러워했다. 수현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 질문을 해 주신 건 고마워요. 다만 좋은 일이라고 무조건 공짜로 시켜선 안 된다는 걸 같이 기억합시다.” 다른 세계에서도 업무 평가표는 아주 기묘한 힘을 발휘했다. 낮에는 외부 기관의 시계 담당자가 찾아왔다. 현직 교정 기사 프렐이었다. 그는 왕도에서 가장 오래된 물시계의 눈금을 관리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수현이 원래 세계의 시간을 알아낼 수 있느냐고 묻자 즉시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시간을 맞춥니다. 다른 하늘이 있는지부터 모르는데 어떤 수치를 넣겠습니까.” “거기서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요?” “그때도 한 번의 숫자로는 부족합니다. 서로 다른 순간에 보내고 받은 값을 비교해야겠죠. 보내는 데 걸린 시간과 장치가 답을 되비추는 시간도 분리해야 합니다.” 수현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꾸미지 않는 전문가는 어떤 세계에서나 귀했다. 프렐은 실제 계산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간단한 놀이로 보여 주었다. 그는 세드나에게 방을 나갔다가 작은 종을 한 번 울려 달라고 부탁했다. 나엘에게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 벽의 시계를 기록하라고 했고, 수현에게는 프렐의 손목을 보고 그가 움직일 때를 기록하라고 했다. 세 사람의 종이에는 모두 다른 숫자가 적혔다. “이 가운데 거짓말한 사람이 있습니까?” 프렐이 물었다. “없죠.” “맞습니다. 각자 다른 사건을 기록한 겁니다.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종을 친 순간, 소리가 여기까지 도착한 순간은 모두 달라요.” 수현은 그 말에 E-17 원장의 그림자가 겹치는 것을 느꼈다. 중단 요청을 적은 시각, 요청을 받은 시각, 실제 차단 장치가 멈춘 시각은 같은 숫자로 채워지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간 차이가 큰 것이 문제만은 아니었다. 무엇을 측정했는지 모르면서 숫자만 맞추려는 일이 위험했다. 프렐은 실험이 재미있었는지 다시 종을 울리자고 했으나 세드나가 웃으며 말렸다. “오늘은 교육 허가 시간이 다 됐어요.” 프렐은 아쉬워하며 그림을 접었다. 수현은 그가 기술자라기보다 좋은 선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 질문을 할 때는 그가 전문가라고 모든 것을 알 것이라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전문가는 답을 내려주는 사람인 동시에 답을 낼 수 없는 조건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프렐은 오래전 두 시설이 서로에게 종소리를 보내며 시간을 맞추려 했던 사례를 들었다. 한쪽에서 보낸 소리가 중계실에 걸린 반향판에 남아 다음 날 자기 소리처럼 되돌아왔다. 당직자는 그 소리를 외부의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몇 달 뒤 반향판을 청소하고서야 원인을 알아냈다. “그러니 누군가 다른 곳에서 대답했다고 믿으려면 그쪽에서 우리에게 없던 정보를 만들어 보내야 합니다. 미리 답을 적어 놓고 그대로 되돌려 받는 것은 검증이 아닙니다.” 세드나는 질문을 적었다. “우리 쪽이 답을 모르는 질문이면 됩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진 않습니다. 질문을 누가 볼 수 있었는지도 따져야 합니다.” 수현은 문득 휴대전화의 화면을 떠올렸다. 그 안에는 어쩌면 사람들의 얼굴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녀가 그것을 제멋대로 공개한다면 원점 인증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인증을 이유로 다른 사람의 정보를 강제로 꺼내는 순간 자신이 여기서 지키려던 원칙과 어긋났다. “개인 기기는 시험물로 쓰지 않겠습니다.” “그건 당연히 별도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루세가 말했다. “당연한데 안 지켜진 경우를 많이 봤으니까요.” 오후에는 왕도 시장으로 나갔다. 수현은 나엘과 함께 빈 노점의 바닥에 붙은 물건 보관 표지를 확인했다. 계량을 위해 보낸 바구니, 수리 중인 자물쇠, 배송 대기 중인 유리병. 세 물건 모두 ‘반환 요청’이라는 작은 쪽지가 있었지만 돌려받아야 할 사람은 다 달랐다. 수현은 표지마다 다른 질문을 붙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어린 학생이 자기도 지도를 그려 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수현은 종이 한 장을 건네고 자기 집부터 그리라고 했다. 학생은 집을 중심에 놓고 시장을 오른쪽에 그렸는데, 어른의 지도와 달리 북쪽은 아래였다. 누구도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에게 그 지도를 처음 보는 사람이 집을 찾으려면 무엇을 더 표시해야 할지 물었다. 아이는 다리와 오래된 나무, 가게 이름을 추가했다. 수현은 웃었다. 위치를 확인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주고받는 일이었다. 시장 길목에는 배달 인부들의 쉼터가 있었다. 바구니를 운반하던 사람이 잠깐 쉬려 하자 물품을 기다리는 상인이 화를 냈다. 처음엔 단순한 말다툼처럼 보였지만, 수현이 가까이 가서 들으니 운반 계약에 대기 시간이 포함되는지부터 의견이 달랐다. 상인은 물건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보수를 줄 수 없다고 했고, 인부는 상인이 물건을 받지 않아 길가에서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했다. 수현은 누구의 편을 바로 들지 않았다. 계약서가 있는지, 배달을 시작한 시각을 기록했는지, 상인이 언제 수령을 미뤘는지를 물었다. 두 사람은 잠깐 더 싸웠으나 곧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물품은 예정 시각에 도착했지만 상인은 창고를 비우기 위해 수령을 미뤘던 것이다. “그러면 기다린 시간도 일이네요.” 상인이 말했다. “그렇게 판단하려면 계약을 봐야겠지만, 적어도 당신 사정 때문에 발생한 시간이 사라진 건 아니죠.” 수현이 대답했다. 결국 두 사람은 그날의 대기료를 조정하고 다음 배달부터는 대기와 수령 시각을 별도로 기록하기로 했다. 인부는 짐을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수현은 그 모습을 보며 기록의 정확함이 결국 사람의 몸을 쉬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주소를 제대로 적는 일과 근무 시간을 제대로 적는 일은 멀리 떨어진 학문이 아니었다.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가. 그 사람이 지금 그곳에 있는가. 돌려받기를 원하는가. 안전하게 도착했음을 누가 확인할 수 있는가. 노점 주인은 무척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바구니 하나 돌려주는데 서류가 네 장 필요하단 말씀이오?” “아뇨. 바구니면 직접 주인을 보고 돌려주면 됩니다. 그런데 이걸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했는데 주인이 보이지 않으면 문제가 되겠죠.” 노점 주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웃었다. “사람은 바구니보다 까다롭군.” “사람이 원래 그렇습니다. 아주 잘 만든 바구니라도 마음이 있지는 않으니까요.” 돌아오는 길, 수현은 가게 앞에서 일하는 소년이 다친 손으로 물건을 나르는 모습을 보았다.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자 소년은 경계부터 했다. 수현은 자신의 직업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주인에게 짐을 나눠 들을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짧은 대화 뒤 소년은 손을 쉬었고 가게 주인은 무거운 물품의 배송 순서를 바꾸었다. 작은 협의였다. 그 누구도 법률 책을 펴지 않았다. 여관으로 돌아와 수현은 세드나에게 오늘 본 것을 이야기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제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요?” “질문을 잘 정리하고 그 질문을 할 사람에게 돌려주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드나는 웃었다. “돌려주는 거군요. 오늘 연구 주제랑도 맞네요.” 밤에 수현은 책상에 낡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기계 속에는 서울에 관한 정보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찾는 것은 고장 난 기계가 돌아갈 공장이 아니라, 아침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살아 있는 도시였다. 그날 밤에는 낡은 사진 한 장을 기억 속에서 꺼냈다. 출근길 편의점 앞에 서서 찍었던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별것이 없었다. 편의점 문에 붙은 행사 안내, 멀리 보이는 버스 정류장, 공기가 탁했던 늦여름의 하늘. 수현은 그 사진이 어느 계절에 찍혔는지 기억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했다. 언젠가 고향과 연결됐다는 신호가 오더라도 이 사진의 배경만으로 상대가 서울에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됐다. 사진은 다른 사람이 복제할 수도 있고, 기억은 자주 틀렸다. 대신 그녀는 검토 질문을 한 장에 정리했다. 질문의 답을 미리 알고 있는가, 상대가 질문을 듣고 새로 답했는가, 두 번의 시각이 같은 반향판에서 만들어졌는가. 마지막으로 별도의 사람이 자신의 의사로 대화에 참여했는가. 진실을 지키는 일에는 의외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꼭 들어갔다. 책상 옆에서는 여관 주인이 놓고 간 조그만 종이 울렸다. 식당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수현은 수첩을 덮고 계단을 내려갔다. 서울에 돌아가는 날을 알 수 없어도 오늘 저녁을 먹을지 말지는 정할 수 있었다. 그 차이는 사소하지 않았다. 자기가 걷던 계단, 손바닥을 데던 여름 공기, 퇴근길에 파는 빵 냄새가 있는 곳. 주소는 도시의 이름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제2권에는 빈 원점 칸 옆에 조그맣게 쓰인 메모가 있었다. ‘출발지로 확인되지 않은 곳을 목적지로 지정하지 말 것.’ 수현은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이제 원점 인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도보다, 저쪽에서 실제로 대답하는 누군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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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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