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계가 세 개입니까?”
수현이 물었을 때 나엘은 책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반환 경로 검토실의 아침은 종이 냄새와 젖은 외투 냄새로 시작했다. 창문 가까운 책상에는 분침이 없는 황동 시계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왕도의 표준 시각을 알리는 커다란 물시계 모형이 걸려 있었다. 그 옆에 이번에 열람 허가를 받은 제2권이 두 사람 사이에 펼쳐져 있었다.
“하나는 송신실의 시계, 하나는 중계실의 시계, 마지막 하나는 원점에 있는 시계입니다.”
“원점에 있는 사람의 시계가 아니라요?”
“그 차이를 묻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수현은 조금 웃었다. 그렇다고 웃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수십 번의 조사에서 공통으로 발견된 문제는 단어 하나가 다른 뜻으로 번역되면서 사람의 선택이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배정’은 실행이 되었고, ‘수신 대기’는 동의가 되었고, ‘종결’은 모든 일이 안전하게 끝났다는 뜻이 되었다.
제2권의 첫 장에는 오래된 잉크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반환을 판단하려는 자는 세 가지 시계를 일치시키려 하지 말고 차이를 먼저 기록할 것.’ 그 아래에 별도의 경고가 있었다. ‘원점 응답의 부재를 순응으로 간주하지 말 것.’
“제1권보다 훨씬 직접적이네요.” 수현이 말했다.
세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히려 이 문서가 왜 공개 색인에서는 빠졌는지 확인해야 해요. 적힌 게 옳다고 해서 그 자체가 언제나 현장에 전달됐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루세는 검은 끈으로 묶인 얇은 판을 꺼냈다. 판에는 세 개의 홈이 있었고 홈마다 서로 다른 길이의 눈금이 새겨져 있었다. 전류도 마력도 흘리지 않는 단순한 교육용 모형이었다.
“이것이 시간 보정판입니다. 동일한 신호를 받은 두 시설의 시계가 어긋나도 종이에 그 차이를 기록할 수 있죠. 문제는 세 번째 시설이 어디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으면 값을 채울 수 없다는 겁니다.”
“빈칸을 자동으로 메우는 기능도 있었겠군요.”
“불행하게도 그렇습니다.”
나엘이 옛 기록 한 줄을 가리켰다. 원점 시계의 자리에 동그란 점 세 개가 있었다. 후대 요약본에는 같은 칸에 영(零)이 적혀 있었다.
수현은 종이 위에 연필로 두 기호를 다시 그렸다. 미확인과 영의 차이는 수학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컸다.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빈칸이 가장 솔직한 답이었네요.”
“당시 담당자들에게는 빈칸이 실패로 보였을 겁니다.” 나엘이 말했다.
“정확한 실패라면 기록해야죠. 성공한 척한 실패가 사람을 데려오는 순간, 실패 비용이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열람실 밖에서는 한 직원이 서류 뭉치를 떨어뜨렸다. 모두 잠깐 놀라 문 쪽을 보았다. 루세는 먼저 모형을 덮었고 세드나는 원본 위에 투명 보존판을 올렸다. 수현은 그 행동이 우스우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종이 하나를 위해 세 사람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면 사람 한 명의 안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이가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그날 열람은 세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열람 전에는 문서의 접힘과 훼손 상태를 사진 대신 필사 목록으로 남기고, 열람 뒤에는 페이지 순서가 바뀌지 않았는지 두 사람이 확인했다. 수현은 동의서를 읽다가 맨 아래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구를 발견했다. ‘열람에 참여한 자는 후속 기술 검증에 협력하는 것으로 본다.’
“이 문구는 지워 주세요.”
나엘이 놀란 눈을 들었다. “현재 서식에는 예전부터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고쳐야 해요. 저는 읽으러 온 겁니다. 장치를 켜겠다고 약속한 게 아니에요.”
세드나는 별도 기록으로 이의를 접수했다. 나엘도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서식을 관리하는 자신의 권한은 문장을 지울 만큼 넓지 않았지만, 새 버전 심사를 올릴 권한은 있었다.
나엘은 이의서를 접수하러 나갔다가 어두운 얼굴로 돌아왔다. 서식을 바꾸려면 업무 부담 분석을 첨부해야 한다는 대답을 들은 모양이었다. 새 규칙을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직원들이 어느 칸에서 질문을 받게 되는지, 서명대에 줄이 얼마나 길어질지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수현은 곧장 반박하지 않았다. 절차를 더 정확하게 바꾸면서 그 일을 맡을 직원의 시간을 공짜로 여기면 같은 실수가 반복될 수 있었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실제 접수 창구를 관찰했다. 한 직원은 여섯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받았고, 다른 직원은 서류를 들고 세 번이나 계단을 오르내렸다. 수현은 어느 질문이 중복인지 확인하되 어떤 질문을 없앨 것인지는 직원들에게 먼저 물었다. 나엘은 접수 건수보다 중요한 것을 알아냈다. 시험 참여를 강요하는 문구 때문에 접수 직원들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갈등을 매번 설명하고 있었다. 동의를 분리하면 처음 서류는 길어지지만 재접수와 이의 처리 시간이 줄어들 수 있었다.
“이건 사람이 서류를 읽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 아니네요.” 나엘이 말했다. “서류 자체가 서로 다른 일을 한 번에 시키고 있었어요.”
수현은 계산표를 보며 웃었다. “잘못된 질문 하나가 직원들의 야근으로 돌아오기도 하죠. 그러니까 동의서는 이용자만 보호하는 문서가 아니에요.”
나엘은 야간 근무를 담당한 후배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가렸다. 그가 문제를 여러 번 보고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제안서 끝에 ‘제안자 보호 및 야간 담당 추가 인력’이라고 적었다. 수현은 그 두 줄이 새 문장만큼 중요하다고 느꼈다.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는 동의를 슬쩍 서식 아래 넣어 두는 관행을 바꾸자는 요청은 처음이었다.
점심 무렵 수현은 여관에서 가져온 딱딱한 빵을 뜯었다. 오랜만에 한국 편의점 삼각김밥이 떠올랐다. 그것을 먹던 날에는 계약서에서 ‘고정 연장근로’라는 단어를 발견해도 이런 복잡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때는 적어도 밥을 먹고 퇴근하면 지하철이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뭘 하시겠습니까?” 나엘이 물었다.
“휴대전화 충전이요.”
“그게 제일 먼저입니까?”
“연락할 사람이 많아서요. 그런데 제 충전기를 여기에서 만들자는 말은 아닙니다.”
루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세 사람이 웃었다. 수현은 그러고 나서 손을 멈췄다. 웃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처음엔 죄책감처럼 느껴졌었다.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여기서 웃어도 되는가. 이제는 알았다. 웃는 것이 체념은 아니라는 것을.
오후에는 제2권의 보존 이력을 확인했다. 최초 작성 시기, 첫 개정 시기, E-17보다 훨씬 나중에 삽입된 교정 참고표가 따로 있었다. 제2권 자체는 오래되었지만 그 안의 모든 종이가 같은 시대의 증언은 아니었다. 수현은 새로운 결론을 성급히 쓰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쪽지와 새 쪽지의 가장자리에 서로 다른 번호를 달았다.
부록의 제본 상태를 확인하던 직원이 작은 실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낡은 종이를 꿰맸던 실은 검은색이었는데 참고표를 덧붙인 실은 희미한 녹색이었다. 두 종이는 오래전부터 한 권에 들어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작성된 것이 아니었다. 수현은 이 단순한 차이를 표로 만들었다. 작성 당시의 문장, 나중에 보충된 주석, 요약본에만 있는 판정. 세 가지를 색연필로 구별하고 나자 원점 시계의 숫자 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후대의 교정 담당은 빈칸을 수학적 계산 과정에서 임시값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 결과표를 보면서 원점 시계도 실제로 측정했다고 생각한 듯했다. 임시 계산값의 주석은 다음 사본에서 사라졌다. 그 사본이 다시 관제실의 교육 자료가 되었고, 교육 자료를 배운 직원은 영이라는 수치를 실제로 확인된 시계의 값처럼 읽었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거짓말한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각자 한 줄씩 생략한 셈이군요.” 세드나가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도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죠. 생략이 위험해지는 걸 알아차리면 그때부터는 멈춰야 해요.” 수현은 말했다.
마틸은 제본실 담당에게 후대 보충표의 복제를 잠시 중지하도록 요청했다. 원본을 감추는 조치가 아니라 복제 시기에 대한 주석을 붙이기 위한 보존 조치였다. 수현은 직원들과 그 차이를 다시 확인했다. 문서를 잠그는 것은 질문을 막기 쉬웠고, 설명을 붙여 공개하는 것은 질문을 더 정확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원점 미인증 상태에서 진행하면 안 되는 일들의 목록이 있었다. 귀환 완료 통지, 당사자 신원 일치 판정, 생체 운반 시험, 그리고 실물 소지품 자동 수신. 수현이 손가락을 멈춘 것은 목록의 맨 끝이었다. ‘안전 여부 확인 책임을 현장 확인인에게 떠넘기지 말 것.’
“누군가는 오래전에도 알고 있었네요.”
“알고 있는 것과 지킨 것은 달랐죠.” 루세가 대답했다.
수현은 접수 기록에 오늘의 성과를 한 문장으로 남겼다. ‘세 시계 중 원점 시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그 빈칸은 수치 영으로 대체할 수 없다.’
그날 저녁 메이에게서 짧은 편지가 왔다. 오늘 치유사 교대 근무표가 실제로 시행됐고, 처음으로 자신의 식사 시간이 누군가의 호의가 아닌 근무표에 적혔다는 소식이었다. 수현은 답장에 ‘축하해요’라고 썼다. ‘그리고 밥을 맛있게 먹어요.’
편지를 접기 전에 수현은 자신도 쉬었다는 이야기를 적을까 망설였다. 사실 오늘은 빵을 급하게 먹었고, 닫힌 창문 때문에 눈이 따가웠고, 표를 만들다 목이 굳었다. 메이가 걱정할까 봐 그 말을 빼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 왔던 조언을 지키지 않는 셈이었다. 수현은 문장을 덧붙였다. ‘저도 오늘은 밤에 서류를 읽지 않고 쉬려고 해요. 잘 지키면 내일 자랑하겠습니다.’
여관의 마라가 저녁 식판을 가져왔을 때 수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마라에게도 쉴 시간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새로 마련된 교대 근무표를 보여 주었다. 매번 밤늦게 객실을 정리하느라 아침을 거르던 날들이 조금 줄었다고 했다. 수현은 자신이 이 여관에 들어온 이후 마라의 삶이 전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마라가 자기 상황을 설명했을 때 여관 주인이 일정을 조정하는 것을 본 적은 있었다.
“손님은 내일 쉬신다면서요?” 마라가 물었다.
“네. 적어도 제가 그렇게 쓰긴 했어요.”
“그럼 내일 아침에 서류를 들고 식당으로 내려오시면 제가 회수해 가겠습니다.”
수현은 웃었다. “무섭네요. 두 사람이 제 휴식을 관리하고 있어요.”
“손님이 먼저 말했잖아요. 근무표에 적힌 휴식은 실제로 써야 한다고요.”
식탁 위에는 온기가 남은 수프가 놓였다. 수현은 그릇을 비우고 오랜만에 빈 책상을 바라봤다. 왕도에서의 하루가 언제부터 이렇게 평범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평범함 덕분에 그녀는 다시 서울을 생각할 힘을 얻었다.
휴대전화를 감싼 천을 정돈한 뒤 수현은 작은 수첩의 새 페이지를 열었다. 거기에 세 개의 시계를 그렸다. 두 개는 움직이는 시계로, 세 번째는 바늘 없는 원으로. 바늘이 없는 것은 고장이 아니었다. 아직 시간을 물어보지 못한 장소가 있다는 뜻이었다.
창밖에 종이 울렸다. 왕도의 시간이 한 칸 넘어갔다. 수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이쪽에서 보내는 하루가 한국에서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했다. 사람에게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그 질문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다음 날의 열람 신청서에는 항목 하나가 더 생겼다. ‘독립 응답이 없을 경우 즉시 중단.’ 누가 나중에 검토서를 읽더라도 미확인을 완료로 고쳐 적지 못하도록, 수현은 그 문장을 원본 사본의 첫 페이지에도 덧붙이기로 했다.
수현은 점심때 잘못 전달됐던 봉투 한 장의 발신란을 다시 보았다. 본래의 작성자가 적힌 날짜와 중간 전달원이 받아 적은 날짜가 하루 달랐다. 처음엔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실험을 멈추라는 경고의 순서를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녀는 담당자에게 두 날짜를 모두 적은 정정표를 요청했다.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면 그 상태도 표시하자고 했다. 나엘은 수현이 예전보다 종이의 빈칸을 덜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빈칸을 견디지 못해 남의 뜻을 써넣는 것이 더 무서웠다.
추가 문구를 원본에 바로 쓰지는 않았다. 보존본에는 손대지 않고 열람자가 읽을 수 있는 별지로 부착하도록 했다. 할드가 예전에 가르쳐 준 방법이었다. 권고가 중요한 만큼 그 권고가 어떤 시점에 누가 작성한 것인지 남겨야 한다는 이유였다. 수현은 자신의 이름, 작성 날짜, 참관 허가 번호를 별지 아래에 적었다. 오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기록 속에 몰래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퇴실 직전 나엘이 낡은 문서함 하나를 더 보여 주었다. 원점 시계와 관계없는 잡다한 문의가 든 함이었다. 어떤 봉투에는 수리를 기다리는 시계의 부품이 들어 있었고, 다른 봉투에는 보내는 이를 잃은 평범한 안부 편지가 있었다. 수현은 함을 닫으며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세계를 건너는 길이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늘 집에 도착해야 할 편지 한 통이 가장 급할 수 있었다. 공정한 절차는 거대한 사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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