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심사반의 정정 회의가 열리는 날, 왕도에는 맑은 햇빛이 들었다. 수현은 회의장으로 걸어가며 이상한 생각을 했다. 오늘은 어쩌면 오랫동안 좇아왔던 E-17 기록에 법적인 결론이 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결론이 집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 둘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세드나는 회의장 앞에서 신청서의 순서를 다시 확인했다. 메이의 최초 민원, 사전 동의가 누락된 배정표, 남부 관제실의 수령 기록, 기술 차단 최종 회신의 부재, 반환 경로 검토실의 원점 미인증 기록. 다섯 항목은 서로 다른 기관이 만들었다. 수현은 내용을 연결하는 자신이 저 자료들의 주인이 아님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진술하시겠습니까?” 심사관이 물었다.
“네. 먼저 제가 여기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사실을 기록한 사람들이 왜 동의와 기술적 완료를 확인한 것처럼 적었는지 묻는 겁니다.”
심사관은 원장을 펼쳤다. 수현은 차례대로 짧게 설명했다. 메이는 치료와 휴식을 요청했지 누군가를 강제로 데려오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자신은 사전에 이동 동의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 담당실 배정 완료는 실제 기술 작동 승인이 아니다. 중단 명령의 관제실 도착과 최종 차단 조치 완료는 별개다.
“기술적으로 E-17이 귀하를 이동시켰다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입니까?”
“증거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저를 이동시킨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확정하는 것도 아니에요.”
루세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작동 실험 결과와 독립 기록의 한계를 설명했다. 일부 문자 반응과 접점 반응은 확인되지만, 그것으로 사람의 안전한 역이동이 가능한지 판단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회의장 한쪽에서 다른 심사관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요청하는 시정 조치는 무엇입니까?”
“잘못된 완료 표기로 제 동의나 기술적 성공을 추정하지 말아 주세요. 실제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확인'이라고 기록해 주세요. 또 사전 동의가 없는 배정이 다시 생기지 않게 절차를 고쳐 주세요.”
“귀환 지원 요청은 유지하십니까?”
“네. 다만 위험한 인체 실험 참가 의사로 해석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문장을 말할 때 수현은 손이 조금 떨렸다. 처음 이곳에 온 날에는 두 시간의 휴식을 확보하기 위해 감독관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은 자기 삶을 돌려받고 싶다고 말하는데도 묘하게 차분했다. 자신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심사관은 증거 조사 범위에 관한 중간 결정을 발표했다. E-17 행정 요약표에 표시된 '집행 완료'가 수현의 사전 동의나 안전한 기술 완료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해당 표기의 독립적 검증이 끝나기 전까지 다른 절차의 승인 근거로 사용하지 않도록 임시 제한을 두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책임과 소환 원리, 귀환 방법에 관한 심사는 계속됐다.
수현은 결정문을 읽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었다. 오래된 오류 하나가 공식적으로 멈췄다.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서울로 돌아가지 못했다.
회의장 밖으로 나왔을 때 나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회의 결과를 들은 뒤 수현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반환 경로 검토실의 보존 목록에서 아까 찾으시던 오래된 원점 인증 질문과 같은 양식의 별권을 발견했습니다.”
“제 사건에 쓰였던 겁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2권: 원점 수신 확인과 시간 보정'이라는 제목입니다. 자료를 확인하려면 신청부터 하셔야 해요.”
수현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서류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서류가 나타나는 것이 이 나라의 취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제목 속 단어들이 처음보다 정확하게 이해됐다. 원점. 수신 확인. 시간 보정. 자신이 진정으로 돌아가려면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마음대로 생략할 수 없었다.
여관으로 돌아오자 메이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개인 청구의 일부는 새 심사에 들어갔고, 손목 고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카이렌은 자신이 없는 날에도 원정대가 안전하게 움직였다고 썼다. 라비엔은 북방에 남아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겠다고 다시 적었다. 세 편지에는 모두 서로 다른 미완료 상태가 있었다.
수현은 편지를 펼쳐 탁자에 나란히 놓았다. 누군가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면 오래전에 지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을 하고 있었다. 자신만 집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메이는 사람을 돌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고 있었고, 카이렌은 용사라는 역할에 가려졌던 개인의 삶을 회복하고 있었다. 라비엔은 남이 정해 준 귀환지가 아니라 자신이 머물 곳을 고르고 있었다.
그날 밤 수현은 여관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오래 지내도 괜찮을까요? 아직 언제 떠날지 모르겠습니다.”
주인은 수첩을 확인했다. “방값만 제때 내시면 됩니다. 그리고 늦은 밤에 일할 거면 촛불은 창가에서 멀리 두세요.”
“네.”
“집에 돌아가는 길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수현은 잠깐 놀랐다. 여관 주인은 말없이 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오늘 비가 온 것은 아니었지만, 수현이 방으로 돌아오면서 실수로 물통을 쏟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돌아가시게 되면 방 정산은 그날까지로 하겠습니다. 떠나려는 사람에게 다음 달 방값을 미리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수현은 웃었다. “여기도 좋은 계약이 있네요.”
“우리 여관에서 제일 자랑하는 조건입니다.”
방에 들어온 수현은 수첩을 펼쳤다. 그동안의 모든 조사 내용을 한 장에 적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핵심은 간결했다. 사전 동의 없는 이동에 관한 이의 인정. 행정적 완료와 기술적 완료의 분리. 중단 회신 부재. 원점 인증 불충분. 안전한 인체 귀환 방법 미확인.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을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내가 돌아갈 곳과 그곳에서 나를 맞을 수 있는 길을 확인하기 전에는 어느 장치에도 나를 맡기지 않는다.'
수현은 펜을 놓았다. 촛불이 작게 흔들렸다. 오늘의 결정은 끝이 아니라 길게 이어진 싸움의 한 부분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마법을 쓸 줄 몰랐고, 검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서명만큼은 누군가 대신 만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배워 가고 있었다.
***
공동심사반의 중간 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 수현은 자신의 사건을 다루는 행정 직원들에게 별도의 질문을 보냈다. 잘못된 완료 표시를 다른 사건의 승인 근거로 쓰지 말라는 결정이 실제로 어느 부서까지 전달됐는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회의실에서 결론이 나왔다는 사실과 현장에서 그 결론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다를 수 있었다.
나엘은 처음에 그 질문이 너무 꼼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현이 남부 관제실의 중단 명령 사례를 들자 바로 이해했다. 서류에 적혀 있는 지시는 전달되지 않거나 수령이 확인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엔 단순 발송 확인 말고 부서별 수령 확인을 남기겠습니다.”
“실제로 업무가 바뀌었는지까지 확인되면 좋겠어요. 다만 그것도 별도 기록이겠죠.”
나엘이 웃었다. “정말 처음보다 까다로운 신청인이 되셨네요.”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날 회의실에 붙은 공지에는 오래된 원점 확인 표식을 새로운 승인 근거로 자동 전환하지 말라는 문장이 추가됐다. 직원들은 난감해했다. 단순한 숫자 하나를 바꾸면 처리되던 일이 이제 원문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검토실은 새 업무량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임시 인력 배치 요청서도 함께 제출했다. 옛 실수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비용으로 인정하려는 첫걸음이었다.
수현은 그 과정에 직접 결재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외부인이었다. 자신이 계속 이곳에 남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올바른 일을 하려면 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있었다.
저녁에는 루세와 마지막 기술 검토를 했다. 루세는 제2권의 제목만으로 귀환 기술이 존재한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수현은 이미 알고 있다고 웃었다.
“거기에도 사람 대신 종이를 돌려보낸 기록만 있을 수 있겠죠.”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만 원점 응답이 없으면 어떻게 처리했는지, 시간 보정이 언제 필요한지에 관한 자료일 수는 있습니다.”
“그걸 확인하면 앞으로 실험을 하게 되나요?”
“실험의 필요성과 안전 조건을 검토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실제로 실험할지 여부는 전혀 별도 문제입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원인을 찾아내면 바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이제는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사람에게 무엇을 해도 되는지를 함께 묻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밤 창문 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촛불을 옆으로 옮기고 오래된 휴대전화를 꺼냈다. 한동안 서랍에 넣어 두었던 물건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문질렀다. 전원은 켜지지 않았다. 그 물건 안에는 서울의 사진과 메시지, 연락처가 남아 있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내용을 읽을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처음 보는 기술자의 실험 장비에 연결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다시 천으로 감쌌다. 정확한 충전 방법조차 없는 세계였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오래된 물건을 잘 보존하는 일이었다. 언젠가 돌아간 뒤 콘센트에 연결할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이곳에서 보낸 시간과 그곳의 시간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오전 제7원정대에서 작은 소포가 도착했다. 메이가 보낸 차잎과 카이렌이 시장에서 샀다는 말린 과일이었다. 편지에는 '꼭 먹고 쉬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수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처음 카이렌에게 휴식하라고 명령했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그들에게 같은 말을 듣는 것이 신기했다.
수현은 차를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제2권 열람 신청서를 펼쳤다. 접수 예정일, 공개 범위, 개인 정보 보호, 실험 불동의. 하나도 빠짐없이 적었다. 그녀는 서명하기 전 잠시 펜을 멈췄다. 서명란이 가장 중요한 자리는 아니었다. 서명 위에 쓰인 문장을 누가 제대로 읽었는지가 더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수현은 작은 메모를 접어 책 속에 넣었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갈 곳을 어떻게 확인할지, 그리고 지금 이쪽에서 그 사람을 기다려 줄 수 있는지.' 그 세 가지 질문이 앞으로 자신이 계속 품어야 할 문제였다.
창밖에서 아침 종이 울렸다. 예전 같으면 출정 명령을 알리는 소리라고 먼저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시장이 문을 여는 시간이었다. 수현은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서류를 다시 읽었다. 돌아갈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누군가 그 문 앞에 '완료'라는 종이를 마음대로 붙이지 못하게 되었다.
***
그날의 마지막 방문객은 나엘이었다. 그녀는 제2권의 소장 목록을 가져오면서 조건을 다시 설명했다. 내용 열람은 가능하지만 원본 반출과 장치 시험 승인은 별도의 심사였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그 설명을 들을 때마다 놀라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읽을 수 있는 문서가 무엇인지 차분히 확인했다. 제2권 표지에는 오래된 압인 하나가 있었다. '원점 응답은 발신 기록과 별도 보존.' 수현은 그 글자를 한참 바라봤다. 처음부터 누군가는 같은 실수를 피하려 했던 것이다. 그 시도가 왜 충분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나엘이 나간 뒤 수현은 방 안의 불을 끄고 창밖을 봤다. 왕도에는 늦게까지 불이 켜진 작은 집들이 많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처럼 각자 돌아갈 집을 생각하겠지. 그녀는 서둘러 종이 위에 답을 만들어 적지 않았다. 내일 새로 자료를 확인하면 더 정확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편지와 차를 곁에 두고 쉬기로 했다.
***
세드나가 다음 날 가져온 회신에는 정정 심사 결정문의 수령을 확인한 기관 목록이 적혀 있었다. 아직 응답하지 않은 곳이 두 군데 있었다. 수현은 반사적으로 불안해졌지만 곧 숨을 고르며 물었다. “미수신입니까, 미회신입니까?” 세드나는 목록을 살펴보고 답했다. “수신 확인은 있고 조치 회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음 질문이 분명해졌다. 조치 회신이 언제, 어떤 내용으로 돌아오는지 확인하면 된다. 모든 것을 한 장의 완료 도장으로 덮어 버리지 않는 한, 남은 일에는 다음 순서가 있었다.
제19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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