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7의 반환 검토 기록 가운데 하나가 드디어 다른 자료와 교차 검증됐다. 원점 응답 미수신, 당사자 이동 의사 별도 보존, 기존 경로 재접속 승인 없음. 세 문장이 서로 다른 장부에 남아 있었다. 수현은 종이를 눈앞에 붙여 놓고 천천히 읽었다.
“이건 기술적으로 연결됐다는 뜻이 아니죠?”
루세가 고개를 저었다. “맞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누가 어디서 무엇을 송신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문서상의 상태가 어떤 식으로 처리됐는지 보여 줍니다.”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죠?”
“모른다는 걸 모른다고 적을 수 있어서요.”
세드나도 옆에서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세 문장을 한꺼번에 보는 순간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당사자 이동 의사를 별도 보존했다면, 왜 E-17 자동 이관 때 그 정보가 집행 후보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이미 사전 동의가 없다는 사실은 인정됐지만, 누가 그 경고를 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원점 응답이 없는데도 경로가 유지된 이유가 있을까요?” 수현이 물었다.
나엘은 낡은 책자 한 페이지를 열었다. “예전에는 회신이 늦으면 장치 쪽 연결을 일정 기간 붙잡아 두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누가 서류를 다시 제출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죠. 다만 그 상태에서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그러니까 연결 대기가 곧 이동 승인으로 바뀌면 안 되는군요.”
“예. 그건 명시적으로 금지된 사항입니다.”
수현은 즉시 E-17 사건의 요약표를 요청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관리관은 당사자 사건에 관한 비식별 부분 열람을 허가했다. 서류에는 '재접속 후보 보류 해제 대기'라는 문구가 있었다. 수현은 단어 하나를 짚었다.
“해제 대기면 아직 해제하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이전 요약표는 '경로 사용 가능'이라고 적혀 있어요.”
관리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원본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수현은 그 요청에 동의했다. 서류가 잘못됐을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에도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 수는 없었다. 어느 단계에서 누구의 책임으로 문구가 바뀌었는지, 변경 기록이 남아 있는지부터 살펴야 했다.
그날 오후 보존실 한편에서 비상 업무가 발생했다. 먼 지방에서 온 한 여성이 자신이 돌아갈 마을의 이름을 알려 달라며 창구 앞에 섰다. 마을은 큰 산사태 이후 다른 지명으로 합쳐졌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돌아가야 했다. 직원은 기존 기록을 찾지 못하고 재방문을 요청하려 했다. 여성이 조용히 물었다.
“지금 어디서 자야 합니까?”
수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목적지 확인을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필요한 동안 사람은 먹고 자야 했다.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그걸 도와준 이들이 있었듯, 이 여성에게도 중간 지원이 필요했다.
수현은 창구 직원에게 제안했다. “이분 주소를 확인하는 일은 서둘러 잘못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주소가 없다고 오늘 밤 잘 곳까지 없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임시 숙소를 안내할 제도가 있나요?”
직원은 다른 창구를 가리켰다. 지방 이주민 임시 지원 부서였다. 그러나 부서는 곧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수현은 여성이 그 부서에 문의하도록 안내한 뒤, 담당자가 실제로 접수를 받아 줬는지만 확인했다. 당사자 대신 동의서에 서명하거나 지원을 강요하지 않았다.
나엘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수현 씨 사건만으로도 복잡한데 이런 일까지 신경 쓰시네요.”
“제가 돌아갈 주소를 못 찾는 동안 밥은 먹고 자잖아요. 다른 사람도 그래야죠.”
그 말이 끝나자 수현은 갑자기 자신이 얼마나 오래 집을 떠나 있었는지 떠올렸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이제 숫자도 켜지지 않았다. 서울 사무실의 전기 냉장고, 분리수거 요일, 종종 늦게 도착하던 의뢰인의 문자가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자기 부재를 알아챘을까. 시간이 똑같이 흘렀을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처음으로 상세 주소 대신 고향의 아주 평범한 질문을 적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집을 나설 때 창문에 붙여 둔 종이는 무엇이었나.' 그런데 바로 지웠다. 기억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검증 질문은 자기만 알면 되는 비밀이 아니라, 정답을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루세에게 그 생각을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점 인증에는 질문을 보낸 쪽만 아는 답이 아니라, 안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독립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특히 시간 기준이 다를 때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 저는 뭘 해야 하죠?”
“먼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불일치부터 처리합시다. 원래 세계에 접속하기 전 단계가 아직 있습니다.”
그는 원점 확인 요약표의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 '대상 실재 확인 전 경로 유지 금지.'
수현은 조용히 읽었다. 자신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장치는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적었다고 실제 사람이 그 장치 앞에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군가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반대편에서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녀는 오래된 보고서를 두 번 접었다. '돌아갈 곳의 수신인'이라는 표현이 머리에 남았다. 서울의 자기 집이 수신인이 될 수는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자신의 귀환을 받아 줄 수 있어야 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
수현은 원점 확인 보고서의 불일치를 찾아낸 다음 날, 옛 시스템의 변경 대장을 찾아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관리관은 처음에 그 자료가 너무 낡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엘은 보존 목록의 뒷장에 추가 이관 번호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원본은 다른 방에 있었다. 수현은 다시 한 번 서류가 없어졌다는 말과 찾지 못했다는 말을 구분해야 한다고 느꼈다.
작은 보관실에는 선반이 높게 놓여 있었다. 직원 둘이 함께 올라가야 하는 사다리였고, 전날부터 비가 새어 바닥 일부가 미끄러웠다. 나엘은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자료를 내리지 않겠다고 했다. 수현은 자신의 사건 때문에 서류를 빨리 찾아 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보존실 직원들이 바닥을 닦고 사다리의 받침을 확인하는 동안, 그녀는 밖에서 다른 자료를 정리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변경 대장의 외피를 볼 수 있었다. 수현은 원문 열람 허가를 다시 받아야 했지만, 표지의 제목만큼은 확인했다. '대기 상태 자동 변환 예외 처리 목록.'
“말이 정말 어렵네요.” 수현이 중얼거렸다.
나엘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쉽게 말하면 기다리는 중인 항목을 어떻게 표시할지 정한 목록입니다.”
“그런데 왜 예외가 필요한 거죠?”
“옛 장치가 끊어졌을 때 담당자가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일부 기록을 별도 칸에 보관했어요. 나중에 전산으로 바꾸면서 그 칸이 다른 뜻으로 쓰인 시기가 있었죠.”
수현은 그 이야기를 듣자 E-17의 자동 이관을 떠올렸다. 정확히 같은 규칙이 적용됐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반환 검토실의 대기 상태가 승인처럼 읽히는 구조가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은 높아졌다.
자료를 살펴보던 루세가 작은 표를 가리켰다. 대기와 승인 사이에 비어 있는 중간 칸이었다.
“여기 확인 단계가 하나 더 있었네요. 옛 규정에는 원점에서 응답을 받지 못하면 별도 표식으로 보존하도록 했습니다.”
“그럼 응답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중단 사유였나요?”
“그 규정에는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다만 E-17 당시에도 효력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해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미 수많은 옛 규정이 실제 현장에서 다르게 운영됐다는 사실을 보았다. 서류에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에서 지켜졌다고 추정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수현에게 임시 지원을 받던 여성이 감사 편지를 남겼다. 아이와 함께 임시 숙소에 들어갔고, 실제 거주지 확인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했다. 수현은 그 답장을 읽으며 작은 안도를 느꼈다. 주소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누군가 길가에서 밤을 보내지는 않았다.
수현은 식당에서 세드나와 마주 앉았다. “기록을 바로잡는 일은 왜 항상 다음 문제가 생길까요?”
“이전에 붙여 둔 이름이 잘못됐으니까요. 그 이름으로 다른 일을 처리했을 테고요.”
“그렇다고 다 엎을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각 단계의 범위를 구분해야 합니다.”
수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말은 이제 두 사람의 농담이 되었다. 무슨 문제가 생겨도 '범위를 구분하자'는 말부터 하게 됐다.
다음 날 관리관은 추가 자료를 내밀었다. 이번엔 E-17과 동일한 해의 원점 확인 목록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식별번호는 가려져 있었지만 도장의 생성 시간이 당시 이관표와 겹쳤다. 수현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고 물었다.
“이제 같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나요?”
“아직 아닙니다. 날짜가 겹치고 코드가 비슷합니다. 그 이상의 연결은 원본 대응표가 필요합니다.”
수현은 예상한 답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작은 진전이 있었다. 이관표에 '대상 의사 미수신'과 '원점 확인 대기'가 서로 다른 줄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상태 모두 승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전의 요약표에서 두 줄이 하나의 '처리 완료'로 합쳐졌다면, 그 과정 자체가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수현은 공식 심사관에게 새 의견서를 보냈다. 결론을 미리 써 달라는 요청은 아니었다. 이관표의 값 변환을 검토해 달라는 신청이었다. 첨부 자료에는 원본과 사본이 구분되어 있었고, 개인정보는 필요한 범위에서만 공개됐다. 세드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이렇게 적으면 책임자 조사까지 진행할 수도 있어요.”
“그것도 정식 절차로 해야죠.” 수현이 말했다. “누구 한 사람을 미리 지목해서 몰아가진 말고요.”
나엘이 문서를 접수했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처음 오셨을 땐 돌아갈 길을 물으셨는데, 이제는 왜 이 서류들이 사람을 잘못 움직였을 수 있는지 묻고 계시네요.”
“둘은 결국 이어져 있어요. 잘못된 이유를 모르면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수현은 그 문장을 말하고 스스로 놀랐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한국에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누구도 원하지 않은 곳으로 다시 보내지지 않게 하는 일까지 중요해졌다.
***
새 이관표의 조사 범위를 정하는 회의에서 누군가는 이것이 단순한 서식 오류라면 수현의 귀환과는 상관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타인의 동의가 비어 있는 상태로 진행됐다는 사실은 이미 독립적으로 확인된 문제였다. 기술 원인을 밝히지 못하더라도 행정상 잘못된 표기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세드나는 회의 뒤 수현에게 물었다. “기술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계속 남아 있을 겁니까?”
수현은 대답하기 전에 오래 생각했다. “돌아갈 길이 아직 없다고 제 귀환 의사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다만 여기서 살아야 하는 동안 제 삶을 멈춰 둘 수는 없겠죠.”
그녀는 여관방의 생활비를 계산해 보았다. 원정대 자문 계약은 이미 끝났고, 조사 비용으로 지원받는 금액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지낼지 알 수 없다면 현실적인 생계 문제도 언젠가 마주해야 했다. 수현은 귀환 조사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에 숙식 지원의 기간과 범위를 정식으로 문의하기로 했다.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현재의 비용을 누군가에게 계속 전가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
왕도 기록원에서 돌아오는 길, 수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세드나는 그녀의 피로를 알아차리고 쉬어 가자고 했다. 두 사람은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늘 아래에서는 아이들이 돌멩이를 옮겨 성을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 성을 무너뜨리자 다른 아이는 화를 냈지만, 곧바로 다시 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찾은 단서가 모두 잘못된 해석이었다면요?” 세드나가 물었다.
“그럼 잘못된 해석을 하나씩 지운 셈이죠.” 수현이 말했다. “아무것도 못 한 건 아니잖아요.”
세드나는 조용히 웃었다. 수현은 손에 쥔 서류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원문이 따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든든했다. 누군가 기록을 수정할 때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길을 찾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무지보다 거짓된 확신이었음을 깨달았다.
제18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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