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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9화
PAYLUA ORIGINAL · 제19화

19화. 공작의 인장은 누구의 손에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04자

오프라인 책장
벨튼 공작의 승인 인장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누가 그 인장을 사용했는지였다. “공작가의 이름으로 나가는 문서는 하루에도 수백 개야.” 세드나가 말했다. “그러니까 전부 공작이 직접 찍을 순 없겠죠.” 수현이 답했다. “승인권을 위임받은 관리인이 있고, 작은 서류는 대리 결재도 하지. 다만 고위험 계약에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고위험인지 정해져 있나요?” 세드나는 규정집의 가장 얇은 부분을 펼쳤다. 소생 비용 부과, 신분 변경, 장기 복무 의무 같은 항목에는 별도 표시가 필요했다. 수현은 그중 두 가지가 제7원정대의 계약과 겹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인장 번호 B-13의 기록을 열람할 권한이 있나요?” “공개 심사를 신청할 수 있어. 다만 공개된다고 해도 사용자 이름은 가려질 수 있지.” “그럼 가린 상태라도 신청해 보죠.” 수현은 서류를 작성했다. 신청 사유에는 ‘공작이 범인인지 확인하기 위함’ 같은 문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당사자에게 실제로 적용된 비용 부담 규칙의 승인 효력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적었다. 세드나가 종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판단해야 할 문제를 정확히 썼군.” “이제 답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요.” “그래.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원정대 시험 조정의 마지막 평가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수현은 이마를 짚었다. “사람 하나를 찾고 있는데 업무평가 시즌까지 왔네요.” *** 평가에 필요한 건 거창한 숫자가 아니었다. 열흘 동안 실제로 무슨 일이 달라졌는지였다. 데런은 구조 출동 때 쓴 로프와 마차 수리비를 계산했다. 젠은 출정 시간과 휴식 시간을 나누었다. 메이는 치료한 환자와 사용한 마석을 익명화해 정리했다. 오르카는 부상 중 맡았던 후방 보급 업무를 적었다. 카이렌은 가장 마지막에 자신의 명세를 제출했다. [전방 전투 참여: 두 차례.] [구조 및 현장 지휘: 세 차례.] [치료 권고에 따른 휴식: 네 차례.] “쉬었던 날도 적어야 하죠?” 그가 물었다. “네. 그리고 그날 급한 일은 누가 대신했는지도요.” 카이렌이 수현을 봤다. “제가 없어도 동료들이 잘해 줬습니다.” “그게 팀이죠.” 수현은 웃었다. 강한 용사 한 명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이 세계에 이미 많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쉬면 다른 사람이 맡고, 그 사람도 지치면 다시 나누는 이야기는 아직 드물었다. 브레그는 보고서를 보다가 뜻밖의 말을 했다. “이 방식이 계속되면 나도 출정 상황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군.” “감독관님 일도 조금 쉬워지겠죠.” 수현이 말했다. “그건 아직 모르겠어. 네가 만든 서류가 워낙 많아서.” “그럼 불필요한 항목은 줄이면 되죠. 기록을 위한 기록은 저도 싫어요.” 브레그가 피식 웃었다. *** 그날 낮 길드 앞마당에 낯선 사람들이 모였다. 제7원정대의 시험 규칙 때문에 다른 부대도 급여 명세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수현을 찾아와 쪽지를 건넸다. [당신이 서류로 왕실을 이긴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도와주십시오.] 수현은 그 문장을 읽고 고개를 저었다. “저 그런 사람 아닌데.” 카이렌은 웃었다. “사람들은 누군가 길드에 질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니다.” “질문한다고 이기는 건 아니에요. 답을 받아서 실제로 바뀌어야죠.” 그녀는 모인 사람들 앞에 섰다. 모두에게 사건을 맡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열흘짜리 임시 자문이고, 제7원정대 밖의 기록을 열람할 권한도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록 방법을 알려 드리는 정도예요. 직접 겪은 일과 날짜, 함께 있었던 사람, 실제 받은 금액을 나눠 적으세요. 그리고 원본은 꼭 본인이 보관하세요.” 뒤쪽에서 누군가 물었다. “왕실이 안 들어 주면요?” “이곳의 정식 이의 절차를 확인해야겠죠. 다만 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약속은 못 해요.” 사람들은 실망한 얼굴도, 안도한 얼굴도 했다. 수현은 모든 사람에게 영웅처럼 보이는 것보다 무리한 약속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 앞마당에 모인 다른 부대 대원들이 흩어진 뒤에도 한 병사가 수현을 기다렸다. 젊은 여성 창병이었다. 왼쪽 부츠에 자주 기운 흔적이 있었고, 손등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 이름은 티아입니다. 제3수비대 소속이에요.”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수당을 두 달 못 받았어요. 담당관한테 물으니 신성한 임무에 돈을 따진다고 혼났고요.” 수현은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마당에서 개인 급여 문제를 길게 이야기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다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저는 제7원정대 자문이라 다른 부대 정산을 대신 처리할 권한이 없어요.” 티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럼 그냥 돌아가야 하나요?” “아뇨. 본인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 드릴게요.” 수현은 빈 종이를 꺼내 ‘근무한 날짜’, ‘약속된 보수’, ‘지급받은 금액’, ‘정산 담당 부서’를 적었다. 티아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급여 확인표를 꺼내자 원본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이건 잃어버리면 안 돼요.” “나한테 쓸모가 있는 종이였군요.” “많을 거예요.” 티아는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왜 당신이 그런 일을 해요? 여긴 용사가 있으면 마물이 무섭지 않은 곳이잖아요. 우리 같은 창병들은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수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누가 대신할 수 있든 그 사람도 다치면 아프고 돈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말을 하고 싶었다. “대신할 사람이 많다는 것과 한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건 다른 이야기예요.” 티아는 종이를 꼭 쥐었다. “이걸 들고 가면 저도 질문할 수 있겠네요.” “네. 답을 바로 받을지는 모르지만요.” “그래도 다음에는 말해 볼게요.” 티아가 돌아간 뒤 수현은 오래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이 본 부당함은 제7원정대 안의 일부일 뿐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오늘부터 왕국 전체를 바꾸겠다고 선언할 순 없었다. 허락받지 않은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카이렌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이 수현 씨를 찾네요.” “저도 좀 겁나요.” “왜요?” “기대가 커질수록 내가 해 줄 수 없는 게 더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카이렌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 말했다. “제가 처음 용사가 됐을 때도 그랬어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안심하면, 내가 모든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 부담을 안고 여기까지 온 거군요.” “네. 그래서…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수현은 웃었다. “그 말을 카이렌 씨한테 듣다니, 많이 달라졌네요.” 그는 조금 민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수현 씨에게 배운 겁니다.” “아뇨. 본인이 바꾼 거죠.” 수현은 그에게 막 받은 신청서를 보여 줬다. 티아에게 준 양식과 똑같은 빈 표였다. “다른 부대에서도 쓸 수 있도록 일반 안내문을 만들어 두면 어떨까요? 개인 사건은 담당 부서에서 처리하게 하고요.” “제가 브레그에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 대답은 고마웠다. 수현은 어떤 구호보다 팀이 일을 나누는 모습이 좋았다. 인장 사용 대장 공개 심사의 회신은 오후에 왔다. [B-13: 벨튼 공작가 등록 인장.] [사용 시각: 서리달 열셋째 날 저녁.] [사용 권한: 위임 보유 관리인.] [처리 문서: 제7원정대 관련 임시 계약 및 비용 계정 개설.] 정작 관리인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하나도 안 알려 준 것 같네요.” 젠이 말했다. “아뇨. 공작이 직접 서명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는 걸 알았어요.” 수현이 답했다. “그럼 공작은 관계없는 사람입니까?” “그것도 아니에요. 자기 이름의 인장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책임은 따져 봐야죠.” 세드나는 추가 문구를 가리켰다. [위임 범위: 회복 관리 운영비.] 수현은 메이에게 적용된 소생 대비 적립 비용을 떠올렸다. “운영비 계정 개설 권한으로 개인 복무 계약까지 승인했다면 범위가 문제겠네요.” “그럴 수 있다.” 세드나가 신중히 말했다. “다만 원래 문서를 실제로 어떤 유형으로 등록했는지 확인해야 해.”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적인 단서는 늘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다. 그러나 서두르면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 쉬웠다. *** 하루를 정리하면서 수현은 원정대 사람들에게 공개할 것과 공개하지 않을 것을 나눴다. 인장 사용 대장의 공통 규정은 모두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인 계약서에 담긴 민감한 내용까지 소문처럼 퍼뜨릴 순 없었다. “공작가 위임 인장이 쓰인 건 확인했어요.” 수현이 말했다. 젠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공작이 우리 돈을 가져간 건가요?” “그건 전혀 확인되지 않았어요. 돈이 실제 어디에 있는지도 따로 봐야 해요.” “그래도 그 사람 이름으로….” “이름으로 찍혔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내용을 알았는지는 달라요.” 카이렌이 끼어들었다. “저도 공식 출정 명부에 이름이 있었지만, 그날 침대에 있었다고 했잖아요.” 수현은 그를 돌아봤다. 정확한 비유였다. “맞아요. 우리가 당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서는 안 되죠.” 브레그는 팔짱을 풀었다. “그럼 공작가 법무관을 만나면 뭘 먼저 물을 건가?” “그 인장으로 승인 가능한 업무가 어디까지인지요. 그리고 원문을 확인할 절차가 있는지도요.” 오르카가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빠르게 끝나진 않겠네요.” “네. 하지만 빠르게 사람 하나를 범인이라고 정했다가 틀리면 그 뒤는 더 어려워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젠은 고개를 숙였다가 말했다. “그러네요. 우리도 라비엔이 사라진 이유를 모르면서 전출했다고만 생각했잖아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야말로 모두가 이번 열흘 동안 배운 것의 핵심이었다. 기록에 쓰인 말은 단서일 뿐이다. 사람의 삶은 그 한 줄보다 복잡했다. 그날 저녁 수현의 숙소에 누군가 돌을 던졌다. 창문은 깨지지 않았다. 작은 자갈 하나가 마룻바닥에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녀는 놀라 문을 열려다 멈췄다. 누군가 노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고, 단순한 장난일 수도 있었다. 수현은 먼저 옆방에 있던 세드나를 불렀다. 두 사람은 경비병과 함께 바깥을 확인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창틀에는 작은 흠집만 남아 있었다. “신변 위협이라고 적어도 될까요?” 수현이 물었다. “위협 가능성은 적자. 누가 던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세드나가 말했다. 경비병은 숙소 앞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수현은 자신의 방을 다른 곳으로 옮길지 물었지만, 세드나는 안전 문제가 확인될 때까지 경비가 붙은 건물에서 지내는 편이 낫다고 권했다. 그녀는 창틀이 부서진 시각을 추정하고, 실제로 소리를 들은 이웃에게도 확인했다. 진술은 어긋났다. 한 사람은 저녁 종소리 전이라고 했고, 다른 사람은 종소리가 난 뒤라고 했다. 수현은 둘 중 하나를 성급하게 정하지 않았다. 경비병은 그 기록이 도움이 될 거라며 받아 갔다. 수현은 자갈을 봉투에 넣어 경비병에게 인계했다. 조금 무서웠다. 아니, 꽤 무서웠다. 서류로 따지던 문제가 자기 방 창문까지 찾아오니 그제야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인가?” 세드나가 물었다. “고민은 해 봐야죠.” 수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계약도 안 했고요.” “그 말이 맞아.” 세드나는 잠깐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내일 회의는 낮에, 경비가 있는 장소에서 열게. 너 혼자 참석하지 않도록 하자.” 수현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그날 밤 그녀는 숙소 문을 두 번 확인한 뒤 침대에 누웠다. 용기를 내는 것과 무모한 것은 다른 일이다. 이 세계에 와서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원칙일지도 몰랐다. 잠이 들려는 순간 세드나가 문밖에서 말했다. “수현. 내일 평가관이 다시 온다. 이번엔 왕도에서 온 사람도 동석한대.” “누군데요?” “인장 B-13의 위임 범위를 확인할 수 있는 공작가 법무관.” 수현은 눈을 떴다. 수현은 다음 날 아침을 생각하며 메모지에 질문을 세 개만 남겼다. 위임 인장이 승인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R-0의 원문은 어떤 유형인가.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있다면 누구에게 심사를 요청할 수 있는가. 질문이 세 개라고 쉬운 회의가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이제는 문서 뒤에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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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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