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 보관군의 원장 두 권이 드디어 같은 책상에 놓였다. 하나는 기술관리청이 보존한 발신 기록, 다른 하나는 반환 경로 검토실이 보존한 원점 확인 목록이었다. 두 장의 도장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장자리의 점 하나가 달랐다. 수현은 그 차이가 드디어 무엇을 밝혀 줄지 기대했다.
“점 하나 때문에 며칠을 썼네요.” 그녀가 말했다.
루세가 웃지 않고 답했다. “점 하나가 다른 문서라고 알려 준다면 그 며칠은 가치가 있죠.”
나엘은 붉은 천 위에 두 원장을 나란히 놓고 표식의 생성 규칙을 설명했다. 발신 기록의 도장은 전송을 의뢰한 문서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검토실의 도장은 원점 확인 질문이 접수됐다는 뜻이었다. 어느 쪽도 실제 외부 세계의 응답을 뜻하지 않았다.
“그럼 이 두 장을 붙여서 '원점 확인 완료'라고 썼던 보고서는…”
세드나가 말끝을 흐렸다.
“적어도 도장 두 개만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잘못된 해석일 수 있습니다.” 나엘이 대답했다.
수현은 그 말을 기록했다. 실제로 같은 사람이 두 원장에 접근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한 장은 왕도에, 다른 한 장은 남부 관제실에 보관됐다. 보존 장소가 다르다는 사실은 서류가 안전하다는 뜻일 수 있었지만, 그 기록들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날 심사에 참관한 기술관은 두 원장을 겹쳐 놓고 한 가지를 지적했다. 시간이 같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세는 옛 진동시계와 물시계의 보정값이 서로 달랐음을 상기시켰다.
“같은 숫자는 같은 순간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이 같은 사건에 속했다는 것조차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공통된 이관 번호와 물품 표식은 있습니다. 다만 그 사실만으로 순서와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현은 설명을 듣다가 미간을 누르며 웃었다. “오늘의 결론도 '있지만 아직 모른다'인가요?”
“정확히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한 가지 더 알게 됐습니다.”
루세의 대답은 늘 그렇듯 불친절하면서도 정직했다.
그 무렵 열람실 한쪽에서 분쟁이 생겼다. 늦은 교대 근무를 맡은 직원이 두 원장의 봉인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며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독관은 업무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직원은 이미 열두 시간째 일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다 확인해야 하는 규정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가 나면 인계 책임이 불명확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제대로 인계받을 다른 사람이 있어야죠. 피곤한 한 사람한테 계속 책임을 쌓아 두면 사고가 더 나지 않을까요?”
“당신은 기술 보존 전문가입니까?”
“아닙니다. 여기 직원도 아니고요. 다만 열람이 늦어져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수현은 자신의 서류를 정리했다. 오늘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욕심으로 타인의 퇴근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세드나도 열람 중단에 동의했다. 감독관은 잠깐 입술을 깨물다가 교대 인력을 부르라고 지시했다.
해가 진 뒤 수현과 루세는 여관의 식당에서 수프를 먹었다. 루세는 거의 말이 없었다. 그는 두 원장 중 하나의 맨 끝에 적힌 '제0차단 회신 대기'라는 글자를 계속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혹시 반송 요청이 남아 있다는 뜻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반송'이 종이의 회송인지 신호의 역송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또요?”
“네.”
수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이 나라의 계약서는 한 번에 뜻을 알려 주지 않네요.”
“기술 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집니다.”
루세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제가 여기 있죠.”
수현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모든 걸 해결할 필요는 없었다. 기술자는 기술을 확인하고, 보존 담당자는 기록을 확인하며, 당사자는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면 된다. 그 역할들이 섞이기 시작할 때 오래된 문제도 생겨났을 것이다.
다음 날 보존실은 두 도장의 판본을 비작동 방식으로 대조했다. 도장의 금속 마모 흔적이 서로 달랐고 제작 연도 역시 달랐다. 둘은 같은 말의 약어처럼 보였지만 생산된 시기가 여섯 해나 차이 났다. 수현은 결과를 듣고 기운이 빠졌다. 그러나 곧 질문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왜 나중의 요약표에서는 두 표식이 같은 뜻으로 입력됐죠?”
나엘은 오래된 전환 매뉴얼을 펼쳤다. 거기에는 두 표식이 하나의 숫자 값으로 바뀌는 규칙이 적혀 있었다. 승인 여부를 묻는 칸으로 들어간 것은 원래 확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상태였다.
“이건 수현 씨 사건에서 본 구형 무응답 문제와 비슷합니다.” 세드나가 말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다는 것까지만 기록하고, 실제로 제 사건에 적용됐는지는 따로 확인하죠.”
그날의 결론은 거대한 비밀 대신 작은 정정 요청이었다. 원점 확인 대기 기록을 귀환 승인 근거로 인용하지 말 것. 수현은 심사 관할팀에 신청서를 냈다. 접수 직원은 서명란을 보고 질문했다.
“본인이 직접 수정해 달라는 겁니까?”
“아뇨. 제게 그 권한은 없습니다. 원문을 보존하고 잘못된 해석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접수 직원이 새 도장을 찍었다. 이번엔 '심사 접수'였다. 수현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이 도장은 나중에 '귀환 완료'가 되지 말아 주었으면.
***
두 도장의 제작 연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진 다음 날, 보존실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후대 요약표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이미 작성된 수백 장의 요약을 모두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감독관은 일이 너무 많아지면 기존 표기를 유지하자는 의견을 냈다. 수현은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질문 하나를 던졌다.
“지금 자료를 그대로 두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그 표기를 승인 증거로 사용할 수 있나요?”
감독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선 지금 확인한 오류 가능성에 표시를 남기는 게 어떨까요? 수백 장을 한꺼번에 고치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 표기의 뜻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말자는 겁니다.”
그 제안은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존실은 표식을 바꾸는 데에도 정식 결재가 필요했다. 나엘은 임시 주의문을 붙일 수 있는지 규정을 확인했고, 세드나는 심사중이라는 표시가 원문을 바꾸지 않는 한 허용된다는 조항을 찾아냈다.
“이제 요약표를 볼 때 경고가 보이겠네요.” 수현이 말했다.
“경고가 보인다고 다들 읽어 주는 건 아니지만요.” 나엘이 답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죠. 적어도 경고가 있었는지 묻게 될 테니까요.”
그날 저녁 수현은 과거에 자신이 맡았던 노무 상담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급여명세서가 잘못 발행됐는데, 이미 보냈다는 이유로 정정하지 않던 일이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숫자 하나가 대출 심사나 보험 서류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여기서 원점 확인의 완료 표시는 그보다 훨씬 위험한 결과를 부를 수 있었다. 잘못된 정보를 지금 당장 모두 수정하지 못하더라도 그 정보가 다른 결정을 낳지 않도록 일단 멈춰 둘 필요가 있었다.
다음 날 오후 보존실의 다른 직원들이 나엘에게 항의했다. 경고 표시가 붙으면 문의가 더 많아지고, 그만큼 일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나엘은 무작정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문의 전담 시간을 따로 배정하고, 기존 접수 업무와 분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수현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개입할 권한이 없음을 확인하고 뒤로 물러났다. 대신 요청이 필요하면 심사에 참가한 당사자로서 사실관계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 인력 회의에서 직원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매번 일이 늘어나는 결정을 합니다. 일을 줄일 방법은 없나요?”
나엘은 잠깐 생각했다. “원문을 한 번 더 확인하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정확한 안내가 필요하겠죠. 그런데 지금은 바뀐 기준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교육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직원은 한숨을 쉬었다. “교육 시간에도 창구는 열어야 한다고 하면요?”
수현이 조용히 말했다. “도린 씨의 시대에 그 문제가 있었고, 아직 반복되는군요.”
나엘이 고개를 들었다. 수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현장의 직원이 직접 그 문제를 지적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결국 한 직원이 반나절 교대 운영안을 내놓았다. 교육받지 않은 사람을 탓하기보다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며칠 뒤 수현은 새 교육 시간표를 확인했다. 자신이 세운 일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기뻤다. 왕국 기관이 스스로 발견한 문제를 스스로 고치려 하고 있었다. 이수현이라는 외부인이 언제 돌아갈지 모르지만, 이들이 만든 표는 남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발견도 있었다. 후대 요약표에 같은 숫자 코드로 옮겨졌던 두 표식 중 하나가 원래 '검토자 배정'이 아니라 '검토자에게 질문 발송'이었다는 것이다. 발송이 완료됐다는 말은 답변이 도착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수현은 그 자료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늘 연락이 잘 되는 조직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보냈다는 서류만 많았네요.”
세드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왕도의 우편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았던 시절이 있었나 봐요.”
루세는 원문과 후대 판본의 변경 표를 따로 그렸다. 질문 발송, 검토자 지정, 원점 확인, 귀환 승인. 각각 다른 기능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일부 코드가 같은 완료 값으로 수렴했다.
“이게 바로 사건의 원인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그렇게까지는 아직 모릅니다. 당시 E-17 입력판이 이 전환표를 썼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사할 변환 규칙은 좁혀졌습니다.”
수현은 그 말을 들으며 조금 마음이 나아졌다. 처음 E-17을 알았을 때는 모든 기록이 거대한 벽 같았다. 이제는 벽의 일부가 낡은 문짝과 잘못 단 경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벽 너머에 집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디부터 살펴야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수첩에 작은 표 하나를 그렸다. '보냈다' '받았다' '확인했다' '허락했다'. 단어마다 다른 줄을 긋자 놀랄 만큼 간단한 도형이 되었다. 수현은 그 표를 보고 웃었다. 자신을 이 세계로 끌고 온 힘이 어쩌면 엄청난 마법이 아니라, 너무 쉽게 한 칸으로 합쳐진 말들 가운데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에는 반드시 물음표를 남겼다.
***
그 뒤 보존실은 구형 코드 대조를 계속하기로 했다. 나엘은 추가 업무가 생긴 직원들에게 우선순위를 묻는 작은 설문을 돌렸다. 한 직원은 '오류를 바로잡는 일은 좋지만 기존 업무가 줄지 않았다'고 썼다. 다른 직원은 '기존 심사부터 빠르게 처리하자'고 했다. 의견은 엇갈렸다. 수현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옳은 운영안을 단정하지 않았다. 대신 새 지침이 시작되기 전과 후에 실제 처리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기록하는 데 동의했다. 바꾸려는 이유를 좋게 설명하는 것만으로 제도가 지켜지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그 일을 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날 저녁 나엘은 작은 종이 한 장을 보냈다. 두 표식의 통합 코드가 언제부터 쓰였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한 기간이 명확히 표시되어 있었다. 수현은 그 시기를 E-17 당시의 판본과 대조할 목록에 올렸다. 같은 시기에 사용됐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 절차에 적용됐는지는 별도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 조사 범위는 조금 더 좁아졌다. 수현은 수첩에 웃는 얼굴을 그리려다가 관뒀다. 대신 작은 네모 안에 적었다. '변환 규칙의 실제 적용 여부 확인.'
***
나엘은 코드 대조표 아래 새로운 설명 문장을 넣자고 제안했다. '표식의 유사성은 문서 기능의 동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문장이 길다고 불평했다. 그러자 수현은 짧게 바꿔 보자고 했다. '같아 보여도 확인할 것.' 모두 웃었다. 최종 지침에는 긴 문장이 들어갔지만, 직원들의 작업대에는 짧은 문장이 붙었다. 수현은 두 표현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공식 기록과 기억하기 쉬운 현장 안내가 서로를 대신하지 않고 돕는 모습이었다.
다음 날부터 직원들은 구형 표식을 처리할 때 원문의 목적을 작은 칸에 적었다. 문의가 늘어난 만큼 교대시간도 다시 조정했다. 모든 직원이 만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잘못된 완료 표기가 새 승인으로 복제되는 일을 적어도 한 번 더 멈출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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