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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86화
PAYLUA ORIGINAL · 제186화

186화. 용사에게도 말하지 않을 권리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18자

오프라인 책장
카이렌이 왕도에서 돌아온 날, 제7원정대의 젠은 대장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지난번에 휴가를 다녀오셨을 때도 서류를 가져오셨잖아요. 이번에는 진짜 쉬신 겁니까?” “절반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카이렌은 멋쩍게 웃었다. 그는 여전히 길드의 명령을 받으면 몸부터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젠이 만들어 둔 출정표를 보고 자신이 직접 갈 필요가 없는지 먼저 확인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위험과 아무도 해서는 안 되는 위험을 분리하는 일. 수현이 떠난 뒤 원정대가 그 원칙을 조금씩 배웠다. 그날 오후 카이렌에게 리벨 의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의료기록 열람을 계속하려면 다음 확인 날짜를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세 날의 의식 공백, K형 안정 장치의 보급표, 흰 고리 흉터의 검사 기록. 카이렌은 편지를 읽고 바로 답하지 않았다. “혹시 나중에 비밀이 밝혀지면 제가 용사가 아니게 될까요?” 메이가 약병을 정리하다 말고 카이렌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제게 기적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까 기적보다 누가 언제 무슨 장치를 가져다 놨는지를 기록해야 하더군요.” 메이는 잠깐 웃었지만 곧 진지해졌다. “카이렌 님이 남을 위해 한 일은 기록에서 없어지지 않아요. 다만 몸이 아픈 이유를 알고 싶다면, 그건 용사로서의 증명이 아니라 환자로서의 권리예요.” 카이렌은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부대 전체에 알릴 생각은 아직 없었다. 그러자 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두에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대신 몸이 안 좋을 때 출정 중단 기준을 적용해 주세요. 우리가 규칙을 만든 이유가 그거니까요.” 카이렌은 한참 젠을 봤다. 예전에는 대장이 쉬겠다고 하면 비겁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지금 젠은 대장이 쉬지 않으면 자신들이 만든 규칙이 의미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았다.” 카이렌이 말했다. “오늘 오후 정찰은 네가 맡아라. 나는 진료 기록을 더 볼지 결정하겠다.” 젠은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메이는 카이렌이 직접 의사에게 짧은 답장을 쓰는 것을 지켜봤다. '다음 열람은 둘째 날 진료기록까지만. 치료 목적 설명을 먼저 듣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결정하겠습니다.' 왕도에 있던 수현은 그 편지 사본을 나중에 세드나에게서 받았다. 카이렌의 허락이 있는 문장이었다. 그녀는 답장을 읽고 한참 웃었다. “이젠 저보다 잘 쓰네요.” “어떤 부분이요?” “정보를 받을 범위를 스스로 정했잖아요. 처음에 계약서도 제대로 안 읽고 서명했던 사람이요.” 그러나 수현은 그가 잃어버린 사흘에 무엇이 있었는지 추측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K형 장치가 치료에 사용됐을 가능성은 남아 있었지만, 보급 물품의 출고가 환자의 실제 사용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소생 여부는 더욱 신중해야 했다. 카이렌에게는 다른 사람의 추측보다 자신의 진료 결과를 먼저 들을 권리가 있었다. 그날 저녁 반환 경로 검토실에서 수현은 오래된 '지원 신청자 건강 적합' 항목을 보고 화가 났다. 기술 시험에 참여한 사람의 건강 확인과 실험에 동의했다는 표시가 한 장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건강검진에 응하면 실험 동의가 되는 건가요?” 나엘은 페이지를 확인했다. “옛 서식에는 그렇게 읽힐 위험이 있습니다. 현재는 분리돼 있고요.” “그럼 옛 사건의 처리 당시엔 어떤 기준이 적용됐는지 확인해야겠네요.” “네. 당시 규정의 효력도 함께 봐야 합니다.” 수현은 기록을 덮었다. 자신의 일이 서류 싸움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몸을 내어주는 행위는 종이 한 장에서 모호하게 처리되어서는 안 됐다. 용사가 치료를 받는 선택과 모험에 나가는 선택이 다른 것처럼, 수현이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검증되지 않은 실험에 몸을 맡기는 것은 달랐다. 몇 날 뒤 카이렌은 리벨 의사의 진료실에서 검사 결과를 들었다. 의료기록에는 의식을 잃었던 기간에 체온을 낮춰 유지하도록 지시한 문구가 있었지만, K형 장치의 개인 착용란에는 별도 확인 도장이 없었다. 리벨은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원인을 단정하지 않았다. “그 흉터는 흔한 형태입니까?” 카이렌이 물었다. “유사한 흉터는 여러 원인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당시 사진이나 독립 진찰 기록이 없으면 연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카이렌은 한동안 조용했다. 리벨이 다음 장을 펼치려 하자 그가 손을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나머지는 보존되어 있습니다. 언제든 본인이 원할 때 신청하세요.” 카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오르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뭔가 나왔습니까?” “아직 확정된 건 없습니다.” “그럼 괜찮은 겁니까?” 카이렌은 잠깐 생각했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건 아니더군요. 오늘은 쉬고, 내일은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할 겁니다.” 오르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었다. “정말로 수현 씨한테 영향을 많이 받으셨네요.” “그래요?” “예전 같으면 몸이 멀쩡하다고 우기면서 갑옷을 입으셨을 겁니다.” 카이렌도 웃었다. “아직 그 버릇은 남아 있습니다. 말려 줘서 고맙습니다.” 왕도에서 이 편지를 받은 수현은 답장을 짧게 보냈다. '기억을 찾아야만 지금의 선택이 정당해지는 건 아닙니다. 당사자가 알고 싶은 만큼 알아가세요.' 그 문장을 쓰고 나서 자신의 문제도 마찬가지임을 깨달았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세상에 공개할 필요는 없었다. *** 카이렌이 휴가를 온전히 지키기로 한 날, 브레그 감독관에게서 뜻밖의 호출이 왔다. 가까운 마을에서 마물 흔적이 발견됐으니 본인이 확인하라는 지시였다. 카이렌은 편지를 읽고 갑옷부터 집으려 했다가 멈췄다. 이미 젠에게 정찰 권한을 위임했고, 현장 위험 기준도 적어 두었다. 자신이 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임받은 동료의 판단을 무시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감독관에게 답장을 보냈다. '현재 확인된 정보는 흔적 발견이며 직접 접촉 보고는 없습니다. 젠이 정찰을 맡고 위험이 확인되면 합의한 철수 기준을 적용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출정해야 할 긴급 사유가 생기면 다시 알려 주십시오.' 감독관의 답장은 한 시간 뒤 도착했다. 아주 짧았다. '확인.' 카이렌은 그 한 글자를 보고 의자에 앉았다. 예전 같으면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런데 책임을 지는 일과 모든 일을 직접 하는 일이 다르다는 사실이 조금씩 이해되었다. 쉬는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카이렌은 마을 장터에 나갔다. 큰 갑옷 없이 걸으니 사람들은 그를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빵집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자 주인이 왜 사지 않느냐고 물었다. “평소에는 부대 식당에서 먹습니다. 어떤 빵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면 제일 작고 따뜻한 걸로 드세요.” 카이렌은 빵 하나를 샀다. 그것은 생각보다 달았고, 너무 뜨거워서 혀를 데일 뻔했다. 메이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분명 용사가 뜨거운 빵에도 다친다고 놀릴 것 같았다. 그는 웃으며 길을 걸었다. 장터 끝에서 어린아이가 넘어졌다. 카이렌은 반사적으로 달려가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는 무릎이 조금 까졌을 뿐이었다. 부모가 달려와 고맙다고 인사했다. “혹시 용사님 아니세요?” 카이렌은 망설였다. 전에는 누가 물어보면 자랑스럽게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자신이 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오늘은 휴가를 나온 카이렌입니다.” 부모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가 웃었다. “그럼 휴가 잘 보내세요.” 그 인사가 왠지 낯설게 기뻤다. 카이렌은 시장에서 차를 마시고 성문 근처 나무 그늘에 앉았다. 다른 대원들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쉬는 동안에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책임감을 버리는 것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배움이었다. 저녁 무렵 젠에게서 보고가 왔다. 마물 흔적처럼 보였던 자국은 산돼지 떼가 지나가면서 생긴 것이었다. 정찰대는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고 돌아왔다. 카이렌은 보고서에 서명했다. 단순히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확인과 철수 기준을 지켰다는 과정이 기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리벨 의사의 의료기록 열람 안내문을 다시 펼쳤다. 자기 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시에 그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용사라는 직함 뒤에 숨지 않고 자기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카이렌은 수현에게 짧게 편지를 썼다. '오늘 휴가를 보냈습니다. 저 없이도 정찰대가 돌아왔고, 저는 빵을 샀습니다. 이걸 어떻게 업무 보고서에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왕도에서 편지를 받은 수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답장에는 업무 보고서가 아니라 일기에 쓰라고 적었다. 카이렌이 자신을 대장으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의 일기를 펼쳤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잠깐 고민하다 냉장고 문을 열어 볼 것이라고 적었다. 평범한 일이 그렇게 간절해질 수 있다는 걸 이 세계에 오고서야 알게 되었다. *** 카이렌은 휴가 마지막 날, 젠에게 정찰 보고서를 돌려주었다. 새 장부에는 '위험 없음'뿐 아니라 '현장 확인 방법', '철수 기준 준수', '동료 의견'이 적혀 있었다. 젠은 대장이 조금 과장되게 칭찬한다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카이렌은 한동안 보고서를 내려다보았다. 몇 달 전에는 자신이 없으면 원정대가 버티지 못할 거라고 믿었었다. 지금은 자신이 없어도 돌아간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메이는 그에게 물었다. “다음 휴가는 언제 쓰실 거예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다음 달 근무표부터 보세요.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결국 못 쉬어요.” 카이렌은 당황한 얼굴로 근무표를 펼쳤다. 메이는 웃었다. 처음에는 수현이 시작한 질문이었다. 이제는 자기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휴식은 누군가에게 우연히 허락받는 선물이 아니라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했다. 그날 저녁 카이렌은 수현에게 보내는 편지 끝에 작게 썼다. '의료기록의 나머지는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제가 준비되면 읽겠습니다.' 수현은 그 말이 어떤 심사 결과보다 반가웠다. 그의 기억은 아직 빈칸이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선택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수현은 빈칸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자신의 귀환 조사에도 여전히 비어 있는 칸이 많았다. 그렇다고 아무 권리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르는 사실을 감당하면서도 오늘 해야 할 일을 정할 수 있었다. *** 휴가를 마친 카이렌은 제7원정대의 회의석상에서 새로운 규칙을 제안했다. 위험한 정찰 임무를 맡은 대원에게 직접 철수 권한을 부여하고, 명령이 바뀔 때는 이유를 적자는 것이었다. 브레그는 잠시 고민하다 일주일 시험으로 허락했다. 젠은 자신에게 맡겨진 권한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판단할 기준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회의 뒤 카이렌은 갑옷을 수리 맡겼다. 수리공은 오래된 긁힘을 보며 새 갑옷을 사라고 권했지만 그는 미소를 지었다. “저는 지금 몸부터 관리하려고요.” 메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용사의 변화는 화려한 검술보다 그 소박한 대답에 있었다. 그날 카이렌은 리벨에게 다음 진료 예약일만 적힌 편지를 보냈다. 더 알아볼지 여부는 그날의 몸과 마음을 살펴 정할 생각이었다. 의료기록에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세 날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하루는 온전히 자신의 결정이었다. 카이렌은 그 차이를 잊지 않으려 했다. 왕도의 수현 역시 멀리서 그가 스스로 선택한 하루를 응원했다. *** 늦은 밤 원정대의 화톳불 앞에서 젠은 카이렌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적어 둔 안전 점검표를 펼쳤다. 잘된 일뿐 아니라 놓친 문제도 적혀 있었다. 카이렌은 잘못된 항목을 보고 화를 내지 않았다. “알려 줘서 고맙다. 다음엔 어떻게 바꾸면 좋겠나?” 젠은 잠시 놀랐다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대원들이 직접 개선안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카이렌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휴가는 끝났지만, 휴식을 존중하는 일은 그 다음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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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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