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82화
PAYLUA ORIGINAL · 제182화

182화. 지도 밖에 있는 주소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70자

오프라인 책장
반환 경로 검토실은 다음 날 수현에게 회신을 보냈다. 열람은 허가되었으나 원장 원본의 이동은 금지되고, 다른 사람의 주소가 적힌 페이지는 가린다는 내용이었다. 수현은 조건을 읽다가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요청인은 자료에 기록된 원점과 개인의 주거지를 동일시하지 않을 것.’ “이런 문장까지 있어야 하나요?” 세드나가 웃지 않은 채 대답했다. “있어야 했던 일이 있었던 거겠죠.” T-3 열람실은 창구보다 조용했다. 책상마다 유리 덮개가 있었고, 검은 장갑을 낀 보존 담당자가 원장을 한 장씩 넘겼다. 나엘은 책상 위에 세 장의 지도를 펼쳤다. 왕국의 서쪽 군현 지도, 옛 마차역 지도, 아무 지명도 없는 원형 표식 지도였다. “원점은 세 종류로 쓰였습니다. 물건이 떠난 지점, 신호의 발신 장치, 그리고 사람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곳.” 수현이 말했다. “그 셋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네요.” “특히 마지막은 가장 자주 다릅니다. 이걸 혼동한 기록이 있습니다.” 나엘은 낡은 카드 하나를 보여 주었다. 카드에 적힌 글자는 희미했고, 문서 오른쪽 아래에는 '반환 완료'라는 도장이 선명했다. “그럼 돌아갔다는 뜻인가요?” “아뇨. 보관함으로 반송된 문서가 확인됐다는 뜻입니다. 이 도장을 사람의 귀환에도 쓰던 시기가 있었어요.” 수현은 고개를 젓고 말았다. 공무원 한 명의 악의로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말을 전혀 다른 일에 쓰는 구조였다. 한국에서도 '퇴사 처리 완료'라는 문장이 실제 퇴직금 지급과 무관하게 쓰이는 경우가 있었다. 여기서는 완료 도장 하나에 사람의 방향까지 매달려 있었다. “그때 피해를 본 사람은요?” “신원을 밝힐 수 없습니다. 다만 정정 요청이 있었다는 목록은 공개할 수 있어요.” 나엘은 비식별 요약을 내밀었다. 귀환을 신청한 사람이 주소의 확인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차를 타지 못한 사례였다. 누군가는 그를 '귀환 거부'로 분류했다. 하지만 원문에는 정반대의 요청이 있었다. '원점 확인 전에는 보내지 말아 달라.' 수현은 천천히 읽었다. 그 문장이 누군가의 안전 요구였음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전하지 않은 경로를 거절하면 귀환 자체를 거절한 걸로 적히는군요.” “그래서 오래된 분류를 바꿨습니다.” 나엘이 말했다. “귀환 의사 있음, 경로 미인증, 시험 참여 불동의. 각각 다른 상태죠.” 수현은 자신이 제출한 신청서에도 같은 세 줄이 적혔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엘은 별도 자료를 찾아 직접 확인해 주었다. 그 종이를 받아 들자 가슴속 어딘가의 답답함이 풀렸다. 루세는 세 장의 지도를 보다가 원형 표식 위의 작은 화살표를 가리켰다. “여기 방향 표시는 어디를 향한 거죠?” “장치를 바라보는 사람의 기준입니다. 예전에는 장치가 아니라 북쪽을 기준으로 읽었습니다.” “그럼 같은 표식이 거꾸로 해석될 수 있네요.” “맞습니다. 그래서 교정값과 관찰면이 함께 기록되어야 합니다.” 수현은 표준연구실에서 네 번째 홈을 뒤집어 보던 일을 떠올렸다. 긴 시간 동안 추적한 분기 번호와 표식이 결국 이 낡은 카드 앞에서 다시 문제를 일으키는 셈이었다. “E-17 당시의 원점 확인표도 여기에 있을까요?” “번호로 찾지 마시고 이관 연도로 찾아야 합니다. 같은 번호는 몇 년마다 재사용됐습니다.” 세드나가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또 번호가 같다고 같은 사건이 아니라는 얘기군요.” “네.” 수현이 말했다. “이쯤 되면 번호보다 사람이 오래 기억되는 세상인지도 모르겠어요.” 나엘은 웃음을 참다가 말했다. “사람도 이름이 겹칩니다.” “맞네요. 에린이라는 이름만 해도 이미 두 번 나왔죠.” 셋이 잠시 웃었다. 조용한 열람실에서 웃음소리가 나자 보존 담당자가 눈을 들었다. 수현은 곧바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날 오후 별관의 제본실에서 누군가 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엘은 열람을 중단하고 뛰어나갔다. 무거운 원장 상자를 선반에서 내리던 직원이 허리를 움켜쥔 채 주저앉아 있었다. 동료는 급한 마음에 다른 상자까지 옮기려 했지만, 수현은 먼저 걸음을 막았다. “옮기는 건 나중이에요. 이분이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야죠.” 직원은 괜찮다며 일어나려고 했다. 수현은 상사의 눈치를 보는 그의 표정을 알아봤다. 한국 회사에서도 너무 자주 본 얼굴이었다. “상자가 밀려 넘어질 위험은 없어요?” 그녀가 나엘에게 물었다. “지금은 받침대로 고정했습니다.” “그러면 환자를 이동시키지 말고 의무실을 불러 주세요. 제가 의사는 아니니까 상태를 판단하진 않을게요.” 나엘이 사람을 불렀다. 다친 직원은 이름이 타온이라고 했다. 상자 내리는 일을 혼자 맡는 것이 원래 자기 업무라며 억지로 웃었다. “왜 혼자 하셨어요?” “다른 직원은 보존 심사에 갔고,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손님들이 기다렸다는 사실과 혼자 들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르죠.” 수현은 자신의 열람 일정이 늦어져도 좋다고 말했다. 타온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 때문에 귀한 손님 일정이 밀린 것을 미안해했다. “아뇨, 이건 제 신청을 빨리 처리하려다 생긴 문제잖아요. 적어도 그런 이유로 다치셨으면 제가 불편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죠.” 나엘은 조용히 그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제본실 앞에 걸린 인력 배치표를 떼어 다른 직원과 살펴봤다. 기록을 옮기는 일을 두 사람이 함께 하도록 수정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해 질 무렵 열람실로 돌아온 수현은 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대신 E-17이 사용된 이관 연도의 카드 번호와 보존실 연락 책임자만 받아 적었다. 오늘 확인한 것은 원점이 지도에 찍힌 점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목적지의 실재와 확인 방식, 사람의 의사가 각각 필요했다. 밖에는 바람이 세졌다. 세드나는 걸으면서 말했다. “수현 씨가 이렇게까지 기록을 보면서 지치지 않아요?” “지치죠. 지금 제 얼굴 안 보여요?” “그래도 계속하네요.” “서울로 돌아갈 때 누군가한테 제가 왜 그토록 오래 걸렸는지 설명하고 싶어요. 그저 돌아갈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도착할 곳을 확인하려고 했다고요.” 루세가 앞장서다 멈췄다. 여관 앞으로 가는 길에 공사장이 있었다. 임시 다리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널빤지가 놓여 있었고, 인부들이 서둘러 나무못을 박고 있었다. 표지판에는 '통행 가능'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시공 검사 전'이라는 말이 보였다. 수현은 널빤지를 건너지 않았다. 세드나도, 루세도 함께 돌아서 큰길로 향했다. 다리 옆에 있던 인부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돌아가십니까? 다들 건너는데.” “통행 가능하다는 말과 안전 검사가 끝났다는 말이 다르니까요.” 인부는 잠시 표지판을 바라봤다. 수현은 그가 자기 말을 받아들이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오늘 그녀가 할 일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로 선택한 우회로를 끝까지 걷는 일이었다. *** 공사장을 우회해 여관에 돌아온 뒤에도 수현은 타온이라는 제본실 직원이 마음에 걸렸다. 다쳤다는 사실은 들었지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는 나엘에게 전갈을 보냈다. 타온의 의료정보를 알려 달라는 요청은 아니었다. 일 때문에 다친 직원에게 진료 안내와 업무 조정 절차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나엘이 답했다. 타온은 자기 뜻에 따라 진료를 받았고, 무거운 상자 운반에서는 당분간 빠지기로 했다. 동료들은 보존 상자를 두 사람이 함께 들도록 근무표를 바꾸었다. 수현은 그 답장에 '개인 치료내용은 공유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작은 문제 하나가 정리되는 사이, T-3 원장의 소장처를 찾는 일도 조금 진전됐다. 원래는 고향으로 돌아갈 마차 노선과 잃어버린 물품의 경로를 같은 장부에 적었다고 했다. 훗날 기계로 회신을 전송하는 제도가 생기면서 물품 출발 지점과 신호 발신 지점이 원점이라는 같은 단어로 불렸다. 나엘은 그 시기마다 달라진 표지를 세 장 보여 주었다. 한 장은 마차 바퀴, 한 장은 봉투, 나머지는 동심원 같은 문양이었다. 수현은 마지막 것을 보고 눈을 좁혔다. “이 문양이 제가 봤던 E-17 표식과 비슷한데요.” “그럴 수 있어요. 범용 그림이거든요. 다만 이 표지가 만들어진 해와 당시 장비 규격이 같아야 의미가 있습니다.” 루세가 표지의 제작 연도를 확인했다. E-17의 당일 문서보다 훨씬 이전 것이었다. 그는 억지로 둘을 연결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이관표를 찾자고 했다. 후대에 어떤 의미가 덧붙었는지는 그때 조사할 수 있었다. 수현은 T-3 원장의 첫 페이지에 적힌 예시를 읽었다. 어떤 농부가 분실한 수레를 돌려받으려 했고, 접수 직원은 수레를 마지막으로 본 위치를 원점으로 적었다. 나중에 수레가 발견되었지만 그 장소에서 사라진 것이 아닌 듯했다. 원점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농부는 수레를 찾는 데 더 오랜 시간을 썼다. “원점이라는 단어가 설명 없이 쓰이면 이런 일이 생기는군요.” 세드나가 말했다. “다행히 수레는 말을 못하니까 서명을 요구하진 않겠네요.” “수레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처음부터 '저 여기서 떠난 적 없어요'라고 했을 거예요.” 수현이 말하자 나엘이 작게 웃었다. 그러다 웃음이 멎었다. 문서 뒤쪽에 사람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원본은 가려져 있었지만 사례의 요지만 남아 있었다. 분실 물품 처리 규정이 사람의 실종 사건에도 잘못 적용되었고, '행선지 확인'이 끝나지 않은 사람을 단순 미반환 물품처럼 분류한 사건이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어요?” “이 문서가 존재한다는 건 확인됩니다. 다만 사건의 전체 경위는 별도 기록을 봐야 합니다.” 나엘이 말했다. 수현은 화가 나면서도 조심했다. 기록을 잘못 다룬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사람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요약에 한정된 의견만 냈다. 사람의 복귀 의사와 물품의 반환 상태를 같은 칸으로 입력하지 말 것. 그리고 과거 사례를 정정했다면 그 후속 조치를 기록으로 남길 것. 오후에는 보존실 책임자가 수현을 불러 작은 이야기를 했다. 기록 관리팀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반복됐으며, 외부 신청인이 많아질수록 직원들이 심사 전에 '비슷한 사건'을 빠르게 묶어 처리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서류를 빨리 분류하지 않으면 대기실이 가득 찹니다.” 수현은 대답했다. “그러니까 빠른 접수가 필요하다는 말은 이해해요. 하지만 접수 속도 때문에 심사 결과를 먼저 적어 두면 안 되죠.” “직원들에게 그걸 다 지키라고 요구하면 퇴근이 늦어집니다.” “그렇다면 대기 안내를 정직하게 하고 심사 인력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 과정을 줄이지 않고 결론을 먼저 내릴 수는 없으니까요.” 책임자는 잠깐 한숨을 쉬었다. 이천 명의 왕국 직원에게 말을 한다고 해서 바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작은 보존실은 대기와 심사를 같은 상태로 적지 않는 표를 시범 사용해 보기로 했다. 수현은 외부인이므로 그 결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나엘이 담당자 자격으로 서명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세드나는 말했다. “수현 씨가 여기서 공식 권한이 없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네요. 해야 할 사람이 직접 하니까요.” “제일 마음에 드는 결과입니다.” 수현이 답했다. 며칠 후 나엘이 보내온 새 표에는 '접수 완료', '검토 대기', '원점 미확인', '당사자 의사 미확인'이 따로 적혀 있었다. 수현은 짧은 축하 답장을 보냈다. 표가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앞으로 누군가 그중 어떤 칸을 다른 칸으로 바꿀 때, 적어도 변경 이유를 물어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그 다음 주 나엘은 제본실 작업표를 다시 보냈다. 타온이 직접 의견을 낸 결과, 장부 상자마다 두 사람의 이름을 적고 어느 시점에 옮겼는지도 남기기로 했다. 수현은 그 표에서 자기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변화는 보존실 직원들이 만든 것이었다. 그녀는 자료의 열람 기록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누가 책자를 펼쳤는지와 누가 그 내용을 승인했는지를 혼동하지 않는 것. 자신이 자료를 읽었다고 곧바로 내용에 동의했다는 뜻이 되지는 않았다. 수현은 지도에 남아 있는 잘못된 화살표 하나를 떠올렸다. 누군가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사람을 보낸다면 그때의 잘못은 단순한 잉크 자국이 아닐 것이다. 다음 심사에서 이 말을 전할 생각이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82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8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