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돌아갈 길을 찾으러 왔다가 문 앞에서 번호표를 받았다.
번호는 서른일곱이었다. 벽에 매달린 나무판에는 열한 번이 걸려 있었다. 왕도 남문 골목 안쪽의 반환 경로 검토실은 이름만 들으면 어디로든 사람을 돌려보내 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소음이 큰 우편 분류소에 가까웠다. 창구 안에서는 종이가 넘어갔고, 바닥에는 젖은 우산을 세워 둘 통도 없었다.
“서른일곱 번이면 오늘 안에 되나요?”
수현의 질문에 창구 직원이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점심 전 접수는 가능합니다. 열람 심사는 다른 줄이에요.”
“줄이 두 개군요.”
“세 개입니다. 열람 신청 뒤에는 보존 자료 반출 여부를 따로 심사합니다.”
수현은 번호표 뒷면에 작은 글씨로 적었다. 접수, 열람, 반출. 서로 다른 결정이다.
세드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창구 직원이 할 말을 먼저 쓰시네요.”
“여기 온 지 오래됐거든요. 신청서를 하나 냈다고 다 해결되리라 기대하지 않게 됐어요.”
루세는 두 사람 뒤에서 기다렸다. 손에 쥔 가죽 가방에는 실험 장비 대신 검은 종이로 포장한 자와 빗금이 그어진 눈금판만 들어 있었다. 오늘은 어떤 것도 작동시키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수현은 아침에 여관을 나오기 전 휴대전화를 다시 살펴보았다. 전원 버튼을 눌러도 검은 화면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출발할 때만 해도 서른여덟 퍼센트 남았던 배터리는 이제 빈 조약돌이나 다름없었다. 그 물건을 보여 주면 고향이 증명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녀는 장치가 아니라 사람에게 물어볼 질문을 떠올렸다. 누구에게, 어느 정도 정보를 공개할 것인가. 그리고 필요 없어진 정보는 누가 지울 것인가.
서른일곱 번을 부른 것은 정오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반환 경로에 관해 무엇을 확인하려는지 간단히 말씀하세요.”
둥근 안경을 낀 여성 직원이 말했다. 명찰에는 나엘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 의사와 무관하게 이곳으로 이동된 경위와, 원래 세계로 안전하게 돌아갈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원래 세계라면 현재 왕국 밖이라는 뜻입니까?”
“현재 왕국 밖인 건 맞아요. 다만 이 나라 지도에 없는 곳입니다.”
나엘은 펜을 멈췄다. 수현은 그녀가 곤란해할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나엘은 놀란 표정보다 먼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러면 목적지 특정은 아직 안 된 상태로 접수하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주소를 적는 것보다 낫겠죠.”
수현은 안도했다. 이곳에선 자꾸만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빈칸으로 남기지 말라고 강요받았다. 모른다는 말을 문서에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낯설었다.
“그리고 이 점을 확인해 주세요. 원점 확인 심사를 신청한다고 인체 이동 실험 참가에 동의한 건 아닙니다.”
“물론입니다. 두 서식은 다릅니다.”
“한 장으로 합쳐져 있던 경우를 많이 봐서요.”
나엘의 펜 끝이 움직였다. 그녀는 새로 만든 추가 확인란에 수현의 말을 적었다. 별도 기술 시험 불동의. 원문 정보 공개 최소화.
그때 뒤편의 대기석에서 큰소리가 났다. 약한 다리로 서 있던 노인이 직원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나는 고향 마을로 돌려보내 달라고 했지, 마차를 빌려 달라고 하지 않았소!”
“마을의 옛 이름만으로는 지금 주소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태어나서 팔십 년을 살았는데 내 말이 주소가 아니란 말이오?”
나엘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직원이 노인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몇 해 전 홍수로 마을 이름이 바뀌었고, 잘못된 곳으로 귀환 마차를 보내면 또 다른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수현은 그 상황이 자신의 문제와 묘하게 닮았다고 느꼈다.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분명했다. 그러나 돌아갈 장소를 안전하게 지정하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뜻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장소를 확인해야 했다.
“원점 확인에는 어떤 자료가 필요하죠?” 그녀가 물었다.
나엘은 찢어진 표지를 새 실로 묶은 작은 책자를 펼쳤다.
“오래된 심사 기준에는 네 질문이 있습니다. 발신 표식이 어느 장치에서 만들어졌는가. 그 시각은 무슨 기준으로 적혔는가. 수신 측은 무엇을 실제로 받았는가. 마지막으로 원점에서 독립적으로 확인한 응답이 있는가.”
루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여태 따로 모았던 자료네요.”
“하지만 마지막은 아직 없습니다.” 수현이 답했다.
나엘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마지막이 없다고 적어야 합니다. 이전 심사에서 그걸 '대기 중 승인'으로 바꿔 적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이 책자의 사용이 중단됐고요.”
수현의 손이 멈췄다.
“그 사건의 기록이 남아 있나요?”
“옛 반환 검토 기록은 T-3 보관군에 있습니다. 다만 사고 관계인의 이름이 섞여 있어 열람 범위가 제한됩니다.”
“T-3라면 E-17과 연결돼 있나요?”
“분류 번호가 같거나 비슷해도 연결된 사건이라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선 목록의 생성 시기와 원장을 확인합니다.”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몰랐다. 그래도 이번엔 예전처럼 실망하지 않았다. 먼저 찾아야 할 목록과 심사 기준이 생겼다.
수현은 새 열람 신청서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E-17 자동 이관과 관계가 있을 수 있는 T-3 보관군의 생성 규칙, 안전 관련 비식별 자료, 원점 확인 원장. 그 세 가지였다.
나엘은 신청서를 살펴보고 질문했다.
“이 자료를 다른 사람에게 공개할 목적이 있습니까?”
“제 사건에 관해 정정 심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범위 안에서는 심사관과 공유하고 싶어요. 의료 정보나 다른 당사자의 주소는 필요 없습니다.”
“그 범위를 적으세요. 넓게 적으면 오히려 심사가 더 오래 걸립니다.”
수현은 미소를 지었다. 서울의 사무실에서도 종종 들었던 말이었다. 신청은 크게, 권한은 넓게 요구해야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책임질 수 없는 권한은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밖으로 나왔을 때 빗방울이 떨어졌다. 루세는 차양 아래서 가방을 다시 확인했다. 그는 가방의 무게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기술자 둘이 여길 오면서 종이 눈금판만 들고 온 건 처음일 겁니다.”
“저는 마음에 들어요.”
“왜죠?”
“오늘 누군가를 잘못된 곳으로 보내지는 않을 테니까요.”
세드나가 웃었다. “그 대신 서류를 잘못된 곳으로 보낼 위험은 있죠.”
“그건 제가 막아 보겠습니다.”
수현은 새 접수증을 지갑에 넣었다. 귀환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지만, 오늘 얻은 것은 여행 표가 아니라 질문 목록이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처음으로 누군가가 그녀의 동의와 목적지를 서로 다른 칸에 적어 주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조금 가볍게 했다.
여관에 돌아오자 제7원정대에서 보낸 편지가 있었다. 카이렌이 직접 적은 글씨였다. '이번 주에는 제가 없어도 야간 정찰이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중단 기준을 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수현은 그 문장을 읽고 한참 웃었다. 사람을 데려오지 않아도 일이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돌아갈 길을 찾는 것만큼 중요한 진전이었다.
그리고 편지 뒷면에는 메이가 작은 글씨로 한 줄을 보탰다. '치료비 고리는 아직 있지만 제가 서류에 질문을 쓰는 속도는 빨라졌어요.'
수현은 종이 두 장을 책상 위에 나란히 놓았다. 자신의 귀환 신청과 동료의 편지. 두 서류 모두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각자의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나엘에게서 짧은 전갈이 도착했다. 전날 번호표를 받은 노인이 다시 창구에 왔는데, 두 직원의 확인 내용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었다. 수현은 자기 신청을 이유로 그 사건의 개인 자료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다만 나엘은 같은 절차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비식별 사례만 설명했다.
노인이 말한 옛 마을의 주소는 현재 지도 두 곳에 남아 있었다. 하나는 산사태 이후 새로 만든 이주촌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변에 이름만 남은 버려진 집터였다. 옛 지도에는 둘 다 같은 지명이 적혀 있었다. 먼저 직원은 이름이 맞다는 이유로 강변 집터로 마차를 보내려 했고, 두 번째 직원은 현재 주민 명부에 등록된 이주촌을 권했다. 어느 쪽도 노인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원점은 주소만으로 정할 수 없겠군요.” 수현이 말했다.
“그래서 확인 질문이 네 개 있습니다. 사실은 다섯 개라고 해야겠죠. 당사자가 원하는 곳인지 반드시 물어야 하니까요.”
“그럼 그걸 다섯 번째 질문에 넣으면 되지 않나요?”
나엘은 고민했다. “검토 기준을 바꾸려면 상급 심사가 필요합니다.”
수현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당장 기준을 바꾸라는 말이 아니에요. 현재 운영 지침에 당사자 의사 확인을 별도로 적어 줄 수 있는지부터 묻는 겁니다.”
나엘은 작은 메모를 남겼다. 수현은 누군가의 귀환을 결정할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지만, 서로 다른 질문이 섞인 것만큼은 지적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마주친 문제를 모두 한 번에 해결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날은 수현의 차례가 먼저 불렸다. 번호표는 네 번이었다. 창구 위에 전날과 다른 표가 걸려 있었다. '서류 접수 후 원문 대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현은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바빠서 오래 기다린다고 말하는 대신 어떤 일이 처리되는지를 설명했다. 별것 아닌 변화처럼 보였지만 대기실의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번호표 열두 번의 여성이 어린아이와 함께 들어왔다. 아이는 늘어진 옷소매를 잡고 작게 물었다.
“엄마, 이거 타면 아빠한테 가?”
여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창구에서는 '반환 경로 신청'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 신청이 곧 이동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그 말을 직접 설명하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아이가 어떤 사정인지 알지 못했고, 타인의 절망을 자신의 설명 욕심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나엘은 여성에게 다가가 신청서와 함께 임시 연락 주소 확인 표를 건넸다. “여기에는 실제로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적으시면 됩니다. 목적지는 확인되는 대로 따로 심사할 수 있어요.”
여성은 서류를 두 번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처음 이 세계에 나타났을 때 연락받을 주소가 없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메이의 진료소가 사실상 자신의 주소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으려 했다면 어디로 편지를 보냈을까. 수현은 그 의문을 수첩에 적었다.
점심에 세드나와 식당에 앉았을 때, 수현은 소환 초기에 자신의 이름이 어느 주소에 등록됐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세드나는 지난 자료에 임시 현장 확인인 숙소가 적혀 있었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주소를 그대로 집이라고 부른다면 문제겠죠?” 수현이 말했다.
“그렇죠. 머문 주소와 돌아가려는 주소는 다르니까요.”
“그런데 행정 시스템은 항상 하나만 적으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둘을 구분하는 추가 문서를 넣어야 할 겁니다.”
수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가장 위험한 말이 또 하나 늘었네요. 추가 문서.”
식당 주인이 수프를 내려놓자 세드나가 농담처럼 말했다. “서류가 그렇게 좋으면 수현 씨가 왕도의 서고에서 살면 되겠네요.”
“싫어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사무실 프린터 소리나 듣고 싶습니다.”
“프린터가 뭔가요?”
“수십 장 서류를 한꺼번에 내놓는 마법에 가까운 기계요.”
“그럼 이곳 행정관들이 아주 좋아하겠군요.”
“좋아했다간 종이가 산처럼 쌓일걸요.”
둘이 웃었다. 수현은 오랜만에 그리운 물건을 말하면서 울컥하지 않았다. 돌아갈 고향이 구체적인 생활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확인된 것은 여전히 거의 없었지만, 돌아가고 싶은 이유까지 불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오후에는 T-3 담당 부서로부터 열람이 가능한 비식별 자료의 목록이 왔다. 원점 확인 질문은 오래된 네 항목 외에도 '임시 통신 주소'와 '실제 복귀 희망지'를 별도로 묻는 하위 서식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 시기의 시스템에는 두 항목이 같은 줄로 병합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수현은 그 목록을 보고 작은 별표를 그렸다.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에서 동의 칸이 비어 있는데 완료로 옮겨졌던 방식과 닮아 있었다. 닮았다는 사실은 증거가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살펴볼 가치가 있었다. 같은 실수가 다른 사람의 집을 잘못 표시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늦은 밤 수현은 노인이 자신의 마을을 찾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답을 알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녀는 내일 물어볼 질문을 고쳤다. '그 노인의 주소를 찾았나요'가 아니라 '귀환 신청인에게 목적지 확인과 임시 연락 장소를 구분해 안내하는 절차가 있나요.' 한 사람의 사정을 구경하는 대신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이 덜 힘들도록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수첩을 덮자 밖에서 여관 종이 울렸다. 시장을 정리하는 소리였다. 서울에서는 이런 시간에 어떤 소리가 났을까. 냉장고의 낮은 모터음, 늦게 퇴근한 이웃의 발소리, 전자레인지가 울리는 소리.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오늘의 번호표는 버리지 않았다. 앞뒤에 적힌 질문이 자신이 돌아갈 길의 첫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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