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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77화
PAYLUA ORIGINAL · 제177화

177화. 멈춘 시계의 다른 시간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204자

오프라인 책장
시간이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수현은 옛 기록원 두 권을 펼쳐 놓고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한쪽에는 중단 통지가 도착한 시각이, 다른 한쪽에는 비상 분기가 유지된 시각이 적혀 있었다. 숫자대로라면 분기는 중단 요청을 받기 전에 유지됐다. 그러나 두 기록은 서로 다른 시계를 기준으로 삼았다. “오늘은 숫자만 보고 싸우지 맙시다.” 루세가 탁자 위에 세 개의 모형 시계를 올렸다. 물시계 하나, 기어로 움직이는 기술청 표준 시계 하나, 남부 회선 관제실의 작은 진동시계 하나였다. 그는 세 시계의 바늘을 일부러 다르게 맞췄다. “지금 같은 사건을 세 사람이 동시에 봤다고 해 보죠. 이 시계는 열 시, 이건 열 시 십 분, 이건 아홉 시 오십오 분입니다. 그럼 세 장부를 시간순으로 나열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드나가 대답했다. “실제로는 동시에 벌어진 일을 열다섯 분 사이의 사건처럼 보겠죠.” “그렇습니다. E-17은 여기에 당시의 보정값을 더 찾아야 합니다.” 수현은 다시 기록을 읽었다. 남부의 인계 원장에는 당시 교정 담당자가 부재 중이었다는 표시가 있었다. 그 이유는 개인 질병이었다. 수현은 그 부분을 보고 잠시 멈췄다. “교정 담당자가 아프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구형 규정에는 교체 인력의 자격이 아주 좁게 적혀 있었습니다.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뿐이었는데, 그 사람은 휴가였다고 하네요.” “그럼 업무가 멈췄나요?” “업무는 계속되고 교정만 뒤로 밀린 겁니다.” 수현은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없어서 늦어진 일이 사람을 대신해 진행된 일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누군가 고의로 기록을 바꿨다고 할 수는 없었다. *** 관제실 아래층의 오래된 물시계 보관소는 습기로 가득했다. 건물 직원들은 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물을 빼고 있었고, 한쪽에는 낡은 방수포가 쌓여 있었다. 루세가 도구 상자를 내려놓으려 하자 코르빈이 만류했다. “오늘은 장치 복원 말고 문서만 보십시오. 물이 차 있으면 기계부터 손대지 마세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수현은 바로 옆으로 물러섰다. 기계가 눈앞에 있어도 함부로 접속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여전히 중요했다. 방전된 휴대전화를 가지고 왔지만 이번 조사에도 꺼내지 않았다. 기록 담당 니엘이 붕대가 얇아진 손으로 방수 장부를 들고 나왔다. 지난번 사고 이후 무거운 물건 운반 업무는 면제받았고, 지금은 서류 확인만 담당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저한테 괜찮냐고 묻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은 정말 괜찮거든요.” “다행이네요.” 수현이 웃었다. “그럼 장부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니엘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옛 원장에선 기술청 시계와 남부 시계 사이의 보정값이 매주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E-17이 발생한 주에는 ‘다음 교정 때 확인’이라는 문구만 남았다. “그럼 그날의 시각 차이는 영영 못 아나요?” “직접 교정 원장은 없지만 이웃 시설의 기준점을 참고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정확한 값이 아니라 가능한 범위를 얻는 거죠.” “범위라도 얻으면 좋겠어요.” 루세는 가능한 보정 범위를 표시하는 표를 만들었다. 수현은 결과를 보고 조금 놀랐다. 중단 요청이 먼저 왔을 가능성도, 분기 유지가 먼저 기록됐을 가능성도 모두 남았다. 두 사건의 순서를 하나로 좁힐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니엘이 물었다. “아니요.” 수현이 답했다. “기존 보고서는 분기가 먼저라고 확정해서 썼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확정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잘못된 확신을 하나 지운 셈이죠.” 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서에서 ‘확정’이라는 말을 ‘확인 불가’로 바꾸는 일이 진전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이해한 얼굴이었다. *** 루세가 제안한 다음 조사는 남부의 폐교정실에서 시작됐다. 예전에 두 시계의 오차를 매주 맞추던 사람이 쓰던 방이었다. 지금은 정식 업무에서 빠진 장소였고, 책상 위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수현은 녹슨 도구보다 벽에 걸린 메모를 먼저 보았다. ‘표준 시각이란 모두가 합의한 기준이지, 모두가 같은 순간을 보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누가 썼을까요?” “이 교정실을 오래 맡았던 기술자겠죠.” 루세가 말했다.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세드나는 보존 목록을 읽었다. 실제로 당시 교정 담당자 한 명이 사고 전후 며칠 동안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다. 수현은 그 사람의 의료 내용을 확인하자고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근무 공백이 생겼을 때 누가 교정 업무를 이어받았는지였다. 그런데 대체 인력 배치 기록은 ‘교육 중’이라는 문구로 끝나 있었다. 실제로 교정값을 계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지정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교육 중인 사람에게 일을 맡겼을 수도 있겠네요.” “반대로 일을 미뤘을 수도 있어요.” 세드나가 답했다. “그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겠죠.” 수현은 옛 교정표를 훑었다. 붉은 수신 회선과 회색 자동 이관 회선은 같은 건물을 통과했지만 시각 기록이 서로 다른 장치에서 생성됐다. 그것을 하나의 표준 시계로 옮기는 과정이 있었는데, E-17 시기의 변환표는 재확인란이 비어 있었다. 루세는 누군가 적어 놓은 임시 교정값을 발견했다. 값은 그럴듯했지만 오른쪽에 ‘시험용’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었다. “시험용 값을 실제 기록에 적용했을 가능성도 있나요?” 수현이 물었다. “있죠. 하지만 적용했다는 기록이 없는 이상 가능성으로만 남겨야 합니다.” “그럼 누가 적용했는지보다는 실제 후대 보고서에 어떤 값을 썼는지 먼저 확인하는 게 맞겠네요.” 루세가 미소 지었다. “이제 기술자처럼 질문하시네요.” “기술자는 아니에요. 그래도 숫자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알아요.” *** 폐교정실 옆에는 작은 수선실이 있었다. 한 직원이 낡은 작업복의 팔꿈치를 꿰매고 있었다. 수현은 아무 생각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직원이 바늘을 놓는 시간을 장부에 적는 걸 보고 물었다. “그것도 근무 기록인가요?” “네. 여긴 물품 수선도 작업 시간으로 계산합니다.” “옛날에도 그랬나요?” “그때는 아무도 세지 않았겠죠. 근무 끝나고 집에서 고쳐 온 사람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수현은 오래된 기술 문서마다 작업자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일을 해 왔는지 생각했다. 한 장의 교정표를 만들기 위해 야간에 관측 장비를 닦고, 물길을 퍼내고, 젖은 종이를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최종 보고서에는 숫자만 남고 그 숫자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빠졌다. 직원이 바느질을 마치며 말했다. “사실 이런 일은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데 나중에 장비가 망가지면 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냐고 묻죠.” “기록이 없으면 관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겠군요.” “맞아요. 그래서 지금은 수선한 것도 다 적습니다.” 그 말이 수현에게는 중요했다. 장비의 기록을 믿으려면 장비를 관리한 사람의 노동도 알아야 한다. 숫자를 만든 작업 환경이 왜곡되면 숫자도 곧바로 믿기 어려워질 수 있다. 다시 복도에 나오자 루세가 옛 표를 들고 있었다. 그는 세 가지 시계를 같은 시간으로 맞춘 모형과 다른 시간으로 맞춘 모형을 함께 보여 줬다. “후대 기록자가 시험용 보정값을 썼다고 가정하면 사건 순서가 이렇게 바뀝니다. 반대로 실제 교정값이 다른 범위였으면 정지 요청과 분기의 순서가 역전될 수도 있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결과를 모두 보고서에 쓰세요. 그리고 값의 출처를 명확하게요.” “그렇게 하죠. 확정값처럼 보이지 않게 가능한 범위로요.”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수현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확인된 범위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또 배웠다. 폐교정실을 나서며 수현은 메모를 하나 남겼다. ‘시계가 멈춘 것보다 중요한 건 누가 언제 다시 맞췄느냐.’ 이 문장은 단순한 기술 규칙처럼 보였지만, 그녀에게는 사람의 노동을 기억하자는 약속처럼도 읽혔다. 오후에는 중앙 야간 인계실에서 마르센의 후속 별지 사본이 도착했다. 봉인 심사자가 먼저 민감 정보를 가린 뒤 세드나에게 건넸다. 수현은 서둘러 펼쳤다가 첫 줄에서 눈을 멈췄다. ‘중단 대기 건: 남부 최종 수신함 도착 표시. 종점 회신 미수신.’ “여기도 미수신이네요.” 세드나가 말했다. “마르센이 끝까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 확인 권한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럼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미완료 상태를 다음 근무자에게 알리는 것이었겠죠. 그랬는지는 후속 기록을 봐야 합니다.” 루세가 별지 오른쪽에 작은 점을 가리켰다. ‘안전 우선 호출’의 약호였다. 당시 중앙에서 남부로 단순히 서류를 보낸 것이 아니라 안전 우선 처리라는 성격을 붙여 보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왜 남부 원장에선 일반 이관과 붙어 있었을까요?” 수현이 물었다. “봉투를 묶는 과정에서 같은 날 같은 계열로 분류했을 수 있어요.” “다른 가능성은?” “긴급 처리가 일반 처리로 내려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말하려면 분류 변경을 누가 언제 했는지 봐야 합니다.” 수현은 메모에 가능성을 나란히 적었다. 하나만 고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이 조사는 누군가의 잘못을 찾는 일에서, 잘못이 일어날 수 있게 만든 과정 자체를 보는 일로 바뀌었다. 그날 저녁 관제실에서는 현재의 야간 교대 절차를 시험했다. 긴급 봉투가 들어오면 세 사람이 각각 도착, 담당자 수령, 기술 조치를 확인해 서명했다. 수현은 멀리서 관찰했다. 실험은 종이로만 진행됐고 실제 기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한 직원이 고의로 수령 확인을 누락하자 다음 직원이 봉투를 넘기지 않았다. “제가 받았다는 표시는 남길 수 있지만, 기술 조치가 됐다고 표시할 수는 없습니다.” 수현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누군가는 배운 것이다. *** 니엘은 자신의 손목을 가볍게 돌렸다. 아직 불편한 날이 있었지만 예전처럼 다친 것을 숨기며 일하지는 않았다. 그는 수현에게 작은 교대표를 보여 주었다. ‘대체 인력 부재 시 위험 업무 일시 중단.’ 이전에는 없던 항목이었다. “이런 걸 만든다고 일이 저절로 되진 않겠죠?” 니엘이 물었다. “그렇죠. 그래도 누군가 멈출 이유를 말할 수는 있겠네요.” “예전엔 아프면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제는 아픈 사람에게도 쉬어야 할 이유가 있고, 기관에는 대체할 사람을 준비할 책임이 있다는 걸 조금씩 인정하는 거겠죠.” 니엘은 교대표를 접었다. 한때는 손등에 상처가 나도 곧바로 도장을 찍으려던 청년이었다. 지금은 누가 그 빈자리를 맡는지 먼저 확인했다. 수현은 기술의 발전이 늘 새로운 기계에서 시작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세드나가 물었다. “수현 씨는 한국에서도 기록의 정확도를 이렇게 따졌습니까?” “그런 편이었어요. 급여 계산할 때 한 시간이 빠져도 누군가 생활비가 달라지잖아요.” “여기선 한 시간 차이 때문에 사건 순서가 뒤집히고요.” “그래서 무섭죠. 누군가에게는 출근한 한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없어진 사흘이고, 저한테는 고향에서 떨어져 나온 시간이니까요.” 세드나는 쉽게 답하지 않았다. 수현은 자기 말을 하고서야 조금 놀랐다. 그동안 자신이 조사에 몰두한 건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으려는 일이기도 했다. 숫자를 볼 땐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죠?” 세드나가 물었다. “네. 그런데 그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거겠죠.” 수현은 웃었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사건이면 한국에선 의뢰인이 중간에 환불하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 “여긴 의뢰인이 본인이잖아요.” “그러네요. 제가 저한테 가장 까다로운 의뢰인이네요.” 둘은 숙소 계단 앞에서 잠깐 웃었다. 방 안에는 니엘이 보내온 작은 쪽지가 있었다. E-17 때 사용한 옛 시계의 교정 담당자 교대 기록이 일부 남아 있으며, 자료 열람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현은 쪽지를 접어 수첩에 넣었다. 이제 시각을 확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막연한 불확실성이 아니라, 어떤 자료가 빠졌기 때문인지 알게 됐다. 그날의 결론은 화려하지 않았다. 중단 요청과 비상 분기 처리의 정확한 순서를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르센이 중앙 별지에 종점 회신 미수신을 남겼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수현은 짧은 문장을 마지막에 썼다. ‘미수신은 완료가 아니다.’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그녀 자신의 귀환 신청서에도 맞는 말이었다. 아직 고향에서 답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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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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