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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74화
PAYLUA ORIGINAL · 제174화

174화. 그날 밤을 기억하는 사람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419자

오프라인 책장
그날 밤을 기억하는 사람은 문 앞까지 나와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남부 관제실의 별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수현이 들어서자 한 노인이 목도리를 고쳐 매며 말했다. “당신들이 묻는 그날, 나는 중앙 야간 인계실에 있지 않았소.” “네. 남부 관제실 대행 근무자였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럼 마르센을 찾는 게 맞지 않겠소?” “마르센 씨는 중앙의 당직자로 배정됐고, 그분이 직접 수령했는지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보신 일만 듣고 싶습니다.” 노인은 수현을 한참 바라봤다. 오른쪽 손등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는 별실에 동행한 기록관이 준비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여기서 뭐라고 말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요?” “확인되는 사실에 따라 판단하겠지만, 오늘 말씀만으로 누구를 범인이라 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말을 백 번 들어 봤지.” 수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 사람에게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들은 약속일 수도 있었다. 자신이 특별히 믿을 만하다는 말을 길게 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세드나가 질문지와 동의서를 내밀었다. 노인은 끝까지 읽고서 처음 두 항목에만 동의 표시를 했다. 이름과 현재 주소는 대외 보고서에서 가리고, 녹음 마석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수현도 그 조건에 동의했다. “그날 기억이 틀릴 수 있다는 말을 먼저 해 둡시다.” “네. 기억과 원장 기록을 분리해 적겠습니다.” 노인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그럼 시작해 봅시다.” *** 노인은 자신을 그냥 ‘당직 보조’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는 E-17 당일 정식 관제 책임자가 갑작스러운 가족상으로 자리를 비우게 됐고 자신이 야간 수신함을 맡았다고 기억했다. 교대 종료 확인서 사본이 탁자 위에 펼쳐졌다. ‘긴급 봉투 2건 접수. 그중 1건 중단 계열. 당직 대행이 수신함 봉인 확인.’ “중단 계열 봉투를 직접 꺼내 읽으셨습니까?” 수현이 물었다. “확실히 기억나지 않소. 두 건을 같이 받아 꼬리표는 읽었을 거요.” “읽고 나서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는요?” “기계실 쪽에 전달했을 겁니다. 다만 누가 가져갔는지는….” 노인은 종이에 적힌 자기 글씨를 쳐다봤다. “나는 왜 여기 이름을 안 적었을까.” 수현은 급하게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 노인은 망설이다 다른 말을 꺼냈다. 그날 비가 와서 관제실 앞 작은 통로에 물이 찼고, 봉투를 나르는 직원이 맨발로 물을 건넜다고 했다. “발목까지 차오를 정도였소. 그래서 내가 제발 장화를 신고 가라고 소리쳤지. 중단 명령이든 뭐든 사람이 물에 빠지면 무슨 소용이겠소.” 루세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 통로는 지금도 비가 오면 물이 차나요?” “모르겠소. 그 뒤로는 여기서 일하지 않았으니까.” 세드나가 물었다. “왜 일을 그만두셨는지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노인의 손이 컵을 돌렸다. “그건 아직 답하고 싶지 않소.” 수현은 그 항목을 건너뛰었다. 한 사람의 삶을 사건 기록의 빈칸을 채울 재료처럼 쓰고 싶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실제로 무엇을 받았고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였다. 그들은 봉투 겉면의 표식을 다시 살폈다. 노인은 붉은 끈이 젖어 색이 퍼졌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 회색 이관 봉투와 함께 묶어 놓으면 표식이 비슷해 보였다고 했다. “제가 서류를 잘못 분류했을 수도 있겠군요.” “그 가능성은 기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잘못 분류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수현이 말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요?” “그것도 아직 몰라요.” 노인은 처음으로 입꼬리를 움직였다. “참 피곤한 대답이오.” “저도 그렇게 느껴요.” *** 노인은 설명을 이어가다 두 번이나 말을 멈췄다. 처음에는 물을 마시려고, 다음에는 창문 없는 방의 공기가 답답해서였다. 수현은 잠시 휴식을 제안했다. 노인이 거절할까 싶었지만 그는 뜻밖에도 고맙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긴급 상황을 기억해 내느라 밤새 앉아 있어도 아무도 쉬란 말을 안 했소.” “지금은 쉬셔도 됩니다. 면담을 중단하고 싶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노인은 탁자 위의 동의서를 다시 보았다. 거기에 실제로 ‘중단 가능’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는 그 글씨를 한동안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누군가는 중단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했소.” 수현은 기록하려던 펜을 멈췄다. “누가요?” “이름은 말하기 어렵소.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고. 그저 일을 멈추자는 말을 하면 책임자가 바뀌고, 책임자가 바뀌면 내일은 누가 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 “그래서 안전 중단 요청도 미뤄졌나요?”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소. 단지 그런 분위기였단 말이오.” 수현은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 말은 조직의 관행에 관한 기억일 뿐 E-17의 직접 증거가 아니었다. 그녀는 면담 기록에서도 그 둘을 분명히 구분했다. 잠시 쉬는 동안 세드나가 준비한 간단한 차가 나왔다. 노인은 처음에는 마시지 않겠다고 했지만, 수현이 자기 잔부터 들자 조금씩 입을 댔다. “여긴 왜 이렇게까지 옛날 일을 조사하는 거요? 젊은 사람이 고향에 가고 싶다니 안됐지만, 제게는 이미 끝난 일인데.” 수현은 잔을 내려놓았다. “끝난 일이시라는 뜻은 이해합니다. 그래서 원하지 않으시면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다만 제게는 그날의 잘못된 표식이 아직도 영향을 주고 있어서요.” “당신이 여기 온 이유 말이오?” “네.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확인해야 안전한 귀환을 도울 수 있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께 모든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아요.” 노인은 천천히 끄덕였다. 그는 수현의 말보다 그 말을 하는 방식에 조금 더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나는 그날 뒤로 기록 일을 그만뒀소. 종이 울리면 새벽에도 심장이 뛰었거든.” 수현은 무심코 의학적 이유를 물을 뻔했다가 참았다. 노인이 원치 않는 과거 병력을 묻는 건 이번 사건의 확인에 필요하지 않았다. “그 일을 떠나신 뒤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작은 목공소에서 일했지. 나무는 신호를 받았다고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수현은 그제야 웃었다. 노인도 어깨에 힘을 풀었다. 그 순간 이 사람이 오래된 사건의 수령 대행자이기 전에 자신의 삶을 살아 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선명해졌다. “제가 질문을 다 끝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수현이 말했다. “아직 한 가지만은 말해도 되겠소.” 노인은 손목의 오래된 흉터를 바라봤다. 그는 당시 안전 중단 봉투를 받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젖은 끈을 갈아 끼운 것이었다고 기억했다. 그 작은 행동을 하는 사이 경고 종이 한 번 더 울렸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 붉은 봉투를 곧장 건넨 건 아니었군요.” “그랬을 수도 있소. 몇 분이나 걸렸는지는 정말 모르겠소.” 수현은 그것도 확인되지 않은 기억으로 적었다. 후대 보고서에는 봉투 수신과 다음 단계 전달 사이에 아무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기재돼 있었다. 그 구간에 실제 사람이 봉투를 다시 묶는 시간이 있었다면 시각 순서를 정밀하게 대조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면담이 다시 시작될 때 노인은 스스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질문했다. “내가 모른다고 대답한 것도 기록에 남소?” “네. 확인하지 못하셨다고 남깁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마음을 좀 놓겠소.” 수현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조사가 누군가의 오래된 공포를 다시 키우지 않기를 바랐다. 진실을 찾는 일에는 시간을 들여야 했지만, 그 시간을 남에게 끝없이 내놓으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었다. 대화가 끝날 즈음 노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날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서류를 잘못 처리한 게 아니었소. 비상 중단 요청을 받았다는 말을 했는데, 누군가 ‘이미 완료됐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수현은 눈을 들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목소리는 기억나는데 이름은 모르겠소. 옆 복도에서 들렸을 뿐이오.” “어떤 완료인지요?” “그것도 모르겠소. 나는 종점이 멈췄다는 뜻인 줄 알았소. 하지만 그날 밤 늦게 또 경고 종이 울렸지.” 루세가 입술을 눌렀다. “경고 종은 오류를 알리기도 합니다. 두 번째 종이 곧 재가동 증거인 건 아닙니다.” “그렇겠지.”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마음이 놓이지 않았소.” 수현은 그 말을 별도로 적었다. ‘당직 보조의 개인적 기억. 완료 발언의 주체와 의미 불명. 뒤늦은 경고 종 진술, 물리적 작동 여부는 미확인.’ 긴 문장이었다. 간단하게 ‘작동 중단 실패’라고 써 버리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사가 아니라 상상이었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낡은 생활비 장부였다. 그는 사적인 지출 내역을 보여 주지는 않고 겉표지 안쪽만 펼쳤다. 그곳에는 그날 밤의 문장이 짧게 쓰여 있었다. ‘붉은 봉투를 인계한 뒤에도 종은 한 번 더 울렸다. 내게는 기계를 멈출 권한이 없었다.’ 수현은 숨을 삼켰다. 당시 당일에 적었다는 설명이 사실이라면 기억의 왜곡을 줄일 중요한 단서였다. 하지만 필기 시점도 별도의 확인이 필요했다. “이 부분만 복제해서 보존할 수 있을까요? 나머지 내용은 가려 두겠습니다.” 노인은 머뭇거리다가 허락했다. “딱 저 문장만. 내 딸이 이 장부를 보면 또 그 이야기를 꺼낼까 두렵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가 문을 나서기 전 수현은 일어나 인사했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소. 당신이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수현의 표정이 잠깐 변했다. “네. 원래 있던 곳으로요.” “그렇다면 꼭 살아서 돌아가시오. 돌아가는 길을 찾았다고 그 안에 들어가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니까.” 수현은 고개를 숙였다. 오래된 사건의 증인은 자신이 왜 살아남았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런 사람이 낯선 그녀에게 먼저 살아서 돌아가라고 말했다. *** 별실 밖에서는 마르센의 이름이 적힌 옛 당직 인사원부가 도착해 있었다. 세드나는 그것을 펼치며 말했다. “중앙 인계실과 남부 관제실의 책임자를 섞어서는 안 됩니다. 같은 밤에 같은 봉투를 다루었더라도 권한은 달랐으니까요.” 마르센의 직위는 중계 문서 배정 담당이었다. 물품 수송·기계 운용에 관한 지시권은 없었다. 그러나 자동 이관 분류표에 문서를 넣거나 멈춰야 할 항목을 표시할 권한은 있었다. 수현은 마르센이 누군가를 직접 보냈다는 얘기를 아직 믿지 않았다.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기록을 확인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코르빈이 긴급 서신을 가져왔다. 중앙 야간 인계실에서 옛 후속 처리 대장을 찾아냈으며, 마르센 당직 시간대의 ‘수신함 자동 대행’ 항목에 추가 별지가 붙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별지는 왜 남부가 아니라 중앙에 있나요?” “그 시절엔 후속 보고가 발신 기관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세드나가 말했다. 수현은 웃지 않았다. 오래된 봉투가 기관들을 빙빙 돌며 사람을 놓친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누구도 악의를 품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누군가 정말로 규정을 무시했는지는 아직 조사해야 했다. 루세는 관제실 벽에 걸린 구조도를 가리켰다. 붉은 중단 회선은 제0종점으로 곧장 연결되고, 회색 자동 이관 회선은 중앙 분류함을 거쳐 비상 분기로 돌아갔다. 기록이 같아 보여도 신호의 목적은 달랐다. “둘 중 하나만 실패해도 후속 기록은 꼬일 겁니다.” “그럼 두 회선을 따로 따라가 봅시다.” 수현이 말했다. “오래된 원장만 가지고요?” “원장과 사람의 기억, 그리고 실제 남아 있는 장치 표식을 각각 따로요. 서로 다르게 말하는 부분부터 찾아야죠.” 코르빈은 그녀의 수첩을 흘끗 봤다. 질문 옆에 동그라미가 너무 많았다. “당신은 답보다 질문을 더 모으는군요.” “답처럼 보이던 걸 몇 번이나 다시 지웠거든요.” 그녀는 창밖을 보았다. 강 건너 종점 운용실 굴뚝에서 희미한 연기가 났다. 현재의 난방용 연기였다. 그곳에서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관제실의 경고 종을 들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종이 울린 밤을 자신의 장부에 남긴 사람도 있었다.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수현은 때때로 겁이 났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확인되지 않은 말만 믿고 새 길에 몸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귀환 희망서와 안전 실험 거부서를 같은 가방에 넣었다. 두 문서는 서로 모순되지 않았다. 저녁 무렵 마르센의 오래된 당직표가 넘어왔다. 수현은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E-17. 중단 확인 대기. 자동 이관 작업 종료: 후속 별지 있음.’ 중단 확인은 대기 중인데 이관은 종료돼 있었다. 이것이 과거의 밤을 가리키는 중요한 모순일 수도 있었다. 또는 행정 처리와 기술 조치가 다른 절차였다는 아주 단순한 뜻일 수도 있었다. “후속 별지를 확인해야겠네요.” 세드나가 말했다. “네. 이제 그날 누가 무엇을 완료했다고 했는지 문서로 좁혀 갈 수 있어요.” 수현은 문을 나서며 오래된 종을 돌아봤다. 아무것도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선 마지막 질문이 또렷이 남았다. *그날 밤 중단 명령을 받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어떻게 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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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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