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종료 확인서를 열람하려면 먼저 당사자의 허락이 필요했다.
수현은 한동안 신청서를 내려다봤다. 종이에는 ‘공무상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열람’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었지만, 세드나는 그 조항에 기대기보다 당시 담당자의 연락 가능 여부부터 확인하자고 했다.
“오래전 일이니 지금 어디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기록만 남았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도 먼저 묻는 게 맞아요.”
남부 관제실 인사기록 담당자는 이름 공개를 바로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연락 가능한 퇴직 직원에게 조사를 받겠다는 의사가 있는지 서신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동안 수현 일행은 당시 교대 절차가 어땠는지 알아보기 위해 안전 교육 자료를 먼저 살폈다.
자료 첫 장에는 큰 종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비상 중단이 들어오면 붉은 종을 세 번 울리고, 야간 담당자가 표식을 확인하고, 제0종점에서 실제 차단을 수신했다는 회신을 받아야 한다는 규칙. 수현은 마지막 문장 아래에 선을 그었다.
“회신을 못 받으면요?”
코르빈은 옛 문서를 들여다봤다. “구형 규정에는 ‘반복 호출’이라고 적혔습니다. 그 이후는 별지에 따라 달라요.”
“그런데 E-17 기록에는 ‘우선 분기 유지’가 남았고, 마지막 차단 회신이 없죠.”
“그렇다고 차단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회신 기록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그럼 위험 상황이 생겼을 때 현장 작업자가 그 장치를 직접 멈출 수 있었나요?”
루세가 오래된 회선 구조도를 펼쳤다. 구형 장치에는 작업자가 누르는 현장 차단 손잡이와 중앙에서 신호를 보내는 원격 차단 장치가 별도로 있었다. 둘 중 하나가 작동하면 안전 격리 상태가 되었어야 하지만, 비상 분기 상태에서는 순서가 달랐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판본의 실제 도면이 필요합니다.”
“종을 세 번 울렸다는 말로 끝낼 수 없는 문제군요.”
“종은 사람에게 들으라고 있는 거니까요. 기계가 들었는지는 따로 증명해야 합니다.”
수현은 그 대답을 마음에 담았다. 그녀가 처음 메이의 민원을 받았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이 동의했는지 묻지 않았다. 사람에게 해야 할 질문을 기계의 확인란으로 갈음했고, 기계에 해야 할 확인도 사람에게 들렸다는 이유로 완료 처리했다. 그렇게 두 방향의 잘못이 서로를 덮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
오전 교육 자료 열람이 끝날 무렵 큰 종이 한 번 울렸다. 건물의 직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수현은 처음엔 경보인 줄 알았지만, 코르빈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식사 시간입니다.”
“위험 신호랑 같은 종을 쓰세요?”
“횟수가 달라요. 식사는 한 번, 시험은 두 번, 비상은 세 번.”
“아니,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수현의 물음은 공교롭게도 바로 증명됐다. 복도 끝에서 끊어진 두 번째 종소리가 늦게 울렸고 직원 한 명이 문밖으로 뛰어나왔다. 누군가 낡은 경보기의 손잡이를 보수하다가 실수로 잡아당긴 것이었다.
코르빈은 곧바로 작업을 멈추게 했다. “아직 시험 통지 안 나왔습니다. 현장 사람부터 확인하세요.”
수현은 조용히 바라봤다. 잘못 울린 종 하나가 식사를 하러 가던 사람을 기계실로 뛰게 만들었다. 서류상으로는 사소한 오작동으로 끝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누군가가 위험 구역으로 급하게 들어가게 되는 일이었다.
“종을 바꾸자는 의견은 없었나요?”
“예산 때문에 미뤄졌습니다. 모두 횟수만 세면 된다고 했죠.”
“작업자가 늘 그 횟수를 정확히 들을 수 있나요?”
옆에서 기다리던 수리공이 말했다. “비바람 불면 한 번이 두 번처럼 들리기도 해요. 문을 닫으면 마지막 타격이 안 들릴 때도 있고요.”
그렇다면 오래전 당직자가 종을 들었다는 증언만으로 중단 요청을 이해했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수현은 현재의 문제와 과거의 의문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걸 느꼈다.
코르빈은 기술자들에게 음형 구분 개선안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수현은 조금 놀랐다.
“지금 하시려고요?”
“이런 건 내년에 고치면 안 되잖아요. 전에도 미뤄서 문제가 생겼다면 더더욱.”
“원장 열람이 끝나고 하셔도….”
“원장보다 사람이 먼저죠. 그 말, 어제 당신이 했던 말 아닙니까?”
수현은 대꾸하지 못하고 웃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 남긴 것이 아주 작지만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
점심을 먹은 뒤 코르빈은 옛 교육용 종 모형과 당직표를 함께 가져왔다. 세드나가 한 장씩 날짜를 대조하는 사이 루세는 음형 변경 시기와 E-17이 발생한 때를 적었다. 두 기록의 시점이 걸렸다.
“그날은 음형 교정 통지가 중앙 대기함에 들어간 날과 가까워요.” 루세가 말했다. “하지만 남부 관제실이 실제로 통지를 받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죠.”
“그러면 당직자는 새 음형을 몰랐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전 음형으로도 충분히 중단을 이해했을 수도 있고요.”
수현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추론은 많아지는데 확인할 수 있는 건 늘 한 발씩 늦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당시 관제실에 전달된 것은 붉은 종의 뜻을 아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맡겨진 신호였다. 책임 구조를 좁힐 수 있었다.
건물 아래층의 보수실에서 금속판 하나를 발견했다. 판에는 두 종류의 홈이 있었다. ‘비상 정지 접수’와 ‘비상 정지 송출’. 수현은 손가락을 대지 않고 두 홈을 유심히 살폈다.
“한쪽만 찍혀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받았다는 뜻이지 보냈다는 뜻은 아니죠.” 루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E-17 보존판에서는 어느 쪽이 찍혀 있었죠?”
“접수 쪽입니다.”
수현의 심장이 빨라졌다. 그동안 그토록 찾아온 것이 어쩌면 아주 작은 홈 하나의 차이일지 몰랐다. 그러나 루세가 바로 덧붙였다.
“이 판은 교육용이고 실제 판본과 같다는 보장이 없어요. 원본의 홈 방향과 기록 순서가 일치하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네. 저도 알아요.”
수현은 대답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작은 안도를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답을 찾았다고 믿고 달려갔을 것이다. 이제는 서두르는 자신의 생각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와서 배운 게 있었다.
***
다음 날 오전 수현은 관제실 근처에 있는 오래된 전령 숙소를 찾아갔다. 긴급 중단 봉투가 도착한 뒤 누가 그것을 옮겼는지 알아보려면 당시 배달 동선이 필요했다. 기록관의 허가를 받은 숙소 관리자는 낡은 전령 노선표를 펼쳐 보였다. 남부 관제실에서 종점 배전실까지는 수로를 따라 내려가는 지름길과 마차가 다니는 큰길 두 개가 있었다.
“그날 비가 왔다죠?” 수현이 물었다.
“큰길은 자주 잠겼어요. 수로 쪽 길도 돌이 미끄러웠고요. 그래서 긴급 문서는 종을 울리고 사람이 직접 뛰어갔습니다.”
“그 사람에게 방수 장비는 제공했나요?”
관리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없었을 겁니다. 그땐 빨리 달리는 사람에게 돈을 더 줬지 안전하게 도착한 사람에게 돈을 주지는 않았거든요.”
루세가 노선표에서 표시 하나를 발견했다. ‘B점 임시 전달.’ 중단 지시가 종점 기계실까지 직접 가는 게 아니라 경유지에서 전달자를 바꾸도록 되어 있었다.
“여기 인계자가 누구였습니까?”
“문서만으로는 모릅니다. 그때 전령들이 교대로 일했어요. 다만 수로 쪽 경비장에게 확인 도장을 받았을 겁니다.”
수현은 장소와 시간을 적었다. 그때 관리자가 낡은 장화를 가져왔다. 부츠 안쪽에는 작은 보수 흔적이 여러 개 있었다.
“당시 장비는 이런 종류였습니다. 흙길에서 미끄러지면 발목을 지키지도 못했죠.”
“전령이 다치면 누가 일을 맡았나요?”
“다른 사람이 뛰었습니다. 다친 사람의 이름은 다음날 인계표에서 빠졌고요.”
수현은 그 말에 얼굴이 굳었다. 사람이 사라진 기록이 또 있었다. 일이 남아 있으니 사람은 쉽게 대체되고, 한 사람이 어디에서 넘어졌는지는 문서 속에서 지워졌다. 오래된 종점 사건을 조사하려면 그런 빈자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함께 봐야 했다.
숙소 앞에는 작은 수리공방이 있었다. 관리자는 현재 전령들이 신는 방수 장화가 그곳에서 제작된다고 했다. 수현은 새 장화를 신고 출발하는 젊은 전령 한 명에게 물었다.
“긴급 중단 지시가 오면 바로 뛰어가나요?”
“지금은 먼저 수신 번호를 확인하고, 관제실에서 종점으로 중복 전송도 합니다.”
“직접 뛴 사람의 도착 확인은요?”
“받습니다. 못 받으면 미도착으로 남겨요.”
“그럼 다음 사람이 이어받았는지 모르고 완료됐다고 적지는 않겠네요.”
“그건 이제 금지됐어요.”
수현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과거와 현재가 자꾸 겹쳤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는 위험을 지난 세대의 잘못이라고만 말하지만, 오늘 다시 기록을 확인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었다.
관리자는 오래된 급여 장부 한 권을 내밀었다. 전령에게 야간 위험 수당을 준 항목과 지급하지 않은 항목이 뒤섞여 있었다. 수현은 개인 이름을 가린 상태에서 지급 기준만 보았다. 비가 오는 날 실제로 봉투를 운반한 전령에게 수당이 지급되지 않은 날짜가 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죠?”
“전령이 바뀌면 지급 대상 이름도 바뀌어야 하는데 급히 인계하느라 빠뜨린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담당이라 당시 사유는 모릅니다.”
“그럼 그때도 봉투만 도착했다고 적고 사람이 일한 사실은 제대로 안 남았을 수 있겠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수현은 여기서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긴급 명령의 전달 경로에는 행정 시스템과 기술 장치뿐 아니라 비를 맞고 뛰어다닌 사람들이 있었음을 분명히 확인했다. 그 사실은 E-17의 최종 수령 여부를 조사할 때도 빠뜨릴 수 없었다.
숙소를 나서려는데 젊은 전령이 쫓아왔다. 그는 아까 들었던 질문을 떠올렸다고 했다.
“중단 지시는 빨리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만, 예전 사고 보고서에는 전령이 얼마 만에 달렸는지만 써 있어요. 제대로 받은 사람의 서명은 없죠.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나요?”
“네. 달린 시간을 기록하는 건 중요하지만 받은 사람이 실제로 명령을 이해했는지도 중요하겠죠.”
“그럼 저도 오늘부터 수령 확인이 없으면 그냥 완료라고 적지 않겠습니다.”
수현은 그 말에 웃었다. 서로 다른 세대의 전령이 같은 길을 뛰어다녔지만, 오늘의 전령은 오래전의 빈칸을 다시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차이가 마음에 남았다.
오후 늦게 인사기록 담당자로부터 회신이 왔다. 옛 수령 대행자에게 서신이 전달됐으나, 당사자가 지금은 외부 방문을 어렵게 여긴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자신이 기록한 당시 일지의 일부를 당사자와 기록관이 함께 읽는 방식이라면 동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분은 살아 계시네요.” 수현이 말했다.
“네. 다만 연로하고 그때 이야기를 꺼내는 걸 두려워합니다.”
수현은 순간 이름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분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겠습니다. 원하시면 질문도 미리 보내겠습니다.”
세드나는 그 문장을 기록했다. 당시 업무를 맡았다는 이유로 평생 조사에 무제한으로 응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건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과 그 사람의 현재 삶을 침범하는 일은 달랐다.
그날 저녁 수현은 세 가지 질문을 조심스럽게 적었다. 받았던 봉투의 겉면을 기억하는가. 실제로 누구에게 전달했는가. 전달 후 기계가 멈췄다는 확인을 직접 들었는가. ‘왜 그랬습니까’나 ‘누가 시켰습니까’ 같은 질문은 뒤로 미뤘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사람에게 결론부터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세드나가 그 질문을 읽고 말했다. “그분이 답을 못 해도 괜찮겠어요?”
“모른다고 하셔도 도움이 되죠. 모르는 걸 억지로 채워 넣는 것보다는요.”
루세는 숙소 창문을 닫으며 웃었다. “원래 세계에서도 그렇게 하셨습니까?”
“아뇨. 가끔 조급해서 실수했어요. 여기 오니 실수 하나에 사람이 차원을 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조금 신중해졌습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 수현은 다시 수신 원장의 문구를 떠올렸다. ‘중단 지시 수신.’ 그 다음에 이어져야 할 것은 누군가의 대답이었다. 사람이 들었다면 사람의 대답, 기계가 멈췄다면 기계의 대답.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수첩 맨 끝에 썼다.
‘다음에 확인할 것: 대행자의 교대 종료 기록. 붉은 종 세 번은 마지막 조치가 아니다.’
밖에서 진짜 저녁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한 번이었다. 수현은 그 소리가 끝까지 잦아드는 걸 들은 뒤 불을 껐다.
제17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