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회선 관제실에 도착한 첫날, 이수현은 문부터 잘못 찾았다.
‘출입 허가’라고 쓰인 문을 열자 작은 식당이 나왔다. 열 명쯤 되는 직원이 수프를 먹다가 한꺼번에 그녀를 바라봤다. 가장 가까운 남자가 숟가락을 든 채 말했다.
“관제실은 뒤쪽 계단입니다. 여긴 직원 출입문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허가증은 있으세요?”
수현이 서류 봉투를 들어 보이자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거 없으면 식당에도 못 들어와요. 지난주엔 누가 식량 배급 확인하러 왔다가 기계실을 뒤져 놓고 갔거든요.”
세드나는 한숨을 삼켰다. “왕도 공동심사반에서 보존 명령을 내려보냈습니다. 오늘은 접근 기록부터 확인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얼른 식사하세요. 이 건물에서 제시간에 문 여는 건 식당뿐이에요.”
수현은 웃을 뻔했다. 관제실의 첫인상으로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밥을 먹는 사람은 있었으니까.
정문으로 돌아가자 안내판은 더 복잡했다. 기록 열람 창구, 기술 안전 창구, 긴급 중단 전용 창구. 수현은 맨 마지막 글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중단 명령을 처리하라고 설치한 창구가 눈에 띄게 가장 작았다.
“왜 여기는 창구가 반밖에 안 돼요?”
루세가 낡은 유리창을 보며 말했다. “예전엔 중단 요청이 자주 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겠죠.”
“위험한 장치를 돌리면서요?”
“그 모순을 알아채기까지 여러 해가 걸린 모양입니다.”
담당자 이름은 코르빈이었다. 푸른 소매를 걷어붙인 사십 대 여자가 창구 뒤에서 인계함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그녀는 심사반의 보존 명령서를 두 번 읽었다.
“열람 범위가 너무 넓군요.”
“E-17 당일 최종 수령 확인 원장입니다.” 세드나가 차분히 대답했다.
“그건 한 권이 아닙니다. 일반 인계, 비상 중단, 야간 자동 이관이 서로 다른 함에 들어 있지요. 게다가 당시 기록에는 지금도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 전체를 복사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관련 항목이 존재하는지, 어디까지 열람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록은 가려도 괜찮습니다.”
코르빈은 그녀를 잠깐 살폈다. “이렇게 말하는 조사인은 드뭅니다. 대개 필요한 부분을 내놓으라다가 나중에 범위를 정하거든요.”
“저도 남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뒤지고 싶진 않아서요.”
“그래도 오늘 원본을 바로 열 수는 없습니다.”
“예상했습니다.”
“예상했다면 왜 오셨죠?”
“거절 이유를 문서로 남기려고요. 그리고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같이 정하려고요.”
코르빈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노무사라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한다고요?”
“원래는 월급과 근로계약을 다루는 사람이죠. 여기 와서는 문서를 찾는 게 본업이 됐습니다.”
“마법사도 아니고요?”
“아쉽게도요. 마법을 쓸 줄 알았다면 우선 제 휴대전화부터 충전했을 겁니다.”
대화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수현이 원하는 답은 농담으로 얻을 수 없었다. 코르빈은 수신함 목록을 펼치며 아주 작은 규정을 가리켰다. ‘사람의 안전을 위한 중단 명령은 수신과 조치를 별도로 증빙한다.’
“현재 규정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 두 단계가 하나의 도장으로 처리됐습니다.”
“E-17 날에도요?”
“그건 원장을 보아야 압니다.”
“그럼 원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나요?”
코르빈이 서랍에서 금속 꼬리표를 꺼냈다. 보관번호 S-4. 마지막 줄은 수현이 그토록 찾아온 날짜였다. 수신 원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현의 손끝이 저절로 꼬리표 쪽으로 움직였다가 멈췄다. 손대지 않았다. 그동안 한 번의 무분별한 열람으로 기록이 얼마나 쉽게 훼손되는지 보아 왔다.
“원본 실물은 어디 있습니까?”
“아래층 방수 금고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열쇠는 제게, 두 번째는 야간 관제 책임자에게 있습니다. 오늘 책임자는 휴무예요.”
세드나가 말했다. “보존 명령은 휴무를 취소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수현도 같은 생각이었다. 문서 때문에 사람의 휴식을 깨우기 시작하면 지금까지의 조사가 우스워진다.
“대신 보존 상태 확인서를 받고 내일 정식 열람하겠습니다.”
코르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렇게 하죠.”
***
관제실에서 정식 허가를 받는 동안 수현에게는 자꾸만 작은 소리가 들렸다. 금속 인장을 찍는 소리, 종이를 묶는 끈이 끊어지는 소리, 누군가 ‘다음’이라고 외치는 소리. 서울의 노동청 민원실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는 민원을 낸 사람이 차원을 건너올 수도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 중 한 여성이 아이를 안고 앉아 있었다. 아이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창구 번호를 계속 확인했다. 수현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새벽부터요. 남편이 여기서 야간 보수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쳤는데, 관제실 기록에는 퇴근한 뒤 다쳤다고 적혔대요.”
수현은 순간 자신이 조사하는 사건에 대한 생각을 멈췄다. 여자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남편의 근무 종료 시각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각은 업무 지시가 끝난 때가 아니라 야간 담당자가 봉투를 정리한 때였다.
“남편분은 몇 시까지 일하셨대요?”
“새벽 종이 울린 뒤에도 한참 더 고치셨대요. 동료는 알고 있는데 서류가 저렇다네요.”
“오늘 무엇을 신청하시는 건가요?”
“다시 조사해 달라고요. 근데 담당자가 없으면 다음 주에 또 오라네요.”
수현은 어떤 조언을 해 줘야 할지 망설였다. 자신은 왕국에서 공인된 대리인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먼저 밝혔다. 다만 여자가 확인할 만한 질문을 함께 정리하는 건 할 수 있었다.
“근무 종료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마지막 작업을 누가 지시했는지, 동료 진술을 어디에 제출할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오늘 오셨다는 접수 사실은 남겨 두시면 좋겠어요.”
여자는 낡은 종이를 꺼내 질문을 따라 적었다. “제가 이런 걸 물어도 되나요?”
“그분의 일이니까요. 다만 기록을 보여 줄 권한이나 절차는 창구에 확인하셔야 합니다.”
수현은 아이가 깨어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여자는 답답한 표정으로 일어섰지만 아까와는 달리 손에 질문이 있었다. 창구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외로워 보였다.
잠시 뒤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접수는 해 준대요. 오늘은 바로 결론이 안 나지만, 동료가 확인서를 제출할 수 있는 양식도 준다고 했어요.”
“다행이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오셨어요?”
“아주 먼 곳이요.”
“얼마나요?”
수현은 잠깐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돌아가는 길도 모를 만큼요.”
여자는 엉뚱하다는 듯 웃었다. “그럼 집에 잘 돌아가시길 빌게요.”
그 말이 생각보다 오래 가슴에 남았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수현에게 돌아갈 곳이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종종 그런 인사를 해 주었다. 그때마다 수현은 자기가 왜 돌아가고 싶은지를 새로 떠올렸다. 서울에서 놓고 온 냉장고 반찬이나 휴대전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기 인생이 이어져야 할 곳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세드나가 서류를 들고 나타났을 때 수현은 조용히 일어났다.
“기다리는 동안 뭐 하셨어요?”
“제 본업을 조금요.”
“왕국에서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그래서 질문만 같이 생각했어요. 답은 당사자가 직접 하시게요.”
세드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꽤 어려운 일이죠.”
그들이 건물을 둘러보던 오후, 아래층 계단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짧은 비명과 함께 누군가 물통을 붙잡고 넘어졌다. 수현이 계단을 내려갔을 때, 청년이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다치지 않았어요.”
그러나 손등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은 기준이 많이 낮으시네요.”
“저는 여길 정리해야 합니다. 오늘 야간 교대자가 못 온다 해서….”
“유리 조각 위에 다시 들어가실 건 아니죠?”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이름은 니엘, 남부 관제실의 임시 기록 보조였다. 그는 세 사람이 동시에 빠진 야간조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전날부터 일했다고 했다. 물통을 옮기는 일도 본래 담당 업무가 아니었다.
루세가 문턱을 넘지 못하게 사람들을 막았다. 세드나는 직원에게 치료사를 부르도록 했다. 수현은 니엘의 손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진료에 동의하는지 먼저 물었다.
“진료받을 수 있어요?”
“그럼 제 기록을 누가….”
“기록은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있습니다.”
“규정상 제가 인수 확인을 해야 하는데요.”
“손이 다쳤는데 확인 서명을 할 수 있나요?”
니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손을 다친 기록 보조에게 서명을 요구하는 규정이라니. 수현은 이곳의 옛 사고 원장을 읽기도 전에 현재의 사고가 재연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코르빈이 계단으로 내려오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는 직원 두 명에게 구역을 폐쇄하고 깨진 병을 수거하게 했다. 니엘의 일을 다른 기록 담당에게 넘기려 했지만, 대체 담당자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인원이 부족합니까?” 수현이 물었다.
“정원상으로는 둘이 더 있어요. 한 명은 치료 중이고 한 명은 부임이 미뤄졌죠. 예산에는 자리가 있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야간 인계 기록의 신뢰성도 떨어지겠네요.”
코르빈이 굳었다. “우리 직원들이 거짓으로 적는다는 말씀입니까?”
“아니요. 직원이 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수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일하지 못한 시간을 일한 것으로 적게 만드는 구조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건 직원 탓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수현은 니엘의 동의를 받고 그의 근무표를 살폈다. 사흘 전부터 야간 교대와 오전 비상 정리를 연달아 맡은 표시가 있었다. 휴식란에는 ‘상황 종료 뒤’라고만 적혀 있었다.
“상황이 끝나지 않으면요?”
코르빈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니엘이 붕대를 감은 손으로 작은 목소리를 냈다. “저는 일을 빼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데 졸음이 올 때마다 인장 소리를 잘못 듣는 것 같아요.”
수현은 그를 보았다. 결국 자신이 조사하는 수십 년 전의 밤도 이런 사람들의 밤이었다. 피곤한 손과 확인할 겨를 없는 도장, ‘나중에 하자’는 빈칸으로 이루어진 밤.
“오늘은 쉬세요. 그리고 누군가 대신 업무를 맡았으면 그 사실을 정확히 남겨야 합니다.”
코르빈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인수하겠습니다. 다만 지금 기록이 쌓여 있어서….”
“그럼 내일 봐도 되는 일과 오늘 처리하지 않으면 사람이 위험한 일을 나눠 보세요.”
“긴급 중단 접수는 오늘입니다.”
“그건 지키고, 지난달 물품 분류는 미뤄도 되겠네요.”
니엘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지금까지 그 반대로 배웠어요.”
수현도 웃었다. 여기에 온 뒤 가장 이상한 직업교육 중 하나였다.
***
해 질 무렵 세드나는 보존 상태 확인서를 받아 왔다. 원본 금고에는 봉인 손상 기록이 없다고 적혀 있었지만, 특정 날짜의 두 번째 인장 시각은 ‘미확인’이었다. 수현은 즉시 수정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적혀 있는 편이 나았다.
코르빈이 짧은 질문을 던졌다. “정말 내일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일 다 알지는 못하겠죠.”
“그런 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몰랐던 걸 하나라도 덜 모르게 되는 게 조사잖아요.”
코르빈은 한참 웃지 않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세 사람은 숙소로 돌아가기 전 관제실을 한 바퀴 더 돌았다. 건물 뒤편에는 구형 회선으로 연결된 정지 손잡이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루세는 관람용이라며 수현에게 손을 얹어 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쳐다보기만 했다.
“잡는다고 켜지지는 않습니다.”
“알아요. 그래도 안 잡을래요.”
“왜죠?”
수현은 잠시 생각했다. “예전엔 제가 잘못해서 여기 온 줄 알았어요. 모르는 봉투를 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가 제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지도 않고 절차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함부로 손잡이를 잡고 싶지 않아요. 이번에는 제가 무엇에 동의하는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루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나는 아무 말 없이 수현 옆에 섰다.
낡은 손잡이 위에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긴급 정지는 누구라도 요청할 수 있다.’ 그 밑의 작은 글씨는 마모되어 읽을 수 없었다. 수현은 마모된 부분을 그 자리에서 복원하자고 하지 않았다. 기술팀이 정식으로 검사할 일이었다.
숙소에 돌아온 뒤 그녀는 세 장의 종이를 펼쳤다. 첫째는 남부 관제실의 S-4 원장 실재 확인, 둘째는 내일 두 보존자 입회 열람 계획, 셋째는 오늘 니엘의 사고 접수증이었다. 전혀 다른 두 종류의 문서 같지만 그녀에겐 같은 문장으로 읽혔다.
‘누가 그 일을 실제로 확인했는가.’
서울에서도 매일 했던 질문이었다. 다만 그때는 누군가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는 질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코르빈이 보낸 간단한 쪽지였다. 내일 아침 원장 열람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내용 아래, 그녀가 손글씨로 한 줄을 더했다.
‘니엘의 야간 근무는 오늘부터 대체 배정했습니다. 사고 기록은 본인 확인 후 별도 정정하겠습니다.’
수현은 잠시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웃었다. 적어도 오늘 한 사람은 집에 가서 잘 수 있게 됐다.
그녀는 쪽지 뒷면에 내일 물어볼 질문을 적었다. ‘수신 완료 도장이 찍힌 문서의 실제 수신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름이 없으면, 왜 없는지부터 확인할 것.’
제17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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